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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로 다시 태어난 달걀

'황금알'로 다시 태어난 달걀

달걀에서 병아리만 나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항암치료제에서 특수섬유에 이르기까지 첨단소재들이 부화되고 있다.
오늘 아침 달걀프라이를 먹었다면 당신은 무게 50g의 소우주를 배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다. 달걀을 흔한 반찬거리 정도로 얕보면 안 된다. 달걀에는 생명체 탄생에 필요한 모든 인자들이 들어있다. 19세기 에디슨이 달걀을 품었을 때 그가 원했던 건 병아리였다. 물론 에디슨의 달걀은 전구와 축음기로 탈바꿈했다. 15세기말 희대의 베팅에 쓰였던 콜럼부스의 달걀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지만 그 후 수백년 간 달걀은 그냥 달걀이었다. 기껏해야 달걀 공예품이 귀족들의 장신구로 쓰인 게 전부였다.

21세기 달걀에선 병아리가 아닌 첨단소재들이 부화된다. 달걀이 첨단기술과 접목돼 특급 영양식품과 첨단 의약품, 고기능성 화장품으로 바뀌고 있다. 고작 300~400원짜리 달걀이 값을 매길 수 없는 황금알로 탈바꿈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달걀을 이용한 바이오 산업이 이미 본 궤도에 올랐다. 경기도 포천에서 가농바이오가 운영하는 1만7,000평 규모의 양계장은 거대한 ‘첨단 달걀공장’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달걀의 기능과 효험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표 상품은 항위염 달걀.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위선암 등을 일으키는 주범인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을 닭에 투여해 달걀에 항체가 생기도록 했다. 이 회사 유재흥 사장은 “이 달걀은 연간 10조원 이상의 국내 위궤양 치료제 시장에 파고들 것”이라고 자신한다. 남극바다 크릴새우에서 추출한 천연항산화제인 아스타산친을 다량 함유시킨 특수란도 내놓았다. 아스타산친은 노화나 암을 예방하는 효능이 토코페롤의 500배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사장은 “달걀은 의약품은 물론 화장품, 식품 등의 원료로도 사용되는 등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한다.

달걀 노른자위에서 나오는 면역항체(IgY)는 충치를 유발하는 뮤탄스균을 박멸한다. IgY는 항생제에 비해 투여량과 투여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기능성 식품첨가제 원료나 화장품원료, 진단시약으로도 쓰인다. IgY는 여러가지로 유용하다. 보통 항체를 생산하려면 항원(미량의 균)을 동물에 접종해 혈액에서 항체를 분리해낸다. 이는 과정도 복잡하고 양도 적다.

그러나 달걀 노른자에서 항체를 생산하면 한 개의 달걀 노른자에서 150mg 정도의 항체를 얻을 수 있다. 닭 한마리가 연간 약 250~300개의 알을 낳으니 1년이면 40g이상의 항체를 뽑는 셈이다. 현재 IgY를 응용해 제품을 만들고 있는 업체도 여럿이다. 에그바이오텍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 위장염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피로리균, 대장균을 예방하는 특수면역단백질이 들어 있는 달걀을 개발했다. 씨트리가 출시한 바이오IgY는 위염과 십이지장염 항체를 함유한 달걀. 단바이오텍도 콜리락이라는 대장균 억제제와 살모넬라균 예방 달걀을 내놓았다.

IgY가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의약품은 물론 치약, 화장품, 사료를 비롯해 여드름 예방에도 쓰인다. 씨트리 김완주 사장은 “IgY는 조만간 항생제를 대체할 천연 항생제 개발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한다.
닭에게 인슐린을 주사해 달걀 노른자위에서 인슐린 항체를 얻어낼 수도 있다. 기존 방식에 비해 생산성이 90배나 높아진다. 치매, 고혈압, 지방간 치료에 효과가 있는 포스파티딜콜린도 분리해낼 수 있다.

흰자위에서는 알부민 등 고부가 가치 제품과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하는 항생제 원료인 라이소자임을 생산한다. 인체의 혈액 속에 있는 주요 단백질인 알부민은 간경변이나 만성간염, 결핵환자, 미숙아 등에게 필수적인 단백질. 그 동안은 사람 혈액에서만 추출해 왔다. 이 때문에 해마다 300억원 이상을 알부민제제 원료를 수입해왔다. 독감 백신 개발에도 유정란이 사용된다.

대전에 있는 충남양계축협은 달걀비누를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이곳에서 만든 ‘골드 에그’는 달걀에서 항균면역성분을 추출해 만든 비누다. 흰자위에 들어있는 향균면역 단백질과 노른자위의 레시틴을 주재료로 감초, 계피, 구기자, 오미자 같은 식물성 약재 추출물을 첨가했다. 피부노화 억제와 항균·미맥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물에도 잘 녹고 천연 소재로 만든 만큼 무공해 제품이다. 현광래 조합장은 “충남도 내 달걀 생산량은 600만개에 달해 비누가 본격 생산 판매되면 국내 비누 원료의 10% 정도까지 댈 수 있다”며 “앞으로 달걀을 이용해 화장품, 혈액순환개선제 등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항암달걀도 나왔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 로슬린연구소는 유전자를 조작해 항암 달걀을 낳는 암탉 브리트니를 만들었다. 이 달걀 한 개에는 1g에 수백만원씩 하는 항암제 성분이 0.1g이나 들어 있다. 이 닭이 1년 동안 낳는 250개 정도의 알은 더이상 달걀이 아니다. 일본 도쿄여의대 의용공학연구소에서는 달걀에서 닭의 심장 근육세포를 추출해 심근 세포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달걀로 장기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달걀 껍질을 빻아 칼슘제제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달걀 껍질 비료와 사료도 이미 상품화돼 있다. 치약과 고무 제조에도 달걀껍질이 쓰인다.

달걀 껍질 가루는 세척곀Ⅹ?효과가 좋다. 이를 이용해 천연세제를 만들 수 있다. 달걀도 숨을 쉰다. 껍질 표면에 미세한 구멍은 숨구멍이다. 특히 속껍질은 바깥껍질에서 1차 정화한 공기를 다시 여과시키는 특수 장치로 만들어져 있다. 온도 조절과 함께 병균이 들어오는 것도 차단한다. 또 달걀 내부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영양을 공급해주는 역할까지 한다.

이 숨구멍을 통해 알은 숨을 쉬되 물은 통과시키지 않아 알속의 수분은 증발하지 않는다. 이 속껍질을 이용해 피부에 침투되기 쉬운 각종 세균의 증식을 막고, 피부 면역기능을 높일 수 있는 섬유 소재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크림이나 소시지 포장제 등으로 이용된다. 네덜란드에선 연간 1,000만 병의 달걀술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종류만 40가지가 넘는다. 정맥주사제, 피혁 유연제나 인쇄 잉크에도 달걀 추출물이 들어간다. 머지않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말은 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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