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진단]2002년 한국 경제 어떻게 될까
요즘 종합주가지수, 반도체 가격 등 몇 가지 경제지표가 개선되면서 경기가 이제는 회복국면에 접어드느냐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때 1달러 밑으로 떨어졌던 반도체(128M D램 기준) 가격이 12월 들어 2달러 가까이 회복되면서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아프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많이 제거된 상태다. 그러나 국내 경제 사정이 빨리 나아지리라고 낙관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불안 요인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 2002년 중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을 낙관만 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은 무엇보다 세계경제 환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0년 4.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세계경제는 2001년 2.2%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며, 2002년에도 2.3%의 저조한 성장세에 그칠 전망이다. 세계경제가 IT불황이나 투자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테러전쟁이 중동지역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2002년 하반기부터는 IT산업의 과잉설비 해소, 각국의 금융완화-재정확대 정책의 효과에 힘입어 세계경제가 활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 경제가 회복세로 반전되면 2002년 하반기 세계경제 회복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도 등 개도권의 금융불안이 심화된다면 세계경제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같은 세계경제의 흐름에 따라 우리 경제도 2002년 상반기까지는 수출과 설비투자 부진이 지속되면서 2%대의 저성장에 머물겠지만 하반기에는 수출 증가에 힘입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며 연간 경제성장률 3.5%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금리 기조와 정부의 내수 진작책에 힘입어 소비와 건설투자가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내며 경제의 버팀목으로 작용하겠지만 잠재성장률 수준(5% 내외로 추정)에는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민간소비는 소비심리의 개선, 정부의 내수 진작책 및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 등에 힘입어 꾸준한 증가세가 유지돼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3.4%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소비가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요인도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계의 구매력이 별로 늘어날 여지가 안 보인다. 2002년에는 물가가 안정되고 고용여건도 다소 나아질 여지가 있지만 기업실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상승률이 2001년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보여 가계의 실질구매력은 크게 증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구당 부채 규모가 2천2백만원(2001년 9월 말 기준)에 달할 정도로 누적된 가계부채도 소비증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동안 소비의 일정부분이 차입에 의해서 유지되어 온 측면이 있는데 최근 지나치게 높아진 가계대출에 대한 경계심도 나타나고 있어 이 같은 ‘빚에 의한 소비’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하반기께부터 시중금리도 상승세로 반전될 가능성이 높아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부담 증가로 가계의 소비지출 여력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2001년 두 자릿대의 가파른 감소율을 보였던 설비투자는 2002년 상반기까지 감소세를 지속하다가 하반기 들어 수출여건 호전으로 증가세로 반전되어 연간으로는 제로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68.0%)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70% 초반 대까지 떨어져 있는 데다 2002년 상반기까지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수출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기업들은 신규 투자보다 과잉·유휴설비를 해소하는 데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계류 수입액 등 선행지표들도 개선기미가 거의 없어 2002년 상반기에도 설비투자가 계속 감소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002년 하반기 들어 수출이 회복되고 기업의 투자심리가 점차 개선되면서 설비투자는 증가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과거처럼 투자를 대규모로 주도할 만한 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큰 폭의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기업들 사이에 내실경영과 현금 중시 경영기조가 확산되고 있어 내부자금 범위 내에서 설비투자 자금을 조달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업실적 악화로 내부 조달자금의 규모가 많이 축소된 만큼 기업들은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신규 설비투자보다는 투자 규모가 크지 않은 유지보수·합리화 및 연구개발 투자 중심으로 투자를 집행할 것이다. 건설투자는 외환위기 이후 3년 동안 지속된 극심한 침체상태에서 벗어나 2001년 3분기 중 8.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건설투자 호조는 장기침체에 따른 기술적인 반등효과와 주택건설 호조에 기인하고 있다. 건축허가 면적과 같은 건설투자 선행지표도 두자릿대의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어 건설투자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경부고속철도·인천국제공항 2단계 사업 조기 착공, 항만시설 확장 등 사회간접자본건설 지출도 2001년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은 2002년 상반기까지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IT경기 회복이 하반기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IT 비중이 높은 우리 수출 구조상 IT경기침체는 수출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출전망을 낙관할 수 없는 요인 중의 하나는 수출단가뿐만 아니라 수출 물량마저도 둔화추세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수출감소가 주로 반도체 및 IT제품가격 추락과 같은 수출단가 하락에 기인했으나 최근 들어선 수출물량 마저도 줄어들고 있다. 