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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부 주장·록밴드·아카펠라…효성家 3세들의 ‘3色 경영’

야구부 주장·록밴드·아카펠라…효성家 3세들의 ‘3色 경영’

조현준효성부사장,조현문효성전무,조현상효성상무
재계 10위권인 효성그룹의 3세 경영이 가시화되고 있다. 조석래(68) 효성그룹 회장의 세 아들인 현준(35)·현문(34)·현상(32)씨는 지난달 부사장·전무·상무로 각각 승진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세 사람 모두 2년 만에 나란히 승진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형제들이 경쟁적으로 효성 주식을 사들이면서 ‘3세 경영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3형제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장내에서 지분을 매입한 바 있다. 3월 현재 현준·현문·현상씨는 각각 5.43·3.93·4.15%씩 효성 주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주가가 1만1천원 아래로 떨어졌을 때 5백주나 1천주씩 사들인 것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싹이 보인다.” 아들 3형제에 대한 조회장의 평가다. 경영수업이 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현준·현문·현상 3형제의 프로필만 봐도 조회장이 흐뭇해할 만하다. 세 사람은 모두 1백75㎝를 넘는 훤칠한 키에 호남형이다. 미국 명문대학 출신으로 격렬한 운동을 즐기는 것도 3형제의 공통점이다. 장남인 조현준 부사장은 1983년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명문사립고인 세인트폴스스쿨(고교)을 나와 예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고교 시절 미식축구와 야구부원으로 활약했을 정도로 스포츠광이다. 고3 때 야구부 주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는데, 1백여년 세인트폴스 역사상 동양인이 야구부 주장이 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번에는 태평양을 건너가 일본에 둥지를 틀었다. 미쓰비시상사 원유 수입부서가 그의 첫 직장이다. 이후 대학원(게이오대학)에 진학해 정치학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모건스탠리 법인영업부를 거쳐 97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효성 경영혁신팀 부장으로 입사했다. 33세에 결혼한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그 역시 만혼(晩婚)이다. 지난 2001년 이희상 한국제분 회장의 3녀인 미경씨와 결혼했다. 주말마다 파스타 요리를 만들 정도로 가정적이라고.

