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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 잡아라’…富者마케팅 열풍

‘한국의 5% 잡아라’…富者마케팅 열풍

일러스트 배진희
‘현찰 5억∼10억원을 쥔 한국의 부자들을 잡아라’. 이런 부자들을 ‘내 손님’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업들이 ‘부자 마케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지갑이 얇은 손님’은 아예 찬밥신세다. 부자 마케팅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은행·증권·보험 같은 금융업종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유통이나 호텔이나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특정 업종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부자를 ‘미래의 유망 잠재고객’으로 여기고 뛰고 있는 건 모든 기업들에 해당되는 얘기인지도 모른다. 금융업종의 부자 마케팅은 특히 두드러진다. 돈 많은 부자 손님들을 위해 ‘VIP 전용 점포’를 만들었고, 또 계속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 김남순 LG투자증권 PB(Private Banking)사업 본부장은 “재작년에는 삼성·LG·현대 같은 대형 증권사들이 ‘VIP 점포’를 내면서, 부자 손님들을 위해 자산운용 컨설팅을 해주는 이른바 PB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는데, 작년에는 은행들이 증권사를 뒤를 이어 PB사업을 크게 강화했다”면서 “올해는 이같은 흐름이 다른 금융업종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보험사들이 PB사업에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체 금융업계에서 부자 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증권의 경우 지난해11월 서울 역삼동 Fn아너스 3호점을 연데 이어 석달 만인 지난 2월 서울 을지로 본사에 4호점을 열었다. VIP 점포를 늘려 종국에는 한국의 부자 손님을 한손 안에 쥐겠다는 황영기 사장의 포부가 담긴 행보다. 삼성은 특히 지난해 전국 점포 중에서 부자 손님이 특히 많은 16개를 골라 자산관리 중점 추진 점포로 선정했다. 부자 마케팅을 강화해, 현재 약정 80%, 자산관리 10%인 현재의 수익구조를 자산관리 30%, 약정 30%, 투자은행업무 30%의 비율로 바꿀 생각이다. 대형증권사 가운데 현대증권은 리치그룹, LG투자증권은 골드넛 브랜드로 VIP 시장을 파고 들고 있으며 동부증권도 중소형 증권사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2월 ‘부자 마케팅’을 하겠다고 선언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동부증권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부금융센타 4층에 포춘 클럽(Fortune Club)을 오픈하고 PB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증권사들이 부자 마케팅에 치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상위 5%의 부자 손님이 전체수익의 90%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5% 안에 드는 부자 손님의 자산을 살펴보면, 최소가 몇 억에서 많게는 1백억정도까지 된다. 1백억짜리 손님은 ‘일당백’짜리 손님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당장 증권사 약정 실적만 봐도 이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어느 증권사든 20%의 고객이 전체 약정의 70∼80%를 차지한다. 이른바 ‘2대 8의 법칙’이다. 그래서 증권사 영업맨들의 경우 ‘큰손’, 예를 들어 명동 사채업자 같은 ‘내 손님’으로 갖고 있다면 먹고사는 건 큰 문제가 없다. 증시가 안 좋을 때에도 ‘큰손’ 몇 명만 있으면 약정실적에 따라 받는 영업 수당으로 1년에 1억원 이상 챙겨갈 수 있다는 얘기. 다수의 ‘명동 큰손들’만을 관리하고 있는 모 증권사 명동점의 영업맨은 작년 한해 동안 30억원의 영업수당을 받아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아무튼 이런 돈 되는 부자 손님만을 한 곳에, 즉 VIP 점포에 끌어모을 수만 있다면 금융기관 입장에선 큰 이익이다. 증권사 VIP 점포의 경우 아직 초창기라 수익기반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자리잡기만 하면, 수익이나 매출이 같은 인원, 같은 면적의 일반점포에 비해서 3∼5배는 족히 될 것으로 금융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은행도 VIP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하나은행은 5억원 이상의 거액을 맡긴 고객을 전담하는 ‘하나골드클럽’을 운영 중이다. 부자 마케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은행이다. 한미은행은 최근 압구정동에 아예 VIP 전용지점을 개설했다. 조흥은행은 오는 9월쯤 부자 손님만을 전담하는 조직을 별도법인으로 독립시키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국민은행도 빅맨라운지(옛 국민)와 VIP룸(옛 주택)을 통합한 VIP라운지를 전 점포에 확대 설치했다. 특히 돈 버는데 탁월한 식견을 갖춘 김정태 행장이 이 VIP시장을 놓칠리가 없다. 기존 PB와는 차별화된 선진국형 PB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국민은행은 현재 태스크포스팀을 홍콩·영국 등으로 내보내 선진기법을 전수받고 있다. 한국의 부자들에게 말 그대로 ‘집사 수준의 진짜 PB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각오다. 그래서 교통사고가 나면 보험사 직원이 아닌 국민은행 직원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끔 하겠다는 전략이다. 바야흐로 은행에서도 부자 마케팅이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VIP점포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서비스를 아직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행 VIP점포에 가면 PB 전문가들이 자기 은행 상품에 돈을 상대적으로 많이 넣으라는 권유를 한다는 것. 