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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민 1백년/아메리카드림의 주인공들.시카고편(3)]“미국인 머리 손질 六旬인 내 손에…”

[美 이민 1백년/아메리카드림의 주인공들.시카고편(3)]“미국인 머리 손질 六旬인 내 손에…”

진태훈 지니뷰티 사장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 미용재료(beauty supply)는 생활필수품과 같다. 머리모양을 제대로 가꾸기 위해 한국 여성들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은 마찬가지나, 대부분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장원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의 소비자들은 문화의 차이와 머리 손질의 어려움으로 자신이 직접 머리를 만지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이동거리가 멀고 임금이 비싸 미용실 서비스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 또한 머리 손질에 대한 생각도 크게 다르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아침에 자고 일어난 상태 그대로 밖에 나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문화도 미용재료 산업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흑인들은 머리를 그냥 놔두면 손질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어떤 경우 머리카락이 다시 살 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손질법과 화학약품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이같은 배경을 가진 미용재료업계에 미주지역 한국인들은 일찍부터 사업에 진출, 제조·소매·도매 등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모든 부문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다. 한국계가 경영하고 있는 미용재료 소매상이 미국 전역에 6천개가 있을 정도다. 이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가 20년 전인 1982년 시카고에 지니뷰티(Jinny Beauty)를 설립한 진태훈(71)사장이다. 지니뷰티는 전국에 산재한 소매상들에 미용재료 상품을 공급하고 있는 도매업체다. 현재 미국 미용재료 도매시장은 지니뷰티·뷰티 엔터프라이즈·스탠더드 디스트리뷰션 등 3대 업체가 장악하고 있으며, 중소규모 도매상들이 나머지를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지니뷰티는 몇 년 전부터 유태계가 운영하고 있는 나머지 경쟁업체들에 비해 다양한 종류와 많은 물량을 내세워 연매출 1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며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계 소매상에만 공급 고집 지니뷰티가 취급하는 미용재료 품목은 머리카락을 펴주는 약품·가발·헤어드라이어 등 모두 1만4천여종에 이른다. 이같이 수많은 품목 가운데 전체의 75∼80%를 차지하는 것이 머리카락 처리에 쓰이는 화학제품으로 지니뷰티의 주력품목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진사장은 화학제품에 집중, 점유율 1위를 달성했으며, 몇 해 전부터 전기제품과 인모 가발 등 잡화류를 추가해 취급 품목을 늘렸다. 경쟁업체들은 모두 월마트나 K-마트 등 대형할인점과 월그린 등 약국체인에 상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지니뷰티는 계속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들 체인스토어와는 아직 거래를 트지 않고 있다. 지니뷰티의 주요 고객들인 한국계 독립 소매상들이 이들 체인스토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진사장은 지난 73년 41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 이민을 결행했다. 한국에서 물품과 용역을 군부대에 납품하는 군납업체를 경영하던 진사장은 부인과 사별한 뒤 친구들의 권유로 시카고로 건너와 미용재료의 한 품목인 가발을 취급하는 도매상에서 일하며 처음부터 이 업종에 발을 디뎠다. 6개월의 적응 기간을 거친 진사장은 한국인으로서는 2번째로 소매상을 열었다. 이미 시카고에서 영업하고 있던 친구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진사장은 시카고가 있는 일리노이주에서 벗어나 위스콘신주의 케노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진사장의 소매업은 곧바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해 얼마 뒤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와 인디애나주의 게리 등 시카고지역만 제외한 주변지역에 6개 지점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진사장의 소매 사업은 70년대 말 흑인들의 골칫거리였던 머리카락을 쉽게 펼 수 있는 화학제품이 새로 개발, 출시되면서 절정을 이뤘다. 이전까지 머리 손질이 힘들어 가발을 쓰던 흑인들은 신제품의 출현으로 불편한 가발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머리를 가꾸기 시작했다. 60∼70년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였던 가발이 사양 산업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 “가발을 쓰다가 손쉽게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오면서 흑인 소비자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설 정도였습니다. 들여오는 대로 팔리는 전형적인 공급자 시장을 형성을 했죠.” 이러한 바람을 타고 소매업이 급성장을 거듭하자 진사장은 80년 지점에 상품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한 유통센터를 세웠다. 