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EDITOR’S LETTER]
[이코노미스트 권오용 기자] 2025년(을사년)이 밝았지만 새해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올 한해를 계획하고 각오를 다질 때이지만 계엄·탄핵 늪에서 온 나라가 허우적거리고 있어서입니다. 특히 위법·위헌한 계엄 세력의 마지막 발버둥으로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며 다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계엄·탄핵 사태는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결론에 도달할 겁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법원의 내란 혐의 심판이 차근차근 이뤄질 것입니다. 다만 이 모두가 초유의 사건인 만큼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문제는 그 사이 한국 경제가 처한 국내외 환경은 더욱더 나빠지고 있으며, 경기침체·물가 상승 등으로 인한 실제적 어려움이 기업·소비자 등 경제 주체 모두에게 들이닥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실이 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둑을 쌓고,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무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회에 발 묶인 주요 경제 관련 법안들이 빠르게 통과돼야 합니다. 반도체 재정 지원 근거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첨단산업 전력 수요 지원을 위한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사용 후 핵연료 처분 시설을 건설하는 고준위방폐장법, 국가 주도 해상풍력 발전 지구를 지정하는 해상풍력특별법 등 국내 산업 육성에 근간이 되는 법안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법안은 여야 간 이견이 거의 없는 만큼 빠르게 처리해달라는 게 산업계의 요청입니다. 반도체특별법의 경우 ‘반도체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상황이어서 시급성과 필요성이 매우 높습니다. 더구나 미국이나 중국·일본·대만 등 각국이 자국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기업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면 뒤처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겁니다. 다만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조항을 두고 여야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은 차후에 충분히 논의해 보완할 수 있는 만큼 여야가 법안 처리에 유연성을 발휘하면 될 일입니다.
이 같은 법안과 함께 여야의 무쟁점 경제 법안들이 계엄·탄핵 정국으로 인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싸울 건 싸우더라도 주요 경제 법안은 처리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들 법안이 우리 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데 최소한의 방어막이자 무기이며, 국내외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 중국 기업들의 AI·로봇 등 첨단 제품들이 두각을 보였다고 합니다. 기술이나 품질 등에서 한국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한국이 미래 먹거리 산업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계엄·탄핵 정국에서도 경제·산업 경쟁력의 진전이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굴리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