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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에 코스닥은 피멍, 대주주는 재미

M&A에 코스닥은 피멍, 대주주는 재미

주가 침체기를 틈타 벤처업계에 M&A 열풍이 불고 있다. 며칠새 갑자기 최대주주가 바뀌었다고 공시하는 기업들도 부쩍 늘었고 예전에 볼 수 없던 ‘적대적 M&A’까지 잇따라 등장하며 증권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에 등록된 기업들 중 올 들어 최대주주가 바뀌었다고 신고한 건수는 거래소가 90건, 코스닥이 1백19건에 달한다. 새롬기술·다이넥스·유니씨엔티·엔터원·엔플렉스·씨크롭·세양선박 카리스소프트·창흥정보 등 최근 2개월 동안 최대주주가 바뀐 업체가 수두룩하다. 특히 새롬기술·현대멀티캡·엔터원 등에서는 기존 최대주주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운 대주주들’이 장내에서 지분을 매집, 경영원 양도를 요구하는 적대적 M&A도 시도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M&A설이 증시에 퍼지자마자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시장의 관심종목으로 떠오르고 있고 이들 기업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M&A테마주로 분류되어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기업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코스닥 기업의 M&A가 붐을 이루면서 M&A 중개시장도 덩달아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 활동 중인 M&A전문 컨설팅사는 약 20∼30여개로 추산된다. 거기에 M&A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회계법인·창투사·부티크 등을 합하면 수백여개 업체가 M&A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상태다. 업계에서는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M&A중개 건만도 1백여개에 이르며, 이들 상당수는 거래소나 코스닥에 상장·등록된 업체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컨설팅사의 한 관계자는 “한동안 업계가 침체되어 있었으나 최근 눈에 띄는 인수·합병 건이 계속 부각되면서 관련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현재 코스닥에 등록된 업체들의 20% 이상이 잠재적 매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M&A 열풍인가 최근 들어 M&A가 급증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 수요자와 공급자의 상황적 필요조건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는 증시침체와 분양권 전매 제한 등에 따라 오갈 데 없는 시중 부동자금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1백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이 용처를 찾아 떠돌고 있으며, M&A시장은 성공하기만 하면 합법적으로 단기간에 수십∼수백%의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유일한 투자창구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M&A가 새로운 수익모델을 통해 기업변신을 시도하는 바람직한 인수·합병과는 거리가 먼 ‘돈 놓고 돈 먹기’식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특히 M&A를 통해 최대주주가 바뀐 기업은 대부분 경영난에 봉착해 있거나 새로운 발전방향을 찾지 못하고 정체되었던 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새로운 경영자라는 간판 하나로도 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 두 배 이상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도 많다. 물건을 사는 순간 단지 팔렸다는 이유로 가격이 두 배로 뛴다면 매수자로서는 구매를 주저할 이유가 상당부분 사라지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코스닥 시장의 침체로 시가총액이 1백억원 내외로 줄어든 기업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저가 매수세’가 몰렸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코스닥 등록기업의 등록 프리미엄은 최소 5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던 만큼 관련기술과 유보자금·인력과 거래처 등을 확보한 시가총액 1백억원 이내의 등록기업이 매력있게 부각되었다는 해석이다. 최근 코스닥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모기업의 임원은 “10억 내외의 자금으로 등록기업의 최대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가 된다”고 털어놨다. 매각을 위해 회사를 내놓는 공급자의 입장에서도 M&A는 매력적인 자금회수 창구가 된다. 실제로 등록 후 1년까지는 ‘보호예수’라는 제도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주식을 시장에 팔지 못한다. 기업을 설립한 최대주주보다 공모주를 배정받은 투자자나 기관들이 돈을 더 버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고 지분을 시장에 파는 것은 쉽지 않다. 5%를 팔 때마다 공시를 해야 하고 그 때마다 주가는 급격히 떨어진다. 그러나 M&A를 통해 지분을 넘기면 10%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도 받을 수 있고 일부 지분을 남겨놓을 경우 주가급등으로 인한 부수입도 올릴 수 있다.