부자들의 자산을 안분해서 주식·부동산·보험·간접상품·예금 등에 적절하게 투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실력 있는 자산운용전문가들이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란 지적이다. 돈 많은 부자들은 투자 노하우와 이자율에 매우 민감하고, 어지간한 PB 전문가들보다도 재테크에 능하다. 이는 역으로 말해, VIP점포를 이용하는 부자 손님들의 고객만족도가 낮다는 말도 된다. 한편 보험사들도 부자 마케팅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생명은, 전체 고객중 회사의 이익기여도 1%에 해당하는 10만명의 VIP 고객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료 종합검진 서비스·대출금리 우대 적용·사외보‘위(WE)’제공·각종 공연 입장권 제공·VIP룸 설치 등이 그것이며, 방학기간 중에 VIP고객의 자녀를 초청하여 문화캠프도 열 계획이다. 교보나 대한생명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부자 마케팅’은 더욱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가계소득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1억원 이상 예금한 사람이 25만명이 넘는다. 김남순 본부장은 “모 금융컨설팅업체의 예측에 따르면 2000년 말에 금융자산 현찰 10억원 이상을 갖고 있는 이들은 약 5만2천명이고, 이들의 자산은 당시 1백65조원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5년 후인 2005년에는 이 자산이 2백50조에서 2백90조로 늘 것이다. 쉽게 말해 5년 내에 10억원 이상의 자산가가 50%정도 늘어날 것이란 얘기”라고 말했다. 이같은 부자들을 잡기 위한 유통업체들도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갤러리아 압구정점 명품관이 대표적이다. 부자들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인이 들어가면 괜히 주눅이 들 정도인데, 이 명품관이 겨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지갑이 얇은 사람들’은 오지 말라는 얘기다. 갤러리아명품관은 최근 부자고객들만이 참여한 ‘식사를 겸한 패션쇼’를 하얏트호텔에서 따로 열어 주목을 받았다. 일일이 부자 고객들에게 전화를 해서 참석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일반 백화점 고객의 객단가보다 5∼6배는 너끈히 되는 부자들이기 그 정도 서비스는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사실 명품관은 굳이 자체 홍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홍보를 많이 해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게 반갑지 않다. 부자 몇 명만 오면 되기 때문이다. 대신 입점 브랜드별로 홍보를 한다. 브랜드별 홍보전략이 각기 다르다. 공통적인 것은 부자 손님들에게 1대 1 홍보를 하는데 능하다는 것이다. 보통 샵마스터(약칭 샵마)라고 하는 브랜드 점포별 영업전문가들의 경우 연봉 1억∼2억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는 소문이다. 이들은 부자 손님들과 직접 연락을 취해 매출을 일으킨다. 고급 브랜드의 신상품이 나오면 이 ‘샵마’들은 직접 부자들에게 전화해서 상품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 샵마가 다른 점포로 자리를 옮기면 부자 고객들도 자연스레 따라 옮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부자 손님 1%가 전체 매출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평균 연 1억원어치 이상을 구매하는 큰 손님들이다. 신세계는 이 부자 고객들을 위해 3시간 무료주차·발레 파킹 서비스·퍼스트레이디라는 상품정보지를 보내준다. 큰손님인 경우 점장이나 층 담당 매니저가 직접 나와 쇼핑을 도와주기도 한다. 2세 부자들을 위한 이색교육 과정도 준비 중이다. 10억 이상을 지닌 30대, 20억∼30억원을 가진 40대 젊은 부자들의 고민은 상속과 ‘재산유지’라는 것이다. 예전 부자들은 상속에만 신경썼었다. 3대 부자라는 옛말도 있듯이 과거 부자들은 2세, 3세로 넘어가서는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는 예가 많았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2세들을 위한 ‘부자 대물림’ 교육이다. 요즘의 젊은 부자들은 “내 자식이 만약 유태인 처럼 철저하게 ‘돈 교육’을 받는다고 하면, 자라서 일시적으로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 자산운용컨설팅 전문회사 ‘엉클 조 아카데미’의 조경만 대표는 이 부자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교육과정을 상반기에 선보인다. 초등학교 4학년생∼중학교 3학년 대상의 ‘주니어MBA’과정이 바로 그것. 놀이식 교육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시장경제를 이해하고, 자산운용 노하우를 익히면서 종국적으로는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고 유지할 줄 아는 노하우를 익힌다는 것이다. 부자집 자식들을 겨냥한 ‘부자 마케팅’인 셈이다. 조대표는 “3개월 1기 과정에 30∼50명 정도만 한정해서 교육생을 받을 예정인데, 부자들의 수요가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스포츠센터의 경우에도 부자 마케팅이 한창이다. 서울 압구정동 가오닉스스포츠는 회원인 부자들을 위해 라운지를 운영할 방침이다. 이름하여 가오닉스클럽. 스포츠센터는 스포츠센터인데, 운동 외에도 색다른 소비를 제공해서 남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라운지를 통해 부자 회원들에게 자산운용의 노하우를 제공할 생각이다. 그것도 은행·보험·증권 같은 전체 금융상품 정보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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