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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흥행 뒤 숨은 마케팅 비결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영화산업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했지만
전략적 타겟팅·역발상 마케팅으로 흥행
경쟁력은 기본…작품 자체에 자신한듯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은 2023년 12월 24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포스터. [사진 연합뉴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K-콘텐츠의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아졌다. 동시에 영상 콘텐츠를 향한 관객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관객의 입맛에 맞추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극장 영화의 경우 티켓값이 오른 만큼,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더 까다로워졌다.

이런 환경에서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달성한 것은 여러 측면을 살펴보게 한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서울의 봄은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산업의 상품, 쉽게 말해 작품을 훌륭하게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기획력’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현실에 몰입한다.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는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 드라마 같은 현실은 관객이 작품에 빠져들게 한다. 관객의 관여도를 높인다는 뜻이다. 이는 팩션(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작가가 상상력을 더하여 쓴 창작물) 영화가 인기인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의 봄은 특정 사건 속 드라마 측면의 가능성에 주목한 기획이기도 하다. 가령 12·12 군사반란은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역사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고, 신군부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감춰진 이야기는 무엇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의 봄이 성공한 것은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관객이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드는 긴박한 전개도 서울의 봄의 성공 요인이다. 감독은 뛰어난 연출력으로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킨다. 서울의 봄은 최근에 개봉한 영화와 달리 러닝 타임이 140분으로 길다. 하지만 영화는 역사의 순간을 탄탄하게 보여주며 관객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시간을 쏟게 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감독의 역량이다. 감독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극을 재미있게 전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서울의 봄에서 진압군 ‘이태신’과 반란군 ‘전두광’은 각각 선과 악을 대변하는데, 감독은 이를 대비해 관객의 감정을 자극했다. “오늘은 북한이 내려오지 않는다”며 최전방 부대까지 서울로 끌어들이는 반란군, 일이 커지자 도망가기 바쁜 국방부 장관, 군의 명령계통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현실을 담은 장면에서도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몰입감 높아, 서울의 봄 흥행에 역할을 했다. 이 영화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의 특성상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래서 개인의 서사에 집중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울의 봄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보석처럼 빛났다. 이들은 영화에 짧은 순간 등장하지만, 중국 고전의 수호지의 군웅처럼 모두가 도드라졌다.

예를 들어 주연을 맡은 황정민의 악역 연기와 정우성의 냉철한 연기는 말할 필요가 없다.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주요 자리에 앉았어도, 개인의 보신을 위해 상황을 피하다 결국 반란군의 편에 선 김의성(오국상 국방부 장관)도 영화 속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정우성(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의 전화를 받고 고민하다 군인으로 지켜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 행동으로 몸소 보인 정형석(박기홍 제8공수특전여단장)도 마찬가지다. 남윤호(강동찬 수도경비사령부 작전참모)도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연극배우이지만, 영국왕립연극학교 출신답게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이 영화는 전략적 타겟팅으로도 성공을 일궜다. 서울의 봄을 제작한 관계자는 이 영화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어떤 관객을 영화관으로 부를지 고민했을 것이다.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감춰진 9시간’을 다루고 있어서, 제작자들도 자연스럽게 5060세대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이들 세대가 직간접적으로 해당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제작자가 이들을 1차 고객으로 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특정한 세대에 집중한 타겟팅은 더 많은 관객을 모으는 데 걸림돌이 된다. 실제 영화 곳곳에서는 서울의 봄 제작자가 영화산업의 주요 소비층인 2030세대의 이목을 끌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영화의 사건 전개 방식이 온라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과 유사하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작자는 반란군과 진압군의 갈등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하는데, 이를 통해 역사를 모르는 세대도 전략게임을 하듯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심박수 챌린지’가 유행한 점도 서울의 봄의 흥행 발판이 됐다. 이 챌린지는 한 누리꾼이 시사회 당일 “서울의 봄 후기: 엔딩 직후 심박수 178bpm”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리며 유행처럼 번졌다. 영화를 관람한 뒤 심박수가 높아지자, 이를 스마트워치로 측정해 SNS에 공유한 것이다. 이는 영화 감상의 새로운 형태다. 실제 챌린지가 유행하며 서울의 봄을 관람하려는 2030세대가 크게 늘었다. 영화를 관람해야 할 새로운 이유를 제공하면서다.

역발상 마케팅도 이 영화의 전략적 성공의 축이다. 서울의 봄이 개봉한 11월은 통상 영화산업의 비수기다. 이 시기에 영화를 공개하면 연말연시 성수기에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와도 경쟁해야 한다. 11월에 관객을 모으지 못하면, 12월에는 대작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상품성과 경쟁력을 갖춘 영화라면 경쟁자가 적은 시기에 관객의 선택을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의 봄이 11월 개봉을 선택한 데서 제작자의 자신감이 드러나는 셈이다.

역사 드라마로 천만 관객에게 성공했다는 점도 역발상의 결과다. 실제 몇 년 새 국내 영화 시장은 영화 ‘범죄도시’와 같은 액션 코미디 장르가 대세가 됐다. 긴 러닝 타임도 서울의 봄의 역발상 마케팅의 하나다. 최근 개봉한 영화들은 100분 내외로,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즐길 수 있다. 러닝 타임이 짧으면 극장의 회전율을 높여 수익률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이를 깼다. 140분의 러닝 타임으로 영화산업의 성공 공식을 벗어났다. 이는 제품 자체의 경쟁력에 자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브랜드의 가치와 마케팅은 그들이 만드는 제품 자체에서 나와야 한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생전 이렇게 말했다. 애플은 좋은 제품을 만든 뒤 제품을 멋있게 소개하는 전략을 구축했는데, 이를 잘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의 봄이 흥행한 것도 12·12 군사반란이라는 실제 사건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기 때문이다. 기획자가 역사 속에서 드라마화할 요소를 찾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이를 재창조해 영화 흥행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는 이런 상상력에 힘을 넣었다. 여러 요소가 합쳐서 제품력을 완성한 셈이다. 다양한 고객을 영화관으로 모으는 장치도, 새로운 마케팅 전략도 모두 작품의 본질을 자신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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