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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도 ‘국제금융표준’ 첫 마련…개발 리더 “세계서 K-기술 써 뿌듯” [이코노 인터뷰]

윤혜영 금융결제원 금융결제연구소 부부장
한국 주도 ISO 국제금융표준 제정 첫 사례…생체 인증 정보 집대성
금융결제원 핵심 SW 개발 주도…“주변 지원 없었으면 불가능한 성과”

윤혜영 금융결제원 금융결제연구소 부부장이 금융결제원 분당센터 앞에서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 신입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초등학교 시절, 동화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책을 더 자주 펼쳤다. 코딩 안에 담겨있는 수학적 규칙과 논리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땐 당시 동아리 활동(CA·Club Activity)으로 부르던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가볍게 시작한 공부로 정보처리기능사 등 두 개의 자격증을 땄다. 영재만 모인다는 한성과학고에 입학한 것도 우연히 본 옥상에 설치된 천체관측 돔이 “멋져 보여서”란 비교적 단순히 이유에서였다.

국내 이공계 분야에서 늘 선두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 입학한 과정도 비슷하다. “프로그래밍을 더 공부하고 싶어서”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택했다고 한다. 직장인이 된 후에는 국제표준을 만드는 일을 주도했다. 한국인이 국제금융표준(생체인증) 마련 프로젝트의 리더로 활약한 첫 사례다.

수재. 최근 ‘이코노미스트’와 만난 윤혜영 금융결제원 금융결제연구소 부부장(금융표준화팀 & 금융데이터융합센터 AI혁신반 전문연구역, 기술사·국제기술사)은 이 단어가 잘 어울렸다. 본인은 손을 내저으며 “노력하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들”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수재의 면모는 그가 이룬 다양한 성과 곳곳에 묻어났다. 중학교 시절 딴 기능사 자격증을 업무에서도 활용코자 정보처리기술사 취득에 도전, 6개월 만에 합격한 일만 봐도 그렇다. 통상 2년 안팎이 걸린다는 공부를 ‘업계 최단기간’에 마치며 주변의 놀라움을 샀다. 국내에서 나고 자란 윤 부부장은 “정보를 보기 불편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 토익 만점을 받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금융결제원은 이런 윤 부부장이 카이스트 전산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05년 첫 직장으로 입사한 곳이다. 5대 국가기간전산망 중 하나인 금융전산망을 구축하기 위해 1986년 6월 설립된 지급결제전문기관으로, 현재는 데이터·인증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윤 부부장은 이곳에 입사한 후 20년간 주로 해외 관련 업무를 맡았다. 소프트웨어(SW) 개발은 물론 정보 분석이나 언어 분야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지녔기 때문이다.

윤 부부장은 ‘꿈의 직장’으로도 불려 인재가 모인다는 금융결제원 내에서도 여전히 ‘수재’로 불리곤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윤 부부장이 만든 업무적 성과는 두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바이오인증 국제금융표준(ISO 19092) ▲외환 동시 결제(CLS·Continuous Link Settlement) 공동망 재구축 ▲국가 간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망 연계 서비스 ‘EXK’(Extended Korea) 구축 ▲부가세 매입자 납부중계시스템 ▲전자금융공동망 대고객 서비스(ARS) 재개발 ▲문서 공신력을 높일 수 있는 시점 확인 시스템(TSA) 개선 등을 주도했다. 또 ▲디지털 일회성 비밀번호(OTP) ▲바이오인증 공동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에도 참여했다. 숱한 금융결제원 SW가 그의 손끝을 거쳐 탄생한 셈이다.
윤혜영 금융결제원 금융결제연구소 부부장이 금융결제원 분당센터에서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신입섭 기자]

“신분증 없이 비행기 탑승”

윤 부부장은 국제표준화기구(ISO)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국제표준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리더로 참여해 ‘ISO 19092’를 마련한 일이 “가장 뿌듯한 성과”라고 했다. 윤 부부장이 주도한 이 프로젝트에는 미국·프랑스·일본·네덜란드·호주·스위스에서 20명 이상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이 중에는 글로벌 기업의 기술 고문 이나 일본 대학 교수 등도 포함돼 있다.

