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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본부'운명 어떻게 되나

'구조조정본부'운명 어떻게 되나

일러스트 이강수
삼성·LG·SK·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구조조정본부가 존폐 위기를 맞았다. 구조조정본부는 지난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기획조정실을 해체할 것을 요구, 만들어진 조직이다. 김대통령은 총수 1인이 경영을 전횡하는 ‘황제경영’식 기업 지배구조와 계열사간 문어발 형태로 얽혀 있는 경영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기조실 해체란 칼을 꺼내든 것. 재벌총수들은 기조실 해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구조조정본부를 신설, 부실기업 정리와 매각을 지휘해 왔다. 구조본 출범 5년째, 그 운명은 이제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새 대통령이 재벌정책에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도 “김대통령의 요구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SK그룹 구조본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속성을 띤 기업활동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헤드쿼터’ 구조본의 기능과 핵심인물, 지난 5년간의 성과를 정밀 해부했다.

삼성그룹 삼성의 구조조정 업무는 실무를 담당하는 구조조정본부와 최고 의사결정권을 갖는 구조조정위원회로 나뉜다. 구조조정본부가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 개선·투자전략·수출전략·인력계획 등 구조조정과 관련한 실제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반면, 구조조정위원회는 계열사 사장·부회장 등 원로들이 모여 구조조정과 관련한 최종 결정을 맡는다. 삼성은 올해 들어 구조본의 기능을 부쩍 강화했다. 지난 98년 출범 이후 50명까지 줄었던 임직원 수는 최근 1백40명선으로 불어났다.조직은 재무팀·인사팀·기획홍보팀·경영분석팀 등 4개팀에서 홍보팀에 속해 있던 기획 부문을 분리, 기획팀을 만들고 비서실 체제에 있던 법무팀을 되살려 7개팀 체제로 확대됐다. 구조본의 수장은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 이학수 사장이 이끌고 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이사장은 고려대 상대를 졸업한 뒤 71년 공채 12기로 제일모직에 입사, 삼성맨이 됐다. 입사 후 10여년간 제일모직 경리과장과 관리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틈틈이 재무와 회계 관련 서적들을 섭렵, 그때까지만 해도 주먹구구식이었던 원가체계를 대폭 정비하는 등 치밀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아 82년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94년 삼성화재 대표로 자리를 옮겼을 때 ‘신바람 나는 직장’ ‘현장중심의 경영’ ‘현장을 과감히 지원하는 문화’ 등의 경영철학을 선보이며 삼성화재의 시장점유율을 24%로 끌어올리고 매출액을 2배 이상 성장시키는 등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97년 삼성 회장비서실로 복귀 비서실장·구조조정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사장의 뒤를 이을 김인주 부사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과학기술원 산업공학과를 졸업, 80년 삼성에 입사, 줄곧 재무 파트에서 일해온 재무통이다. 90년부터 회장비서실에서 근무하면서 그룹 및 계열사의 자금 상황을 점검하고 현금 흐름을 파악하는 등 재무 업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이사장과 같은 제일모직 경리팀 출신으로 수치에 밝은 것이 공통점이다. 이들은 그룹 의사결정 최고 협의기구인 ‘5인 구조조정위원회’에도 참석하고 있다. 홍보팀을 이끄는 이순동(55) 부사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삼성전자 홍보팀장·비서실 홍보담당 등을 역임한 대표적 홍보맨이다.경영진단팀장을 맡고 있는 박근희(49) 전무는 비서실 운영팀과 재무팀을 거쳐 97년부터 그룹 감사 업무를 총괄해 오고 있다. 노인식(51·인력팀장) 전무는 삼성전자 인사부장과 인사팀 이사를 지내고 97년부터 인사팀(현 인력팀)에 합류했다.김준 상무(비서 팀장)는 삼성생명 법인영업·재무팀 출신으로 이건희 회장의 국내 수행 비서로 활동중이다. 기획팀장은 지난 2월 인사 때 상무에서 승진한 장충기 전무가 맡고 있다. 법무팀장을 맡고 있는 김용철 전무는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지검 특수 1, 2부 검사 출신이다. 직원은 12명. 삼성 구조본은 지난 5년간 이재용 상무보의 재산 승계에 얽힌 복잡한 문제와 삼성자동차 정리 문제들을 잘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그룹 현대와 대우그룹의 몰락으로 재계서열 2위로 부상한 LG그룹의 수뇌부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LG 구조본은 98년 4월 설립 후 부실사업 정리와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 왔으나, 올 들어 진로를 완전히 바꿨다. 