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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낯설음’을 요리하는 남자…용리단길 ‘대장’ 남준영표 미식로드 [이코노 인터뷰]

용리단길 사로잡은 남준영 TTT(Time to Travel) 대표
음식점을 여행지로…12개 식당, 연간 매출 100억원 달해
“배고파 먹는 음식 대신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도록”

용리단길 요식업계 대표주자인 남준영 TTT(Time to Travel) 대표가 자신이 운영하는 와인바 ‘사랑이뭐길래’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식당을 찾아주신 손님에게 ‘좋은 낯설음’을 선사하고 싶어요. 마치 여행을 떠난 것처럼, 기쁘고 행복한 설렘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철퍼덕, 자리에 주저앉는 대신 나란히 서서 그날의 고충을 도란도란 털어놓는 이자카야. 1990년대 슬픈 발라드를 들으며 퓨전 한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와인바. 모두 용산역 상권의 ‘용리단길’에 자리 잡은 식당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다.

이같이 독보적인 콘셉트로 거리를 장악한 맛집 6여 곳은 모두 젊은 사장, 남준영 TTT(Time to Travel) 대표(36)의 작품이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는 듯, 낭만이 가득 담긴 회사명에는 음식점을 하나의 여행 장소로 만들고 싶다는 남 대표의 바람이 담겼다.

그가 운영하는 12개 식당(프랜차이즈 포함)의 연간 매출액은 100억원에 달한다. 각 매장이 한 달에 1억원 정도를 벌어들이는 셈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으로 ‘다(多)브랜드’라는 여러 마리 토끼를 잡아낸 남 대표를 만나, 그의 식당 안에 담긴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낯선 소리가 들려오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남준영 대표가 운영하는 홍콩식 중식당 ‘꺼거’에서 판매하는 음식들과 그 전경. [꺼거 인스타그램 캡쳐]

남 대표가 자신의 피땀, 눈물이 담긴 음식점을 내놓으면서 가장 원한 것은 소비자가 식당으로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단 한 끼의 식사를 하더라도 매장에서 음식의 문화를 느껴볼 수 있도록 말이다. 남 대표는 “‘좋은 낯설음’을 선사하고 싶다”며 “여행을 간 것처럼, 기쁘고 행복한 설렘을 매장에서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 대표가 첫발을 내디딘 ‘효뜨’에 이어 선보인 베트남 음식점 ‘남박’에는 하노이를 여행할 당시의 경험이 담겼다. 그는 “하노이에 있을 때 아침에서 열고 점심에 문을 닫는 ‘단일 메뉴’ 중심의 쌀국숫집을 굉장히 많이 접했다”며 “이러한 문화를 국내 식당에도 적용해서, 80년 동안 서울의 아침을 지켜온 명동 ‘하동관’처럼 음식의 기준이 되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브랜드인 이자카야 ‘키보’에는 일본 ‘다치노미(たちのみ)’ 문화가 담겼다. 다치노미는 ‘서서 먹는다’는 뜻으로, 의자 대신 서서 먹는 설비만을 구비한 음식점의 판매 형식을 가리킨다. 해당 문화는 지난 17~19세기 에도 시대, 바쁜 일상을 보내는 일본 노동자들을 위해 상인들이 거리에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소바, 튀김 등을 판매한 데서 유래했다. 남 대표는 “식문화 중에 특이한 것을 찾아 나서는 습관을 갖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매장에서 마치 휴게소에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가 외식업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 역시 여행이었다. 학창 시절 운동부에 몸을 담았던 남 대표는 음식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정학과에서 1년간 수학 후 군대에 다녀왔다. 그는 “사령부에서 복무하면서 다양한 해외파 인물을 만나볼 수 있었다”며 “영어 스펠링조차 읽지 못하던 실력이 눈에 띄게 발전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했고, 남들과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23살이라는 젊은 나이, 그길로 떠난 여행지가 바로 호주다. 남 대표는 “호주에는 그 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 등 다민족이 살고 있어서, 다양한 식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며 “시드니에 있던 광둥식당을 시작으로 아시안 음식에 큰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남 대표가 자신의 식당에서 판매하는 메뉴 중 가장 애정하는 음식 역시 홍콩식 중식당 꺼거의 ‘자장미엔’으로, 당시 맛봤던 장 베이스의 본토 짜장면을 모티프로 한다.

모든 아이디어는 ‘결핍’에서 시작된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남준영 TTT(Time to Travel) 대표의 모습. [사진 신인섭 기자]

남 대표는 다수의 브랜드를 모두 성공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로 ‘결핍’을 꼽았다. 그는 “어떤 일을 개시할 때 사전에 세운 계획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진행해선 안 된다”며 “그때그때 필요한 점을 파악하면 해야 할 일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남 대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각 브랜드에 으레 딸려있기 마련인 ‘굿즈’다. 형식에만 치중하지 않고,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는 뜻이다. 

이러한 철학을 가장 확실히 엿볼 수 있는 장소는 바로 키보다. 태생(다치노미)부터 근로자를 위한 장소인 키보를 두고 남 대표는 “일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며 “‘딱 한 잔만 더하자’의 한 잔을 해결해줄 수 있는 곳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어떤 부분이 필요할까를 고민하다 보면 그 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남 대표는 “상권을 오래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아이를 낳은 후 24개월, 주차공간부터 건강까지 아이와 함께 안심하며 갈 수 있는 식당이 참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앞으로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 온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식당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남 대표의 식당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결핍이 낳은 디테일에 있다. 다양한 브랜드를 연이어 오픈하면서 인테리어에 시공까지 직접 도맡아 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는 “요식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오래 걸리더라도 혼자 해보고, 그 진행과정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목공, 전기, 금속, 설비까지 모조리 직접 찾아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는 결국 키보를 시작으로 오픈하는 모든 매장의 시공에 직접 관여했다.

남 대표는 자신의 식당이 용리단길 대표 브랜드로 거듭난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인건비, 자재비 등이 너무 치솟은 상황이어서 포스트코로나시대에도 향후 외식업계 동향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때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의식주 중의 ‘식’”이라며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미식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음식 자체를 즐긴다기보다 배고파서 먹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를 바꿔나가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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