윤 부부장은 이런 각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금융 서비스 이용 시 필요한 생체 정보 인증의 보안 요구사항은 물론 관련 기술과 구현 지침 등을 총망라한 국제표준을 마련했다. 금융 서비스 인증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생체 정보를 집대성해 표준에 수록했다는 의미다. 특히 바이오정보 분산관리(정맥 인증)가 포함됐다는 점에서 활용도 높은 표준이란 평가를 받는다. 윤 부부장은 국제금융표준 제정을 주도한 성과로 올해 2월 열린 ‘제60회 기술사의 날’ 행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윤 부부장은 “한국의 기술이 수록된 표준을 세계인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며 “회원국들과 의견을 조정하며 기술적인 내용들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저 역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표준 기술은 이미 일상 가까이에서 쓰이고 있다. 윤 부부장은 “생체 정보를 미리 등록해 둔다면, 금융 거래 과정에서 쉽게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표준에 수록된 내용은 글로벌 결제기술기업의 서비스는 물론 세계 생체인증 분야에서 널리 사용 중이기도 하다”며 “금융결제원·금융 기관·인천공항공사가 협업해 김포 공항에서 제주도로 이동할 때 손바닥 정맥 인증 정보를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이 표준을 기반으로 구축된 상태다. 생체 정보를 이용하기에 다른 신분증 없이도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부부장은 ‘ISO 19092가 기존과 비교해 기술적 측면에서 우수한 점’을 묻는 말에 “생체인증 수단의 다양화”를 꼽았다. 그는 “현재 스마트폰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지문 인증의 경우, 살아 있는 사람의 손가락 정보임을 확증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필요하다”며 “손바닥 인증은 정맥 정보를 이용해 생체가 닳아서 인식이 어려운 오입력 확률이 양호하다는 장점이 있다. 생체 인증의 수단은 지문·정맥 외에도 음성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각 인증에 대한 정보와 특징도 해당 국제표준에 수록했다”고 말했다.
윤혜영 금융결제원 금융결제연구소 부부장이 금융결제원 분당센터에서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신입섭 기자]

“핀테크 국제표준 마련 준비 중”

윤 부부장은 ‘ISO 19092’에 그치지 않고 또 다시 ‘새로운 표준’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를 중심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제정하는 작업에 참여 중이다. 이 표준은 계좌를 보유하지 않아도 고객의 명시적인 동의를 얻어 금융 회사 정보에 접근해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제3자 결제서비스 제공기관’(TPPSP)을 대상으로 한다. 네이버페이·쿠팡·토스·위챗페이·알리페이·페이팔·머니그램·월드페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윤 부부장은 이들 기업이 금융 서비스를 구축·운영할 때 필요한 정보보호·보안 요구사항을 정리한 표준을 마련하고 있다.

윤 부부장이 해당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업무를 시작한 건 국가기술표준원의 지원이 시작된 2021년부터다. 지난 2022년 11월 ISO 회원국 대상으로 해당 국제표준 개발에 인적 자원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투표를 거쳐 진행이 확정됐다. 한국을 프로젝트 리더로 두고 프랑스·중국·영국·일본·스위스 등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윤 부부장은 “핀테크 업체의 규모가 작아 보안 기술을 확보하기 어려운 국가들이 많다. 이런 시장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기관이 핀테크 서비스를 개발할 때, 보안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표준을 마련하고 있다”며 “올해 국제표준안(DIS) 단계의 표결을 진행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윤 부부장은 이렇게 다양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비결을 묻는 말에 ‘주변에 대한 감사’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주위에선 저를 보고 ‘수재’라고들 불러주시는데, 사실 그동안 이뤄낸 작은 성과들은 모두 주변의 지원이 없었으면 단 하나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박종석 원장님을 비롯해 금융결제원 식구들과 물밑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신 한국정보공학기술사회 분들께도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윤혜영 금융결제원 금융결제연구소 부부장이 금융결제원 분당센터 앞에서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 신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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