강유식 부회장(구조조정본부장)은 올해 초 “앞으로는 미래지향적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최근 LG가 공동 창업자인 구씨와 허씨 가문이 갈라서는 것과 관련 LG 임직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 설립이 본격 추진되면 구조본이 LG 계열사를 지배할 실질적 핵심조직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구조본이 기업 내 조직에서 상법상 권한과 책임이 있는 ‘지주회사’란 법인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구조본의 사령탑은 강유식 부회장이다. 그는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으며, 올해 초 임원 인사에서 유일하게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동안 LG가 기조실장이나 회장실장의 직급을 부회장으로 격상시킨 예는 없어 강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을 짐작케 한다. 강부회장은 청주고와 서울대 상대(경영학과) 출신으로 72년 LG화학에 입사했다. 이때 구본무 회장을 과장으로 모셨다. 당시 첫 경영수업을 받던 구회장은 강부회장의 의욕적이고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때의 인연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당시 구회장과 강부회장은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룹의 미래와 경제상황에 대해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다.87년 임원으로 승진한 뒤 LG전자에서 전략기획 부문을 담당하며 지금의 전자·통신 부문 사업구조의 틀을 짜는 실무책임을 맡았고, LG의 반도체사업 산파역을 수행했다. 95년 LG반도체 전무로 자리를 옮긴 강부회장은 고속승진을 거듭, 97년 회장실 부사장으로 옮길 때까지 6년간 LG반도체에서 일했다.강부회장은 형식주의를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매주 두번의 정례적인 임원회의를 주재하지만 회의시간은 30분을 넘지 않는다. 반면 자신이 아이디어가 있거나 의논할 일이 있으면 수시로 담당 임원의 방을 직접 찾아가 의논한다. 강부회장을 보좌하며 사업조정팀장을 맡아 외자유치 등 사업구조조정을 추진해 온 이종석(50) 부사장도 LG 구조본이 낳은 걸출한 인재로 꼽힌다. 그는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단일기업으로는 국내 최대인 16억 달러를 유치한 주역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이부사장은 공채 출신이 아닌 ‘외부영입파’다. 86년 워싱턴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위스콘신 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다 89년 회장실 이사로 특채됐다. 92년 상무, 96년 전무, 98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구조본에서는 사업의 매각·합병을 통한 외자유치 및 구조조정 관련 금융지원, 환리스크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룹의 대표적인 해외통이다. 영어 실력은 외국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97년 LG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다국적기업들과 벌인 경영전략회의의 사회를 맡기도 했으며, 99년 뉴욕·홍콩 등에서 벌어진 한국경제 로드쇼에도 재계 대표로 참가했다. ‘반도체 쇼크’로 실의에 빠져 있던 구본무 회장에게 LG에너지의 1억8천만 달러 외자유치를 성공시켜 기쁘게 해준 적도 있다. 지난 2월 LG카드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신규업체가 대거 참여 전쟁터로 변한 카드시장을 사수하기 위한 버팀목 역할을 맡고 있다.이부사장의 후임은 정도현 상무가 맡고 있다. 정상무는 83년 LG기조실로 입사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병남 인사지원팀장(부사장)도 이종석 전 팀장처럼 외부 영입파다. 그는 미국 조지아대 교수 출신으로 95년 LG인화원에 입사, 회장실 인재개발팀장을 거쳐 인사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재무개선팀 조석제(47) 부사장은 부산고와 부산대 경영학과를 나와 78년 LG화학에 입사했다. 이후 줄곧 LG화학에 근무하다 92년 회장실로 자리를 옮겼고, 96년 이사로 승진했다. 오랫동안 감사 업무를 맡아왔으며, 회계 및 재무 분야에도 밝다. 김영찬 경영지원팀장(부사장)과 정상국 홍보팀장(상무)도 구조본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LG는 최근 계열사인 데이콤이 파워콤을 인수하는 등 부진했던 통신사업을 다시 추스르고 있고, 내년에는 지주회사 출범을 앞두고 있어 구조본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내년에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재계에서는 손길승 그룹 회장 체제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SK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지금 상태를 이상적으로 보고 있으며, 자신이 경영일선에 나설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SK 구조본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LG와 마찬가지로 지주회사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지만, 최회장이 아직 최종 판단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본은 김창근 본부장과 최 회장의 4촌인 최창원(38) 부사장 쌍두마차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조기행(43) 재무팀장과 정철길(48) 인력팀장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 인원은 약 40명 정도로 다른 그룹 규모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인력 수요가 있으면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김창근 본부장은 용산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74년 SK케미컬에 입사한 이후 외환·자금쪽 일을 담당해 왔다. 