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빅딜로 꼬인 하이닉스 3년째 표류
[진단]빅딜로 꼬인 하이닉스 3년째 표류
■정치 논리 따른 ‘빅딜 실패’ 후유증=이른바 ‘빅딜’은 DJ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벌의 중복·과잉 투자를 줄인다는 명분 아래 사업을 맞바꾸거나 통합시켰던 특단의 정책이다. 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는 1998년 3월 공급 과잉 등을 들어 현대전자(現 하이닉스)와 LG반도체 사이의 빅딜을 밀어붙였다(결과적으론 국내 주력 산업 가운데선 반도체 빅딜만 거의 유일하게 이뤄졌다). 반(反) 재벌 정책의 성격이 강했지만 현대전자와 LG반도체 모두 반발만 할 수는 없었다. 어느 기업이 이제 막 스타트라인에 선 새 정부의 추상 같은 명령을 거스를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특수 상황도 두 회사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 1년여를 밀고 당긴 끝에 빅딜의 주도권은 현대전자 쪽으로 넘어갔다. 특히 98년 12월 두 회사의 경쟁력을 평가했던 아서디리틀(ADL)이 현대전자의 손을 들어줬다(컨설팅 보고서에서 ‘현대 우위’ 판정을 내린 정태수 당시 한국 지사장은 정부가 현대그룹에 특혜를 줬다는 논란에 휘말려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로 불려다녔다). 결국 이듬해인 99년 1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청와대에서 DJ를 만나고 나온 뒤 ‘반도체 포기’ 선언을 했다. 구회장은 이날 자정 무렵 만취한 채 집으로 돌아와 ‘모든 걸 버렸다’고 아쉬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옛 현대전자는 99년 5월 빚 3조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2조5천6백억원에 LG반도체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그 덕에 당시 세계 D램 시장의 매머드급 ‘공룡’(시장점유율 23%) 으로 거듭났다. 다만 생산 능력만 커진 게 아니었다. LG측의 빚까지 떠안는 바람에 빚도 덩치만큼 불어났다. 총 부채 14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빚더미 회사가 된 것. 결국 이 빚이 반도체 값 폭락과 맞물리며 지금껏 하이닉스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하이닉스는 반도체 불황이 극심했던 96년과 97년에도 해마다 평균 1조원대의 손실을 내는 형편이었다. 98년에도 반도체 시장은 썩 신통치 않았다. 그런 마당에 빚까지 짊어져 자생력을 잃게 된 것. 반도체 산업에 ‘보약’이 될 거라고 큰 소리쳤던 빅딜 정책이 3년만에 ‘독약’이 된 셈이다. ■그룹에 퍼주다 구조조정 기회 놓쳐=빅딜의 공과를 따지기란 간단치 않은 일이다. 빅딜 자체가 나쁜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빅딜 뒤의 일이다. 지난해 3월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꾼 현대전자는 99년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2천2백억원의 이익을 냈다. 98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익을 낸 유일한 해였다. 덩치를 키워 시장 지배력이 커진데다 반도체 값까지 오르자 현대전자측은 막연한 낙관론에 빠졌다. 반도체 값이 더 오를 거란 기대감은 당장 급했던 구조조정을 뒷전으로 미루게 만들었다. 당시 현대전자가 빚더미에서 벗어나려면 통신과 초박막 액정화면장치(TFT-LCD) 부문을 팔아 반도체 사업에 힘을 모아야 했다. 현대측은 그러나 두 사업 모두 장사가 그럭저럭 잘 되자 끌어안고 가려고 욕심을 냈다. 그러다 결국 자금난에 몰릴대로 몰린 뒤에야 사업을 정리했다. 하이닉스측은 지난해 9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초박막 액정화면장치(TFT-LCD) 부문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대만 캔두컨소시엄에 4억 달러를 받고 팔았다(그나마 4억 달러 가운데 대만 자본은 1억2천5백만 달러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국내 자금이었다. 특히 하이디스의 지난해 매출이 3억4천만 달러여서 헐값 졸속 매각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더구나 지난해 9월 계약했지만 지금껏 계약금 1천만 달러만 들어오고 잔금은 오리무중이다). 2000년 3월 불거진 정몽구·몽헌 회장의 경영권 다툼과 현대 그룹의 유동성 위기도 하이닉스로선 악재였다. ‘내 코가 석자’인데도 현대투신 위기의 책임 공방까지 벌어지면서 그룹과의 문제를 푸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하이닉스-현대증권-현대중공업 사이에 법정 다툼이 벌어지면서 현대중공업이 하이닉스를 인수합병한다는 루머까지 나돌기도 했다. 