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유죄?’
자본주의가 ‘유죄?’
미 정계가 주식시장 침체를 월스트리트 탓으로 돌리며 앙갚음하고 있다. 그 결과 실물경제와 소액투자자들이 뜻하지 않은 희생자로 전락하게 될 전망이다.
미국 금융계의 한 임원이 뉴욕 맨해튼 소재 고층 빌딩 꼭대기에 자리잡은 화려한 개인 전용 식당에서 기자와 마주 앉았다. 두 주먹을 불끈 쥔 탓에 손가락 마디마다 핏기가 빠져 하얗다. 그는 직원 수천명에 자본을 수십억달러나 주무르고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게 될 정부의 계획만큼은 달리 막을 방도가 없다. 아니 반대 의견조차 피력할 수 없는 분위기다.
부정한 기업인, 주가하락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불거지자 정계와 규제 당국은 서둘러 새로운 법규들을 마련중이다. 월스트리트의 정직 의무를 법제화한다는 것이다. 당국의 엄중한 조치로 월스트리트는 분노하는 가운데서도 사기가 저하돼 있다. 새 제재가 상거래 활동을 위축시키고 그러잖아도 침체돼 있는 증권업마저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맨해튼의 그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도처에서 베트남전의 전략이 다시 동원되고 있다. 마을을 구한다는 핑계로 마을에 되레 폭격을 퍼붓는 것이다. 텍사스 정치인들은 대형 석유업체에 결코 손대지 않지만 뉴욕 정치인들은 월스트리트에서 결코 손을 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엔론, 아서 앤더슨, 월드컴, 글로벌 크로싱, 타이코 등 몇몇 기업의 불미스런 부정 사건을 계기로 의회에서 새 법률들이 통과됐다. 이들 법률은 미국 내 1만5,000개 상장회사를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월스트리트가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전망이다. 현재 계류중인 한 사건은 상장사들이 애널리스트들을 활용해 주가조작에 나섰다는 주장과 관련돼 있다.
이번 사건이 화해로 마무리되면 증권사들은 투자자가 원치도 않은 ‘자체’ 리서치 자료 때문에 4억5,000만달러를 배상해야 할 판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한 해 동안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283개 기업에 대한 리서치를 중단했다. 리서치 대상 기업 수가 7% 감소한 것이다. 게다가 증권사들은 자사 애널리스트와 금융전문가 사이의 전화 및 e메일 접촉을 차단하고 있다. 통신을 감시하는 전담 직원도 고용할 계획이다.
새 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월스트리트는 벌써 시름시름 앓고 있다. 증권사들은 지난 2년 사이 전체 인력의 10%인 8만명을 해고했다. 올해 말까지 8,000명이 더 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1년 전 당국은 리서치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의 10대 증권사가 당국과 합의했다. 그 동안 이들 증권사의 시장가치는 1,380억달러나 감소했다. 이들 증권사가 물어야 할 벌금은 14억달러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투자자가 아닌 규제 당국의 금고로 귀속된다.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이 봇물을 이루면 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시티그룹의 경우 뛰어난 실적에도 불구하고 시장가치가 450억달러나 떨어졌다. 시티그룹은 산하 샐러먼 스미스 바니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 대비해 이익 가운데 13억달러나 떼어놓았다. JP 모건 체이스는 9억달러를 준비해두고 있다.
지난해 7월 의회에서 ‘사베인스 옥슬리 법안(Sarbanes-Oxley Act)’이 허겁지겁 통과됐다. 기업들은 60쪽에 달하는 새 법률과 수백 쪽의 법규 해석을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많은 기업이 늘어난 회계감사 비용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아야 할 판이다. 해외 지사 역시 현지 법과 상충된다 해도 사베인스 옥슬리 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이른바 ‘기업개혁법’으로 불리는 사베인스 옥슬리 법에는 지구 반대편 지사의 수위라 할지라도 언제든 회계부정을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규정까지 담겨 있다.
KPMG의 파트너 출신으로 현재 미 공인회계사협회(AICPA) 회장인 로버트 엘리엇은 사베인스 옥슬리 법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위험감수를 범죄시하는 조치다. 이는 자본주의를 범죄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증권사 임원들은 예측실수나 평가절하 같이 흔히 볼 수 있는 일로 수백만달러의 벌금형이나 25년 징역형을 받게 될 판이다.”
