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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발 나비효과’ 건설업계 줄도산 현실화될까 [돈맥경화 부동산①]

채권시장 자금경색, PF 부실 우려 급증
원자재 값 상승에 고금리·미분양까지
‘저축은행 사태 악몽’ 건설사 위기 고조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의 모습. [연합뉴스]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업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의 나비효과가 건설업계를 흔들고 있다.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자금경색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어서다.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돈맥경화’로 불리는 자금 경색까지 겹치면서 건설사 부도설이 확산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0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 대비 5.7포인트 하락한 55.4로 조사됐다. 이는 2013년 2월 54.3을 기록한 후, 9월 8개월 내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기업 규모별로 대형 기업의 CBSI는 지난해 9월 58.3에서 10월에 66.7로 올라선 반면, 중견기업은 67.5에서 48.6으로 18.9포인트나 급락했다.  
 
박철한 연구위원은 “통상 10월에는 가을철 발주가 증가하는 계절적 영향으로 지수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최근 레고랜드발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확산하면서 건설업계의 체감경기가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중견건설사들의 기업심리가 위축된 것이 지수하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최근 부동산 PF 시장은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와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부동산 PF는 담보 대신 건설·부동산개발 사업의 사업성을 따진 뒤 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사업성을 근거로 돈을 빌려 주다 보니 이자율이 높은 편이다. PF대출은 크게 토지비를 6개월~1년간 대출하는 브릿지론(사업 인가 전 대출)과 이후 공사비와 사업비 일부를 조달하는 본PF로 나뉜다.  
 

PF대출 막히자 높은 이자 감당 못하고 공매 위기까지 

현재 브릿지론에서 본 PF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로 알려진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원래대로라면 사업계획승인이 난 뒤 PF대출을 받아 높은 금리의 브릿지 대출을 상환하고 착공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레고랜드 이슈로 신규 PF대출의 승인이 나지 않고 있어 브릿지대출의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부동산개발 업계 관계자는 “기존 브릿지대출의 만기가 다가온 사업지는 대출을 연장해야만 하는데 대출 연장 시 금융권이 기존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어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부족한 회사의 경우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업장이 공매로 넘어갈 위험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체력이 약한 지방 중소건설사를 중심으로 이러한 한계상황에 처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시공능력평가 202위(충남지역 6위) 건설업체인 우석건설이 지난달 말 납부기한이 도래한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처리 되기도 했다. 우석건설은 지난해 매출액이 1200억원 규모로 최근 주택 사업을 중심으로 급성장했지만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재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중소건설사뿐 아니라 서울의 우량 사업장으로 꼽히는 둔촌주공 재건축의 PF 차환까지 실패하자 이러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됐다. 다행히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통해 만기를 하루 앞두고 7000억원 규모의 PF 차환에 성공하면서 급한 불은 껐다. 부동산 PF발 자금 경색이 우량 사업장으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긴급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 23일 50조원 플러스 알파의 유동성 지원 조처를 발표하며 20조원 규모로 채안펀드를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장 불안은 여전하다. 단기 자금 조달이 절실한 건설사들의 돈맥경화를 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채안펀드가 매입할 수 있는 기준이 사실상 최고 신용등급인 A1 기업어음(CP)으로 제한돼 대다수 건설사가 혜택을 보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단기 자금시장 경색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가운데, PF 보증은 중장기 지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PF 보증은 준공·분양시점까지 이어지는 은행대출에 보증을 서주는 것인데,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지 못하면 부실 우려가 계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건설업계 고조되는 위기감이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값 급등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 금리 인상 등으로 주택시장 경기가 침체되며 미분양 주택이 늘고, 채권시장 불안으로 자금줄(PF)까지 막혔기 때문이다. 미분양이 나면 PF 상환을 할 수 없고, 건설사는 물론 건설사에 돈을 빌려준 업체들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미분양 위험성이 커질 기미에 금융권에서도 PF대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계속되면 건설사들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금리·미분양·자금경색까지...줄도산 경각심 ↑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이 국토교통부를 통해 받은 자료 ‘최근 5년간 주택거래량 및 미분양 주택 증가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만7710가구였던 미분양 주택이 올해 7개월만에 2배 가까운 3만1284가구로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건설사는 작년 한 해 동안 12개 회사가 도산한 것에 비해 올 해 들어 7월까지 벌써 8개사가 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실적금액이 500억에서 1000억원에 해당하는 대형 건설사도 1곳이 도산해 업계에선 건설사 줄도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에 공격적으로 늘린 PF가 불황기엔 부메랑이 돼 돌아 올 수 있다. 부동산 PF 대출은 준공되지 않은 자산에 대한 대출이라 부실이 발생하면 자금 회수가 어렵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 6월말 기준 부동산PF는 112조2000억원으로 부동산 경기 개선 직전인 2013년 말(35조2000억원)보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PF 대출 금리마저 치솟으며 ‘저축은행 파산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역시 발단은 PF대출이었다. 당시 금융당국은 저축은행별 총여신에서 부동산 PF대출 비율을 25% 이하로 낮추도록 요구했다. 
 
이에 은행들은 건설사를 상대로 대출 회수나 추가 담보물 확보에 나섰다. 이 여파로 부채 관리에 소홀했던 건설사들은 줄도산 했다. 이는 저축은행 추가부실로 이어져 PF 대출이 많았던 저축은행들이 무너졌고 결국 31곳이 무더기로 영업정지를 당했다.  
 
올 들어 비은행권의 부동산 PF 연체율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의하면 3월 말 기준 보험사의 부동산 PF대출 연체 잔액은 1298억원으로 지난해 말(305억원)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또한 올해 1분기 증권사의 부동산 PF대출 연체율은 4.7%로 지난해 말(3.7%)보다 1%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019년 말(1.3%)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상승한 수준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PF는 각 개발사안의 미래가치에 근거해 돈을 차입하는 것이다. 금리 인상 등의 요인이 시장에 영향을 끼쳐 사업자체가 완공되지 못하거나 최종 분양이 실패하면, 투자금 회수가 안돼서 문제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건설사는 아파트만 짓더라도 정비사업 등에서 신용공여를 하는 경우가 있어 역시 우려에 포함된다”며 “만약 이런 사업장이 5개, 10개가 있는 경우 이들 모두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최대 얼마까지 손실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사안이 확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다만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취약기업의 사례를 전체로 일반화해서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불확실성이 커진 건설사들은 신규사업도 더 꼼꼼히 사업성을 판단해서 취사선택 수주하고, 필요하다면 감원까지 포함한 위기경영으로 스탠스를 변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승훈 기자 wave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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