게다가 현대그룹의 돈줄로 전락해 유동성 위기 속에서도 계열사에 5천억원이 넘는 돈을 대줬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다만 2000년 3월 박종섭 사장이 지휘봉을 잡은 뒤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은행 출신인 박사장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줄다리기를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현대건설 위기가 고조됐던 2000년 11월에는 정몽헌 회장이 해임시킬 수도 있다는 험한 말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현대그룹과 밀월 관계를 유지해온 DJ 정부도 현대그룹 사태를 막느라 하이닉스의 구조조정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른바 ‘빅딜 애프터서비스’가 소홀했던 셈이다. 심지어 빅딜 대금을 놓고 하이닉스와 LG 사이에 소송이 벌어질 뻔도 했다. LG측은 2000년 6월께 현대측이 인수 잔금 지급을 미루자 그룹 고문 변호사를 통원해 법률 검토 작업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측은 빅딜 정책에 밀려 인수는 했지만 실사도 제대로 못해 나쁜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반발했다. ■반도체 값 폭락에 속수무책=2000년 8월에는 하이닉스와 인텔의 전략적 제휴설이 나돌았다. 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이 신통치 않아 호황에도 경쟁사인 삼성전자보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배경에서였다(64메가D램이 주력이었던 미국 유진공장의 경우 3월부터 2백56메가D램 공정으로 전환한다). 이런 마당에 2000년 하반기엔 반도체 불황이 닥쳤다. 반도체 값이 원가를 밑도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2000년 내내 현대그룹 문제와 돈 부족 탓에 시달린 하이닉스는 결정타를 맞은 셈이 됐다. 반도체 경기가 좋을 때 힘을 비축하지 못해 2000년 2조4천8백68억원, 2001년 3조9백75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냈다. 채권단의 두 차례 출자 전환과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을 등에 업고도 급한 불만 겨우 끄는 실정이었다. 회사가 휘청대다 보니 별 얘기가 다 나돌았다. 2000년 10월 무렵에는 하이닉스의 매각설과 분사설을 두고 회사 안에서도 다른 얘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한쪽에서는 박종섭 사장이 반도체 또는 통신·LCD 부문 분사도 검토한다고 확인했다. 반면 다른쪽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박사장이 하이닉스를 1백% 장악하지 못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박사장은 같은 해 11월 독자 생존에 필요한 구조조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박사장이 투자보단 현금 확보에 신경을 썼는데도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 해 12월에는 급기야 회사채를 막지 못해 금융권이 긴장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이닉스는 12월26일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 1천억원어치를 못 막았다. 그러다 결국 산업은행이 구세주로 나섰다. 산업은행은 2001년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의 80%를 사주기로 했던 방침을 바꿔 26일자로 소급 적용했다. 이른바 ‘회사채 신속 인수제’였다. 2001년 상반기 히트작으로 꼽히는 이 제도는 하이닉스 채권단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외국계 증권사 지점장의 아이디어가 하이닉스 채권단에서 꽃(?)을 피운 것. 내용은 대충 이렇다. 2000년 말 씨티은행 주관으로 10개 시중 은행이 신디케이트론(협조 융자)을 주선하는 과정에서 8천억원을 모았지만 2001년 하반기에 회사채가 너무 몰려있어 밑 빠진 독이라고 난색을 표시했다. 외국계 은행이 지원한다는 호재를 그냥 팽개칠 수 없었던 정부는 채권단에 회사채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회사채 신속 인수제가 빛을 봤다는 얘기다. ■독자 생존이냐 해외 매각이냐=컨설팅업체인 아더앤더슨이 진념 부총리에게 제안해 시작됐다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매각 협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김이 빠지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조차 여러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장 김대중 대통령까지도 혼란을 줬다는 분석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2월4일 재경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시간에 쫓겨 기업을 헐값에 팔 필요는 없다”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의 발언은 한편으론 느긋하게 값을 올릴 수 있는 여유를 줬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시여서 혼선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속도를 낼 필요가 없어져 자칫 매각 작업이 더욱 늦어질 공산도 크다. 