당국의 탄압으로 기업은 어마어마한 비용을 떠안게 됐다. 금융 컨설팅업체 존슨 그룹은 올해 150억달러, 내년 130억달러의 추가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월스트리트가 화를 자초한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지난해 자그마치 330개 상장기업이 회계장부를 다시 작성했다. 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 사건의 경우 투자은행가 프랭크 쿼트론은 투자은행가와 애널리스트 사이에 가로 놓인 만리장성을 마음대로 넘나들었다. 샐러먼 스미스 바니 사건에서는 샐러먼 스미스 바니와 계약한 기업 보스들이 유망 인터넷주의 1차 공모에 대해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호의는 불법이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에서 볼 수 있던 행태는 ‘거품 부풀리기’에 함께 뛰어든 우리 모두의 행위보다 더 악독한 게 아니었다. 은퇴자금을 도박하듯 쏟아 부은 단기투자자들, 2000년 초반 증시가 한창 달아올랐을 당시 투자자들을 71개 신규 기술주 펀드로 끌어들인 뮤추얼 펀드들, 경솔하게도 수익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떠벌린 언론을 한 번 되돌아보라.
증권가의 한 임원은 “리서치가 잘못됐던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교도소로 보낸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규제 당국의 맹공으로 미국 경제에 이미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수십개 기업이 상장을 철회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외면한 채 런던에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증권가 임원들은 소송과 형사소추 위협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유망한 투자마저 포기하고 있다.
금융기관 ·기업비용부담 급증
미 회계감사원(GAO)의 금융 리서치 담당인 토머스 매쿨은 의회가 사베인스 옥슬리 법 준수에 따르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엄청나게 늘어난 회계감사 비용이다. 기업 재무 담당 임원들 모임인 파이낸셜 이그제큐티브 인터내셔널(FEI)은 회계감사 비용이 20%에서 무려 100%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베인스 옥슬리 법과 그에 따른 소송 위협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기업 임원들의 배상책임보험과도 연관이 있다. 새 정책에 따라 보험료가 30% 오른데다 보험사들은 향후 보험료 인상을 상정해 장기 계약마저 없애버렸다.
전자제품 소매업체 라디오은 과거 회계장부 재작성이나 스캔들과 전혀 무관했다. 그러나 라디오 역시 회계감사 ·법률자문 ·보험 ·임원들의 늘어난 근무시간으로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비용이 더 들어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내부 재무관리 규정 같은 기본 원칙들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슨 그룹은 추정 비용이 150억달러까지 이르자 매출규모 10억달러가 넘는 1,460개 기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소 상장기업은 추가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실정이다. 자산 2억달러 규모의 펜실베이니아주 소재 메디슨 뱅크셰어스 그룹은 사베인스 옥슬리 법을 준수하는 데 필요한 연간 비용이 40% 늘어 4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40만달러라면 메디슨의 지난해 세전 수익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한다. 메디슨이 상장을 철회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메디슨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셰릴 힝클 리처즈는 “당국이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다”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상장기업 임원들은 뒤에서야 불평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다. SEC 법률 집행관 출신으로 현재 법률회사 오멜버니 앤드 마이어스의 증권 전문 변호사인 브루스 힐러는 “이번 사태에 적극 저항하는 것은 만용”이라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월스트리트는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과 협상하는 자리에서 합의하지 않을 경우 형사기소될 것이라는 위협까지 받았다. 결국 증권사들은 진위가 채 가려지지 않은 행위에 대해 벌금 14억달러를 물기로 합의한데다 죽기보다 싫은 리서치 계획까지 수용해야 했다. ‘화의 아니면 죽음’이라는 스피처의 위협에 분개한 증권가의 어느 임원은 “벌금을 내긴 냈지만 뭘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고 투덜댔다. 스피처가 세인의 이목을 끈 뒤 SEC, 뉴욕증권거래소(NYSE), 미 증권거래업협회(NASD), 미 유가증권관리자협회(NASAA)는 물론 앨라배마주·매사추세츠주 · 인디애나주 검찰총장과 규제 당국도 앞 다퉈 행동에 나섰다.
JP 모건 체이스는 지난해 TV로 미 전역에 방영된 상원 엔론 청문회에서 혹독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상원은 JP 모건 체이스의 혐의에 대해 확증을 잡지 못했다. 그 결과 JP 모건 체이스가 회계장부를 재작성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SEC는 지난 4월 JP 모건 체이스에 대해 공식 조사를 개시한다고 통보했다. 연방법무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뉴욕주 금융국도 같은 사안에 대해 조사중이다. 스피처는 JP 모건 체이스가 리서치 자료로 소액투자자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JP 모건 체이스는 8,000만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JP 모건 체이스의 사업 대상은 기관투자가이고 JP 모건 체이스가 개미투자자들을 위해 리서치한 적은 없다.
