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재신임’의 위험성
‘대통령 재신임’의 위험성
노무현 대통령이 10월 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오는 12월 15일 재신임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으로써 한국은 ‘재신임 정국’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대통령 측근의 비리 의혹이 대통령의 임기 지속 여부와 함께 대한민국 헌정이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사태로까지 비약되었다.
10월 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대통령은 “대통령 한사람이 재신임을 받느냐 안받느냐가 모두에게 관심사이겠지만 제 관심사는 대통령 한사람의 재신임 여부보다 한국 정치가 제대로 가느냐 안가느냐, 대통령 한사람이 중간에 희생해도 한국 정치가 바로 갈 수 있으면 임기 5년을 다 채운 것보다 더 큰 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임기 중단도 감수할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다.
측근의 비리, 추락된 지지율로 재신임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는 것은 온당한 대통령의 처신이라기보다는 도박사의 ‘올 인’에 가깝다. 현행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는 레퍼렌덤(referendum)이지 결코 최고통치자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플레비사이트(plebiscite)가 아니다.
헌법을 곡해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정치적 신임을 되묻겠다는 생각은 위헌적 발상에 가깝고 무모하기 짝이 없다.민주주의 정치에서 최고통치자의 신임은 평소의 국정운영과 정책, 그리고 정기적인 선거에서 평가받도록 되어 있다. 국정운영의 개선에 대한 진지한 노력, 그리고 다가올 총선까지 집권자로서의 기본 소임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측근 비리 의혹으로 인한 도덕성 훼손을 이유로 헌법도 무시한 채 불쑥 재신임 투표를 기정사실화한 상황에 대다수 국민은 아연실색한 상태다.
헌법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재신임 정국의 귀결은 결국 ‘인민투표제적 독재’이거나 대통령 추방이라는 헌정 위기의 만성화다. 우선 국민투표에 의해 대통령이 재신임된다면 대통령은 민주 정치의 기반인 의회 정치를 우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대통령은 인민의 신임을 근거로 의회의 견제를 귀찮게 여기게 될 것이며 이로써 정치는 인민투표제적 독재에 빠지고 한국 민주주의는 고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집권 초기부터 언론과 의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아온 ‘코드 정치’는 그야말로 독선의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 현대사의 핵심적 기반이 단번에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대통령이 불신임된다면 사실상 대통령은 임기 완료가 불가능해지고 이로써 한국의 헌정은 엄청난 시련에 직면할 것이다. 새로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할지라도 임기 중 재신임 투표 정국이 일상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게 된다. 자칫하면 한국 정치는 재신임 투표의 마약에 빠져 수시로 대통령을 추방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국력 결집은 요원해지고 정치적 불안정은 만성화될 것이다.
노대통령 취임 이후의 폐쇄적인 코드 정치와 미숙한 국정운영, 그리고 측근의 비리 의혹을 접하면서도 대통령의 진퇴를 물었던 세력은 많지 않다. 일각의 강경론자들 외에는 말이다. 국정의 개선과 교정을 위해 정상적인 민주정치의 틀 속에서 비판과 질타를 쏟아내었던 것이다.
결국 노대통령의 재신임 발표는 7개월 남짓한 기간의 비판과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개선 노력도 포기한 결과에 다름아닌, 그래서 실망스런 결과다.
주권의 최고 수임자인 대통령은 재신임 투표의 내재적 위험성을 간과한 채 보장되지 않는 미래의 환상에 내기를 건 것이다. 자신의 재신임 여부보다는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용단을 내렸다는 노대통령의 발표에 연민을 감출 수 없다. 재신임 투표 이후 한국 정치는 인민투표제적 독재가 아니면 대통령 추방 정치의 만성화가 일반적이 될 것이다. 걱정이 앞선다.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길은 재신임 투표를 거치지 않고도 대통령의 진지하고 창조적인 통치행위로 얼마든지 열 수 있었다. 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길이 막히고 어렵고도 위험스런 시도를 국민은 아무런 대책 없이 따라야 하는 것일까. 어느 헌법학자의 평가대로 대통령이 임기 중에 건강상의 이유로, 또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사임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즉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과 관계없이 임기 중에 사임하는 것을 우리 헌법은 막지 않는 것이다.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for N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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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대통령은 “대통령 한사람이 재신임을 받느냐 안받느냐가 모두에게 관심사이겠지만 제 관심사는 대통령 한사람의 재신임 여부보다 한국 정치가 제대로 가느냐 안가느냐, 대통령 한사람이 중간에 희생해도 한국 정치가 바로 갈 수 있으면 임기 5년을 다 채운 것보다 더 큰 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임기 중단도 감수할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다.