▶어떤 기업이 타깃 되나 M&A의 대상이 되는 기업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시가총액이 낮고 현금보유고가 많은 기업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대상이 된다. 대주주 지분이 높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필요조건이다. M&A 컨설팅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M&A는 기존 업종을 살려나가는 방향이라기보다는 회사를 인수해서 그 회사의 자금을 활용하거나 재매각하기 위한 경우가 많아서 현재의 업종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첨단 IT기업이 아닌 조용한 굴뚝 기업이 M&A 대상으로 선호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코스닥 등록 직후나 등록 후 1년 내외의 기업들도 M&A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코스닥 등록을 위해 위장매출을 만드는 등 무리를 해서 성적표를 만들어내거나 능력 이상의 과욕을 부리기 때문에 등록 후 1년이 지나면 수익성이 떨어지는 후유증이 찾아오게 된다. 이럴 경우 2∼3년 후 회사의 미래를 이끌 성장엔진이 없다고 판단한 대주주가 적당한 가격에 기업을 매각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된다는 분석이다. 특히 엔지니어 출신의 경영진들은 등록 후 1∼2년간 주주들에게 시달리고 나면 개발에 전념하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탈출구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기업들은 M&A에 대한 제안이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게 컨설팅 업체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M&A가 정상적인 인수·합병이 아닌 일부 전주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최대주주가 바뀐 기업의 감사를 맡은 한 회계사는 “업계의 흐름상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때이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발생한 M&A라고 불리는 것들은 M&A의 탈을 쓴 지분 팔아먹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일부에서는 명동의 사채업자들이 주무르는 코스닥 기업만 해도 10여개에 이르며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인수·합병 역시 자금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두 명의 전주가 나오게 된다며 경계할 것을 조언했다. M&A를 통해 돈놀이를 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세력들이 이익을 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인수→유상증자→재매각’이다. 대주주로부터 지분을 인수하고 그 지분이나 회사 보증으로 신용금고나 사채업자들로부터 자금을 끌어와 유상증자에 참여, 지분을 늘린다. 이 과정에서 주가는 M&A를 테마로 급상승하는 게 일반적이며 이들은 지분을 다시 장내 매각하거나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떠나는 형식으로 자금을 회수한다. 물론 모든 게임이 끝나면 주가는 곤두박질친다. 대부분의 M&A기업들이 최대주주 변경 이후에 경영정상화를 명분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게 되는데 경영정상화를 위한 유상증자와 지분확대를 위한 유상증자는 겉으로 구별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결국 이들의 지분을 장내에서 매입하게 되는 개인투자자들만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유상증자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분을 사고 팔고만을 반복하는 단순한 단타성M&A도 가능하다. 코스닥 기업인 인투스의 M&A를 시도했던 H씨는 기존 최대주주 지분을 상회하는 규모의 지분을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면서 그 때마다 M&A설을 퍼뜨려 시세차익을 얻었다.

▶당사자만 아는 이불속 돈싸움…제도 정비 시급 문제는 이러한 M&A의 진행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게임이 끝나고 나서야 그 전말을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금감원에 제출하게 되어 있는 최대주주 변경에 대한 공시도 인수자의 이름만 제출하면 되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대주주가 변경됐을 때 인수 주체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다. 누가 인수했는지 드러나지 않는 바람에 M&A의 ‘신비감’마저 더해지며 주가는 급상승하기 마련이다. 이런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세력들은 명의만 바꿔가며 똑같은 게임을 반복한다. A기업을 사들이고 그 기업의 현금을 바탕으로 B기업을 인수하는 도미노식 M&A다. 코스닥기업인 하이퍼정보통신은 명의를 바꿔 지분을 접수한 M&A세력의 핵심인물이 최근 검찰에 구속되면서 그의 주식을 담보로 갖고 있던 채권자가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면서 주가가 반토막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M&A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손해는 늘 정보력에서 뒤지는 개인투자자에게로 돌아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적대적 M&A로 불리는 일부 사례들도 목숨 건 생존게임인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는 알 길이 없다”며 “당사자들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주주가 위장지분 등으로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진정한 의미의 적대적 M&A는 실현되기 어렵다”며 “M&A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고난도 연극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코스닥 시장의 한 관계자도 “M&A가 기업의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활력을 불어 넣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이를 악용한 가짜 M&A들이 유행하고 있다”며 “이를 제어할 법적인 규제책이 미흡한 만큼 투자자들이 주의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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