지금도 여러 조사가 진행중이다. 그 중 하나는 투자은행이 기업공개(IPO) 주식을 고객사 임원들에게 배분하는 행위와 관련된 것이다. 이를 ‘스피닝(spinning)’이라고 한다. 스피닝은 엄밀히 말해 불법이 아니다. 따라서 NASD는 지난 3월 스피닝과 관련, 쿼트론을 조사하면서 그에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항목을 적용했다. ‘공정하고 정당해야 할 거래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SEC는 대출을 투자은행 사업과 연계시키는 관행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이는 투자은행에서 수십년이나 지속돼 온 전통적이고 합법적인 관행으로 신주 가격과 구매자를 투자은행이 정하는 것이다.
중개인 통해서만 대화해야할 판
소송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원고측 변호사들이 NASD에 중재를 요청한 소송만 1,463건이었다. 1년 만에 23% 늘어난 것이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제임스 후퍼는 과거 유방확대 삽입물과 다이어트 약품 제조업체를 상대로 제소했던 변호사다. 그는 성난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TV 광고로 100만 달러 이상이나 쏟아 부었다. 후퍼는 이미 수억달러 상당의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스피처가 월스트리트에 불리한 증거를 제시할 경우 소송은 더 늘어날 것이다. JP 모건 체이스는 엔론의 자금조달에 협조해 투자자들을 오도했다는 이유로 공공서비스 단체인 코네티컷자원복구위원회(CRRA)로부터 제소당했다. 하지만 JP 모건 체이스도 엔론의 파산으로 9억2,7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스피처의 합의안이 월스트리트에 미친 파장은 엄청나다. 한 리서치 담당자는 최근 자신의 사무실로 불쑥 찾아온 어느 애널리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널리스트는 어느 투자은행가가 자신을 끔찍한 범죄에 연루시켰다며 몹시 흥분했다. 그 투자은행가는 애널리스트의 리서치 메모에 대해 고맙다는 e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양자의 의사소통 모두 범죄행위가 되는 셈이다. 애널리스트와 은행가들은 곧 중개인을 통해서만 의사소통에 나서야 할 판이다.
증권사들은 스피처가 제시한 합의안에 따라 모든 애널리스트의 추천 등급을 추적하는 데 수천 시간이나 할애해야 한다. 문서마다 일일이 서명하고 각 보고서에 편견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애널리스트와 투자은행가는 기업 고객이 큰손들에게 주식을 매각하는 자리에도 동행할 수 없게 된다. 사적 회의나 기업·업계에 대해 논의하는 것조차 금지된다. 한 리서치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나치다. 새로운 기술 경향이나 암 치료 등을 둘러싸고 기발한 아이디어조차 얻을 수 없게 됐다. 중개인을 통해서만 서로 신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그 비용이 과연 누구에게 전가되겠는가.”
스피처의 합의안에 따라 월스트리트는 5년간 5억달러 정도를 독립 리서치 회사에 지불해야 한다. 더 많은 감독관이 독립 리서치 회사를 감시하게 된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새로운 유형의 독립 리서치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 월드 파이낸셜 뉴스 네트워크는 최근 온라인 고객 540만명을 유치한데다 주식추천이 84% 늘었다고 자랑했다. 월드 파이낸셜의 최고경영자(CEO) 조지프 드 보챔프는 골드만 삭스 그룹에 대해 매입추천을 한 새 보고서가 완성되자 골드만 삭스로 사본까지 미리 보냈다. 보챔프는 보고서에 ‘개선할 점’이 없겠느냐며 골드만 삭스 온라인 사이트 고객 열람용으로 5,000달러를 요구했다. 골드만 삭스가 거절하자 보챔프는 스피처에게 자사를 월스트리트에서 인정해야 하는 ‘독립’ 분석 기관으로 선언해달라고 요청했다.
월스트리트의 리서치가 고갈돼 가는 지금 많은 기업은 스스로를 알아서 보호해야 한다. 아칸소주 엘더레이도 소재 목재업체 델틱 팀버의 경우 자사에 우호적이던 애널리스트 다섯명을 모두 잃었다. 델틱 팀버의 투자관계 담당자 케니스 만은 “투자설명회와 투자자 접촉에 돈을 더 써야 할 판”이라고 투덜거렸다. 정보 공개 관련 규정도 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립’ 애널리스트들에게 자사 주식을 예의주시해달라며 돈까지 지불하는 업체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 미 투자자관계협회(NIRI)의 CEO 루이스 톰슨은 “증권사들이 리서치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없다면 중소 기업까지 상대해야 할 요인은 없어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상장 포기 속출할 듯
지난해 여름 마이클 옥슬리 하원의원(공화 ·아이오와주)은 월스트리트 임원들의 ‘즉결 처형안’을 표결에 부치면 “상원에서 찬성표가 85표 정도 나올 것”이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보수 공화당 의원 옥슬리는 애초 월스트리트에 재갈을 물리는 데 강력히 반대했다. 그런 옥슬리마저 태도를 바꿔 강경 법안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다. 법안은 상원에서 97대 0으로 통과됐다. 지난해 초반까지만 해도 사베인스 옥슬리 법안은 상원에서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곧 이어 월드컴 사건이 터졌다. 사건 발생 72시간 뒤 회기 종료 직전 상 · 하원은 최종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탄생한 사베인스 옥슬리 법은 너무 난해한 나머지 의회에서 통과된 바로 다음날 SEC 법률고문이 옥슬리에게 의회의 입법 의도에 대해 묻는 20쪽짜리 질의서를 보냈을 정도다.
