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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의 배신 용납 못한다”

“노대통령의 배신 용납 못한다”



[특집: 4당 대표 릴레이 인터뷰]

“지금 신당을 만들어 민주당을 뒤흔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일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실수라고 봅니다. 도덕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당선시켜준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장가 간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노대통령에 대한 민주당 내부의 정서를 이런 말로 표현했다. 사실상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치이고, 제1 야당인 한나라당에 눌리며 자기 정체성 찾기에도 힘든 위상으로 전락한 민주당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말로 들렸다.

대선자금 정국에서도 민주당의 위치는 어정쩡하기만 하다. 여권이 정조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맞서 싸울 명분이라도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를 놓친’ 민주당은 싸울 명분도 비전도 없는 ‘과거’에 대한 방어전을 치러야 한다. 특검 문제도 노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전면전에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가로 고심하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당은 어떻게 활로를 모색할 것인가. 과도기의 민주당을 맡은 박대표를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만나 장시간 동안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선 패자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자금 파문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어 노대통령도 대선자금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나서는 등 정치권의 움직임으로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민주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진짜 문제는 장부에 기재되지 않은 숨은 뇌물을 밝히는 것입니다. 검찰 수사가 한정(야당에만 집중된다는 의미)되고 합법적 자금(장부에 기재된 자금)에만 국한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기업 비자금 수사를 반대한다고 말한 것은 정치자금중 뇌물성 자금을 제외하는 결과를 낳고, 정당장부를 먼저 조사할 경우는 숨어 있는 돈과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돈을 찾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범위와 방법까지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한 월권행위입니다.

노대통령은 일단 대선자금에 대한 특검에 반대하면서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은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3개 특검법안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노대통령이 측근비리에 대해선 특검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진전된 자세를 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선자금도 검찰 수사가 편파적으로 진행되거나 왜곡될 경우 특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검찰이 야당 대선자금은 철저히 수사하면서 노대통령 대선자금 수사는 생색용에 그칠 것이라는 전제하에 당장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를 일단 지켜보자는 것입니다. 공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하지 않는 징후가 드러나면 그때 특검을 도입해도 늦지 않으며, 국정조사까지 해서라도 혼을 내야죠.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선대위 총무본부장과 사무총장을 지낸 열린우리당의 이상수 의원은 당시 5대그룹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폭로했는데, 결국 대선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요.

이의원이 5대그룹으로부터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범죄혐의가 있다면 수사를 해야죠. 포인트는 ‘어떤 기업이 비자금을 만들어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구체적 혐의가 없는데 기업마다 전부 장부를 압수해서 혹시 비자금 만들어 불법자금을 줬는가 조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사를 받은 기업이 불법적으로 대선 자금을 주지 않았으면 수사기간 중 의외의 피해를 보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과 경제가 함께 위축됩니다. 범죄혐의가 포착된 기업은 철저하게 수사하되 무고한 기업까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열린우리당에서는 2000년 16대 총선자금 회계 처리과정에서 민주당의 횡령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데요.

총선 당시 사무총장은 김옥두 의원이었지만 이상수 의원 자신도 뒤를 이어 민주당의 사무총장으로 1년 가량 재임한 분입니다. 그때 그런 의혹이 있었으면 자신이 뒤집어쓰기 싫어서도 공론화했을 텐데 지금에 와서 거론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군요. 그때 이의원이 가만히 있었으니까 횡령은 아닌 것 같네요. 그리고 총선자금은 공소시효도 지났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여당이고 보니 민주당은 최근 들어 정국 현안을 놓고 한나라당과 자주 공조를 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나라당과 총선 이후 과반수 연합까지 가능한 건가요.

한나라당과는 같은 야당 입장에서 사안별 공동대처는 있을 수 있으나 정당간 공조, 전면적인 공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첫째 이유로는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주로 싸워야 할 대상이 한나라당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주적(主敵)입니다. 둘째,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공조하기에는 뿌리와 노선이 다릅니다. 또 공조의 본질이 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공조는 상대방 힘이 워낙 강해 자기가 혼자 당해내지 못할 때 다른 세력과 힘을 합쳐 대항하는 겁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우리가 싸워야할 가장 버거운 상대인데 어떻게 공조합니까.

한나라당과 노선이 다르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 떨어져 나간 민주당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민주당이 분열되기 전에 당시 신주류는 민주당을 해체하고 외부의 개혁신당연대로 들어가자고 주장했었죠. 우리는 당을 해체할 수 없다며 반대했구요. 왜냐면 민주당은 중도개혁을 이념으로 하는 국민정당이기 때문입니다. 국민 전체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이지 개혁신당처럼 진보정당이 아닙니다. 민주당에서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공존할 수 있지만 개혁신당에는 공식적으로 보수세력이 있을 수 없는 정당입니다. 또 민주당은 50년된 정당입니다.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투쟁, 김대중 대통령 집권 후에는 햇볕정책 추진, 서민생활보장제도 도입, IT 강국 건설 등 역대 집권당이 보여주지 못한 자랑스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합니다. 선거에 임박할수록 열린우리당과 선거공조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높아질 텐데요.

