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이 쌓은 무역장벽…시험대 오른 철강·석유화학
[탄소중립 속도 내는 세계]①
EU·美, ‘탄소 중립’ 위한 제도 및 법안 도입 본격화
新 글로벌 질서 ‘탄소 중립’…국내 산업계 직격탄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국제 사회가 ‘탄소 중립’을 향한다. 탄소 중립은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그에 맞는 조치를 통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일이다. 탄소 중립을 위해 유럽연합(EU)은 오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제도를 시행한다. 미국도 2025년 ‘청정경쟁법’(CCA) 도입을 추진 중이다. 탄소 중립이 새로운 국제 질서가 된 셈이다.
EU의 CBAM은 탄소배출이 이전되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막기 위해 제안됐다. 탄소가 배출 규제가 강한 국가에서 약한 국가로 이전됨을 방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CBAM은 지난해 5월 16일 공식 발효됐다. 이후 같은 해 10월 1일부터 전환 기간이 시작됐다. CBAM은 2026년부터 시행된다.
CBAM이 시행될 경우 EU 역외에서 수입된 제품의 탄소배출량이 역내 생산 동일 제품에 비해 배출량이 많다면, 초과분에 대해 인증서 구매를 통해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사실상 탄소국경세다.
탄소국경세는 자국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의 제품을 수입할 경우 발생하는 세금이다. 수출국 입장에선 ‘무역 장벽’으로 통한다. CBAM이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는 평가가 여기서 나온다.
CBAM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전기 ▲비료 ▲수소 등 6개 품목에 적용된다. 이후 유기화학 제품, 플라스틱 등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무역 장벽, 미국도 쌓는다. CCA가 대표적이다. CCA는 CBAM과 유사한 무역관세다. 지난 2022년 미국 상원이 미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 및 세수 확보를 위해 발의했다. 민주당의 발의한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지지를 받아 미국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CCA는 미국이 수입하는 ▲화석연료 ▲석유정제 ▲석유화학 ▲비료 ▲철강 ▲알루미늄 ▲수소 ▲유리 ▲펄프 ▲종이 등 12개 품목에 적용된다. 해당 제품 생산 시 배출되는 온실가스 1톤(t)당 55달러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미국은 해당 법안 도입 목표 시기를 2025년으로 뒀다.
CCA에는 석유화학, 석유정제, 철강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우리 수출 상위 산업 부분이 대거 포함돼 있다. CCA 도입이 우리나라에 또 다른 무역장벽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산재하는 셈이다.
코트라 관계자는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기존 기업들이 ESG 환경 지표대응시사 후처리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사전 관리에 집중하는 추세”라며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주요 이슈와 더불어 연관 산업의 업데이트 사항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면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탄소 중립’ 기조에 대응하는 철강·석유화학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 순위는 10위다. 국가별 탄소 배출량을 집계하는 ‘글로벌 카본 아틀란스’(GCP)가 지난 2022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는 약 6억1600만톤(t) 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이는 세계 배출량의 1.67%에 해당한다.
탄소국경세가 본격 도입 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국내 산업은 철강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EU 철강 수출량은 317만톤이다. 철강 제품은 22만톤이 수출됐다. 한국이 적용받을 CBAM 품목 중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89.3%다.
철강산업은 이산화탄소 발생률이 가장 높은 산업이다. 국내 산업계가 배출하는 탄소 중 39%는 철강업계가 뿜어낸다. 현재 철강 산업은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받고 있다. 정부가 배출권거래제(ETS) 아래 철강 산업과 같은 탄소집약적이고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군에 무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해 주는 까닭이다.
기후변화 싱크탱크 기후솔루션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 수준의 철강 기술과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유지할 경우 CBAM 시행으로 국내 철강업체가 EU에 지불해야 할 비용은 연간 1910억원이다. CBAM이 철강업계의 수익성 악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국내 철강 3사(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는 글로벌 탈탄소 기조에 발맞춰 공정 고도화 및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그룹 전체 투자 예산(10조8000억원)의 41.7%인 4조5000억원을 철강 부문에 투입한다. 저탄소 생산설비 구축을 위함이다. 포스코는 ‘2050 탄소중립 기본 로드맵’ 수립을 통해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HyREX) 상용화와 전기로 확대 투자에 집중한다.
하이렉스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석탄을 대신해 수소를 활용한다. 4개의 유동환원로에서 철광석을 순차적으로 수소와 반응시켜 직접환원철(DRI)로 만든 뒤, 이를 전기용융로(ESF)로 보내 쇳물로 녹이는 방식이다. 포스코는 오는 2030년까지 하이렉스 시험설비를 통해 상용기술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현대제철도 고유 기술력이 반영된 신(新) 전기로를 신설한다. 이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이 약 40% 저감 된 강재를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신전기로에는 현대제철의 독자기술에 기반 한 저탄소제품 생산체계 하이큐브(Hy-Cube) 기술이 적용된다.
하이큐브는 신전기로에 철스크랩과 고로의 탄소중립 용선, 수소환원 직접환원철 등을 혼합 사용해 탄소배출을 최소화한다.
동국제강은 친환경 성장전략 ‘스틸 포 그린’(Steel for Green)을 중심으로 설비투자, 공정개발,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에 나섰다.
동국제강의 탄소배출량은 철강업종 전체의 2% 수준이지만, 오는 2030년까지 기존 대비 10%의 탄소 배출 추가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친환경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동국제강은 폐열회수, 가스발전 등 친환경 자가발전 사업을 확대를 지속 검토할 방침이다.
석유화학업계도 새로운 국제 질서에 따른다.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S, Carbon Capture and Utilization)과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CCU는 사업장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연료, 화학물질 등 부가가치가 높은 탄소화합물로 재탄생시키는데 중점을 둔다. CCUS는 포집된 이산화탄소 일부를 재활용하고, 일부는 지하에 영구 저장하는 기술이다. 두 기술 모두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탈탄소 기조에 따라 CCU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큰 분야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이산화탄소 이니셔티브(GCI)는 2030년 전 세계 CCU 시장 규모가 최대 8370억달러(1146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산화탄소 활용 규모도 72억톤으로 내다봤다.
CCU를 둘러싼 석유화학업계의 각축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GS칼텍스는 전라남도·여수시와 손잡고 여수산단 중심의 CCU 사업에 나선다. 이를 통해 탄소저감을 위한 친환경 전환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GS칼텍스는 CCU 실증사업을 추진해 이산화탄소 원료·연료소재 개발 등 공정기술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실증사업은 화학적 전환 기술 연구를 중심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현재 여수산단에서 기술연구소 실험실 수준의 검증을 완료한 뒤 파일럿 검증과 실증 단계를 준비 중이다.
특히 CCU와 관련해선 지난 4월 CCU 원천기술을 보유한 한국화학연구원과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CCU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신사업 창출 기회를 확보하겠단 포부다. 최근에는 CCU 기술을 바탕으로 이산화탄소를 넣은 폴리올을 개발하고, 특허까지 출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CCUS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12월 금호석유화학은 전남 여수의 금호석유화학의 여수 제2에너지 사업장에서 CCUS 사업의 핵심 설비인 CO₂ 포집 및 액화 플랜트의 착공식을 가졌다.
이번에 공사에 돌입한 포집 및 액화 플랜트가 목표대로 2025년 초에 준공될 경우, 금호석유화학 열병합발전소의 스팀 및 전기 생산공정에서 발생되는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만 선택적으로 포집되어 케이앤에이치특수가스의 액화 공정을 거쳐 탄산으로 재탄생하는 프로세스가 구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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