옥슬리는 월스트리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인물이 아니었다. 몇년 전 당시 아서 레빗 SEC 위원장은 대형 회계법인이 고객사에 감사와 컨설팅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을 금하려다 실패했다. 당시 옥슬리는 레빗의 움직임에 대해 ‘가혹한’ 조처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정작 사베인스 옥슬리 법이 이를 금하고 있다. 옥슬리는 주주의 제소로부터 증권사 임원들을 보호하는 데 찬성했다. 그러나 새 법은 허위 보고서에 대해 징역 25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내부 고발자 보호규정도 상당한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144년 전통의 은행금고 제조업체 다이볼드는 수천달러나 들여 새 규정을 13개국 언어로 번역할 계획이다. 직원이 무료 핫라인을 이용할 경우 후속 조치에 나서야 한다. 아니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워싱턴주 밴쿠버 소재 핫라인 운영업체 에식스포인트의 법률고문 칼 리기오는 직원이 핫라인을 이용할 때마다 2,000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리기오는 “기업이 핫라인을 기피해 온 것은 누구든 핫라인으로 귀찮게 굴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핫라인 관련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의회가 사베인스 옥슬리 법을 부랴부랴 통과시키면서 간과한 점 한 가지는 자금조달이 뉴욕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금융 중심지 자리를 놓고 런던 · 도쿄와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는 뉴욕으로서는 더 힘겨울 전망이다. 사베인스 옥슬리 법은 독립 이사들로 구성된 회계감사위원회에 광범위한 감사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기업에 감사위원회라는 기구조차 없다. 지난해 가을 포르셰는 미국 내 상장을 보류한 결정적 이유가 사베인스 옥슬리 법이라고 밝혔다.
중국 보험시장의 20%나 점유하고 있는 핑안(平安)보험과 주택건설업체 소호 차이나(SOHO中國)도 최근 미국 내 상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투자은행들은 포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베인스 옥슬리 법이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의 한 인사는 “런던 ·홍콩 ·도쿄에서는 하마터면 뉴욕에 빼앗길 뻔한 기업들을 유치하게 된 나머지 들떠 있다”고 전했다. 뉴욕 당국은 많은 일자리가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현재 뉴욕의 실업률은 9.1%다.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뉴욕의 올 회계연도 적자는 최고 34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안팎의 많은 기업이 성가신 사베인스 옥슬리 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모(私募)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그보다 많은 기업이 상장을 취소할 것이다. 이는 결국 성장중인 기업을 위한 자본이 감소하고 투자자의 선택폭도 줄어든다는 뜻이다. 성난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해 통과시킨 법이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금융계의 한 임원이 뉴욕 맨해튼 소재 고층 빌딩 꼭대기에 자리잡은 화려한 개인 전용 식당에서 기자와 마주 앉았다. 두 주먹을 불끈 쥔 탓에 손가락 마디마다 핏기가 빠져 하얗다. 그는 직원 수천명에 자본을 수십억달러나 주무르고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게 될 정부의 계획만큼은 달리 막을 방도가 없다. 아니 반대 의견조차 피력할 수 없는 분위기다.
부정한 기업인, 주가하락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불거지자 정계와 규제 당국은 서둘러 새로운 법규들을 마련중이다. 월스트리트의 정직 의무를 법제화한다는 것이다. 당국의 엄중한 조치로 월스트리트는 분노하는 가운데서도 사기가 저하돼 있다. 새 제재가 상거래 활동을 위축시키고 그러잖아도 침체돼 있는 증권업마저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맨해튼의 그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도처에서 베트남전의 전략이 다시 동원되고 있다. 마을을 구한다는 핑계로 마을에 되레 폭격을 퍼붓는 것이다. 텍사스 정치인들은 대형 석유업체에 결코 손대지 않지만 뉴욕 정치인들은 월스트리트에서 결코 손을 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엔론, 아서 앤더슨, 월드컴, 글로벌 크로싱, 타이코 등 몇몇 기업의 불미스런 부정 사건을 계기로 의회에서 새 법률들이 통과됐다. 이들 법률은 미국 내 1만5,000개 상장회사를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월스트리트가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전망이다. 현재 계류중인 한 사건은 상장사들이 애널리스트들을 활용해 주가조작에 나섰다는 주장과 관련돼 있다.
