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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도 무량판 아파트?”…주민 불안감 확산

[순살아파트 포비아]①
LH 발주 무량판 공법 단지 91곳 중 15곳 보강철근 누락
공공에서 민간으로 번지는 무량판 공법 단지 공포

8월 3일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 오산시의 한 LH 아파트에서 보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검단 아파트와 동일한 ‘무량판’ 공법으로 지어진 LH 아파트 15곳에서 전단 보강근이 빠진 것으로 조사되면서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민간 아파트에도 안전성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량판 공법이라고 해서 모두 부실 시공이라고 봐서는 안된다는 분석이다. 전단 보강근을 충분히 넣을 경우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무량판 공포(포비아)는 지난 4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인천 검단 AA13-1·2블록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1층의 지붕층 콘크리트 천장(슬래브)이 무너진 사고였다. 이 아파트는 올해 10월 완공 예정으로 입주를 5개월 앞두고 있는 데다 해당 주차장 상부에 어린이 놀이터가 들어설 예정이었기 때문에 입주 예정 주민들의 불안감이 치솟았다.

무량판 구조…내력벽‧보 없이 철근 넣은 기둥으로 지지

정부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선 결과 ▲설계와 감리, 시공 부실로 인한 전단보강근의 미설치 ▲붕괴 구간 콘크리트 강도 부족 등 품질관리 미흡 ▲공사 과정에서 추가되는 하중을 적게 고려한 점 등을 붕괴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중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지하주차장 슬래브를 지지하는 기둥에 충분히 넣어야 하는 보강용 철근(전단보강근)이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무량판 구조는 상부의 무게를 떠받치는 내력벽이나 수평 기둥인 보 없이 기둥이 슬래브를 바로 지지하는 구조다. 기둥과 맞닿는 부분에 하중이 쏠리기 때문에 슬래브를 두껍게 구성하고 기둥 주변에 전단 보강근을 여러겹으로 감아 슬래브가 뚫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채워넣어야 할 전단 보강근을 누락하면서 붕괴사고가 나타나자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LH가 무량판 공법으로 발주해 시공사를 선정한 91개 단지를 전수 조사했다. LH가 발주한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단지 91곳 가운데 15곳이 철근이 빠지거나 설계와 다르게 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준공 단지는 9개, 공사 중인 단지는 6개다. 준공 완료 단지는 ▲파주 운정 A34 ▲충남도청이전도시 RH11 ▲수서역세권 A-3 ▲수원 당수 A3 ▲오산 세교2 A6 ▲남양주 별내 A25 ▲음성 금석 A2 ▲공주 월송 A4 ▲아산 탕정 2-A14 등 9곳이다. 공사 진행 단지는 ▲양주 회천 A-15BL ▲광주 선운2 A-2 ▲양산사송 A-2 ▲파주 운정3 A-23 ▲인천 가정2 A-1 등 6곳으로 나타났다.

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이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무량판 공법으로 지어진 단지에서 무더기 부실 시공 사태가 발생하면서 공공분양 단지뿐 아니라 민간분양 아파트에도 무량판 공포감이 퍼져나가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성동구·강남구·강동구·서초구 등 한강변 고급 신축 아파트와 고층 주상복합의 주거동에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주차장뿐 아니라 주거 공간에도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단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입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지난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2020~2021년에 지어진 아파트에 자재를 줄여서 넣은 곳이 많다’는 글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게시글은 ‘원자잿값이 폭등하면서 철근 콘크리트를 10개 넣어야 하는데 6~7개만 넣는다거나, 자재를 아껴서 지었다’는 내용이다.

‘자재를 아끼지 않으면 하청업체들이 공사를 진행할 수 없으니 감리도 어느 정도 눈감아주는 분위기’라는 내용도 있었다. 실제 올해 철근 또는 전단보강근을 적게 넣은 단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자 ‘철근좌의 예언이 맞았다’며 해당 게시글이 다시 회자되는 모습이다.

민간 아파트 ‘우리 아파트, 무량판 구조 아냐’ 자체 공문 돌려

서울 강동구 고덕동 등 일부 아파트에서는 지난 3일 관리사무소에서 무량판 적용 여부를 공고문으로 게시하기도 했다. 해당 공고문에는 ‘우리 아파트는 무량판 구조가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주거동 건물은 벽식구조로, 지하주차장은 라멘구조(기둥식구조)로 시공됐으며 무량판 구조는 사용되지 않았다’며 자체 공문을 통해 입주민들의 불안감을 달랬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는 2017년 이후 무량판 방식으로 지어진 민간 아파트 293곳(약 25만가구)을 대상으로 안전점검에 돌입했다. 전문 인력과 장비를 갖춘 민간 안전진단 전문기관을 선정해 점검을 실시하고, 점검 결과를 국토안전관리원이 확인해 공정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지하주차장 등 공용 부분뿐 아니라 입주민이 동의하는 경우 주거동까지 점검할 계획이다. 필요한 경우 조사 대상을 2017년 이전 준공 단지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 전문가들은 무량판 공법은 위험하다는 무분별한 ‘낙인’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적절한 전단보강근을 갖춘다면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무량판 공법은 벽식구조, 기둥식구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공 속도가 빠르고, 공간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층간소음이 작다는 강점이 있다”며 “요즘 무량판 구조를 적용했다고 하면 무조건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데, 기둥에 철근과 전단보강근을 알맞게 넣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량판 구조는 위험한 공사 방식이 아니다”라며 “적절한 설계와 시공이 이뤄진다면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제도적 개선보다는 원칙을 지키는 실행역량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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