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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워진 안전진단 재건축시장에 찬바람

까다로워진 안전진단 재건축시장에 찬바람

7월부터 재건축 연한이 20년 이상으로 강화되면 상당수 아파트의 재견축이 수년씩 연기될 전망이다.
과열 현상을 보이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시장에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건설교통부는 지난 18∼19일 잇따라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를 골자로 하는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재건축 사업의 첫 단추인 안전진단이 한층 강화될 경우 재건축사업이 장기화되고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아파트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지나친 기대심리가 사라지면서 집값도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일단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시장도 빠르게 안정세를 찾아가는 분위기다.

헐렁한 안전진단이 집값 부추겨 최근 서울 지역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의 단초는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락 1년 만에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단지가 나오는가 하면 해당 구청도 민원을 이유로 규제 완화의 의사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4일 정밀 안전진단을 통과한 강동구 고덕 주공 1단지는 지난해 서울시 안전진단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으나, 지난해 말 안전진단 허용 권한이 구쪽으로 넘어오면서 최근 다시 실시한 안전진단을 무난히 통과했다. 이로 인해 이 아파트는 재건축 허용 판정을 받은 지 하루 만에 호가가 5천만원 이상 뛰었다. 같은 날 예비안전진단의 고비를 넘긴 고덕 주공 2, 3단지 역시 기대감 때문에 즉시 2천만∼3천만원이 올랐다. 여기에 강남구청이 기름을 부었다. 지난달 말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두번째 예비안전진단 탈락 이후 심각한 민원에 시달리던 강남구가 안전진단 심의 때 구조안전 외에 재건축 효용가치를 반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의결방식도 종전 만장일치를 다수결로 바꾸겠다고 하자 안전진단을 대기 중이던 아파트들이 사실상 규제 완화로 받아들이며 폭등했다.은마아파트는 구의 방침 이후 2천만∼3천만원이나 올랐다.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수원이나 성남·고양·안양·의왕 등지에서는 지은 지 20년이 안 된 아파트가 무더기로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지은 지 17년 된 수원시 천천 주공아파트가 정밀 안전진단을 통과하는가 하면 19년 된 수원 인계 주공도 재건축 허용 판정을 받았다. 또 18년 된 권선 2차도 안전진단을 통과했고, 권선 3차(86년 준공)도 안전진단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덕에 이들 아파트는 2주 새 호가가 3천만∼7천만원이나 뛰어 올랐다.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이 예사롭지 않자 정부는 각 지자체별로 천차만별로 이뤄지는 안전진단을 강화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오는 7월 시행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맞춰 재건축 판정을 위한 별도의 안전진단 기준 지침을 만들고 서울시 등 지자체에 새 기준이 시행될 때까지 재건축 허용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예비·정밀 안전진단에서 불가판정을 받은 아파트 단지는 1∼2년간 안전진단을 재신청 할 수 없도록 했다. 현재는 안전진단에 탈락해도 그 즉시 안전진단을 다시 신청할 수 있다. 예비안전진단을 할 때는 반드시 외부 전문가(감정평가사 제외) 5∼10인 이내로 ‘안전진단 예비평가심의원회’를 구성해 운용하도록 했다. 평가 항목은 구조적인 안전뿐만 아니라 경제성·설비·마감 성능·주거 환경 등의 분야도 함께 평가해 종합점수를 매기게 된다. 정밀안전진단 기준도 강화된다. 예비안전진단과 마찬가지로 검사 항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계량화하며, 재건축 소요 비용과 개·보수 비용이란 경제성에 가중치를 많이 부여할 계획이다. 또 그동안 평가단의 구성에 따라 안전진단의 편차가 큰 것으로 지적됨에 따라 평가단 구성과 관련된 분야별 인원 등 최소 기준을 제시하고, 관례상 만장일치로 운영됐던 의결방식도 전원합의제로 의무화했다. 더불어 가격 상승폭이 큰 강남구는 투기지역으로 지정해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과세할 방침이다.

재건축 추진단지 중 14.2%만 확정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일단 시장에서 가파른 상승세는 멈췄다. 각 중개업소에는 지난 18일을 고비로 매수 문의가 줄고 품귀현상을 빚었던 매물도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대치동 부동산마트 관계자는 “재건축 안전진단이 까다로와진다는 소식에 하루에 10건을 넘었던 매수 문의가 3∼4건으로 줄었다. 당장은 집주인들이 매도호가를 낮추지 않고 거래도 중단됐지만 1∼2주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가격이 약세로 돌아설 것 같다”고 말했다. 매도 호가가 3억원에 달했던 고덕 시영아파트 17평형도 호가가 1천만원 정도 빠졌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서울 등 수도권에 확산된 재건축 아파트값 급등세는 안전진단 통과나 시공사 선정 등 재료성 단지를 중심으로 투기성 자금이 몰려다니면서 발생한 것”이라며 “중층 이상 단지는 재건축이 힘들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이 재확인된 만큼 그 동안의 거품이 꺼지고 막연한 기대감으로 가격이 오르는 일도 없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진단이 강화되면 사업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섣부른 투자는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는 7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되면 재건축 절차가 한결 까다로워져 사업이 더딘 곳은 특히 유의해야 한다. 투기 수요가 몰리고 있는 서울 고덕·개포·가락지구와 강남지역 고밀도 아파트단지는 안전진단 외에도 서울시 지구단위계획 수립 등의 절차가 필요해 재건축 사업승인이 나려면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게 건교부의 설명이다. 중앙일보 조인스랜드와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서울·경기 등 수도권 내 2백45개 재건축 추진단지, 20만4천9백30가구 가운데 건교부가 사업이 ‘확실’하다고 분류한 사업계획 완료 단계의 아파트는 41개 단지, 2만9천1백26가구로 전체의 14.2%(가구수 기준)에 불과하다. 만약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거나 시공사 선정, 안전진단을 신청한 경우라면 재건축 가능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3, 4차나 서초구 잠원동 한신 4차 등은 모두 시공사 선정만 했을 뿐 조합설립인가는 물론 안전진단도 신청하지 않았다.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더라도 정비구역지정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원하는대로 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또 오는 7월부터 각 지자체별로 재건축 연한이 20년 이상으로 강화되면 상당수 아파트의 재건축이 수년 씩 연기될 전망이다. 강동구 고덕 주공은 지은 지 19∼20년밖에 안 됐고, 개포 주공 저층 아파트도 21년 수준이다. 특히 고덕 주공은 아직 지구단위계획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다. 한 번 안전진단을 탈락한 단지는 1∼2년 간 재신청할 수 없다는 점도 사업이 장기화되는 요인이다. 오는 6월 말까지 확정되는 일반주거지역 세분화도 변수다. 1종으로 분류되면 용적률 1백50%에 높이 4층 이하로, 2종은 용적률 2백%에 높이 12층 이하, 3종은 높이 제한은 없지만 용적률이 2백50% 이하로 한정된다. 현재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국제아파트·청담동 진흥빌라 등은 2종으로 분류돼 채산성이 떨어질 전망이다. 황용천 해밀컨설팅 사장은 “사업 추진이 확실한 서울 시내 5개 저밀도 지구는 반사이익으로 가격이 오르고, 사업이 불확실한 단지는 가격이 떨어지는 차별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사업 추진 단계와 안전진단 통과 여부를 파악해 투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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