이번 사건이 화해로 마무리되면 증권사들은 투자자가 원치도 않은 ‘자체’ 리서치 자료 때문에 4억5,000만달러를 배상해야 할 판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한 해 동안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283개 기업에 대한 리서치를 중단했다. 리서치 대상 기업 수가 7% 감소한 것이다. 게다가 증권사들은 자사 애널리스트와 금융전문가 사이의 전화 및 e메일 접촉을 차단하고 있다. 통신을 감시하는 전담 직원도 고용할 계획이다.
새 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월스트리트는 벌써 시름시름 앓고 있다. 증권사들은 지난 2년 사이 전체 인력의 10%인 8만명을 해고했다. 올해 말까지 8,000명이 더 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1년 전 당국은 리서치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의 10대 증권사가 당국과 합의했다. 그 동안 이들 증권사의 시장가치는 1,380억달러나 감소했다. 이들 증권사가 물어야 할 벌금은 14억달러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투자자가 아닌 규제 당국의 금고로 귀속된다.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이 봇물을 이루면 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시티그룹의 경우 뛰어난 실적에도 불구하고 시장가치가 450억달러나 떨어졌다. 시티그룹은 산하 샐러먼 스미스 바니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 대비해 이익 가운데 13억달러나 떼어놓았다. JP 모건 체이스는 9억달러를 준비해두고 있다.
지난해 7월 의회에서 ‘사베인스 옥슬리 법안(Sarbanes-Oxley Act)’이 허겁지겁 통과됐다. 기업들은 60쪽에 달하는 새 법률과 수백 쪽의 법규 해석을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많은 기업이 늘어난 회계감사 비용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아야 할 판이다. 해외 지사 역시 현지 법과 상충된다 해도 사베인스 옥슬리 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이른바 ‘기업개혁법’으로 불리는 사베인스 옥슬리 법에는 지구 반대편 지사의 수위라 할지라도 언제든 회계부정을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규정까지 담겨 있다.
KPMG의 파트너 출신으로 현재 미 공인회계사협회(AICPA) 회장인 로버트 엘리엇은 사베인스 옥슬리 법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위험감수를 범죄시하는 조치다. 이는 자본주의를 범죄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증권사 임원들은 예측실수나 평가절하 같이 흔히 볼 수 있는 일로 수백만달러의 벌금형이나 25년 징역형을 받게 될 판이다.”
당국의 탄압으로 기업은 어마어마한 비용을 떠안게 됐다. 금융 컨설팅업체 존슨 그룹은 올해 150억달러, 내년 130억달러의 추가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월스트리트가 화를 자초한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지난해 자그마치 330개 상장기업이 회계장부를 다시 작성했다. 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 사건의 경우 투자은행가 프랭크 쿼트론은 투자은행가와 애널리스트 사이에 가로 놓인 만리장성을 마음대로 넘나들었다. 샐러먼 스미스 바니 사건에서는 샐러먼 스미스 바니와 계약한 기업 보스들이 유망 인터넷주의 1차 공모에 대해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호의는 불법이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에서 볼 수 있던 행태는 ‘거품 부풀리기’에 함께 뛰어든 우리 모두의 행위보다 더 악독한 게 아니었다. 은퇴자금을 도박하듯 쏟아 부은 단기투자자들, 2000년 초반 증시가 한창 달아올랐을 당시 투자자들을 71개 신규 기술주 펀드로 끌어들인 뮤추얼 펀드들, 경솔하게도 수익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떠벌린 언론을 한 번 되돌아보라.
증권가의 한 임원은 “리서치가 잘못됐던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교도소로 보낸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규제 당국의 맹공으로 미국 경제에 이미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수십개 기업이 상장을 철회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외면한 채 런던에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증권가 임원들은 소송과 형사소추 위협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유망한 투자마저 포기하고 있다.
금융기관 ·기업비용부담 급증
미 회계감사원(GAO)의 금융 리서치 담당인 토머스 매쿨은 의회가 사베인스 옥슬리 법 준수에 따르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엄청나게 늘어난 회계감사 비용이다. 기업 재무 담당 임원들 모임인 파이낸셜 이그제큐티브 인터내셔널(FEI)은 회계감사 비용이 20%에서 무려 100%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베인스 옥슬리 법과 그에 따른 소송 위협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기업 임원들의 배상책임보험과도 연관이 있다. 새 정책에 따라 보험료가 30% 오른데다 보험사들은 향후 보험료 인상을 상정해 장기 계약마저 없애버렸다.
