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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부터 천궁-Ⅱ까지, 한국 무기체계 수출의 국제정치학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아시아·유럽 이어 아프리카 이집트 진출한 K-9
미국 무기 수입 금지된 사우디엔 천궁 수출 기회
중국 견제 호주에 K-9 팔아…지정학 연구 중요해

 
 
K-9 자주포. [사진 한화디펜스]
 
한국이 개발하고 생산하는 고가 무기체계의 수출 계약이 연일 성사되고 있다. 한국 방산업계가 바야흐로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13일에는 호주에서 K-9 자주포 구매를 발표했다. 새해 들어 1월 17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천궁-2 지대공 요격미사일, 2월 1일에는 이집트에서 K-9 자주포의 도입을 각각 발표했다.
 

K-9 자주포 이어 K-2 전차, T-50 훈련기도 수출 기회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이사(왼쪽)와 오사마 에자트 이집트 국방부 전력국장이 지난 1일(현지시각) 이집트 카이로 소재 포병회관에서 K-9 자주포 수출계약 체결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한화시스템]
 
K-9 자주포는 장거리 화력 지원과 실시간 집중 화력 제공 능력이 뛰어난 무기체계로 호평을 받아왔다. 다양한 작전 환경에서 운용이 가능하며 사격 시 반동이 경쟁 자주포보다 적어 호평을 받아왔다.
 
2000년 전력화가 이뤄졌으며, 최대 사거리 40㎞에 분당 최대 6발을 발사할 수 있다. 급속 사격 시에는 15초 이내 3발 사격도 가능하다. 지속 사격 시에는 1시간 동안 분당 2~3발을 쏠 수 있다. 48발의 포탄을 적재할 수 있으며, 최대 시속 67㎞의 속도로 이동이 가능하다.
 
특히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K-9 자주포는 한국산 무기체계 수출의 선봉장을 맡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7개국이 1700여 문을 운용 중이며, 호주와 이집트를 합하면 모두 9개국이 운용하게 된다.
 
터키에 350문(약 10억 달러), 폴란드에 120문(약 3억 2000만 달러), 핀란드에 48문(약 1억6000만 달러), 에스토니아에 12문(가격 미정), 인도에 100문(3억8000만 달러), 노르웨이에 24문(약 2억3000만 달러), 호주에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합계 최대 1조900억원), 이집트에 20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17억 달러) 등을 수출해 실적이 화려하다.
 
K-9 자주포의 호주 수출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한화디펜스는 “K-9 자주포를 ‘파이브 아이즈’ 국가에 처음으로 수출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캐나다·뉴질랜드·호주·영국으로 이뤄졌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기밀정보 공유 동맹이다. 한국을 포함할 가능성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K-9 자주포의 호주 수출은 주요 무기체계를 아시아권에 처음으로 수출하는 사례다. 한화디펜스는 호주 동남부 빅토리아주의 질롱에 생산시설을 세워 현지에서 K-9 생산과 납품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지 생산인 셈이다.
 
2월 1일 발표된 K-9 자주포의 이집트 수출은 아시아·유럽·대양주에 이어 중동·아프리카 지역 첫 진출이라는 의미가 있다.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복잡한 환경의 중동 지역에 한국산 중화기인 자주포가 처음 수출된다는 것은 한국이 이런 환경 속에서 다양한 외교와 비즈니스를 펼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630여 문을 공급한 K-9은 현재 영국 수출도 추진 중이다.
 
한국 방위산업(K방산)은 지난해 70억 달러(약 8조3496억원)를 수출해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앞으로 유럽·호주로 시장을 확대한다면 5년 안에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현재 세계 9위 수준인 한국의 방산 수출 규모는 조만간 5위권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화디펜스의 보병전투차량(IFV) AS-21 레드백은 180억~270억 호주달러(약 16조~24조원) 규모인 호주 육군의 LAND 400 사업에 뛰어들었다. 독일 라인메탈 디펜스의 링스 KF41과 경쟁 중이다.
 
현대 로템의 K2 전차는 노르웨이에서 성능 테스트를 받고 있는데 추운 지역의 적응력이 높아 호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KMW의 레오파르트2 개량형인 레오파르트2A7가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다. 폴란드도 차기 전차로 K2에 관심이 높다. 항공 분야에서도 서광이 비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고등 훈련기 T-50이 UAE에서 새 시장을 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무기 기술·생산 원하는 UAE에 현지 테스트로 천궁-Ⅱ 수출

한국산 지대공 요격 미사일 ‘천궁-Ⅱ'. [사진 방위사업청]
 
1월 17일에는 초대형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탄도탄 요격미사일 체계인 ‘천궁-Ⅱ'(M-SAM2·중거리 지대공미사일)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첨단 하이테크 무기체계인 미사일, 그것도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탄도탄 요격 미사일이 처음 수출되는 것은 한국 방산 수출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다.
 
