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의 와이너리와 교황 '클레멘스 5세'의 전설 [와인과 인문학]
가장 오래된 보르도 와이너리 ‘샤토 파프 클레망’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교황 클레멘스 5세의 비극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샤토 파프 클레망(Chateau Pape Clement)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페삭 레오냥에 위치하고 있다. 700년 넘는 오랜 역사로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된 이 와이너리는 특이하게도 14세기의 교황 클레멘스 5세의 이름을 가졌다.
높은 품질을 인정받아 1953년 그라브(Grave) 지역의 그랑 크뤼 등급으로 지정을 받은 이 샤토의 기원은 14세기 초 보르도의 대주교였던 베르트랑(Bertrand de Got) 소유의 포도원에서 시작됐다. 그가 대주교로 임명되자 리옹에서 대주교로 활동하던 그의 친형이 선물로 하사한 것이다. 이후 베르트랑은 1305년 프랑스인 최초로 교황이 돼 클레멘스 5세(Pope Clement V)로 등극하게 된다.
700년 넘는 역사 속 숨겨진 비극
당시 미남왕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는 로마 교황청과 힘겨루기를 하며 왕권을 확장하고 있던 차에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베르트랑을 교황으로 내세웠다. 보르도를 떠나면서 클레멘스 5세는 포도원을 후임자에게 물려줬다. 하지만 그에게 로마 교황은 이름이었을 뿐 한 번도 로마 바티칸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임시 교황청인 아비뇽에 머무른 채 불운한 삶을 살았다. 어수선한 정국에 위협을 느낀 클레멘스 5세는 로마 교황청으로 부임하기를 꺼려했다. 대신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 임시 교황청을 지어 머물렀다. 약 70년간 클레멘스 5세와 그의 후임 교황 6명은 로마가 아닌 아비뇽에 머물렀다. 이 시기를 역사에서는 ‘아비뇽의 유수’라고 부른다.
클레멘스 5세가 교황이 되기 이전인 14세기 초까지는 로마 교황의 종교적 권위와 프랑스 군왕의 세속적 권력이 극한으로 대립하던 시기다.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로마 교황청의 정치간섭에 저항하고 자신을 황제로 선언하면서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비위를 거스르게 된다.
프랑스의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필리프 4세는 플랑드르 지방과 아키텐의 소유권을 놓고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전쟁을 벌였다. 그는 전쟁자금 확보를 위해 성직자들에게도 세금을 징수하는 강수를 뒀다. 성직자에 대한 과세를 금지한 로마 교황의 지엄한 명령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필리프 4세는 삼부회 소집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진 후 로마 교황과 정면 대결에 나섰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교황 납치’라는 대범한 작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1303년 필리프 4세는 심복 부하 노가레를 파견해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이탈리아 아니니의 별장에 감금했다.
그는 반항하는 교황의 뺨까지 때리며 안하무인의 무례를 범한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에 성공한 교황은 한 달 만에 화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11세가 후임으로 선출됐다. 그는 전임 교황의 납치를 주도했던 노가레를 파문하고 복수하게 된다. 하지만 베네딕토 교황은 갑작스러운 병으로 불과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독살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베네딕토 11세 서거 후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열렸으나 추기경단이 양분돼 1년 간 공전했다. 프랑스의 실세 필리프 4세의 추종파와 이탈리아 보니파시오 8세 추종파로 분리돼 대립하다 결국 프랑스 편을 든 추기경들의 표를 얻은 보르도 대주교 베르트랑이 1305년 6월 클레멘스 5세로 교황 자리에 올랐다.
필리프 4세는 자신 덕분에 교황이 된 클레멘스 5세에게 갑(甲)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황을 강압해 십자군 전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템플기사단을 모두 체포하도록 했다. 잉글랜드와의 긴 전쟁으로 템플기사단에 많은 빚을 지고 있던 필리프 4세가 빚쟁이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필리프 4세는 템플기사단 지도부에 남색과 신성모독, 동성애 등의 죄를 뒤집어 씌워 극형에 처했다. 이 엄청난 사건은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발생했다. ‘13일의 금요일’이 서양에서 불길한 날로 금기시 되는 이유다.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는 1314년 3월 18일 시테 섬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는 불에 타 죽으면서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에게 “1년 내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죽음의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저주가 통한 것일까. 클레멘스 5세는 다음 달 갑자기 사망했다. 필리프 4세는 그해 10월 병을 앓다 죽었다.