전자제품 소매업체 라디오은 과거 회계장부 재작성이나 스캔들과 전혀 무관했다. 그러나 라디오 역시 회계감사 ·법률자문 ·보험 ·임원들의 늘어난 근무시간으로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비용이 더 들어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내부 재무관리 규정 같은 기본 원칙들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슨 그룹은 추정 비용이 150억달러까지 이르자 매출규모 10억달러가 넘는 1,460개 기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소 상장기업은 추가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실정이다. 자산 2억달러 규모의 펜실베이니아주 소재 메디슨 뱅크셰어스 그룹은 사베인스 옥슬리 법을 준수하는 데 필요한 연간 비용이 40% 늘어 4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40만달러라면 메디슨의 지난해 세전 수익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한다. 메디슨이 상장을 철회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메디슨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셰릴 힝클 리처즈는 “당국이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다”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상장기업 임원들은 뒤에서야 불평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다. SEC 법률 집행관 출신으로 현재 법률회사 오멜버니 앤드 마이어스의 증권 전문 변호사인 브루스 힐러는 “이번 사태에 적극 저항하는 것은 만용”이라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월스트리트는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과 협상하는 자리에서 합의하지 않을 경우 형사기소될 것이라는 위협까지 받았다. 결국 증권사들은 진위가 채 가려지지 않은 행위에 대해 벌금 14억달러를 물기로 합의한데다 죽기보다 싫은 리서치 계획까지 수용해야 했다. ‘화의 아니면 죽음’이라는 스피처의 위협에 분개한 증권가의 어느 임원은 “벌금을 내긴 냈지만 뭘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고 투덜댔다. 스피처가 세인의 이목을 끈 뒤 SEC, 뉴욕증권거래소(NYSE), 미 증권거래업협회(NASD), 미 유가증권관리자협회(NASAA)는 물론 앨라배마주·매사추세츠주 · 인디애나주 검찰총장과 규제 당국도 앞 다퉈 행동에 나섰다.
JP 모건 체이스는 지난해 TV로 미 전역에 방영된 상원 엔론 청문회에서 혹독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상원은 JP 모건 체이스의 혐의에 대해 확증을 잡지 못했다. 그 결과 JP 모건 체이스가 회계장부를 재작성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SEC는 지난 4월 JP 모건 체이스에 대해 공식 조사를 개시한다고 통보했다. 연방법무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뉴욕주 금융국도 같은 사안에 대해 조사중이다. 스피처는 JP 모건 체이스가 리서치 자료로 소액투자자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JP 모건 체이스는 8,000만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JP 모건 체이스의 사업 대상은 기관투자가이고 JP 모건 체이스가 개미투자자들을 위해 리서치한 적은 없다.
지금도 여러 조사가 진행중이다. 그 중 하나는 투자은행이 기업공개(IPO) 주식을 고객사 임원들에게 배분하는 행위와 관련된 것이다. 이를 ‘스피닝(spinning)’이라고 한다. 스피닝은 엄밀히 말해 불법이 아니다. 따라서 NASD는 지난 3월 스피닝과 관련, 쿼트론을 조사하면서 그에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항목을 적용했다. ‘공정하고 정당해야 할 거래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SEC는 대출을 투자은행 사업과 연계시키는 관행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이는 투자은행에서 수십년이나 지속돼 온 전통적이고 합법적인 관행으로 신주 가격과 구매자를 투자은행이 정하는 것이다.
중개인 통해서만 대화해야할 판
소송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원고측 변호사들이 NASD에 중재를 요청한 소송만 1,463건이었다. 1년 만에 23% 늘어난 것이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제임스 후퍼는 과거 유방확대 삽입물과 다이어트 약품 제조업체를 상대로 제소했던 변호사다. 그는 성난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TV 광고로 100만 달러 이상이나 쏟아 부었다. 후퍼는 이미 수억달러 상당의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스피처가 월스트리트에 불리한 증거를 제시할 경우 소송은 더 늘어날 것이다. JP 모건 체이스는 엔론의 자금조달에 협조해 투자자들을 오도했다는 이유로 공공서비스 단체인 코네티컷자원복구위원회(CRRA)로부터 제소당했다. 하지만 JP 모건 체이스도 엔론의 파산으로 9억2,7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스피처의 합의안이 월스트리트에 미친 파장은 엄청나다. 한 리서치 담당자는 최근 자신의 사무실로 불쑥 찾아온 어느 애널리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애널리스트는 어느 투자은행가가 자신을 끔찍한 범죄에 연루시켰다며 몹시 흥분했다. 그 투자은행가는 애널리스트의 리서치 메모에 대해 고맙다는 e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양자의 의사소통 모두 범죄행위가 되는 셈이다. 애널리스트와 은행가들은 곧 중개인을 통해서만 의사소통에 나서야 할 판이다.
