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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더 세졌다”

“국회가 더 세졌다”

국회의 힘이 몰라보게 세졌다. 국회는 노무현 정부 들어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고 정부가 만든 정책도 적극적으로 바꾸고 있다.‘제왕적 대통령’은 이미 옛말이 됐다. 여소야대에다 최근의 정치적 상황 변화가 맞물린 현상이다.
2003년 한국의 파워집단은 ‘국회’다. 국무위원인 장관을 해임건의하고, 대규모 감세(減稅)안을 결정하고, 정부가 오랜 논의 끝에 결정한 정책을 뒤바꾼다. 한 마디로 ‘파워 국회’다.
삼권분립 국가에서 입법부인 국회는 원래 센 곳이어야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국회의 위상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다. 군사정권 시절은 물론이고, 김영삼(YS) 대통령의 ‘문민정부’나 김대중(DJ)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국회를 지배하고자 했고, 대부분 뜻을 이뤘다.

국회는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對)정부 견제권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원하는 사람을 정부 요직에 앉히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대통령의 약속은 그대로 정책이 되고, 법제화됐다. 예산안은 정부의 구상대로 국회를 통과했다.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을 가리켜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까지 나왔다.

2003년 한국에선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사건들이 터져나왔다. 우선 국회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올 봄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명한 고건 국무총리 후보자는 물론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후보자 등 ‘빅4’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이미 지난해 장상 총리 지명자와 장대환 총리 지명자의 인준을 거부한 ‘전과’를 올린 국회의 후보자 검증은 장난이 아니었다.
국회는 9월 초 다시 ‘일’을 냈다. 비록 야당 단독이긴 했지만,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의결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국회의 해임건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헌법정신”이라며 대통령을 압박, 해임을 관철시켰다.

무엇보다 국회는 정부 정책을 바꿔놓고 있다. 단순히 정책의 토씨를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골격까지 바꿔버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 7월 임시국회를 보자.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한 가지 히든카드를 준비했다. 자동차에 붙는 특별소비세 인하였다. 그런데 국회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경기를 살린다며 왜 자동차 특소세만 내리느냐”는 것이었다. 한나라당은 재빨리 근로소득세 경감과 에어컨 등 다른 품목 특소세 인하를 포함한 2조원대의 감세안을 들고 나왔다.

결국 국회는 연간 1,500만원 이하 소득에 대한 근로소득공제율을 현재보다 5%포인트 올리고, 에어컨 특소세를 20%에서 16%로 내리는 것을 골자로 한 감세안을 처리했다. 정부는 당초 근소세 경감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해 내년부터 적용할 방침이었다가 완전히 허를 찔린 셈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연 급여 중 1,500만~3,000만원 분에 대한 근로소득 공제 확대가 최종단계에서 빠진 점이다. 근로소득 공제는 노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대상은 연 급여 3,000만원 이하였다. 그러나 누진세율인 근소세 체계 때문에 오히려 연간 3,000만원 넘게 버는 중산층 이상이 더 많은 감세혜택을 누린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막판에 국회가 공제 대상을 줄여버린 것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공약이 국회 입법 과정에서 달라진 셈이다.



