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지분 전쟁' 벌어질까 노심초사
[SK가 흔들린다]③
2003년, 헤지펀드 1% 미만 지분으로 SK그룹 순환출자 약점 파고들어
"경영권 공백이 위험 키워"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최태원 회장이 물러나야 SK 주가가 더 오를 수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소버린)은 2003년 3월 SK㈜ 주식을 집중 매입한 후 이렇게 주장하며 SK그룹 경영권을 두고 지분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른바 ‘소버린 사태’로 불렸던 이 사건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SK그룹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빼앗길 뻔했던 최대의 위기로 평가된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법의 판결을 두고 최태원 회장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다시 ‘소버린 사태의 악몽’이 언급되고 있다.
2003년, 소버린은 SK㈜ 지분 14.99%까지 늘리며 최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소버린은 사외이사 추천, 자산 매각, 주주 배당 등을 요구하며 대기업 개혁을 요구했다. 소액주주와 노조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는 한편 오너 경영이 당연시됐던 한국 대기업을 비판했다.
소버린이 SK그룹 경영권 두고 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충분한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그룹을 지배했던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 부족에 있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SK 계열사 지분을 1%도 채 보유하지 않고도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했는데, 소버린은 오너의 지분이 적다는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2004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소유 지배구조 매트릭스’를 보면 당시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 일가 대부분은 5%를 밑도는 지분을 가지고 수십개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태원 SK 회장의 보유 지분은 0.73% 수준이었다. 최태원 회장이 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 SK그룹을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은 순환출자라는 ‘마법의 고리’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순환출자는 같은 기업집단 소속 3개 이상 계열사가 모두 계열출자로 연결돼 있는 관계를 말한다. A사가 B사에, B사는 C사에, C사는 다시 A사에 출자하는 형태다. 이때 A사, B사, C사의 출자 현황을 도식화하면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업 총수는 이 중 한 회사의 지분만 일정 부분 확보하면 A‧B‧C 회사 모두를 거느릴 수 있게 된다.
SK 그룹의 경우 ‘SK C&C→SK㈜→SK텔레콤→SK C&C’, ‘SK C&C→SK㈜→SK네트웍스→SK C&C’로 이어지는 두 개의 출자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최 회장은 SK C&C를 매개로 SK그룹을 경영했다. 그런데 소버린이 SK㈜ 주식을 확보하면서 순환출자 구조의 허리를 장악했고, 여기서 경영권 싸움이 촉발된 셈이다.
두 차례에 걸친 주주총회와 SK그룹 경영권을 두고 벌어진 양측 대결은 소버린 측의 철수와 최태원 회장 측의 경영권을 방어로 끝났지만, 주가가 급등하면서 소버린 측은 90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 2003년 3월 중순 6000원 수준에 불과했던 SK㈜의 주가는 2년 만에 5만원대까지 치솟았다.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방패가 필요했던 최태원 회장 측과 SK그룹은 주식을 사들이며 막대한 자금을 써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SK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SK㈜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계열사를 직접 거느린 단순한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최태원 회장은 SK㈜의 지분 17.72%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SK㈜를 통해 SK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이혼 소송으로 최 회장은 노 관장에 1조원이 넘는 재산을 분할해야 할 위기를 맞았다. 자금 마련을 위해 최악의 경우 SK㈜ 지분 매각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경영권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이혼 소송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 ‘소버린의 악몽’을 언급하는 이유다.
분식회계 드러나며 구속…최태원 회장, 경영 공백 자초
일각에서는 소버린 사태를 촉발한 핵심 원인으로 무너진 기업 윤리와 한국식 오너경영을 꼽는다. 당시 분식회계 문제로 최태원 회장이 구속기소 되고 SK그룹 핵심 임원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SK는 경영진 공백과 주가 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런 위기를 소버린이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활용한 그룹 경영 일반적인 상황에서 소버린이 SK그룹을 목표물로 삼았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3년 2월 서울지검은 최태원 SK㈜ 회장을 포함한 SK그룹 임원 10명을 배임과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SK그룹 계열사인 SK글로벌이 은행 채무를 숨기고 순손실을 과소계상 하는 등의 수법으로 1조 5587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 회장 등 4명이 은행 명의의 채무잔액 증명서를 위조, 1조 1880억원에 달하는 은행 채무를 없는 것처럼 처리하는 등 이익잉여금 과대계상과 손실과소계상 등의 방법으로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최 회장이 수감생활 7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리더십 공백은 한동안 이어졌고 경영 공백기에 소버린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소버린은 비슷한 시기에 LG그룹에도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6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물러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분식회계 등 각종 이슈로 최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SK가 장기간 혼란을 겪은 이유는 최 회장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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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소버린)은 2003년 3월 SK㈜ 주식을 집중 매입한 후 이렇게 주장하며 SK그룹 경영권을 두고 지분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른바 ‘소버린 사태’로 불렸던 이 사건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SK그룹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빼앗길 뻔했던 최대의 위기로 평가된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법의 판결을 두고 최태원 회장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다시 ‘소버린 사태의 악몽’이 언급되고 있다.
