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준호 “실물경기 둔화, 금융권 버블 붕괴…고통스러운 부채축소 지속돼야”[이코노 인터뷰]
함준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취약가계·자영업자·한계기업 잠재부실 현실화 불가피”
“부실 뇌관, 2금융권…유사시 유동성 공급·적기시정조치 등 정리체계 마련해야”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 “조만간 취약가계나 자영업자, 한계기업의 잠재부실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잠재적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비은행 금융부문에 대한 적기 시정조치 및 정리체계를 면밀히 마련해야 합니다.”
함준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전 금통위원)는 연세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일부 비은행부문과 CP,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신용경색 위험이 여전히 잠재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통화정책 전환과 관련해선 “물가가 목표치인 2%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을 줄 만큼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며 “미국 금리의 향배도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3차례 연속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금리인상 사이클이 종료됐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고 강조했다.
함 교수는 캘리포니아대, KDI연구위원을 거쳐 2014년부터 4년간 금통위원을 역임하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내 화폐금융분야의 석학이다. 33대 한국금융학회장으로 내정, 오는 7월 임기를 시작한다.
한미 통화정책의 전환, 구조적 전환기 잠재부실처리에 대해 함 교수의 진단과 처방을 들었다.
연내 급격한 통화정책 전환 어려울 듯
Q. 한국은행이 3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금리인상 사이클이 종료된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A. 금리인상이 종료됐거나 금리인하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은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물론 미국보다는 한국이 조기에 금리인상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지만 예단하기는 어려워요. 물가가 미국보다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통화정책 목표치인 2%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을 줄 만큼 안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근원물가가 견고하게 2%수준에 이르는지 좀 더 확인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실물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미국의 금리향배가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섣불리 전환하기엔 부담이 큽니다.
Q. 미국은 중소은행들의 연쇄파산이 통화긴축의 효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요.
A. 실리콘밸리뱅크, 시그니처뱅크 파산에 이어 퍼스트리퍼블릭이 JP모건에 인수되는 등 중소은행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어요. 역설적으로 연준 입장에선 이런 중소은행 위기가 통화정책을 운용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시스템위기 없이 실물경제 둔화를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지요. 중소은행 위기로 금융여건(Financial conditions)이 더욱 긴축적으로 전환되면 인플레이션은 좀 더 빨리 완화될 수 있어요.
실물경기도 제조업 중심으로 둔화하면서 은행 위기와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요. 최근 단기금리 하락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장단기금리차가 여전히 -0.5%의 역전폭을 지속하고 있는데 과거 경험으로 볼때 조만간 실물경기 침체와 주식시장 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Q. 그런 면에서 미국 연준도 통화정책의 전환(Pivot)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A. 중소은행의 연쇄 파산이 긴축효과로 나타나고 실물경기도 둔화 조짐을 보이지만 미국도 당장에 완화기조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금리 수준을 중립이상으로 계속 유지해야 인플레이션 추세를 확실히 하향기조로 바꿀 수 있는데 현 금리수준이 얼마나 긴축적인지 불확실합니다. 다양한 물가 지표를 보고 통화긴축이 실제 물가에 반영되는지 확인하면서 누가 봐도 기조적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에 도달하고 있다고 보일 때 통화정책을 전환할 거예요.
그래서 다양한 인플레이션 지표가 앞으로 어떻게 나오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최소한 더 큰 은행 위기나 심각한 경기침체가 오지 않는 한 연내 긴축에서 완화로 급격히 선회하기는 힘들 거예요. 더욱이 글로벌화의 퇴조와 공급망 재편, 저탄소경제 이행 등으로 물가압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팬데믹 이전의 초저금리 수준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Q. 미국이 금리인하 기조로 전환하면 우리나라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쓸 여지가 생깁니다. 가계부채 PF부실 등 잠재위험 요인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요.