정부 정책의 골격까지 바꿔

정부가 만든 정책도 국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사문화한다. 죽어 있는 정책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도 국회다.8월 임시국회에서 주5일근무제 법안이 통과된 경과를 보자. 주5일제 논의가 시작된 지는 3년이 넘었고, 정부가 주5일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지난해 10월이지만,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니 소용이 없었다.
올 들어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사이 8월 5일 현대자동차 노사가 덜컥 주5일제 근무안에 합의했다. 정부안보다 임금을 더 보전해주는 내용이었고, 산업 현장엔 주5일제 바람이 급속도로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틀 뒤인 8월 7일 한나라당은 주5일근무제 법안을 정부안대로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그냥 내버려두면 현대차 노사협상 결과가 다른 기업들로 번질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8월 14일 재계와 노동계의 최종 협상이 결렬되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 제출 법안을 빨리 국회가 통과시켜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칼자루는 결국 국회가 쥐고 있었다. 국회는 보름 뒤인 8월 말 본회의를 열어 주5일근무제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법안은 2004년 7월부터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사업장에 주5일근무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정부안과 내용이 같았다. 노사관계에 대변화를 몰고올 제도가 단숨에 처리된 셈이다. 이쯤 되면 ‘정책의 귀착점은 국회’라는 말이 틀린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제하에서 최고권력은 누가 뭐래도 대통령이다. 그 권력의 한쪽 날개가 인사권이라면 다른 쪽 날개는 정책이다. 그런데 2003년 국회는 그 같은 대통령의 인사권과 정책을 상당한 수준까지 견제할 뿐 아니라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나랏일이 ‘대통령 마음대로’ 되지 않고, 국회가 나랏일 결정에 실질적으로 간여하는 양상은 그 동안 대통령과 행정부에 치우쳐 있던 한국 사회의 권력 중심이 서서히 국회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 차지했던 공간을 ‘파워 국회’가 상당 부분 메우고 있는 것이다.
권력 이동(Power Shift)은 세태를 빠르게 변화시킨다. 이해단체들은 권력이 있는 쪽으로 몰려간다. 같은 얘기라도 권력 중심에 전달할수록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재계는 상황변화를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환경이 달라지고 곤욕을 치렀던 만큼 재계로선 누구를 붙들고 말해야 사업에 유리한지를 따지는 것이 본능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례가 7월 28일 박관용 국회의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의 점심 오찬회동이었다. 이날 회동은 박 의장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계를 격려하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자리였다. 박 의장은 이 회동에 정세균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이강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함께 불렀다. 박 의장 측 관계자의 표현으로는 “상심해 있는 재계에 힘을 주려고 만나는 자리인 만큼 국회의 ‘콘텐츠’를 만지는 여야 정책위의장을 불렀던 것”이다.

전경련은 이 모임에 대비해 꼼꼼히 준비를 했다. 그 중 하나가 닷새 전인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소위를 통과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안’이었다. 통상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와 본회의를 그대로 통과하게 마련이어서, 그대로 두면 집단소송제는 확정될 판이었다. 손길승 전경련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집단소송제에 대해 취합한 경제계 의견을 전달했다. 소송 남발 방지책이 미흡하니 법안을 보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국회의장과 여야 정책위의장을 상대로 전경련 회장단이 직접 현안 해결을 요청한 것이었으니, 보기에 따라선 과감한 ‘공개 로비’이기도 했다.

며칠 뒤 정겴?의장은 남소방지책 보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법사위에 전달했고, 금방이라도 법안을 처리할 것 같았던 법사위는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다시 법안 검토에 들어갔다. 법안 처리는 정기국회로 미뤄졌고, 소위는 남소방지를 위한 추가장치 마련을 논의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예전 같았으면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정부를 찾아왔던 재계가 집단소송제 보완을 위해 누구한테 달려갔는지를 보라. 정책의 중심이 국회로 옮겨갔고, 국회가 그만큼 세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국회를 ‘파워 국회’로 거듭나게 했을까.

외형적인 첫째 요인은 정치구도의 변화다. 우선 현 국회는 야당이 다수당이다. 물론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은 소수였다. YS의 민주당, DJ의 평민당, 김종필(JP) 총재의 공화당 등 3김이 각각 이끄는 야당이 다수였다. 당시 여소야대였던 13대 국회도 힘이 셌다. 그래서 5공 청문회가 가능했다. 거대 야당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당시 노 대통령은 아예 YS갘P와 당을 합쳐버렸다. 이른바 3당 합당이다.

DJ가 대통령으로 있던 15대 국회도 여소야대였다. DJ의 국민회의는 JP의 자민련과 힘을 합해도 국회 과반수가 안 됐다. 국민회의는 국민신당과 합치고, 수십 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으로 옮겨 오고서야 국회 과반을 넘길 수 있었다.
여소야대는 대통령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예산안도, 법안도 모두 국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국회(16대)의 여소야대는 더욱 위력적이다. 한나라당 단독으로 국회 과반수를 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으면 예산안도, 법안도 확 바꿀 수 있다.

9월 초 현재 국회 의석 수는 ▶한나라당 149석 ▶민주당 101석 ▶교섭단체를 이루지 못한 의원 22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여소야대 구도를 단순히 야당의원 수가 많다는 점만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딘가 허전한 측면이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여소야대가 두려워 집권당이 다수를 차지하게 만들려고 몸부림쳤다. 정권교체 때마다 나타났던 ‘야당 의원 빼오기’ 등 인위적 정계개편도 이 같은 몸부림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나도록 여소야대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 일부가 탈당을 했지만, 본격적인 정계개편의 모습은 아니다. 이는 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과거와 달리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인위적 정계개편으론 더이상 국민들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본질적 이유다.