UAE를 방문 중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인 16일 UAE의 두바이에서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UAE 총리 겸 두바이 에미르(이슬람 군주)와 만나 천궁-Ⅱ의 수출을 확정 짓고 사업계약서를 교환했다는 게 당시 청와대 발표다.
 
천궁-Ⅱ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디펜스 등이 참여해 개발했다. 2012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개발하고, LIG넥스원이 생산을 밭았다. 천궁-Ⅱ는 최대 사거리가 40㎞로,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을 모두 요격할 수 있다.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의 핵심이다.
 
5년간 개발해 2018년 양산에 들어갔으며, 2021년 11월 군에 인도됐다. 사격통제소, 다기능레이더, 3대의 발사대 차량 등으로 1개 포대를 구성된다. 발사대 하나당 8발의 요격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명중률도 뛰어나 국방기술품질원이 2021년 7월과 8월 ADD 안흥시험장에서 각각 탄도미사일과 항공기에 대한 요격 시험을 한 결과 표적에 모두 명중했다.
 
이번 계약 규모는 무려 35억 달러(약 4조1000억원)로 한국의 무기체계 단일계약으로는 가장 크다. 그날 문 대통령이 공동 연구개발, UAE 내 생산, 제3국 공동 진출을 언급했는데 이는 UAE의 숙원이었다. 중동 국가들은 무기 구매에 많은 예산을 지출해왔지만, 자체 기술력, 생산력이 부족해 일방적인 구매에 만족해왔다. 이에 따라 기술력과 생산능력 확보와 축적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 정부가 UAE 정부와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포함한 첨단무기체계 분야에서 방산 협력 강화를 추진한 것은 2017년이었다. 당시 한국은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의 일환으로 개발 중인 ‘미사일 요격 시스템’의 UAE 현지 테스트를 포함한 양국 국방 협력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 한국군은 북한 미사일 도발 위협과 관련해 ▶발사 전에는 킬체인(한국형 공격형 방위 체계) ▶발사 이후에는 KAMD를 통한 요격 ▶미사일 타격 피해 이후에는 KMPR(대량응징보복) 등 3축 체계의 조기 구축을 추진해왔다.
 
3축 체계 중 KAMD는 저층에서 요격하는 미국산 패트리엇 시스템(PAC-2·PAC-3 등)과 국산 지대공(地對空)미사일(M-SAM, 천궁 개량형), 중·고도에서 저지하는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KAMD와 관련해 고도 20~40㎞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지대공 미사일(M-SAM)이 한·UAE 간 협력 분야로 꼽혔다. KAMD의 핵심 무기 체계이기 때문이다. 고도 60㎞까지 방어하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은 2022년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당시 한국이 추진하는 KAMD의 핵심인 요격 미사일의 현지 테스트를 UAE에서 하는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는 양국 간 방산 협력, 특히 그렇게 개발된 천궁-2의 수출로 이어졌다. 국내 미사일 시험장은 UAE의 넓은 사막지대보다 좁아 인근 주민들의 소음 피해가 우려되지만, UAE는 입지가 좋고 미국산 요격 미사일인 패트리엇의 실제 운용 경험도 풍부해 한국 측이 시험장으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유럽과 소원해진 사우디·터키 문 두드리는 K-방산

문재인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부총리가 2019년 6월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공식환영식 중 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궁-Ⅱ의 UAE 수출은 사우디아라비아 수출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9년 6월 방한 당시 대전의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우리도 이렇게 무기체계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연구소를 세우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21년 2월 인도주의적 재앙이 벌어지는 예멘 내전 참전을 이유로 미국산 무기 수입이 금지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과 접경한 예멘에 시아파를 따르는 후티족 반군이 내전을 벌어지자 2014년 UAE 등과 수니파 연합군을 결성해 참전해 왔다.
 
그러자 예멘의 후티 반군은 이란에서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탄도미사일을 수시로 사우디아라비아 영내로 발사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만으론 물량이 부족했던지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물량을 확보하려고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 전에도 미국산 무기를 사려면 미 의회의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물량 확보에 항상 초조한 터였다.
 
