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비평문 인용 거절’은 정당했나 부당했나[백세희의 컬처&로(LAW)]
비평 목적의 원문 인용과 저작재산권 행사의 제한
韓 최초 노벨문학상 ...남겨진 문제 해결 필요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지난 10월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쾌거가 전해졌다. 이후 한강 작가는 지난 10일(한국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랜드마크인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노벨상 메달과 증서(diploma)를 받았다.
한강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에서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바 있고, 올 초에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불어 번역이 메디치 외국어 상을 받은 바 있어 진작부터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한국 작가로 거론되고 있었다. 정말 기쁜 일이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28개 언어로 번역된 만큼 더 많은 전 세계 독자들이 책을 읽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더욱 많은 비평도 쏟아질 것도 자명하다. 이와 관련해 올 초 있었던 한강 작가의 ‘비평문의 원작 인용 거절’ 사건이 떠올라, 관련 저작권법 문제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건은 이렇다. A교수를 비롯한 여러 명의 필진은 각자의 비평문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 출판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중 A교수의 비평문에 비평의 대상인 원작 소설 [채식주의자] 원문을 인용할 수 없게 됐다. 저작권자인 한강 작가가 A교수의 해석에 동의하기 어려워 소설의 일부를 비평문에 인용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라 한다. A교수는 비평문을 다시 수정했지만 역시 거절돼 결국 비평집은 그의 글이 빠진 채로 출판됐다.
부당함을 느낀 A교수는 ‘저자의 의도와 다른 해석은 잘못된 것인가’라는 취지의 글을 일간지에 기고했다. 그렇게 이 사건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다만 당시에는 마치 찻잔 속의 폭풍처럼 출판계 내에서만 아주 작게 이슈가 됐을 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저작재산권의 행사와 그 제한’이라는 저작권 법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와 닿아있다.
저작권 ‘보호’와 ‘제한’이라는 양대 축
[채식주의자]에 대한 저작권은 한강 작가에게 있다. 따라서 작품을 활용하고자 하는 이는 작가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저작물 이용 허락이 필요한 이유는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작권의 보호가 저작권법의 유일무이한 원칙은 아니다. 중요한 원칙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이다. 우리 저작권법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여 위와 같은 양대 이념을 천명하고 있다. 저작물을 (허락 없이)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저작재산권이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창작물은 100% 자신만의 능력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글을 읽고 따라 쓰고 배우며, 익히고 머릿속에 지식으로 넣어두고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작물은 전체 사회의 문화적 수준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공유될 필요가 있다.
그런 이유로 저작권법에서는 “저작재산권의 제한”이라는 항을 따로 두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비평 목적의 인용’ 은 그 중 하나다.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비평 목적의 원문 인용은 원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저작재산권의 제한’ 중 하나다. 이런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요건만 잘 맞춘다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하면 된다. 비평문이 원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아닌지 여부는 요건이 아니다. 꼭 공익을 위해 비영리적으로만 인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범위가 좁아지긴 해도 영리적인 이용도 가능하다.
보조적으로 이용한다면 허락 없는 인용 가능
‘정당한 범위 안’이나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긴 하지만, 대법원은 이에 대해 이미 판단을 했다. 판례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가의 여부는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여야”한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보도, 비평 등을 위한 인용의 요건 중 하나인 ‘정당한 범위’에 들기 위해서는 그 표현 형식상 피인용저작물이 보족, 부연, 예증, 참고 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저작물에 대하여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즉,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도 설명한다.
이를 쉬운 말로 정리하자면, 원작을 사보지 않고 비평문을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정도로 많이 인용하는 것은 안된다는 의미이다. 유튜브에 있는 몇몇 영화 리뷰 채널을 생각해보자. 영화 한 편 다 본 느낌이 드는 게시물들은 영화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하는 셈이다. 소설에 대한 비평문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출판계의 관행이 저작권법 규정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아니, 사실 출판계의 ‘관행’이라는 것이 확고하게 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필자는 문화예술 분야의 법률문제를 다루며 출판 관련한 자문과 사건들도 진행하고, 한편으론 작가로서 단행본을 2권 출간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출판계의 ‘인용’ 관행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원칙이 없는 상황이다.
출판사 중 일부는 자신들이 출판한 책의 일부를 타인이 인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반드시 인용 허락을 받고 비용을 지급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따르는 출판사가 있지만, 저작권법 제28조를 근거로 하여 처음부터 작가들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비평문을 작성해 비평집을 출간하는 출판사도 있다.
송사로 비화돼 다툼이 벌어진다면 결과적으로는 저작권법상 규정에 합치된 이용으로 판명되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명 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문 일부를 그대로 수록한 비평문을 발행하는 결정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갈등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평대상인 작품의 저작권자에게 ‘인용 비용’을 지급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전체 파이가 작은 비평 시장 영역에서 영세 출판사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 지도 문제다.