당초 지점에 상품을 돌리기 위해 건립한 유통센터는 시카고지역의 한국계 소매상들의 거듭되는 요청으로 다른 지점에도 공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매업도 겸하게 됐다. “소매업을 더욱 번창시키기 위해 시카고에 세운 유통센터가 우연찮게 중요한 선택의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소매상들의 요구로 도매를 계속하게 되면서 82년 결국 시카고에 도매 법인을 만들게 됐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 도매를 하지 않고 소매에만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상품이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특성에 따라 소매가 수익률도 훨씬 높았고 개인적인 꿈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매상을 할 때 목표는 지금의 월마트와 같이 전국에 지점을 갖춘 미용재료 전문 체인스토어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월마트도 몇 십 년 전에는 작은 가게 하나로 시작했으니 저도 안 될 것은 없었죠.” 그러나 진사장의 꿈은 지니뷰티를 세우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진사장은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사업 방식이 다른 소매상들의 이해와 충돌하는 현상을 보임에 따라 소매의 규모를 줄이다 90년대 들어 모든 소매업을 정리하고 도매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사장의 도매업은 소매와는 달리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커다란 사업 실패를 겪은 것은 아니지만 자리를 확고하게 잡는 데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처음 도매를 시작하니 소매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각종 상품의 제조업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해 정말 힘들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도매업체들도 가격경쟁을 벌여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였죠. 그러나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잡초처럼 살아남은 경험이 기반을 튼튼히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습니다.”진사장이 80년대 말까지 계속된 힘든 시기를 이겨낸 원동력은 성공한 사업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덕목인 성실과 원칙이었다. 진사장은 사업 초기 1년의 3분의2 가량을 새벽 4시30분부터 밤12시까지 강행군하며 1주일에 1백20시간을 일에 투입했다. 70대에 이른 요즘도 보통 새벽 5∼6시에 출근, 7시에 퇴근하며 주당 70시간을 거뜬히 소화해낸다. 출근한 뒤 진사장은 웬만해선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사장은 점심 식사를 바깥에서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은행에서도 직접 지니뷰티를 방문해야 필요한 서류에 진사장의 서명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성실성과 함께 진사장은 몇 가지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하나는 소매상과의 공존이다. 소매상이 계속 성장해야 도매업체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진사장은 소매상들에게 언제나 “팔릴 만큼만 가져가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소매상들의 사업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무실에 앉아 전화를 수백통씩 돌린다. 직접 담당자들과 전화를 하기도 하고 각 지점에서 올라오는 거래내역서를 일일이 확인, 각 업체의 상황을 머리 속에 입력해 둔다. 이러한 소매와의 공존원칙이 월마트 등 체인스토어와 거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 전역에 도매 체인 설립 목표 이와 함께 진사장은 무리한 경영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사업 확장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고 은행 대출을 끌어 힘에 부치는 사업을 새로 벌이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아직까지 은행 빚은 한푼도 없습니다. 다른 거대 도매상들이 지니뷰티와 경쟁을 피하는 것은 결국 비용을 최소화하고 현금 경영을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니뷰티를 설립함으로써 소매상으로서의 꿈을 접은 진사장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위해 전진하고 있다. 소매로 이루고자 했던 전국적인 체인스토어를 도매로 이루고자 하는 것. 이를 위해 진사장은 미국의 주요 지역에 하나씩 지점을 갖춰가고 있다. 중서부지역의 시카고 본사를 기반으로 얼마전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지점을 세웠으며 내년에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거점을 건설할 예정이다. 마이애미 지점은 자메이카 등 중남미지역 시장에 대한 수출을 상정,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진사장이 전국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미용재료 소매상들은 단번에 알아본다. 그래서 진사장은 미국 미용재료업계에서 별명이 ‘대부(godfather)’다. 70년대 이후 미주지역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업계에 진출, 한국의 생산기지로부터 수입·유통·소매 등까지 산업의 모든 주요 통로를 장악하게 된 것에도 진사장의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품목을 보면 언뜻 미용재료업이 사양 산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수 도 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30년 대공황에도 살아남은 산업입니다. 그래서 요즘같이 싼 중국 제품이 쏟아지는 때에도 화학제품은 거의 모두 미국산입니다. 다른 국가 제품은 품질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에는 음식산업 바로 다음 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영구적인 업종입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또 열심히 노력해 매출을 5억 달러까지는 올려놓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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