슬픔의 역사 딛고 탄생한 최고급 와인
이런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700년을 견뎌 온 와이너리인 샤토 파프 클레망의 양조장과 와인 저장고 등 여러 곳에는 교황의 문장과 성물이 가득하다. 보르도에 남겨진 클레멘스 5세의 와이너리는 보르도의 대주교들에 의해 관리돼 오다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국가에 몰수됐다. 이후 경매에 넘겨져 일반인에게 매각됐다.
이후에도 주인이 몇 차례 바뀌고 최종적으로 1980년경 열정적인 와인 사업가 베르나르 마그레(Bernard Magrez)가 인수한 이래 지금에 이른다. 그는 많은 투자와 설비 현대화를 통해 와인의 품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특히 2009년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Jr.)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으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샤토 파프 클레망의 포도원은 총 60헥타르(ha)에 달한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가 6대4의 비율로 심어져 있다. 청포도 품종인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세미용(Sémignon) 그리고 뮈스카데(Muscadelle)도 일부 심어져 있다.
샤토 파프 클레망은 그랑 뱅(Grand vin)급으로 매년 2만 케이스의 레드 와인과 2000케이스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세컨드 와인(Second Wine)으로는 르 클레망탱 뒤 파프 클레망(Le Clémentin du Pape Clément)과 르 프렐라 뒤 파프 클레망(Le Prélat du Pape Clément)을 생산한다. 샤토 파프 클레망의 와인은 병입 전 평균 18~20개월 간 새 프렌치 오크 통에서 숙성한 후 시장에 나온다.
필자가 이 샤토를 방문했을 때 마셨던 2013년산 파프 클레망 화이트 와인은 옅은 금색을 보였다. 잘 익은 감귤 향, 어렴풋한 열대 과일향과 은은한 오크 향이 기분 좋게 올라왔다. 침샘을 자극하는 신선한 산미는 와인의 골격을 잡아줬다. 입 안에서 ‘복숭아’ ‘사과’ ‘파인애플’ 같은 미네랄의 풍미와 깊이가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질감이 인상적이었다. 세련된 절제미가 돋보였던 최고 수준의 페삭 레오냥 지역의 화이트 와인으로 손꼽을 만했다.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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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품질을 인정받아 1953년 그라브(Grave) 지역의 그랑 크뤼 등급으로 지정을 받은 이 샤토의 기원은 14세기 초 보르도의 대주교였던 베르트랑(Bertrand de Got) 소유의 포도원에서 시작됐다. 그가 대주교로 임명되자 리옹에서 대주교로 활동하던 그의 친형이 선물로 하사한 것이다. 이후 베르트랑은 1305년 프랑스인 최초로 교황이 돼 클레멘스 5세(Pope Clement V)로 등극하게 된다.
700년 넘는 역사 속 숨겨진 비극
당시 미남왕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는 로마 교황청과 힘겨루기를 하며 왕권을 확장하고 있던 차에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베르트랑을 교황으로 내세웠다. 보르도를 떠나면서 클레멘스 5세는 포도원을 후임자에게 물려줬다. 하지만 그에게 로마 교황은 이름이었을 뿐 한 번도 로마 바티칸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임시 교황청인 아비뇽에 머무른 채 불운한 삶을 살았다. 어수선한 정국에 위협을 느낀 클레멘스 5세는 로마 교황청으로 부임하기를 꺼려했다. 대신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 임시 교황청을 지어 머물렀다. 약 70년간 클레멘스 5세와 그의 후임 교황 6명은 로마가 아닌 아비뇽에 머물렀다. 이 시기를 역사에서는 ‘아비뇽의 유수’라고 부른다.
클레멘스 5세가 교황이 되기 이전인 14세기 초까지는 로마 교황의 종교적 권위와 프랑스 군왕의 세속적 권력이 극한으로 대립하던 시기다.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로마 교황청의 정치간섭에 저항하고 자신을 황제로 선언하면서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비위를 거스르게 된다.