수출변동의 원인을 단가요인과 물량요인으로 나누어 보면, 외환위기 이후 수출물량은 꾸준히 증가하여 수출단가의 하락을 상쇄해 왔다. 그런데 2001년 3분기부터는 물량마저 감소세로 돌아섰다. 수출물량과 수출단가가 모두 하락해 수출 감소세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가 빠른 시일 내에 반전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2002년에는 수출단가가 지금보다는 다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그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수출금액의 증가세도 제한적일 것이다. 더욱이 2002년에는 엔화 약세가 우려되고 있다. 일본 경제의 부진에 따라 지속적인 엔화약세가 예상되고 있으며 이는 대일경합도가 높은 전기전자·선박·자동차 부분의 수출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아울러 동남아 국가들의 수출도 제약을 받아 우리의 대동남아 수출 증가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수입은 2002년 하반기 중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수출과 설비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원자재 및 중간재 수입이 증가할 것이며, 이로 인해 수입증가율은 연간으로 3%대 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경상수지는 월드컵 등 국제행사의 개최에 따른 서비스 수지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상품수지가 크게 악화됨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폭도 50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2002년 고용사정은 전반적으로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정규직 신규 채용은 줄어들겠으나 건설경기가 이어지고 양대 선거, 월드컵·아시안 게임 등의 스포츠 행사로 인한 비정규직 고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반기 들어서는 그동안 지연되었던 신규 투자가 서서히 재개되면서 정규직 고용도 점차 활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 역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3%대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의료보험 수가를 비롯한 공공서비스 요금의 인상과 환율상승·자연재해로 인한 농산물 가격상승과 같은 공급측 요인에 의해 물가상승이 주도된 결과이다. 그러나 수요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은 경기침체로 미미한 상태이고, 2002년에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에 미달할 것으로 예상되어 2002년 물가상승률은 상반기 2.6%, 하반기 3.4%, 연간으로는 3.0%에 그칠 전망이다. 뚜렷한 경기호전 조짐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보다 소폭 하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가안정·수요 부진 등으로 물가상승률이 2002년 상반기 중 2%대에서 안정되는 것도 금리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반기에는 경기회복세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아 금리는 상승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채 수익률(3년 만기, AA-)의 경우, 상반기 평균 7.0%에서 하반기에는 7.5%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국고채 수익률과 회사채 수익률 간의 스프레드 및 우량 회사채와 비우량 회사채 수익률간 스프레드 등 전반적인 신용 스프레드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 호전이 가시화되면서 기업의 신용위험이 축소되고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경향도 완화되어 국채보다는 회사채, 특히 BBB 등급의 회사채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원화 환율은 엔화 환율의 급등에 따른 원화환율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의 확산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 상반기에도 엔화환율의 상승이 예상되지만 무역흑자 기조 유지 및 서비스 부문 흑자 가능성,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 등으로 원화환율은 달러당 평균 1천2백80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화환율은 2002년 하반기 이후 국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무역흑자가 누적되면 상반기보다 하락하여 달러 당 평균 1천2백60원대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당분간 경기회복 여부가 불투명한 만큼 정부는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노력과 함께 재정·금융정책 기조를 경기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특히 상반기까지 경기둔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재정집행을 상반기로 집중하여 재정의 성장 기여도를 높일 필요가 있으며, 금융정책 역시 현재의 저금리 기조가 당분간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2002년은 현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이고 양대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집단 이기주의나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정책 추진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부실기업 처리, 노사관계 등 각종 경제 현안에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원칙에 입각해 처리하는 것이 결국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기 회복을 앞당기는 데 일조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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