조석래 회장 “싹이 보인다” 조부사장이 ‘재벌가 3세다운’ 코스를 밟아왔다면 한 살 아래 동생인 조현문 전무는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걸어온 케이스다. 조전무의 전공은 고고인류학. 스스로 원해서 택한 전공이다. 그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 입학해 수석 졸업했다. 고교 시절 조전무의 별명은 ‘바야바’. 큰 키에 모범생인 그를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다. 고교 동창인 신해철씨는 “보성고 시절 그는 프로그레시브 음악 광이었다. 한번은 밴드를 하던 나를 찾아와 ‘입시가 끝나고 밴드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고 정말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록그룹이 ‘무한궤도’다. 조전무가 ‘무한대’라는 팀 이름을 제안하자 신해철씨가 ‘무한궤도’로 바꾸었다. 무한궤도는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한껏 유명세를 탔고 나중에는 음반도 내게 된다. 조전무의 ‘주특기’는 키보드와 작곡이었다. 지금도 가끔 작곡 노트를 편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유학해 98년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99년 효성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조현상 상무는 연세대 교육학과를 다니다 브라운대학으로 옮겼다. 대학 시절 아카펠라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해외공연까지 수차례 다녀왔다. 조상무는 큰형인 조부사장처럼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베인앤컴퍼니·NTT도코모 등에서 근무했다. 베인앤컴퍼니 시절 고객 회사이던 NTT측이 그를 스카우트해 한국에 NTT도코모 지사를 설립하는 일을 맡겼다. 주로 CRM(고객관계관리)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97년 조회장은 아들 3형제를 회사로 불러들인다. 경제위기로 회사가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시기였다. 이는 지난 66년 조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조홍제 효성 창업주가 조회장을 불러들인 사연과 유사하다. 당초 조회장의 꿈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60년대 후반 와세다대학을 거쳐 일리노이 공대 화공과를 나온 조회장은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66년 조홍제 회장의 부름을 받는다. “동양나이론 창업을 도우라”는 지시였다. 동양나이론 공장을 짓는 데서부터 시작해 조회장은 나중에 동양나이론을 업계 1위로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3형제 역시 아버지 못지않다. 현준·현문·현상 형제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들이 단순한 경영수업 이상으로 ‘경영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97년 가장 먼저 효성맨이 된 조부사장은 효성의 독특한 사업구조인 퍼포먼스그룹(PG) 경영시스템 도입을 추진했다. 그는 섬유·산업자재·무역·정보통신 등 주요 사업군을 ㈜효성의 우산 아래로 모으면서 효성T&C(옛 동양나이론)·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을 합병시키는 굵직한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조부사장은 특히 인재 개발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가을에는 몇몇 대학에서 열린 기업설명회 자리에 참석해 ‘효성’을 알리기도 했다. 당연히(?) 신입사원 면접도 직접 챙겼다. 인사평정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아 컨설팅 회사인 왓슨와이어트와 함께 국내 최초로 전사적인 연봉제를 도입한 바 있다. 조전무 역시 국제변호사답게 효성맨이 되자마자 큰 건수를 올렸다. 사내에서 그는 홈페이지(www.hyosung.com) 도메인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99년 닷컴 도메인을 선점한 사이버 스쿼터(도메인 매점매석 행위자)가 수억원을 요구해 왔으나, 미국 도메인등록협회와 미국 법원에 제소해 ‘효성닷컴’을 찾아왔다. 이 일은 지금까지도 도메인 분쟁 분야에서는 전무후무한 일로 알려져 있다. 3형제는 실력파인 동시에 소문난 스포츠 광이다. “움직이는 공은 다 잘 다루는데 서 있는 공은 별로”라며 조상무는 형제들의 운동 실력을 말했다. 축구·농구·스쿼시·스키 같이 격렬한 운동을 즐긴다. 다만 ‘서 있는 공’(골프공)을 다루는 데는 “아직은…”이라고 말한다. 모두 전략본부 소속인 이들은 팀원들을 이끌고 주말마다 안양 공장을 찾는다. 전략본부를 두 팀으로 나누어 축구 한 게임을 뛰어야 비로소 1주일이 지난 것 같다고 한다.

“움직이는 공이라면 자신 있다” 세간의 관심은 효성의 경영 승계 시기에 모인다. 이에 대해 효성측은 “계획에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조회장 역시 “본격적인 3세 경영은 10년 내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재계 일부에서는 최근 조회장이 임원 인사를 통해 ‘아들 세대’에 부쩍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인사가 정보통신 계열회사인 노틸러스효성에 외부인사인 최병인 사장을 기용한 것이다. 효성이 외부인사를 사장에 기용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오히려 효성은 류종렬 전 한국바스프 회장·김충훈 대우전자 사장 등 쟁쟁한 CEO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41세의 최사장은 매킨지 출신으로 효성그룹 경영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조부사장과 가까워진 인물. 조회장이 아들과 가까운 인물을 요직에 앉혀 ‘다음 세대’를 준비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효성가의 후계 분할 전통은 원래 장자에게 주력 회사를 맡기는 것이다. 조홍제 창업주는 장남인 조회장에게 효성의 대권을 넘기면서 조양래 회장과 조욱래 회장에게는 각각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물려준 바 있다. 재계 일각에서 효성이 섬유·중공업·정보통신으로 분할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주력 계열사를 장남인 조부사장에게 맡기고, 중공업과 정보통신을 현문·현상씨에게 넘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조회장의 ‘머리 속’에서만 진행되는 일이다. 뚜껑이 열리기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조현준(35) 효성 부사장 91년 美 예일대 정치학과 卒 96년 日 게이오대 정치학과 석사 96년 모건스탠리 법인영업부 97년 효성 입사

조현문(34) 효성 전무 91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卒 98년 美 하버드대 법학박사 98년 美 뉴욕주 변호사 99년 효성 입사

조현상(32) 효성 상무 90년 연세대 교육학과 입학 92년 美 브라운대 경제학과 96년 日 베인앤컴퍼니 근무 2000년 효성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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