실제로 예멘에서 후티 반군이 발사한 탄도 미사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나 항구도시인 제다 등으로 수시로 날아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데리고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미사일 요격 미사일인 S-400을 구매하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다.
 
한국산 고가 무기체계의 수출에는 국제정세와 지역의 지정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한국산 무기체계 수출과 기술 협력의 대표적인 파트너인 터키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지만 인권문제 등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
 
특히 2019년 터키가 국경을 맞댄 시리아 동북부의 쿠르드족을 잇달아 공격하자 독일과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 나토 회원국이 터키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했다. 당시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YPG)를 자국 내에서 독립을 주장해온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분파 또는 동조세력으로 간주해 공격해왔으며 당시 7만여 명의 민간인이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했다고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했다.
 
독일은 분쟁 지역에 자국산 무기 수출을 금지한 법을 근거로 나토 동맹국인 터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했다. 독일에는 초청노동자(가스트아르바이터)로 이주한 터키인과 그 친지와 후손이 300만~700만 명이 거주하며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런데도 독일은 인권이라는 원칙에서 양보하지 않았다.
 
독일은 2018년 전체 무기 수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억4300만 유로의 무기를 터키에 수출했다. 2018년 2900만 유로의 무기를 터키에 수출했던 네덜란드도 대터키 무기수출 금지에 동참했다.
 
전차와 장갑차 등에 장착하는 원격 조작 화기체계(RWS)로 유명한 콩스베르그 등 고도 방산업체를 보유한 노르웨이도 터키에 대한 수출을 중단했다. 스웨덴은 이미 2018년부터 터키에 대한 공격용 무기의 수출을 불허했다.
 

지정학 연구와 현지 외교 중요한 무기체계 수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9년 1월 19일(현지시간) 구자라트 주에서 열린 K-9 자주포 생산공장 준공식에서 ‘K-9 바지라(힌디어로 '천둥')’에 탑승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나토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러시아의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이루고 있는 벨라루스, 그리고 러시아의 위협을 받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같은 나토 회원국인 독일·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리투아니아와 접경한다. 유사시 러시아의 지상 공격을 가장 먼저 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유럽 방어에서 핵심적인 지역이다. 이에 따라 유럽의 나토 회원국 가운데 가장 강한 지상 전력을 운용한다.
 
각각 200여대의 전차를 보유한 나토 핵심국가 영국·프랑스·독일의 전차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800대가 넘는 전차를 운용한다. 한국산 K-2 전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K-9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로 나토 회원국은 아니다. 냉전 당시 경제와 정치체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무기는 소련산을 쓰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겨울전쟁을 치르면서 준비가 안 된 러시아군에 궤멸적 타격을 안겨줬던 핀란드는 나중에는 나치 독일과 손잡기도 하면서 우왕좌왕했다.
 
당시 타격에 놀란 소련은 핀란드의 자주성을 인정했지만, 국방에서 국경을 맞댄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은 견제해왔다. 냉전 뒤 핀란드는 서구 무기체계로 갈아탔으며 네덜란드가 쓰던 중고 레오파르트-2 전차를 대거 샀으며, K-9 자주포도 구매해 화력을 강화했다. 핀란드는 나토에 가입하고 싶어 하지만 러시아와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 결국 일단은 자주국방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발트국가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제국 영토였다가 러시아혁명 뒤 독립을 이뤘지만 1940년 소련에 점령된 발트삼국의 하나다. 핀란드 남쪽에 위치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라 안보에 고민이 많으며 나토에 합류해 공동안보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한국산 등 무기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는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된 쓰라린 경험으로 유럽연합(EU)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나토에는 창설 당시부터 회원국이다. 콩스베르그 등에서 정밀 무기체계를 생산하지만, 강력한 화력의 K-9이 필요한 나라다. 유럽에 대한 한국산 무기 수출은 결국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연결된다. 무기체계 수출은 곧 외교와 직결된다.
 
호주는 중국에 대한 견제 등을 위해 K-9 자주포를 대거 구매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중국과 국경 분쟁을 벌여온 인도는 중국에 대한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동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호주와 인도에 한국산 무기체계를 파는 것은 결국 중국에 대한 견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선거로 집권한 민간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린 이집트에 무기체계를 수출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 측면에서는 많은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무기체계 교역은 국제정치의 또 다른 얼굴이다. 무기체계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지정학 연구와 현지 외교를 강화할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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