지난 96년부터 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장을 맡아 재무구조 개선과 관련한 구조조정작업을 매끄럽게 수행, IMF 체제 이후에도 SK가 다른 그룹에 비해 양호한 자금 흐름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김본부장은 주로 그룹의 재무 관련 구조조정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사업구조 개편은 주로 최부사장의 몫이다. 그는 최근까지만 해도 장기 비전을 세우는 일보다는 사람을 줄이고 사업부를 없애는 궂은 일을 주로 맡았다. 지난 96년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해 SK케미칼 직원을 3분의 1로 줄이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해 흑자기업으로 돌려놓은 것이 최부사장의 ‘대표작’이다. 워커힐과 SK글로벌·SK건설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 직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최회장에게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여의도 고등학교와 서울대 심리학과를 나왔으며, 지난 94년부터 그룹 전략기획실에서 경영수업을 받아오다 96년 이사, 97년 상무, 98년 전무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조기행 재무구조개선T/F팀장은 그룹 재무통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81년 SK상사 경리부 원가총괄과에 입사, 지금까지 재무관련 부서를 떠나지 않았다. 2000년 12월부터 김창근 사장 뒤를 이어 재무팀장을 맡고 있다. 정철길 인력팀장은 98년부터 사업구조조정지원 T/F팀장을 맡았으나, 최창원 부사장이 구조본에 합류하면서 현재 자리로 옮겼다. 부산대를 졸업했고 미국 조지아대 MBA 출신이다. SK 구조본은 최태원 회장이 비상장사인 SK C&C 보유 지분을 통해 SK주식회사와 SK텔레콤 등 계열사들을 장악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르면 구조본이 해체될 것이란 추측이 많다.

현대자동차그룹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명실상부한 재계 4위 그룹이지만 의사결정 과정은 특이한 부분이 많다. 정몽구 회장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어 다른 그룹과 달리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없다. 구조본의 역할을 기획총괄본부가 맡고 있지만, 영향력은 크지 않다. 각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보다는 정회장의 참모조직이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기획총괄본부는 자동차그룹이란 특성에 맞게 기획지원실·경영기획실·경영개선실·기획관리실·자동차산업연구소 등 ‘4실 1소’ 체제가 구축돼 있다. 내부에서 근무하는 임직원 수는 50여명이다. 정순원 부사장이 기획총괄본부장을 맡아 정회장의 아들 정의선(31) 전무의 경영수업을 돕고 있다. 정부사장은 경복고·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론가다. 86년 현대경제사회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으로 현대에 입사 후 정회장에게 경제·경영에 대한 조언을 해왔다. 99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현대·기아차 기획조정실장과 현대차 기획실장을 겸임했다. 2000년 3월 현대가 왕자의 난에서 현대차의 대변인을 맡아 3부자 동반 퇴진 불가를 주장, 정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는 지난 9월에도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준 의원의 대선출마와 관련,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향후 정치 일정에 관계없이 기업경영에만 전념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지난 8월부터 현대카드 전무를 겸직하며 강도 높은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정전무는 기획총괄본부의 핵심조직인 기획지원실과 경영기획실을 맡고 있다. 경영개선실을 담당한 김치웅 상무는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 경리부 이사 출신이며, 2001년 1월 현대자동차로 옮겨왔다. 종합기획팀과 사업기획조정팀으로 구성된 기획관리실은 현대자동차 생산기술 총괄본부장 출신인 박황호 부사장이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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