시행 D-7 ‘중대재해처벌법’…벌써부터 빗발치는 개정 요구
경영책임자 등 모호한 처벌 대상 놓고 해석 분분
노동계, ‘바지 대표이사’ 우려에 오너 책임 회피 지적
경영계 “다툼·혼란 우려…법·제도 명확히 개선될 필요”
위헌 가능성 논란에...“손해배상 한도 높이는 쪽으로 강화돼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특히 최근 광주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로 중대재해법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시행도 하기 전부터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동자의 안전권 보장이라는 입법 취지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법 자체의 모호성과 적절성 등의 이유로 현장에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모호한 처벌 대상에 기업은 CSO 신설 주력
하지만 이 부분이 가장 쟁점이 되고 있다. 경영책임자의 의무나 책임을 규정한 법 조항들이 너무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중대재해법 제4조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등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해야 하며,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등의 4가지 의무다. 이 같은 의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한다.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의 범위가 광범위한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문제는 적용 대상인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 처벌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경영책임자의 경우 중대재해법 제2조 9항에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어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에 기업들은 경영진의 형사처벌을 막기 위해 CSO(최고안전책임자)를 신설하는 등 책임을 분산시켜 대표이사가 직접 처벌받게 되는 상황은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해석은 다르다.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법 해설서에 따르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선임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의무가 면제된다고는 볼 수 없다”고 부연했다. 단순히 CSO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의미다.
대표이사 처벌은 가능…실질 지배 오너는?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대표이사는 산업안전보건법 14조에 따라 매년 회사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대표이사의 관여 없이 CSO가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총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이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경영진 처벌에 대해 재계는 중대재해법이 형사처벌 대상으로 안전담당 책임자는 물론이고 사업주와 최고경영자(CEO)를 포함시킨 상황에서 현장 근로자의 경미한 실수가 회사 고위 경영진에 대한 법적 조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노동계에서는 단순하게 회사의 안전담당 책임자와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총수 또는 오너는 이미 대표이사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해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처벌 대상에서 빠진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광주 신축아파트 붕괴사고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 발생했더라도 사퇴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처벌 대상에 포함될 확률은 높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대표이사는 사퇴한 정몽규 회장이 아니라 유병기·하원기 각자대표다. 정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의 미등기 임원으로, 자신이 최대주주인 HDC를 통해 HDC현대산업개발을 지배하고 있는 ‘오너’다.
경영계 “대혼란 우려” 노동계 “사각지대 존재”
이 밖에도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인 ‘적정한’ 조직과 인력, 예산 등도 여전히 논란이다. 여기에 원·하청 관계에서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 의무를 누가 이행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경영계에서 지속적으로 나온다. 이런 이유로 경영계에서는 개정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19일 열린 산업안전포럼에서 “중대재해법이 전격 시행된 이후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의 법 적용과 관련한 많은 다툼과 혼란이 우려된다”며 “개별 기업이 안전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법·제도가 명확하게 개선될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안전 지원사업도 대폭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개정을 요구하는 건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은 법 적용이 제외·유예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가 5인 이상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소규모 기업의 혼란을 줄이고자 50인 미만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 현장에는 2년간의 유예기간을 줘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된다.
“위헌 논란 나올 것” “손해배상 강화하는 방향으로”
장 교수는 “가령 원청업체에 하청업체의 관리 부실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손해배상과 같은 책무를 함께 지도록 하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형사처벌까지 하겠다는 것은 무과실에 의한 형사책임을 요구하는 꼴”이라며 “이는 자기책임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형사처벌이 이어질 경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당장 시행 이후 발생하는 사고로 기업이 중대재해법을 적용받을 경우 법 자체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로 끌고 갈 가능성이 크다”며 “헌재에서 위헌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창현 교수도 “형사 처벌을 강화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문제”라며 “대표이사나 안전관리책임자 혹은 오너 등 몇몇 사람을 엄하게 처벌해서는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상황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중대재해법에서도 손해배상 조항이 있다. 법 제15조에는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해당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이 중대재해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그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은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고 나와 있다.
이 교수는 손해배상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윤 창출이 최대의 덕목인 기업에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이렇게 된다면 대표이사나 CSO든 누가 처벌받던 간에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대주주나 오너는 손해배상을 피하기 위해 관리 감독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문 변호사는 “법 취지 자체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결국 내용과 형식의 문제”라며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예방을 통해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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