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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세월 앞에 작아지는 ‘재계 총리’

[포커스]세월 앞에 작아지는 ‘재계 총리’

지난 9월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기업 총수들이 정부에 건의할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길승 전경련 회장, 이건희 삼성회장, 조석래 효성회장,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지난 10월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무려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간담회가 마무리되면서 박수소리가 흘러나왔다. 삼성·LG·현대차 등 전경련 실제 그룹 총수의 고사로 회장 선임에 골몰했던 전경련은 이날 회장단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강신호(77) 동아제약 회장을 회장대행으로 추대했다. 강회장은 “나같이 작은 회사 사람이 큰 기업 회장들을 부르면 잘 모이겠느냐”면서 완강히 고사했지만 강회장의 저항은 박수소리에 묻혔다. 대세에 묻혀 일단락되는 듯했던 전경련 회장 자리는 그러나 이튿날 강회장이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하고 두문불출하는 바람에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일단 전경련 측은 강회장과 계속 접촉하고 있어 조만간 강회장이 회장직을 수락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사실 전경련 회장 선임이 이렇게 어려운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26대 전경련 회장을 지냈던 김각중 회장의 선친인 김용완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연임하지 않으려고 두달간 두문불출했을 정도였다. 김각중 회장 역시 김우중 회장의 사퇴라는 돌발상황이 오자 처음에는 고사하다가 연장자로서 소임을 다했다. 최근 사퇴한 손길승 회장도 완강히 거부하다 재계 오너들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을 받고 수락했다. 재벌 그룹 회장들이 전경련 회장직을 극구 사양하는 것은 최근 몇년 새 전경련의 위상이 약화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재계에선 보고 있다. 사실 전경련은 1960∼70년대 공업화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펴는 정부와 재계를 잇는 창구 구실을 했다. 공단건설과 수출확대에 나름대로 공헌도 했다. 정권과의 ‘밀월시대’라고 할 만했다. 77년에서 87년까지 내리 11년간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전경련 관계자도 “당시에는 ‘재계의 총리’(전경련 회장)가 대통령과 독대해 주요 현안을 해결해 전경련의 입지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회고했다.

‘떡고물’보다 ‘떡값’ 더 든다. 정회장은 공업입국·수출입국을 내세운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사실상 경제파트너였다. 10년간 전경련 회장을 하면서 박대통령과 경제문제를 상의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혜택도 많이 입었다. 아무래도 정부 주도의 경제체제에서는 정부와의 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전경련 회장은 정치자금 제공 등 비용도 많이 들지만 비용 이상의 혜택이 돌아오는 자리였다. 하지만 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권과 재계의 관계는 점차 변해 간다. 정부 주도의 경제체제가 급격히 민간기업 위주로 바뀌면서 정부가 줄 ‘선물’이 줄어들었다. 전경련 회장 자리도 ‘떡고물’보다는 ‘떡값’이 더 많이 드는 곳으로 변했다.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전경련의 위상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여기에 재계 자체의 변화도 전경련의 영향력을 축소시켰다. 우선 창업주 세대들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2세들이 등장하면서 결속력이 떨어졌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도 “명분과 단합을 강조했던 1세들과 달리 2·3세들은 실리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무래도 어려운 시기 서로 도우면서 일해왔던 창업주들에 비해 2·3세들은 공유할 만한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기업별로 주력 사업이 분화되면서 공통적인 이슈가 적어진 것도 연합체인 전경련의 역할이 줄어든 계기가 됐다. 과거 수출 일변도·중화학공업 일변도였던 시절에는 재계가 한목소리로 정부에 요구할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각 기업별로 정부에 요구하는 사항이 다르다. 이런 사회 변화에 따라 전경련의 위상도 점차 변했다. 전경련의 한 고위 간부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경련 회장은 대통령이나 담당 장관들과 직접 대화해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에는 전경련의 위원회 회의에 국회의원을 부른 적도 없다. 장관 아니면 청와대 수석비서관 정도 돼야 위원회에 참석하곤 했다”며 달라진 위상을 설명했다. 최근에 전경련 상임위가 열리면 국회의원은 물론 시민단체와 농민들도 참석하곤 한다. 전경련 입장에서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인 셈이다.

마무리 안 좋았던 회장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누구 하나 전경련 회장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전경련 회장들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정주영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물러난 뒤였지만 92년 대선출마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최종현 회장은 정부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 탓에 전경련과 SK그룹이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95년 전경련 회장에 재추대되면서 “업종 전문화 정책은 시대에 뒤진 정책이며, 소유분산 등은 외국에는 없는 정책으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막 세계화 정책을 발표한 정부에 찬물을 끼얹었다. 발언 파문이 확산되자 최회장은 당시 홍재형 경제부총리를 방문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 뒤 공정거래위원회는 SK그룹에 내부거래조사 착수를 통보했다. 김우중 회장은 전경련 회장 자리를 활용해 재기를 노렸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어 “정치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당시 경제관료들은 김회장에 대해 상당히 반감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회장은 대우의 엄청난 부실 때문에 전경련에서 도중하차했고 지금은 외국을 떠돌고 있다. 최근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했던 SK그룹의 손길승 회장은 참여정부 출범에 맞춰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전경련 회장에 올랐지만, 끝내 SK 분식회계와 비자금 사건으로 중도하차하는 운명에 처했다. 손회장은 현재 비자금과 관련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전경련 회장을 지낸 인물들의 불행이 겹치면서, 전경련은 회장 자리가 갈수록 기피 대상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대그룹 회장들이 전경련 회장을 기피하면서 전경련의 위상이 많이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경련의 이승철 상무는 “전경련 회장의 중요성이 떨어졌다면 누가 회장이 되는지를 놓고 왜 이렇게 시끄럽겠느냐”면서 “예전처럼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 등과 독대하던 시대는 갔지만 사회적으로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필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면서 “전경련 회장이 한국 경제에서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이 때문”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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