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부 정책, 잘못된 신호로 부동산 시장 혼란 자초
[서울 집값 왜 오르나]②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돌연 연기
“대출 받아 집 사라는 신호로 해석 가능성”
서울 아파트값이 20주 연속 상승하고 있다. 지방에서는 미분양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 양극화의 기세는 멈추지 않을 듯이 보인다. 지난 8월 8일 정부는 서울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언급하며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되는 원인은 무엇인지 분석해 봤다. [편집자 주]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가 ‘DSR 강화’ 정책을 연기한 게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줬을 가능성이 있다”지난 6월 금융위원회는 대출 한도를 더 줄이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시행을 두 달 연기한다고 밝혔다. 올해 2월, 1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를 시행하고 7월 1일부터 2단계를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시행 일주일을 앞두고 돌연 일정을 뒤로 미룬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더 늦기 전에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라는 신호를 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의지가 사실상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스트레스 DSR은 향후 금리가 급등할 위험을 미리 반영해 실제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산정하는 제도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는 대출자가 변동금리를 선택하면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것이다. 가산 금리를 적용하면 대출자가 갚아야 하는 연간 이자가 늘어난다. 이에 따라 DSR 비율을 맞추려면 대출 한도를 줄여야 한다. 매월 갚는 원금 규모를 축소해야 늘어난 이자 폭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스트레스 DSR을 단번에 적용할 경우 강한 충격이 예상돼 적용 업권과 대출 종류에 따라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었다. 지난 2월 26일부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먼저 적용했고 가산 금리 적용 비율은 올해 상반기 25%, 하반기에는 50%를 적용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정책 시행만으로도 부동산 시장에서 ‘대출 한도를 줄여 주택 매수세를 잡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금융위가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대출이 줄어드는 차주가 약 15% 정도로 분석돼 이분들의 어려움을 고려했다”며 정책 시행을 연기한 것이다.
실제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연기한 직후 은행권 가계대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8월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7월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은 1120조8000억원으로 6월보다 5조5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담보대출은 6월보다 5조6000억원가량 늘어나며 가계 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박민철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주택 매매 증가, 대출금리 하락, 정책대출 공급 지속 등으로 주담대가 전월에 이어 상당폭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주택거래가 이뤄지면 2~3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주담대 실행으로 연결된다”며 “당분간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가계대출의 증가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출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은행권 가계대출은 지난해 3월(-7109억원)까지 감소했다가 4월부터 상승 전환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계대출의 월별 증가 폭을 보면 ▲4월 5조원 ▲5월 6조원 ▲6월 5조9000억원 ▲7월 5조5000억원 수준이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3월 이후 20주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배경에도 이런 영향이 있는 셈이다.
저리 특례대출 시행하며 디딤돌 대출금리는 올리나
정부가 추진한 신생아 특례대출도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신생아 특례대출 신청 건수의 33%(5269건)이 사용됐다. 인천은 8.1%, 서울이 7.7%로 특례대출을 통한 주택 매수의 50%가량이 서울 등 수도권에 몰린 것이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아이를 낳은 가구에서 시세가 9억원 이하인 주택을 구입할 때 구입 자금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대표적인 저출생 대책 중 하나이지만, 정부가 주택 구입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 받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인 것은 맞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과 상충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계 대출이 증가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꼽힌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국내 기준금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내리면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은 사람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과감하게 대출을 받아 주택 매수에 나설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의 ‘최근의 미국경제 상황과 평가’ 보고서를 보면 뱅크오브아메리카, 도이치뱅크,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오는 9월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지난달 3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금리 인하 여부를 이르면 9월 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연준은 7월 30∼31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5.25∼5.50%로 동결했다. 한국(3.50%)보다는 2.00%포인트(p) 높은 수준이다.
금융업계에서도 한은의 금리 인하 고민이 큰 것으로 판단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의 12연속 금리 동결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 방향 전환할 상황은 조성됐다”고 했다. 본격적 금리 인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금통위도 의결문을 통해 “향후 통화정책은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하는 가운데 물가 상승률 둔화 추세와 함께 성장, 금융 안정 등 정책 변수 간 상충 관계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가계대출이 증가하자 정부는 주택구입 자금용 정책대출인 디딤돌대출의 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자금 위주로 가계대출이 늘자,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과 디딤돌대출의 금리 차이를 좁히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는 “스트레스 DSR 시행을 연기하고 특례대출을 확대했던 정부가 디딤돌대출 금리를 인상해 주택 매수 수요를 잡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부동산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금융 정책을 개선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일관성을 보여야 신뢰도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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