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공룡’ 일단 살린후 판다
‘부실공룡’ 일단 살린후 판다
무리한 중복투자와 외환위기로 좌초 현대석유화학은 삼성종합화학과 함께 지난 80년대 후반 세계적 유화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설립된 유화업계의 후발주자다. 현대유화는 무리한 중복투자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난 97년 말 대산석유화학 산업단지에 무려 1조7천5백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 제2 NCC(나프타 크랙킹 센터)를 준공했다. 이로써 에틸렌 생산능력은 제1 NCC의 45만톤을 합쳐 연산 1백만톤 체제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던 SK(74만톤)를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외환위기와 함께 세계적 유화산업 침체까지 겹치면서 국내수요는 감소됐고 수출은 줄어들었다. 경영환경악화와 동시에 차입금에 대한 이자마저 폭등해 현대유화를 짓눌렀다. 이자비용만 해도 연간 3천6백억원. 부채는 순식간에 3조3천억원으로 불어났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를 맞아 정부차원에서 추진된 기업구조조정 때문에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되는 ‘악운’을 맞이했다. 이 때문에 금융계마저 등을 돌려 빚 상환에 시달리며 자금압박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98년 9월, 현대유화와 삼성석유화학은 정부와 금융권 주도하에 외자유치 차원에서 통합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일본 미쓰이와 1년 이상 협상을 진행하지만 미쓰이의 무리한 경영권 요구를 수용하지 못해 결국 2000년 1월 협상은 결렬로 끝을 맺었다. 이때부터 현대유화는 설비매각 및 독자적 외자유치를 위해 덴마크 보리알리스(Borealis), 미국 다우케미컬(Dow Chemicals) 등 미국·유럽의 유화메이저들과 협상을 벌였지만 세계적 유화제품 공급 과잉으로 인해 협상의 진척이 없었다. 자구노력도 꾸준히 진행했다. 2000년 11월 부실사업부분인 PVC 공장을 LG화학에 1천억원에 매각했다. 99년 5월부터 최근까지 총 4천6백58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또한 경비절감을 위해 해외지사 주재원을 감축, 현대유화 본사로 불러들였으며, 미국 휴스턴 지사는 아예 폐쇄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심식사시간에는 사내 전원까지 차단했다. 하지만 자금압박이라는 ‘수갑’을 풀지는 못했다. 따라서 채권단은 현대유화 회생방안을 찾기 위해 지난 6월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사인 아더앤더슨에 실사를 맡겼다. 이후 삼일회계법인과 매킨지가 자산재평가를 또 한번 실시했다. 아더앤더슨을 비롯한 해외 컨설팅사의 결론은 ‘독자생존은 불가능하다’였다. 매각 협상 급물살 탈 듯 결국 현대유화는 지난 10월7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적용한 첫번째 대상으로 지목받아 채권단으로부터 출자전환 3천억원, 채무만기연장 1조7천억원이란 ‘긴급처방’을 받아야만 했었다. 채권단은 그후 기존주주의 완전감자, 현 경영진 전원의 사퇴서를 받았다. 또한 지난 11월12일 이 회사의 신임 대표이사로 대산석유화학단지 통합법인 추진본부장을 역임한 기준(奇浚)씨를 선임했다. 기준 신임 대표이사는 앞으로 새 경영진 선임 등을 통해 조직을 추스르는 한편 채권단과의 협의를 통해 현대유화의 경영 정상화와 매각작업을 실시할 방침이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일부 설비 및 시설의 매각, 인원축소 같은 자구노력을 벌일 예정이다. 또한 해외자본유치 등을 추진하면서 현대유화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업체와의 매각 협상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유화업계는 새 대표 선임으로 그동안 사실상 경영공백 상태에 있었던 현대유화의 경영상 불투명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동시에 현대그룹과의 인적연계도 사실상 청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감자가 실시되고 출자전환 등이 이뤄지면, 현대유화의 재무구조도 크게 개선돼 매각 협상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유화 경영정상화의 관건은 뭔가. 채권단의 출자전환·만기연장·이자감면 등으로 재정부담이 줄어들어야만 경영정상화가 성공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유화제품의 시황과 자구노력의 강도에 달려 있다. 현재 공급업체들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유화제품 가격이 쉽사리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임을 고려할 때 원가절감을 위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시행되지 않으면 정상화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편 현대유화의 인수·합병(M&A)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수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곳은 호남석유화학이다. 호남석유화학은 지난 11월21일 공시를 통해 ‘현대석유화학 인수의 타당성을 검토중’이라고 밝임으로써 인수전에 돌입했음을 확실히 했다. 호남석유화학은 설비 노후화로 말미암아 현대유화의 신규 설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호남석유화학은 채권단과의 인수금액 협상을 통해 자산인수 방식보다는 지분인수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대유화의 자산규모가 3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채 리스크를 떠안는 인수보다는 지분인수를 통한 경영권 확보 후에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는 업계 분석이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의중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현대유화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외국업체로는 다우케미컬이 있다. 다우케미컬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내에서 유화공장을 인수한다면 현대유화를 최우선 순위로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 현대유화 인수에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다우케미컬의 경우 단지 ‘관심’수준에 불과하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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