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4년… 다시 뛰는 ‘대우맨’
워크아웃 4년… 다시 뛰는 ‘대우맨’
조선·기계·건설·무역 4인방 ‘완전 재기’ 대우인터내셔널뿐만 아니다. ‘대우 우산’에서 벗어난 옛 대우 계열사들이 요즘 하나같이 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일찌감치 대우중공업에서 분리된 조선과 종합기계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01년 8월 계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채권단의 ‘신탁통치’를 졸업했다. 계열사 지원에 얽히고설켜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부실을 털고 일어난 것이다. 한발 앞서 선진기술에 투자한 것이 재기의 동력이었다. 경쟁업체보다 먼저 액화천연가스(LNG)선을 주력사업으로 선정, 집중 육성한 것이 적중했다. 전 세계적으로 최근 2년간 발주된 LNG선 가운데 30%가량을 대우조선이 맡아 건조하고 있다. 이를 반영이나 하듯 지난해 대우조선은 34억 달러의 수주실적을 기록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올해는 순익 2천5백억원이라는 최대 실적을 앞두고 있다. 대우종합기계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시장개척으로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철도차량·발전기 등 수익성이 낮은 부문을 분사시키며 발 빠르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편으로 양재신 사장은 세계를 무대로 일선 영업을 지휘하고 있다. 99년 말 취임 후 한 달에 한 번씩 국내 전 사업장을 방문하는 것은 기본이고, 해외 주요 전시회에 빠지지 않고 다니면서 기술 동향을 챙기고 있다. 지난달 양사장은 중국 엔타이(烟台)시에서 열린 공작기계 공장 설립조인식에 다녀왔다. 사스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 현지를 방문해 엔타이시 정부의 지원을 얻은 것. 양사장은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프랑스로 날아가 파리에서 열리는 건설중장비전시회인 ‘INTERMAT 2003’에 참가했다. 대우의 간판 회사였던 ㈜대우는 대우건설과 인터내셔널, 청산법인인 ㈜대우로 분리됐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3조4천5백억원대 매출에 3천1백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영업이익률에서는 업계 수위다. 올해 5조8천억원대 수주를 달성해 현대건설을 제친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이태용 사장의 표현대로 “명예회복을 다짐했던 인재 덕분에”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 분사 이후에도 6천여개에 달하는 해외 네트워크가 거의 줄지 않았다. 이렇게 네트워크가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차장급 이상 간부진들이 회사에 남아 거래선과의 신뢰 회복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조선해양·종합기계·건설·인터내셔널이 ‘정상화 4인방’이라면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정상 궤도로 가는 중이다. 대우전자 프랑스법인장을 거쳐 효성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내다가 ‘친정’으로 복귀한 김충훈 사장이 ‘가전 명가’ 재건을 밀어붙이고 있다. 김사장은 옛 대우전자에서 백색가전·영상부문·냉방기기 사업부 등을 떼어내 자회사인 대우모터로 이관했다. 대우전자를 배드 컴퍼니로 만들고 대우모터의 사명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4천8백명 직원 가운데 3분의 1이 회사를 떠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대우자동차판매는 채권단의 채무탕감이나 출자전환 없이 회사를 정상화시켰다. 이동호 사장의 지휘 아래 신개념의 금융기법 도입, 과감한 인센티브제 도입을 통해 현대·기아차와 맞상대해 이룬 결과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아직 1조원대 부채를 안고 있지만 충분히 독자생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99년 8월 3조4백억원의 빚을 안고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렉스턴·무쏘스포츠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회생’을 예고하고 있다. 대우사태의 가장 큰 난제였던 대우차는 최근 GM대우차·대우인천차(부평공장)·대우버스(부산 버스공장)·대우상용차(군산 상용차공장) 등 신설법인이 탄생하며 정상화됐다. 그러나 매각대금이 20억 달러에 불과하고 그나마 GM이 떠안는 부채를 빼면 실매각금액은 12억 달러에 그친다. 세계경영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대우자동차 해외 네트워크 가운데 일부는 GM에 인수됐다. 27개국 판매법인과 12개국 15개 생산법인 가운데 베트남 생산법인을 비롯해 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 9개 판매법인은 GM에 인수됐다. 그러나 현지법인 형태로 설립된 나머지 회사들은 현지에서 법정관리 등이 진행되고 있다. 폴란드 정부와 대우의 50:50 합작회사로 한때 시장점유율 20%를 다투었던 폴란드FSO는 전체 근로자의 절반(약 1천5백명)을 감원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폴란드 정부는 대우FSO를 인수할 만한 투자업체를 물색해 왔으나 현재까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밖에 중견건설업체인 경남기업도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대우전자부품은 99년 12월 알루코에 매각된 뒤 파츠닉으로 사명을 변경, 여세를 몰아 디지털 종합부품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대우통신은 5개사로 분할된 뒤 종업원 지주회사 형태로 분사되거나 해외에 매각된 바 있다. 다이너스카드는 2001년 8월 현대차에 매각돼 현대카드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해 심각한 파업사태를 겪은 오리온전기는 브라운관 시장이 위축되면서 고전하고 있다. “공적자금으로 몸 가벼워진 결과일 뿐” 옛 대우 계열사들의 부활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우는 영업조직으로 성장했다. 신혼여행도 못 간 직원이 허다하다. 과로·풍토병에 쓰러져도 ‘노(No)’라고 말하는 대우맨은 없다. 중국·동남아에서 사스 사태가 터졌어도 주재원 가운데 한 명도 귀국한 사람이 없었다.” 이태용 사장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대우는 창업 이후 해체되기까지 줄곧 팽창하면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확보한 네트워크에 수익성 위주로 사업구조를 바꾼 것이 회사가 살아난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 옛 대우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지침은 ‘수익성’이다. 김충훈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은 틈날 때마다 ‘이익 없는 곳에 사업 없다’고 강조한다. 대우종합기계의 ‘새로운 출발’ 운동은 첫 번째 과제가 ‘현금흐름 중심의 이익 창출’이다. 무엇보다 수십조원대의 공적자금은 대우를 살린 약이었다. 99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대우 계열사는 50조원대 빚을 탕감받았다. 재계 일각에서 옛 대우 계열사들의 회생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대우의 부활은 출자전환이나 채무탕감의 열매다. 몸을 가볍게 해줬는데 날지 못하면 기업의 기본 능력을 상실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용일 산업연구원 기업정책팀장은 “자체적인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대우의 경우는 채권단의 과감한 부채 탕감이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옛 대우 계열사들은 현재 아무런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분관계로 얽혀 있지도 않고, 수출 대행의 끈도 없어졌다. 다만 최근 대정부 업무를 담당하는 대우 관계자들이 정례모임을 추진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간의 관심은 옛 대우 계열사들이 ‘새 주인’을 찾는 일과 대우교향곡의 ‘유일한’ 지휘자이자 ‘옛 주인’이던 김우중 전 회장의 행보에 모인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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