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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절 무시하는 것 같아요”…망상에 빠지지 않으려면

망상도 ‘생각의 질병’ 중 하나
관계사고 극복 중요…‘하루 15분’ 명상 필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김상욱 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대통령 총격이 미국에선 ‘전무후무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 뉴스에서 봤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81년 3월 30일 오후 3시 30분, 레이건 대통령에게 총격이 가해졌다. 범인은 25세 청년이었던 존 힝클리 주니어다. 그가 쏜 총알 6발 가운데 한발은 방탄 리무진에 튕겨져 레이건 대통령의 겨드랑이를 뚫고 폐를 관통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총알은 심장 2.5㎝를 앞두고 멈춰섰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귀가 아닌 머리에 피격을 당했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만큼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토머스 매튜 크룩스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지만, 힝클리는 체포돼 범행 동기를 밝혔다. 그가 대통령을 쏜 이유는 황당하게도 여배우 조디 포스터 때문이었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을 죽이면 포스터가 자신에게 사랑 고백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일종의 ‘연애망상’(erotomania)이다.

적어도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본다면, 대통령을 저격하는 일과 당대 최고의 여배우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 일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도 없다. 힝클리는 이후 판사로부터 교도소 수감 대신 무기한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

생각에도 질병이 자리한다

망상은 ‘생각의 질병’ 가운데 하나다. 생각의 조각들이 짜 맞춰져 사고(思考)를 이룬다고 보면 생각의 질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사고의 형식이 잘못된 경우다. 생각이 맞춰지지 못하고 잘못 짜인 셈이다. 생각의 내용과는 무관하다. 생각의 고리가 끝없이 이어져 종착점을 잃어버리거나(이탈(tangentiality) 혹은 탈선(derailment)), 생각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못해 막히거나(지연(retardation) 혹은 차단(blocking)), 의미 없는 말들을 장황하게 읊조리는(음송증(verbigeration)) 등 모두 생각 형식에 문제가 생긴 경우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연애망상과 같이 생각하는 내용이 잘못된 경우다. 관계사고(혹은 관계관념)가 대표적인 사고 내용의 병이다. 관계사고는 타인, 특히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의 말이나 행동을 끊임없이 연관시켜 생각하는 증상을 지칭한다.

20대 후반의 사회초년생 K가 그랬다. 그는 “선배와 동료들이 입사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이 느껴져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옆 책상에서 일하는 다른 직원이 대화하면 내 험담을 하는 듯 느껴져 가슴이 두근거리고, 뒤에 앉은 과장님은 화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것 같아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는 설명이다.

모든 주변의 움직임, 소리 등이 나를 향한 메시지처럼 받아들여지니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한숨을 푹 내쉬던 그였다.

K는 다행히 관계사고가 깊어지기 전 치료를 받아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관계사고를 방치했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었다. 관계사고가 관계망상으로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상은 잘못된 생각에 자기 확신까지 더해져 굳어진 상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을 함에도, 스스로가 틀리지 않다고 신념에 차 있는 셈이다.

관계사고가 망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일은 치료를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잘못된 내용을 납득시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미국 법원이 힝클리에게 무기한 치료감호를 선고한 이유가 심신상실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망상 속에 빠져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한 점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망상을 망상이라 인지하고 말할 수 있는 이상, 더 이상 망상을 하는 건 아닌 셈이다.

개인 의지만으로 관계사고를 극복하긴 쉽지 않다. 상당 기간 남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고 소리에 민감해지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시간이 늘게 되는 등 정신적 고통 속 당사자가 관계사고를 식별할 만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K의 상황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가능성이 크다곤 할 수 없지만, 팀원들이 카카오톡이나 사내 메신저로 나 몰래 험담하는 상황은 얼마든 있을 수 있다. 가능성이 더 낮긴 하지만, 과장이 그날따라 기분이 나빴던 나머지, 괜히 막내 사원의 뒤통수를 노려봤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관계사고, 어떻게 극복할까

관계사고를 벗어나려다 역으로 또 다른 ‘생각의 병’에 빠질 위험도 있다. 자아비판과 고뇌를 반복하는 강박사고다.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내 사고가 비합리적인 건 아닐까’ 끊임없이 되뇌는 일도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K 또한 “동료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과 “동료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고 언급했다. 관계사고로 문제가 생겼을 때 최대한 빨리 전문의를 찾아야 하는 배경이다.

예방도 중요하다. 생각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기본’에 충실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적절한 운동과 과음 폭식 자제 등, 몸에 좋은 습관은 마음에도 좋다. 문제는 이 습관들이 처방은 쉽지만 실천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정신건강 증진에 앞장서야 할 나조차도 일에 치여 운동을 거르고 모임에 치여 음주와 폭식을 일삼곤 한다.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관도 실천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행간에 하고 싶은 말을 숨겨두는데 나홀로 ‘눈치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본에 충실하기 어려운 만큼 최소한의 권유만을 남겨본다. 잠시 생각과 사고를 멈추는 시간을 가지길 추천한다. 현대사회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신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변화가 빠른 만큼 고민도 많아진다.

장마에 주말농장 텃밭이 쑥대밭으로 변하진 않았을지, 인공지능 챗GPT(ChatGPT)가 아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을지, 미국이 고립주의를 선택하게 돼 투자를 받는데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울 수 있다.

고민 속 생각을 이어가면 관계사고에 빠질 가능성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인위적으로라도 생각을 멈추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니 하루 두 번 15분씩이라도 생각을 비우고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관계사고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내가 이 고민과 생각 때문에 힘들구나”라고 깨닫는 계기를,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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