A.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고 조기에 인하된다면 국내 통화정책 운용에는 도움이 될 거예요. 다만 경기침체가 심하게 오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빠르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무엇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이 금리인상기에 접어들기 이전에 잠재부실을 제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미 실기했어요.
미국의 고금리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가계, 기업, 금융회사들의 대비가 필요합니다. 정부도 미국 금리인상이 멈추면 지금이라도 모든 잠재부실을 덮어두지 말고 일부라도 현실화하면서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Q. 국내 통화당국은 연준의 통화정책에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A. 미국처럼 규모가 큰 경제는 통화정책의 파급효과에 대해 예측이 한결 수월하지요.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장의 기대수준을 관리하면서 장기금리를 움직여주면 돼요.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개방된 신흥국에선 통화정책 운용에 한계가 있어요. 장기 금리를 컨트롤하기 어려워요. 기준금리를 조정해도 기껏 3년물 정도까지만 영향을 미칠뿐 10년물, 30년물 등 장기금리는 미국 금리 수준에 따라 동조화되기 때문이에요.
실제 금통위원시절 기준금리 조정이 장기 시장금리에 미치는 효과가 높지 않아 고민이 많았어요.예컨대 우리 중앙은행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리를 올려 긴축적인 신용여건을 만들려고 해도 잘 먹히지 않았어요. 미국이 엄청나게 양적 완화를 하면서 채권시장에 외국자본이 흘러들어오니 우리 장기금리는 되레 낮아지고 그에 기초해 부동산 등 실물경제가 움직이면서 통화 정책의 효과가 의도대로 나타나지 않은 거죠.
Q.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라는 상충적인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건 더욱 어렵겠군요.
A. 통화정책만으로는 금융안정과 물가안정이라는 양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는 없어요. 금융안정과 관련한 거시건전성 정책이 통화정책과 조화를 이룰 필요성이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의 협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금융안정과 관련한 정책 거버넌스체제를 투명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어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안정과 관련한 유관기관 회의를 법제화해 분명한 미션을 주고 유동성 지원 등을 통해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도록 하면 됩니다. 회의를 정례화하고 회의 안건과 의사록도 가급적 투명하게 공개해 책임성을 높이도록 하면 되요. 이를 통해 중앙은행의 역할과 한계도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지요.
실물경기 둔화, 잠재부실 현실화
Q. 은행산업에 대해 과점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A. 여러 지표로 볼 때 국내 은행들의 경쟁압력 수준이 낮지만은 않아요. 지금 은행산업이 과점 구조로 철옹성처럼 보호받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디지털 전환으로 금융중개기능이 완전히 새로 해체되고 분해되는 과정에 있어요. 은행 독점의 수직적 중개기능이 분업화 분절화되고 있다고 할까요. 예전엔 은행 창구에서 독점적으로 대출 심사를 했지만 핀테크가 활성화되면서 지금은 네이버 포털 같은 온라인에서 대출상품을 비교해 차입자들이 선택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단순히 과점을 해소하겠다고 은행 수를 늘리는 건 별 의미가 없어요. 디지털 전환으로 금융중개기능이 해체되고 빅테크, 핀테크 등 새로운 경쟁압력이 높아지는 상태에서 금융당국은 이런 흐름을 반영해 금융중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규제 틀을 바꿔 나가는 일이 중요해요. 진입규제, 영업규제를 경쟁 효율적으로 정비하고, 디지털 전환에 따른 새로운 위험에 대응해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합니다.
Q. 은행 본연의 기능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은데요.
A. 정부의 과보호아래 퇴출 위험이 없으니 중개능력에 따른 수익성 경쟁보다는 자산규모에 치중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은행으로선 몸집만 불리면 예대마진을 통해 수익이 저절로 나는 구조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예금자나 주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경영성과도 실력으로 차별화되지 않으니 지배구조도 왜곡되게 마련이지요.