여소야대와 당정 분리가 주요인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5?공과 YS갆J정부 때 나타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딛고 출발했다는 점도 ‘여소야대’ 구도를 인위적으로 깨기 어려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온갖 국정 왜곡과 부정부패를 낳았던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전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 대통령은 물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이런 흐름에 적극 호응했다. 이에 따라 여야 후보들은 한결같이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겠다고 국민들 앞에 약속했던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바로 정부와 정당을 동시에 장악한 데서 비롯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당권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과거의 대통령과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총재는 국회의원 공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의원들은 총재의 의중을 거스르기 힘들게 된다. 반대로 대통령이 당권을 갖지 않을 경우 원천적으로 당을 장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이 없는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공천권 행사에 영향력 있는 당 총재의 생각이나 지역구민들의 여론에 더 민감해진다. 그것은 대통령이 소속 정당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권당마저 뜻대로 할 수 없다면 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는 더욱 대통령이 어찌할 수 없게 된다.
당권과 대권의 분리는 국회의원 개개인의 영향력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대통령 지시로 집권당 의원들이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처리를 강행하는 ‘날치기’는 생각도 할 수 없게 됐다. 그 대신 표결 때 당론을 정하지 않고 국회의원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크로스 보팅(자유투표)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의원들이 당론에 따르지 않게 되면 의원 한 명, 한 명의 의사가 중요해진다.

사례를 보자. 지난 4월 노 대통령이 지지기반인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회에 제출한 이라크 파병 동의안이 그런 경우다. 당시 파병에 대한 찬성이 179표, 반대가 68표였는데 반대한 의원 68명 가운데 43명이 집권당인 민주당 소속이었다. 노 대통령에겐 상당한 타격이었다.
7월 말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안 처리 때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크로스 보팅을 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135명이 표결에 참석해 53명이 찬성했고, 절반 이상인 76명이 반대했으며, 6명은 기권했다. 크로스 보팅이 활발해지면서 의원들은 당 지도부가 정한 당론에 따라 손을 드는 ‘거수기’ 신세에서 벗어났다. 정부가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다고 해서, 그 법안이 반드시 정부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처리되지 않는 시대가 된 셈이다. 국회의 힘이 상대적으로 증대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당정 분리’도 국회 쪽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됐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집권 여당이 돼 정부와 정책 입안단계 때부터 긴밀한 협의를 벌인다. 물론 정부는 정책에 여당의 입장을 적극 반영한다. 이런 정책이 국회에 나오면 여당은 성심껏 입법을 도와준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여당의원들이 총대를 메고 정부가 제출한 법안처리를 강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당정분리’론이 이 같은 관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당정분리는 웬만하면 대통령은 당의 일에 간여하지 않고, 당은 정부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여당과의 협의없이 정책을 생산하는 경우가 잦고, 여당도 예전처럼 맹목적으로 정부의 뒤를 받쳐주지 않는다. 바로 ‘당정 협의’의 실종 현상이다.

정부가 국회에서 여당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애써 마련한 정책을 관철하기 힘들게 된다. 최근 국회에서 각종 법안의 수정이 잦아진 것도 이때문이다. 이런 상황엔 물론 여당 스스로 결속력이 크게 떨어진 점도 작용했다. 신당을 둘러싼 장기 내분과 분당(分黨) 사태로 민주당이 힘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김두관 행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만 해도 여당이 똘똘 뭉쳐 반대했으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정치권에선 보고 있다.
국회에 힘이 실리게 만든 요인은 또 있다. 우선 국회 스스로가 역대 최강의 모습을 갖췄다는 사실이다.
국회 수장인 박관용 국회의장은 야당인 한나라당 출신으로, 대통령이 지명하지 않은 최초의 국회의장이다. 국회 운영에서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국회 스스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치를 갖췄다. 그 중 하나가 올 1월 도입한 감사원에 대한 감사청구제다. 이로써 국회가 행정부 각 부처를 감사해주도록 감사원에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국회 직원들의 표현을 빌리면 ‘실질적으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긴 셈이다.
국회는 예산정책처도 갖게 됐다. 10월 말께 출범하는 예산정책처는 미국 의회예산처인 CBO(Congressional Budget Office)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차관급 처장에 박사급 연구인력만 50여 명을 거느린 매머드 조직이다.

이를 두고 정진용 국회사무처 입법차장은 한 기고문에 “국회가 제헌국회 이래 풀지 못했던 숙원을 드디어 이뤘다”고 감회를 적었다. 반대로 정부 각 부처에선 “국회가 현미경 들여다보듯 예산을 지켜보게 돼 부담이 말할 수 없이 늘었다”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제까지 국회가 예산안과 결산안을 앞에 놓고도 정쟁(政爭)에 치우쳤던 데는 전문 지식 부족도 한 몫했다. 사실 의원들이 숫자로만 채워진 복잡한 장부 같은 예겙沼袁횬?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었다.