2003년, 소버린은 SK㈜ 지분 14.99%까지 늘리며 최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소버린은 사외이사 추천, 자산 매각, 주주 배당 등을 요구하며 대기업 개혁을 요구했다. 소액주주와 노조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는 한편 오너 경영이 당연시됐던 한국 대기업을 비판했다.
소버린이 SK그룹 경영권 두고 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충분한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그룹을 지배했던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 부족에 있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SK 계열사 지분을 1%도 채 보유하지 않고도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했는데, 소버린은 오너의 지분이 적다는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2004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소유 지배구조 매트릭스’를 보면 당시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 일가 대부분은 5%를 밑도는 지분을 가지고 수십개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태원 SK 회장의 보유 지분은 0.73% 수준이었다. 최태원 회장이 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 SK그룹을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은 순환출자라는 ‘마법의 고리’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순환출자는 같은 기업집단 소속 3개 이상 계열사가 모두 계열출자로 연결돼 있는 관계를 말한다. A사가 B사에, B사는 C사에, C사는 다시 A사에 출자하는 형태다. 이때 A사, B사, C사의 출자 현황을 도식화하면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업 총수는 이 중 한 회사의 지분만 일정 부분 확보하면 A‧B‧C 회사 모두를 거느릴 수 있게 된다.
SK 그룹의 경우 ‘SK C&C→SK㈜→SK텔레콤→SK C&C’, ‘SK C&C→SK㈜→SK네트웍스→SK C&C’로 이어지는 두 개의 출자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최 회장은 SK C&C를 매개로 SK그룹을 경영했다. 그런데 소버린이 SK㈜ 주식을 확보하면서 순환출자 구조의 허리를 장악했고, 여기서 경영권 싸움이 촉발된 셈이다.
두 차례에 걸친 주주총회와 SK그룹 경영권을 두고 벌어진 양측 대결은 소버린 측의 철수와 최태원 회장 측의 경영권을 방어로 끝났지만, 주가가 급등하면서 소버린 측은 90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 2003년 3월 중순 6000원 수준에 불과했던 SK㈜의 주가는 2년 만에 5만원대까지 치솟았다.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방패가 필요했던 최태원 회장 측과 SK그룹은 주식을 사들이며 막대한 자금을 써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SK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SK㈜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계열사를 직접 거느린 단순한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최태원 회장은 SK㈜의 지분 17.72%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SK㈜를 통해 SK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이혼 소송으로 최 회장은 노 관장에 1조원이 넘는 재산을 분할해야 할 위기를 맞았다. 자금 마련을 위해 최악의 경우 SK㈜ 지분 매각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경영권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이혼 소송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 ‘소버린의 악몽’을 언급하는 이유다.
분식회계 드러나며 구속…최태원 회장, 경영 공백 자초
일각에서는 소버린 사태를 촉발한 핵심 원인으로 무너진 기업 윤리와 한국식 오너경영을 꼽는다. 당시 분식회계 문제로 최태원 회장이 구속기소 되고 SK그룹 핵심 임원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SK는 경영진 공백과 주가 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런 위기를 소버린이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활용한 그룹 경영 일반적인 상황에서 소버린이 SK그룹을 목표물로 삼았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3년 2월 서울지검은 최태원 SK㈜ 회장을 포함한 SK그룹 임원 10명을 배임과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SK그룹 계열사인 SK글로벌이 은행 채무를 숨기고 순손실을 과소계상 하는 등의 수법으로 1조 5587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 회장 등 4명이 은행 명의의 채무잔액 증명서를 위조, 1조 1880억원에 달하는 은행 채무를 없는 것처럼 처리하는 등 이익잉여금 과대계상과 손실과소계상 등의 방법으로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최 회장이 수감생활 7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리더십 공백은 한동안 이어졌고 경영 공백기에 소버린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소버린은 비슷한 시기에 LG그룹에도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6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물러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분식회계 등 각종 이슈로 최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SK가 장기간 혼란을 겪은 이유는 최 회장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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