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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거세질 ‘자국 우선주의’…더욱 ‘냉철한 대비’ 필요한 때

[디지털 장벽 쌓는 세계]⑤ 양향자 제21대 국회의원 기고
‘손에 잡히는’ 제조서 시작한 우선주의, 디지털 영역으로 확산
“정부·여론 지나친 개입 최선 아냐…기업 자율성 보장 필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양향자 제21대 국회의원] 각국의 기술에 대한 ‘자국 우선주의’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로 시작된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같이 ‘손에 잡히는’ 영역에서 시작된 자국 우선주의가 플랫폼·데이터와 같은 무형의 소프트 영역으로까지 확전되는 양상이다. 전자가 자국 내에 탄탄한 반도체 제조 능력을 확보해 두기 위함이라면, 후자는 자국민들의 개인정보·프라이버시(사생활) 보호를 명분으로 한다. 그렇지만 이 둘의 목적은 한 치도 다름이 없이 같다. 바로, 미래 기술과 산업의 패권을 거머쥐는 것이다.

우리 사회와 산업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 것인지를 논하고자 할 때 열의 아홉은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할 것이다. 그러면서 혹자는 초연결과 초지능을 이야기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조금 더 우리 곁에 와 있는 예를 들어 챗GPT를 위시한 인공지능(AI)·로봇·자율주행차 등을 이야기할 것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만약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미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반도체와 데이터라고 대답할 것이다.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모두 정확히 반도체와 데이터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 둘을 모두 잡아야만, 혹은 지켜 내야만 미래 첨단산업 패권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인 것이다. 최근에 불거진 라인야후 사태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자국민들의 개인정보 보호다. 처음 라인 소식을 접했을 때, 필자는 5년 전 이맘때 일어났던 일본의 반도체 필수 소재 수출 규제 강화 조치가 떠올랐다. 그 당시의 정밀 타격 대상은 반도체였고, 이번엔 데이터다.

반도체·데이터 타격, 대응 무기는 단연 ‘기술’

2019년 6월, 일본 정부는 반도체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가는 한국 반도체 공장이 멈춰 서버릴 수도 있을 만큼의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국내 기업의 기술력을 진단해 일본 소재 기업을 대체할 만한 곳을 찾아 육성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처음 수출을 금지한 세 가지 품목에서 국산화하는 품목을 점차 넓혀나갔고, 그 결과 한국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기술에서 해법을 찾아 결국 기술력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번 사태 역시 기술이 제1의 무기이자 해법이 될 것이라고 본다. 30년을 엔지니어로 살아온 필자는, 여전히 기술의 힘을 믿는다. 기술은 사람들에게 편의를, 그리고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준다. 그리고 기술은 그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나 국가에도 더 많은 전략적 선택지의 자유를 허락한다. 반대로, 기술이 없으면 누군가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산업 하나도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다. 일본 내부에서도 라인을 네이버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플랫폼 등 디지털 기술에 있어서는 한국에 열세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보기술(IT) 전문가조차도 네이버와의 기술력 격차가 커 1~2년 안에 차이를 메울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할 정도이다.

라인이 이미 일본의 국민 메신저를 넘어 쇼핑·금융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핵심 생활 플랫폼이다. 공과금 납부나 비대면 진료는 물론 지진 등 유사시의 핫라인 역할을 하는 사회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한 요구로 네이버를 몰아내고 기술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일본에도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2022년 중국은 반도체 수입 보복을 시사하면서까지 한국의 칩4 동맹 참여에 반발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동맹 참여에도 우려했던 무역 보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반도체를 수입하지 않으면 중국의 IT 제조업이 멈춘다는 점을 우리보다 중국 정부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대체 불가능한 기술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무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라인야후 계열 한국법인 라인플러스 본사에서 직원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아마추어식 대응 없어야”

이번 라인야후 사태를 계기로 데이터 보호 등 관련 기준을 점검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의 보안 기술을 강화해야 한다. 점차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는 여러 국가에서 이번 라인 사태와 유사한 리스크가 두드러질 것이다. 미국은 중국 기업인 틱톡의 강제 매각법에 서명했고, 유럽연합(EU)은 미국 기업인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기업)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했다. 모두 데이터 보안이 이유였다.

한국은 반도체 등 IT 하드웨어 경쟁력은 글로벌 수준이지만, 플랫폼·IT 서비스는 구글 등 미국 플랫폼 자이언트에 밀려 아직 약하다. 글로벌 진출을 통해 성장을 꾀하는 국내 기업들에 점차 심화하고 있는 ‘자국 데이터 보호주의’는 가장 큰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적으로도 4차 산업혁명이 심화하고 있다. 사회와 일상 전반의 IT 환경이 더욱 고도화될수록 데이터 보호와 보안 기술이 더 책임 있고 안전한 기술 활용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당부한다. 지금은 정부나 여론의 지나친 개입이 최선이 아니다. 기업에 가장 이익이 되는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돕는 것이 곧 우리의 국익이다. 자유 시장경제에 반하는 일본 정부의 잘못된 조치에는 정부가 더욱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한일 간 외교가 필요한 사안은 별도로 풀어가되, 기업의 의사결정에 정치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기업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투 트랙’(어떤 일을 처리하기 위한 두 가지 경로) 전략이 필요하다.

분명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에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반일 몰이도 경계해야 한다. 네이버의 판단에 부담만 줄 뿐이고 일본 정부를 불필요하게 자극하면 국내 기업에 불이익으로 돌아올 빌미가 될 뿐이다. 결코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굴종 외교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기술과 전략상의 이슈이고, 경영과 엔지니어가 우선 풀 일이라는 것이다.

기술 경쟁이 냉혹해질수록 국내 기업과 정치권 모두 아마추어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을 되찾고 차분하게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무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5년 전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그 당시는 악몽이었지만 되돌아보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대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보다 ‘그 일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양향자 제21대 국회의원.

양향자 제21대 국회의원은_반도체 엔지니어 출신 정치인이다. 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 중 처음으로 삼성그룹 임원(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에 올랐다. 2020년 초선 의원으로 제21대 국회에 입성했다. 더불어민주당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 부위원장과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제21대 국회 후반기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다. 책 ‘퍼스트 무버, 한국의 희망’, ‘히든 히어로스’, ‘과학기술 패권국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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