지난해 11월 2달러 선을 오가던 1백28메가D램 값이 2월 들어 4~5달러대로 오르자 하이닉스 독자 생존론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특히 지난해 12월 이후 7번째로 D램 고정 거래가 인상에 나서고 었어 128메가D램 값이 개당 5달러 선에 이를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마이크론측의 제안이 터무니없다는 비난까지 더해져 해외 매각이 능사는 아니라는 분위기도 고조됐다. 어느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얼마 전에는 독자 생존 얘기는 입에 담지도 못했다”며 격세지감이라고 밝혔다. 독자 생존론의 총대는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이 맸다. 하이닉스 구조조정특위위원장으로 일하다 산자부 장관직을 다시 맡은 그는 취임하자마자 구체적인 반도체 가격을 제시하면서 ‘독자 생존도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신장관은 특히 반도체업계 사장단 간담회에선 ‘하이닉스-삼성전자 제휴와 협력’을 당부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신장관의 이런 행보는 국내 반도체 산업은 쌍두마차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신장관은 지난번 산자부를 맡았을 때 하이닉스를 국내외 비메모리 물량을 받아서 제조만 하는 파운드리 라인으로 바꾸거나 비메모리 부문을 분사해 LG전자쪽에 넘기는 이른바 ‘역빅딜’ 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됐건 그 때나 지금이나 해외 매각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반면 진념 부총리는 2월25일과 28일 잇따라 부실 기업의 해외 매각을 꺼릴 필요가 없다고 밝혀 하이닉스 독자 생존론에 쐐기를 박았다. 진부총리의 발언은 정부 쪽에서 불거진 혼선을 교통정리한 것. 정부로선 가격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해외 매각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여기에 채권단은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매각’을 고집하고 있다. 채권단의 논리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반도체 값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값이 올랐을 때 빨리 팔고, 발을 빼고 싶은 모습이다. 하이닉스가 홀로서려면 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 미지수인 것도 매각에 매달리는 중요한 이유다. 마이크론의 대답을 기다리며 한편으론 독자 생존안을 다듬고 있다지만 손을 털고 싶은 게 채권단의 속내다. 다만 채권단으로서도 마이크론이 채권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민에 바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삐걱대더라도 반도체 값이 안정세를 보인다면 더욱 그렇다. 특히 비수기인 2분기 반도체 값이 어떻게 형성되느냐가 1차 관건이다. SSB는 지난해 가을 하이닉스 지원 방안을 제시하면서 올해 반도체 값을 상반기 1달러, 하반기 1.5달러로 내다봤다. 그 정도만 되면 채권단의 힘으로 하이닉스를 살릴 수 있다고 본 것. 다행히 현재 반도체 값은 4달러선에 이르고 있다. 물론 하이닉스가 조금이나마 이익을 내며 살아남으려면 1년 평균 가격이 4~5달러는 돼야 가능하다. 불행중 다행은 어찌됐건 반도체 값이 조금씩 오르고 있는데다 해외 경쟁자들의 투자가 부진해 조급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수요가 늘어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깨져도 반도체 값이 폭락하지 않을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승부수를 띄워볼 만하다는 계산이다. 다만 여전히 선택은 쉽지 않다. 해외 매각이나 반도체 값 모두 하이닉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변수들이다. 독자 생존과 해외 매각 가운데 어느 쪽이 빅딜처럼 결국 독(毒)이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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