예금자와 주주에 의한 시장규율이 정립돼야 합니다. 은행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보호막을 걷어내고 예금자와 주주에 대한 책임경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지만 이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시장에 은행불사의 기대감이 생기고 시장원리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은행 본연의 재원배분기능, 지배구조기능을 시급히 복원해야 합니다.
Q. 은행 중심의 금융중개구조를 자본시장 중심으로 전환해야겠지요.
A. 예금과 부동산에 편중된 민간 금융자산이 고성장 혁신기업으로 효율적으로 배분되기 위해선 금융중개구조를 시장중심형으로 전환해야 해요. 경제발전의 동력이 기술혁신, 데이터, 무형자산 등으로 점차 고도화되고 있잖아요. 이질적이며 전문화된 정보를 시장가격에 효율적으로 종합 반영할 수 있기 위해선 자본시장의 심화된 중개역량이 필요합니다.
자본시장의 신뢰성,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보생산 및 유통, 소비자 보호, 불공정거래 등과 관련된 규율체계를 정비해야 해요. 무엇보다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대한 자기책임 투자 원칙이 투자자보호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문제가 터질때마다 규제의 중심이 자꾸 흔들리는데 이럴 경우 자본시장의 위험평가와 가격기능은 제대로 활성화 될 수 없습니다.
Q. 지금 같은 통화정책의 전환기, 한국 금융의 구조적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 금융기관과 자본시장의 괄목할 만한 외연적 성장에도 우리 금융시스템은 생산성이 높은 실물부문으로의 중개능력이 미흡합니다. 금융저축이 은행과 단기성 자본시장에 환류하면서 성장 혁신기업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채 금융재원이 부동산부문으로 과다하게 쏠리고 있어요. 금융순환이 실물순환이 아닌 주택경기순환과 맞물리며 주택가격의 변동위험에 고스란히 노출, 시스템적으로 취약성을 보이고 있지요. 여기에 정책금융과 보증의 과다 지원으로 시장규율도 원활히 작동하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은행과 자본시장의 사후 지배구조 기능도 취약해 상시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Q. 잠재 위험요인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겠군요.
A. 고령화, 디지털 혁신, 에너지 전환 등으로 전통 금융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어요. 여기에 금융부문에 군집행동이 나타나면서 부동산 등 자산거품으로 이어져 불안정성을 야기하고 있어요. 이런 취약성으로 인해 한미 금리 역전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여건은 미국보다 더 빠르게 긴축화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은행의 경우 건전성이 높고 시장성증권 투자규모도 크지 않아 시스템리스크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만 일부 상호금융, 신협 등 서민금융기관과 증권, 카드 등 일부 비은행부문에서 부동산 PF 등 잠재위험이 높은 상황이에요. 얼마전에도 CP,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신용경색 조짐이 나타난 바 있지요.
조만간 취약가계나 자영업자, 한계기업의 잠재부실이 현재화될 거예요. 실물경기 흐름도 대내외 신용긴축이 겹쳐지면서 하방위험이 높아지고 있어요. 그간 실물부문과 괴리돼 부풀려진 가계, 기업, 금융회사의 대차대조표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할 거예요. 극심한 금융위기까지는 아니라 해도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이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A. 사전적 위기방지와 사후적 금융안정을 위해 정책기관별로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 원칙도 정립할 필요가 있어요. 금융당국은 예기치 못한 경로를 통한 시스템위기 발생 가능성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사후적 금융안정 기관들은 재원을 미리 확충해 위기 대응력을 높여야겠지요.
여기에 유사시 유동성 공급, 적기시정조치, P&A 등 투명한 절차에 따른 신속한 부실금융기관 정리체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면밀히 대비해야 합니다. 특히 유사시에 대비해 잠재적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비은행 복합금융회사에 대한 정리체계도 마련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함 교수는…
▲196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학과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박사(화폐금융)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버라캠퍼스 경제학과 조교수 ▲KDI 연구위원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예금보험공사 비상임이사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현)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차기 한국금융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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