인용의 ‘허락’ 아닌, ‘범위’ 논의해야 할 때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노벨문학상의 수상으로 국제적인 문학 비평의 중심에 섰다. 원작 또는 번역문을 인용하는 비평문도 셀 수 없이 많아질 것이다. 인용 허락을 구하는 이도 있을테고, 허락을 구하지 않고 원작 일부를 인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우리 저작권법 제28조는 제한된 요건 아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논의는 ‘출판사나 작가가 인용을 거절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비평문에서 어떤 범위의 원문 인용이 적정한 것인지’로 옮겨 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벨문학상 그 이후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이다.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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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에서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바 있고, 올 초에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불어 번역이 메디치 외국어 상을 받은 바 있어 진작부터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한국 작가로 거론되고 있었다. 정말 기쁜 일이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28개 언어로 번역된 만큼 더 많은 전 세계 독자들이 책을 읽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더욱 많은 비평도 쏟아질 것도 자명하다. 이와 관련해 올 초 있었던 한강 작가의 ‘비평문의 원작 인용 거절’ 사건이 떠올라, 관련 저작권법 문제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건은 이렇다. A교수를 비롯한 여러 명의 필진은 각자의 비평문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 출판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중 A교수의 비평문에 비평의 대상인 원작 소설 [채식주의자] 원문을 인용할 수 없게 됐다. 저작권자인 한강 작가가 A교수의 해석에 동의하기 어려워 소설의 일부를 비평문에 인용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라 한다. A교수는 비평문을 다시 수정했지만 역시 거절돼 결국 비평집은 그의 글이 빠진 채로 출판됐다.
부당함을 느낀 A교수는 ‘저자의 의도와 다른 해석은 잘못된 것인가’라는 취지의 글을 일간지에 기고했다. 그렇게 이 사건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다만 당시에는 마치 찻잔 속의 폭풍처럼 출판계 내에서만 아주 작게 이슈가 됐을 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저작재산권의 행사와 그 제한’이라는 저작권 법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와 닿아있다.
저작권 ‘보호’와 ‘제한’이라는 양대 축
[채식주의자]에 대한 저작권은 한강 작가에게 있다. 따라서 작품을 활용하고자 하는 이는 작가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저작물 이용 허락이 필요한 이유는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작권의 보호가 저작권법의 유일무이한 원칙은 아니다. 중요한 원칙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이다. 우리 저작권법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여 위와 같은 양대 이념을 천명하고 있다. 저작물을 (허락 없이)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저작재산권이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창작물은 100% 자신만의 능력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글을 읽고 따라 쓰고 배우며, 익히고 머릿속에 지식으로 넣어두고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작물은 전체 사회의 문화적 수준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공유될 필요가 있다.
그런 이유로 저작권법에서는 “저작재산권의 제한”이라는 항을 따로 두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비평 목적의 인용’ 은 그 중 하나다.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비평 목적의 원문 인용은 원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저작재산권의 제한’ 중 하나다. 이런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요건만 잘 맞춘다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하면 된다. 비평문이 원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아닌지 여부는 요건이 아니다. 꼭 공익을 위해 비영리적으로만 인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범위가 좁아지긴 해도 영리적인 이용도 가능하다.
보조적으로 이용한다면 허락 없는 인용 가능
‘정당한 범위 안’이나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긴 하지만, 대법원은 이에 대해 이미 판단을 했다. 판례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가의 여부는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여야”한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보도, 비평 등을 위한 인용의 요건 중 하나인 ‘정당한 범위’에 들기 위해서는 그 표현 형식상 피인용저작물이 보족, 부연, 예증, 참고 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저작물에 대하여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즉,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도 설명한다.
이를 쉬운 말로 정리하자면, 원작을 사보지 않고 비평문을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정도로 많이 인용하는 것은 안된다는 의미이다. 유튜브에 있는 몇몇 영화 리뷰 채널을 생각해보자. 영화 한 편 다 본 느낌이 드는 게시물들은 영화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하는 셈이다. 소설에 대한 비평문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출판계의 관행이 저작권법 규정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아니, 사실 출판계의 ‘관행’이라는 것이 확고하게 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필자는 문화예술 분야의 법률문제를 다루며 출판 관련한 자문과 사건들도 진행하고, 한편으론 작가로서 단행본을 2권 출간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출판계의 ‘인용’ 관행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원칙이 없는 상황이다.
출판사 중 일부는 자신들이 출판한 책의 일부를 타인이 인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반드시 인용 허락을 받고 비용을 지급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따르는 출판사가 있지만, 저작권법 제28조를 근거로 하여 처음부터 작가들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비평문을 작성해 비평집을 출간하는 출판사도 있다.
송사로 비화돼 다툼이 벌어진다면 결과적으로는 저작권법상 규정에 합치된 이용으로 판명되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명 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문 일부를 그대로 수록한 비평문을 발행하는 결정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갈등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평대상인 작품의 저작권자에게 ‘인용 비용’을 지급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전체 파이가 작은 비평 시장 영역에서 영세 출판사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 지도 문제다.
인용의 ‘허락’ 아닌, ‘범위’ 논의해야 할 때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노벨문학상의 수상으로 국제적인 문학 비평의 중심에 섰다. 원작 또는 번역문을 인용하는 비평문도 셀 수 없이 많아질 것이다. 인용 허락을 구하는 이도 있을테고, 허락을 구하지 않고 원작 일부를 인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우리 저작권법 제28조는 제한된 요건 아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논의는 ‘출판사나 작가가 인용을 거절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비평문에서 어떤 범위의 원문 인용이 적정한 것인지’로 옮겨 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벨문학상 그 이후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이다.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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