증권사들은 스피처가 제시한 합의안에 따라 모든 애널리스트의 추천 등급을 추적하는 데 수천 시간이나 할애해야 한다. 문서마다 일일이 서명하고 각 보고서에 편견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애널리스트와 투자은행가는 기업 고객이 큰손들에게 주식을 매각하는 자리에도 동행할 수 없게 된다. 사적 회의나 기업·업계에 대해 논의하는 것조차 금지된다. 한 리서치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나치다. 새로운 기술 경향이나 암 치료 등을 둘러싸고 기발한 아이디어조차 얻을 수 없게 됐다. 중개인을 통해서만 서로 신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그 비용이 과연 누구에게 전가되겠는가.”
스피처의 합의안에 따라 월스트리트는 5년간 5억달러 정도를 독립 리서치 회사에 지불해야 한다. 더 많은 감독관이 독립 리서치 회사를 감시하게 된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새로운 유형의 독립 리서치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 월드 파이낸셜 뉴스 네트워크는 최근 온라인 고객 540만명을 유치한데다 주식추천이 84% 늘었다고 자랑했다. 월드 파이낸셜의 최고경영자(CEO) 조지프 드 보챔프는 골드만 삭스 그룹에 대해 매입추천을 한 새 보고서가 완성되자 골드만 삭스로 사본까지 미리 보냈다. 보챔프는 보고서에 ‘개선할 점’이 없겠느냐며 골드만 삭스 온라인 사이트 고객 열람용으로 5,000달러를 요구했다. 골드만 삭스가 거절하자 보챔프는 스피처에게 자사를 월스트리트에서 인정해야 하는 ‘독립’ 분석 기관으로 선언해달라고 요청했다.
월스트리트의 리서치가 고갈돼 가는 지금 많은 기업은 스스로를 알아서 보호해야 한다. 아칸소주 엘더레이도 소재 목재업체 델틱 팀버의 경우 자사에 우호적이던 애널리스트 다섯명을 모두 잃었다. 델틱 팀버의 투자관계 담당자 케니스 만은 “투자설명회와 투자자 접촉에 돈을 더 써야 할 판”이라고 투덜거렸다. 정보 공개 관련 규정도 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립’ 애널리스트들에게 자사 주식을 예의주시해달라며 돈까지 지불하는 업체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 미 투자자관계협회(NIRI)의 CEO 루이스 톰슨은 “증권사들이 리서치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없다면 중소 기업까지 상대해야 할 요인은 없어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상장 포기 속출할 듯
지난해 여름 마이클 옥슬리 하원의원(공화 ·아이오와주)은 월스트리트 임원들의 ‘즉결 처형안’을 표결에 부치면 “상원에서 찬성표가 85표 정도 나올 것”이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보수 공화당 의원 옥슬리는 애초 월스트리트에 재갈을 물리는 데 강력히 반대했다. 그런 옥슬리마저 태도를 바꿔 강경 법안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다. 법안은 상원에서 97대 0으로 통과됐다. 지난해 초반까지만 해도 사베인스 옥슬리 법안은 상원에서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곧 이어 월드컴 사건이 터졌다. 사건 발생 72시간 뒤 회기 종료 직전 상 · 하원은 최종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탄생한 사베인스 옥슬리 법은 너무 난해한 나머지 의회에서 통과된 바로 다음날 SEC 법률고문이 옥슬리에게 의회의 입법 의도에 대해 묻는 20쪽짜리 질의서를 보냈을 정도다.