프랑스의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필리프 4세는 플랑드르 지방과 아키텐의 소유권을 놓고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전쟁을 벌였다. 그는 전쟁자금 확보를 위해 성직자들에게도 세금을 징수하는 강수를 뒀다. 성직자에 대한 과세를 금지한 로마 교황의 지엄한 명령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필리프 4세는 삼부회 소집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진 후 로마 교황과 정면 대결에 나섰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교황 납치’라는 대범한 작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1303년 필리프 4세는 심복 부하 노가레를 파견해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이탈리아 아니니의 별장에 감금했다.
그는 반항하는 교황의 뺨까지 때리며 안하무인의 무례를 범한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에 성공한 교황은 한 달 만에 화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11세가 후임으로 선출됐다. 그는 전임 교황의 납치를 주도했던 노가레를 파문하고 복수하게 된다. 하지만 베네딕토 교황은 갑작스러운 병으로 불과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독살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베네딕토 11세 서거 후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열렸으나 추기경단이 양분돼 1년 간 공전했다. 프랑스의 실세 필리프 4세의 추종파와 이탈리아 보니파시오 8세 추종파로 분리돼 대립하다 결국 프랑스 편을 든 추기경들의 표를 얻은 보르도 대주교 베르트랑이 1305년 6월 클레멘스 5세로 교황 자리에 올랐다.
필리프 4세는 자신 덕분에 교황이 된 클레멘스 5세에게 갑(甲)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황을 강압해 십자군 전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템플기사단을 모두 체포하도록 했다. 잉글랜드와의 긴 전쟁으로 템플기사단에 많은 빚을 지고 있던 필리프 4세가 빚쟁이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필리프 4세는 템플기사단 지도부에 남색과 신성모독, 동성애 등의 죄를 뒤집어 씌워 극형에 처했다. 이 엄청난 사건은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발생했다. ‘13일의 금요일’이 서양에서 불길한 날로 금기시 되는 이유다.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는 1314년 3월 18일 시테 섬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는 불에 타 죽으면서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에게 “1년 내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죽음의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저주가 통한 것일까. 클레멘스 5세는 다음 달 갑자기 사망했다. 필리프 4세는 그해 10월 병을 앓다 죽었다.
슬픔의 역사 딛고 탄생한 최고급 와인
이런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700년을 견뎌 온 와이너리인 샤토 파프 클레망의 양조장과 와인 저장고 등 여러 곳에는 교황의 문장과 성물이 가득하다. 보르도에 남겨진 클레멘스 5세의 와이너리는 보르도의 대주교들에 의해 관리돼 오다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국가에 몰수됐다. 이후 경매에 넘겨져 일반인에게 매각됐다.
이후에도 주인이 몇 차례 바뀌고 최종적으로 1980년경 열정적인 와인 사업가 베르나르 마그레(Bernard Magrez)가 인수한 이래 지금에 이른다. 그는 많은 투자와 설비 현대화를 통해 와인의 품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특히 2009년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Jr.)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으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샤토 파프 클레망의 포도원은 총 60헥타르(ha)에 달한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가 6대4의 비율로 심어져 있다. 청포도 품종인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세미용(Sémignon) 그리고 뮈스카데(Muscadelle)도 일부 심어져 있다.
샤토 파프 클레망은 그랑 뱅(Grand vin)급으로 매년 2만 케이스의 레드 와인과 2000케이스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세컨드 와인(Second Wine)으로는 르 클레망탱 뒤 파프 클레망(Le Clémentin du Pape Clément)과 르 프렐라 뒤 파프 클레망(Le Prélat du Pape Clément)을 생산한다. 샤토 파프 클레망의 와인은 병입 전 평균 18~20개월 간 새 프렌치 오크 통에서 숙성한 후 시장에 나온다.
필자가 이 샤토를 방문했을 때 마셨던 2013년산 파프 클레망 화이트 와인은 옅은 금색을 보였다. 잘 익은 감귤 향, 어렴풋한 열대 과일향과 은은한 오크 향이 기분 좋게 올라왔다. 침샘을 자극하는 신선한 산미는 와인의 골격을 잡아줬다. 입 안에서 ‘복숭아’ ‘사과’ ‘파인애플’ 같은 미네랄의 풍미와 깊이가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질감이 인상적이었다. 세련된 절제미가 돋보였던 최고 수준의 페삭 레오냥 지역의 화이트 와인으로 손꼽을 만했다.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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