노대통령이 신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그 순간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한나라당 의원 5명이 탈당하고 개혁신당연대가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여권의 총선 후보 단일화는 불가능한 상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한 의원 5명이나 개혁신당연대는 이념적으로나 명분상으로나 민주당으로 들어오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개혁신당연대의 김원웅·유시민 의원은 민주당을 청산해야 할 정당으로 못박았습니다. 당시 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단 개혁신당은 너희끼리 출범하고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면 내년 총선에서 선거공조를 모색하자”고 했습니다. 지금도 개혁신당만 뜨고 우리당이 분당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주류가 민주당을 기어이 깨고 나갔습니다. 감정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또 우리하고 노선을 조금 달리하기에 과연 공조가 될지 의문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선거공조를 않겠다고 단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능성은 옛날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재신임 정국 이후 민주당의 입지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은 들지 않나요.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10월 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은 21.6%, 민주당은 20%, 열린우리당은 14.6%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민주당은 분당 전에도 20%대의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재정이 거의 파산상태에 있고, 조직의 절반이 구멍이 난 상태에서 이 정도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오래된 정당일수록 국민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입니다. 호남만으로 이런 지지를 받을 수는 없지요.

재신임 정국에서 노대통령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상승하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노대통령이 불신임되면 다음 대통령을 한나라당에서 가져갈까봐 재신임비율이 높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최도술씨 비리에 관련됐다는 가정하에서 재신임 여부에 대한 조사를 해보면 불신임하겠다는 국민들이 65%에 이릅니다. 지난 10월 26일 청와대 회동때 노대통령에게 이 말을 전했는데 “정말 그렇습니까”라고 되묻지도 않고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민주당은 재신임투표 등을 통해 대통령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까.

재신임 국민투표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명백한 위헌이고, 또 하나는 국정불안·정치불안을 가속화시켜 결국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죠. 또 독재적 수법으로 남용될 우려가 너무 많은 국민투표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최도술씨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 구체적 탄핵 사유가 밝혀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경우 어떻게 됩니까.

비리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아직 혐의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탄핵과 하야를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할 것입니다. 뭔가가 드러난다면 ‘정도’를 봐서 진짜 하야감인지, 탄핵감인지 그때 검토해봐야 할 일이지 미리부터 말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죠.

전당대회에 앞서 사고지구당도 정비해야 하고 새로운 인물 영입작업도 전개해야 하는데 마땅한 복안이 있습니까.

아주 바람직한 분이 있다면 그분을 조직책으로 옹립하겠습니다. 상향식 공천의 예외를 인정하자는 거죠. 만약 그런 분들이 나타나지 않고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각축을 벌인다면 지구당위원장 직무대행을 둬서 우선적으로 대의원들을 보충한 뒤 전당대회를 치를 것입니다. 전당대회 이후에도 영입작업은 계속됩니다. 탈당파들이 민주당에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DJ같은 절대적 권위를 갖춘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는 현직 의원을 배제한 물갈이가 대단히 어려운 법인데 많은 국회의원들이 탈당해버렸으니까 거기에 새로운 인물만 집어넣으면 물갈이는 됩니다.

민주당은 개헌을 하지 않고도 책임총리제를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요. 어떻게 가능합니까.

정치자금의 근원적인 해결책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이 제도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외치, 즉 통일·외교·국방·안보 4개 분야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내각이 권한을 행사하는 제도입니다. 내치에 관한 한 내각책임제로 가자는 겁니다. 앞으로는 한국의 어느 정당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 어려울 겁니다. 특히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될 가능성은 제로죠. 지난 총선에서도 과반수를 가진 정당은 없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가 유리하니까 한나라당쪽으로 모여들어 과반수가 된 겁니다. 이 말을 대통령에게 해줬더니 그러냐며 즉각 비서실장을 통해 확인하더군요. 대통령은 과반수 정당을 못가지는데 국회는 국무총리 임명동의권, 국무위원 해임건의권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대통령과 국회가 의견을 달리하면 국정이 마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예요. 이를 해결하는 길은 국회의 과반수 연합이 내각을 차지하는 길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노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대통령에게도 얘기했는데 찬반 양론이 아주 치열합니다. 비전투병 파병 주장이 다소 우세합니다. 당론은 이라크 현지조사단 결과 보고를 보고 대통령이 파병동의안을 내놓을 무렵에 정하겠습니다.

노대통령이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소원해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것 아닌가요.

그쪽에서 어떤 생각으로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게 화해의 제스처라면 큰 효과는 못 볼 겁니다. 도서관 개관식 한번 갔다고 해서 민주당과 민주당을 지지한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가 소멸되는 것도 아니고, 정체불명의 신당이 하루 아침에 신뢰를 얻는 것도 아니죠.

노대통령과 13대 국회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지켜본 노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은 어떤 것 같습니까.

처음 봤을 때는 상당히 진보성향의 정치인이자 비교적 솔직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 신당을 만들어 민주당을 뒤흔든 것은 노대통령의 일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실수라고 봅니다. 도덕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당선시켜준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장가간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노대통령과 마주했을 때 할 말은 다 했습니까.

제가 여당 대표가 될 당시에는 노대통령이 당적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당 대표에서 갑자기 야당 대표가 돼 마주 앉으니 심정이 착잡하다고 하니까 노대통령은 “요새 여당, 야당이 뭐 따로 있습니까”라며 마치 자신이 중립적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배신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엄연히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을 만들어 놓고 헤어지니 착잡했을 것 같습니다.

착잡하지요. 그 배신은 앞으로 변할 수 없습니다. 무슨 ‘노사모’가 도와줘서 대통령이 됐지 민주당이 한 일이 뭐 있냐고 한 것은 웃기는 얘기입니다. 노사모도 물론 도움이 됐지요. 그렇지만 농어촌 시골 구석구석 노사모가 없는 데를 우리 당원들이 다녔습니다. 노대통령이 민주당 공천자가 아니고 민노당 후보였다면 노사모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을까요. 배신감은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이며 객관적인 사실로서 변할 수 없습니다.

[정리=박성현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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