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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전경련 회장 맡을 사람 없소?”

“누구 전경련 회장 맡을 사람 없소?”

“누구 회장 맡을 사람 없습니까?” ‘재계의 본산’을 자처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오는 2월6일 차기회장을 선출할 총회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회장감으로 거론되던 인물들은 이미 고사의 뜻을 직·간접적으로 밝힌 상태다. 전경련 회장은 재계 총수로 구성된 전경련 부회장들과 원로자문단이 사전에 의견을 수렴, 추대한 뒤 총회에서는 형식적인 선출절차를 거친다. 물론 당사자의 사전 내락이 있어야 한다. 전경련은 현 김각중 회장까지 27차례 회장을 선출하면서 대부분 추대 과정에서 회장들의 고사로 진통을 겪었다. 대 정부 건의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업무 속성상 기업을 경영하는 총수 입장에서는 전경련 회장 자리가 선뜻 내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손병두 부회장은 그래서 항상 “전경련 회장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자리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추대를 거부하려 해도 재계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나서서 설득작업을 벌이기 때문에 재계의 뜻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이번에 특히 고심하는 것은 재계가 그동안 껄끄럽게 여기던 정책들을 도입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의지가 드러나면서 총수들이 특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집단소송제의 조기도입 의지를 밝혔고, 상속증여세 포괄주의·동일노동 동일임금·주5일제 등 재계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책들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전경련은 이런 정부에 맞서야 한다. 집단소송제는 이미 김대중 정부 하에서 재계가 수년 동안 도입반대의사를 밝혀 입법화를 잠정보류 시켜놓은 사안이다. 주5일제도 마찬가지다. 인수위 출범 뒤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재계와 새 정부 간에 빚어졌던 갈등도 회장 추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요인들이다. 하지만 전경련의 의지는 확고하다. 반드시 총회 전에 현 부회장들 중 차기회장을 추대하겠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부회장들 가운데 인물 선정에 실패해 원로자문단에서 선출하거나 외부 덕망가를 영입할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들에 대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못박는다.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그런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전경련 국성호 상무는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회장을 맡은 적은 있었다”면서 “부총리를 역임한 유창순 회장(89년∼93년)이 그 예인데, 유회장도 선출 당시에는 롯데제과 회장자격으로 전경련 부회장단 멤버 중 한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초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최근 전경련 측에 맡을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전경련 회장으로 애국하기보다는 삼성 회장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이회장이 재계의 돌아가는 분위기상 전경련 회장직에 대해서도 한번쯤 고려를 했던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회장도 새 정부 하에서 전경련 회장자리에는 부담을 크게 느낀 모양”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일각에서는 손길승 SK그룹 회장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최근들어 나오고 있다. 다른 대안이 없지 않냐는 것. 재계의 분위기가 손회장 추대로 모아지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가능성은 다른 회장보다 다소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전문경영인인 손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아 외부일에 집중하고, 오너패밀리인 최태원 SK(주) 회장이 SK그룹 회장 역할에 치중한다면 SK입장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어쨌든 재계 의견 수렴 작업은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손병두 부회장이 회장단 순회면담에 들어가면서 서서히 가닥을 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삼성 회장·구본무 LG 회장·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이른바 ‘빅3’가운데 회장 선출을 희망했던 전경련은 이들이 모두 고사함에 따라 손회장과 같은 비오너나, 기업규모가 다소 작더라도 전경련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오너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목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지난 98년 반도체 빅딜 이후 전경련 활동에는 등을 돌리다시피한 구본무 회장이 수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지난 99년 김우중 회장의 중도사퇴 뒤 물망에 올랐다가 정부 측의 압력에 의해 물러서야 했던 정몽구 회장은 이번에는 동생인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대선출마건 등 복잡한 사정이 얽히면서 아예 전경련 회장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은 형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어서 형제가 양대 경제단체 수장을 맡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해석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맡기에는 너무 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재계가 오너, 비오너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힘있는 회장을 선출해 새 정부 하에서도 재계 제1의 대화창구 역을 맡으려던 전경련의 애초 구상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손길승 회장을 최선의 대안으로 꼽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석래 효성 회장도 현시점에서 유력한 후보에 속한다. 조회장이 최근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고사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재계가 강력하게 추대할 경우 수락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조회장의 경우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과 국제기구 의장 등을 맡는 등 대외 활동에 열심인 데다 전경련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고 있어 차기회장 자격이 충분하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손길승 회장의 경우 언론 등 각종 여론기관 조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CEO로 자주 꼽힐 정도로 명망이 있는 데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거의 빠지지 않을 만큼 열성적이어서 오너회장들과의 친분이 두터운 점도 장점이다. 전경련 중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그동안 활발한 위원회 활동을 펼쳐왔다는 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차기 전경련 회장에게는 두 가지 큰 임무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협조하면서도 강도높은 재벌개혁에 맞서 재계의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둘째는 재계 내에서도 최근 전경련의 활동에 대해 불만이 많은 만큼 재계 리더십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일이다. 여기에다 전경련이 단순하게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고 뒷다리를 잡는 이익집단이 아니라 더불어 토론할 수 있는 싱크탱크라는 이미지에 새 정부에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만 새 정부 하에서도 재계 대화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 조직원의 역량강화에도 주력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차기회장의 어깨에 지워질 것이다. 어쨋든 지금 상황에서는 이같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장을 추대하는 일이 전경련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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