의원들은 앞으로 예산정책처로부터 예겙沼袁효?대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국회가 행정부의 재정을 제대로 통제하기 위한 필수 병기를 갖추게 된 셈이다.
아마 16대 국회의 파워를 가장 통렬하게 느낀 사람은 노 대통령일 것이다.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각종 개혁정책이 결국 법을 만들거나 고쳐야 하는 입법사안인 것을 알고 난 뒤 개혁 추진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룰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대통령 힘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취임 초부터 밀어붙일 것인지를 놓고 고심했다.



노 대통령도 막강 위상 인정

‘파워 국회’에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는 이도 노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이 8월 말 “한국은 대통령이 정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 갈등관계에 휘말려 행정부 중심 잡기가 힘들 것”이라면서 “전형적인 미국식 대통령제로 (국정을) 운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힌 배경도 국회 상황을 떼어 놓고선 해석하기 힘들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대통령이 의회를 떠받드는 제도다. 이름만 대통령제라고 붙였을 뿐 실상은 ‘강한 의회, 약한 대통령’이다. 우선 의회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강력하게 견제한다.

대통령이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직을 임명할 때 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이가 513명이다. 게다가 의회의 인준을 받기도 쉽지 않다.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 의회의 인준을 받지 못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이 법률안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지지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비율을 보면 케네디 대통령이 84.6%로 가장 높았다. 법안 통과율이 가장 높았던 케네디 대통령마저도 10건 중 2건은 자신의 뜻대로 법안을 만들지 못했다는 얘기다.

레이건 대통령은 61.9%였고, 클린턴은 66%였다.사정이 이러니 대통령이 의원들을 잘 모시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법안 표결을 앞두고는 의원들을 상대로 대통령이 직접 로비도 한다. 전화를 직접 걸거나 백악관에 초청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 전용기에 태워주기도 한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사업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도 9?1테러 이후 의회의 지원과 협조를 얻기 위해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곀臼?원내총무 4명을 격주에 한 번꼴로 백악관으로 불러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정책권이 제약받는 현상은 이미 우리 국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의원 모시기는 어느 정도인가. 노 대통령도 일단 이 방향으로 스타트는 끊은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9월 4일 박관용 국회의장,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정대철 민주당 대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한 것이 한 사례다.

언론이 이 모임을 ‘5자 회동’으로 부른 것과 달리 청와대는 이 모임을 ‘의회 지도자와의 회동’이라고 불렀다. 대통령이 달라진 국회의 위상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10월 13일 직접 국회에 나가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도 한다. 국무총리가 대신 읽어왔던 시정연설을 대통령이 직접 하기는 6공화국의 노태우 대통령 이후 15년 만이다. 초당적인 입장에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향을 여야 의원들에게 직접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 각 부처는 아직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 관가에선 여전히 강력한 여당이 있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공무원들은 당정협의가 사라진 지금 무엇보다 몸이 괴롭다고 한다. 중앙부처 한 고위공무원은 “예전 같으면 여당하고만 했으면 될 협의를 요즘은 야당하고도 꼭 같이 해야 하니 일이 곱절로 늘어나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정부의 ‘나홀로 정책’도 문제다. 여당과의 당정협의가 옛날같지 않은 가운데 정부는 아직 국회와의 새로운 협의 시스템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정책을 발표하고 난 뒤에야 국회를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이미 발표한 정책은 수정되고, 정책 신뢰는 흔들리기 십상이다.

정책의 실현도, 정부의 성공도 결국 국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느냐가 절대적인 변수가 된 상황에서 정부 부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미국 대통령 중 국회와의 관계가 좋기로 유명했던 존슨 대통령의 말이 한 대답이 될 것이다. “프로그램을 의회에 갖다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의회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의회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부처는 다른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
국회는 확실히 세졌다.

국민들이 원했던 정치개혁의 한 모양이었던 ‘당권과 대권의 분리’나 ‘당정분리’가 국회를 강하게 만들었듯이 앞으로 정치개혁이 진행될수록 국회의 힘은 더 커질 것이다. 그에 따라 대통령에게 집중됐던 권력도 국회로 분산될 것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권력 이동’은 점점 가속화할 것이다. 정작 중요한 사실은 국회의 권력이 국민에게서 태동한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권력 이동의 진짜 주역은 국민이다. 앞으로 국민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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