옥슬리는 월스트리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인물이 아니었다. 몇년 전 당시 아서 레빗 SEC 위원장은 대형 회계법인이 고객사에 감사와 컨설팅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을 금하려다 실패했다. 당시 옥슬리는 레빗의 움직임에 대해 ‘가혹한’ 조처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정작 사베인스 옥슬리 법이 이를 금하고 있다. 옥슬리는 주주의 제소로부터 증권사 임원들을 보호하는 데 찬성했다. 그러나 새 법은 허위 보고서에 대해 징역 25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내부 고발자 보호규정도 상당한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144년 전통의 은행금고 제조업체 다이볼드는 수천달러나 들여 새 규정을 13개국 언어로 번역할 계획이다. 직원이 무료 핫라인을 이용할 경우 후속 조치에 나서야 한다. 아니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워싱턴주 밴쿠버 소재 핫라인 운영업체 에식스포인트의 법률고문 칼 리기오는 직원이 핫라인을 이용할 때마다 2,000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리기오는 “기업이 핫라인을 기피해 온 것은 누구든 핫라인으로 귀찮게 굴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핫라인 관련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의회가 사베인스 옥슬리 법을 부랴부랴 통과시키면서 간과한 점 한 가지는 자금조달이 뉴욕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금융 중심지 자리를 놓고 런던 · 도쿄와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는 뉴욕으로서는 더 힘겨울 전망이다. 사베인스 옥슬리 법은 독립 이사들로 구성된 회계감사위원회에 광범위한 감사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기업에 감사위원회라는 기구조차 없다. 지난해 가을 포르셰는 미국 내 상장을 보류한 결정적 이유가 사베인스 옥슬리 법이라고 밝혔다.
중국 보험시장의 20%나 점유하고 있는 핑안(平安)보험과 주택건설업체 소호 차이나(SOHO中國)도 최근 미국 내 상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투자은행들은 포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베인스 옥슬리 법이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의 한 인사는 “런던 ·홍콩 ·도쿄에서는 하마터면 뉴욕에 빼앗길 뻔한 기업들을 유치하게 된 나머지 들떠 있다”고 전했다. 뉴욕 당국은 많은 일자리가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현재 뉴욕의 실업률은 9.1%다.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뉴욕의 올 회계연도 적자는 최고 34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안팎의 많은 기업이 성가신 사베인스 옥슬리 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모(私募)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그보다 많은 기업이 상장을 취소할 것이다. 이는 결국 성장중인 기업을 위한 자본이 감소하고 투자자의 선택폭도 줄어든다는 뜻이다. 성난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해 통과시킨 법이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만약 책임자라면… |
이사진에 투자자들을 더 많이 참여시킨다. 그리고 이사회로 하여금 더 많은 외부 고문을 활용토록 한다. 단기 자본수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한다. 스톡옵션을 철폐해 단기 실적 위주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세제로 배당금 인상을 장려한다. 연금부담, 감가상각 일정 같은 항목과 관련해 급진적이든 보수적이든 모든 가정을 활용해 재무제표 작성에 나선다. - 존 C. 보글, 뱅가드 그룹 창업자 사베인스 옥슬리 법이 새로운 방향과 제한적인 자금조달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미결 과제는 기업 및 뮤추얼 펀드 지배구조, 그리고 펀드 매니저와 주식 중개인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가성 거래다. - 아서 레빗, 전 미 증권거래위원장 1990년대 증권사·회계사·변호사, 그 외 기업의 부정을 돕거나 교사한 사람에 대한 법적 처벌 조항이 폐지된 바 있다. 이를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 멜빈 웨이스, 밀버그 웨이스 버섀드 하인스 앤드 러래치의 파트너 기업 반(反)인수법 조항을 약화시켜 경영진이 긴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비성과급에 대한 세금공제 상한선 100만달러를 더 올려 스톡옵션 행사가 줄도록 한다. 부채에 유리한 세제를 철폐하고 배당금 세율을 장기 자본수익 수준으로 인하한다. - 윌리엄 니스커넨, 케이토 인스티튜트 회장 세법 단순화로 이사·임원들이 회사 재무상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 찰스 제임스, 셰브런텍사코의 법률고문 지나치게 복잡한 리서치 관련 화해안을 간단히 애널리스트와 투자은행의 유착금지로 대체한다. 이를 어길 경우 막대한 벌금으로 다스리면 알아서 따를 것이다. - 월스트리트의 어느 리서치 담당 인사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한국은 25%, 기본 10%”…트럼프발 전세계 ‘관세 폭탄’ 터졌다
2파면 이틀째 尹, 관저 퇴거는 언제...아크로비스타 복귀에 ‘관심’
3 "다시 윤석열" 전 국방부장관 김용현, 윤 전 대통령 파면에 옥중서신
4“싸구려 취급” 분노에도...전국민 2명 중 1명, ‘지프리 프사’ 이용했다
5‘자산 500조’ 머스크, 세계부자 1위 탈환…韓 1위는?
6北김정은, ‘尹파면’에 특수부대 훈련시찰…“싸움 준비가 최고의 애국”
7애플·엔비디아·테슬라도 무너졌다...서학개미들 ‘곡소리’
8최대 6일 쉬는 ‘5월 황금연휴’ 어디로 갈까…1위 인기 여행지는 ‘이 곳’
9尹파면 선고 끝났지만…오늘 서울 도심서 찬반집회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