측근의 비리, 추락된 지지율로 재신임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는 것은 온당한 대통령의 처신이라기보다는 도박사의 ‘올 인’에 가깝다. 현행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은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는 레퍼렌덤(referendum)이지 결코 최고통치자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플레비사이트(plebiscite)가 아니다.
헌법을 곡해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정치적 신임을 되묻겠다는 생각은 위헌적 발상에 가깝고 무모하기 짝이 없다.민주주의 정치에서 최고통치자의 신임은 평소의 국정운영과 정책, 그리고 정기적인 선거에서 평가받도록 되어 있다. 국정운영의 개선에 대한 진지한 노력, 그리고 다가올 총선까지 집권자로서의 기본 소임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측근 비리 의혹으로 인한 도덕성 훼손을 이유로 헌법도 무시한 채 불쑥 재신임 투표를 기정사실화한 상황에 대다수 국민은 아연실색한 상태다.
헌법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재신임 정국의 귀결은 결국 ‘인민투표제적 독재’이거나 대통령 추방이라는 헌정 위기의 만성화다. 우선 국민투표에 의해 대통령이 재신임된다면 대통령은 민주 정치의 기반인 의회 정치를 우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대통령은 인민의 신임을 근거로 의회의 견제를 귀찮게 여기게 될 것이며 이로써 정치는 인민투표제적 독재에 빠지고 한국 민주주의는 고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집권 초기부터 언론과 의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아온 ‘코드 정치’는 그야말로 독선의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 현대사의 핵심적 기반이 단번에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대통령이 불신임된다면 사실상 대통령은 임기 완료가 불가능해지고 이로써 한국의 헌정은 엄청난 시련에 직면할 것이다. 새로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할지라도 임기 중 재신임 투표 정국이 일상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게 된다. 자칫하면 한국 정치는 재신임 투표의 마약에 빠져 수시로 대통령을 추방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국력 결집은 요원해지고 정치적 불안정은 만성화될 것이다.
노대통령 취임 이후의 폐쇄적인 코드 정치와 미숙한 국정운영, 그리고 측근의 비리 의혹을 접하면서도 대통령의 진퇴를 물었던 세력은 많지 않다. 일각의 강경론자들 외에는 말이다. 국정의 개선과 교정을 위해 정상적인 민주정치의 틀 속에서 비판과 질타를 쏟아내었던 것이다.
결국 노대통령의 재신임 발표는 7개월 남짓한 기간의 비판과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개선 노력도 포기한 결과에 다름아닌, 그래서 실망스런 결과다.
주권의 최고 수임자인 대통령은 재신임 투표의 내재적 위험성을 간과한 채 보장되지 않는 미래의 환상에 내기를 건 것이다. 자신의 재신임 여부보다는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용단을 내렸다는 노대통령의 발표에 연민을 감출 수 없다. 재신임 투표 이후 한국 정치는 인민투표제적 독재가 아니면 대통령 추방 정치의 만성화가 일반적이 될 것이다. 걱정이 앞선다.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길은 재신임 투표를 거치지 않고도 대통령의 진지하고 창조적인 통치행위로 얼마든지 열 수 있었다. 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길이 막히고 어렵고도 위험스런 시도를 국민은 아무런 대책 없이 따라야 하는 것일까. 어느 헌법학자의 평가대로 대통령이 임기 중에 건강상의 이유로, 또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사임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즉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과 관계없이 임기 중에 사임하는 것을 우리 헌법은 막지 않는 것이다.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for N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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