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은 공생정치 배워라”
“386은 공생정치 배워라”
[특집: 4당 대표 릴레이 인터뷰④]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은 함께 가는 정치 배워라.” 현 정치권의 대표급 원로 정치인인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노대통령의 친위세력으로 등장해 있는 386 핵심 참모들에 대해 이같이 조언했다. 그 자신도 38세에 공화당 당의장을 맡으며 세대교체를 추진해나갔던 ‘그 시절 386’ 선배의 고언이었다. 그는 노대통령의 스타일을 “옆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편”이라고 말하면서도 인사정책의 실패 원인을 노대통령 주변이 이들로 편중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했다.
김총재는 인사정책의 기준으로 “좀 더
경험있고 묵직하고 허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경험과 경륜을 갖춰 국민이 ‘저 사람이 하는 일같으면’이라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주변에 갖다 놓고서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총재는 이와 함께 노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엉뚱한 잔재주를 부리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점에서 김대중씨 같은 그런 성격은 없다”고 말해 연정 파트너였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
내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20석)를 구성하는 것이 꿈일 만큼 당세가 위축된 자민련의 총선 전략과 각종 현안에 대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당 총재실에서 만난 김총재는 77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힘있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인데,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어떤 기준과 원칙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무엇을 숨기려 하거나 호도하려 했다가는 우리 정치는 끝입니다. 부패정치를 정치인 스스로의 손으로 종식시킬 수 없다면 지금처럼 검찰이 적극 나서 불법을 과감히 파헤치고 처벌해야 합니다. 수사선상에 오른 누구라도 수사대상이 돼야 합니다. 여야의 총재든, 대표든, 대통령이든, 기업이든 혐의가 확실하면 예외를 둬선 안됩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한때 검찰소환에 불응했는데 제정신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검법까지 내놓은 마당에 자신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검찰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기업의 대선자금은 그 성격상 기업이 자진해서 특정 정당에 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의 경우 SK 회장이 고백했던 것처럼 어떤 강압에 의해 대선자금을 안 줄 수 없는 상황이 분명히 조성됐을 것입니다.
기업들이 정치권의 요구에 너무 약한 거 아닙니까.
사실 기업인들에게는 죄가 없어요. (그들은 권력에) 약합니다. 권력을 가진 친구들이 유형무형의 압력을 가하고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만 협박하면 돈을 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거예요. 선거할 때는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아서 쓰고서는 국민들이 뭐라고 비난하면 기업인들에게 오라니 가라니 좀 많이 괴롭혔습니까. 그래선 안돼요. 돈을 준 기업에 대해서는 철저히 진상을 밝히되 그 처벌 수위는 정상이 참작됐으면 합니다. 또 대선자금 수사는 지난 16대 대선시의 불법자금 수사로 한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검찰이 과거와는 다르게 상당한 각오로 수사에 임하고 있으며, 또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현 시점에서의 특검을 반대하고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미흡하면 그때 가서 특검을 해도 늦지 않잖아요. 그런데 얼마 전 국회에서 노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법이 통과됐습니다. 어찌 됐건 국회가 다수결 원칙에 따라 특검제를 도입키로 한 이상 국회 의사는 분명히 존중돼야 합니다. 노대통령이 특검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년 총선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요.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은 가능한가요.
지난 16대 총선에서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이,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싹쓸이를 했습니다. 양당은 여력을 몰아 중부지역을 협공, 자민련이 절단났구요. 국민들이 싹쓸이를 허용해서 만들어진 국회가 지금 일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내년 총선은 지역민의를 충실히 대변해줄 수 있는 인물 중심의 선거가 돼야 합니다. 희망컨대 원내 50석에 달했던 지난 15대 총선만큼은 못가도 국회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은 당선시킬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원내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정당이 될 거예요. 대부분의 선거구에 후보를 공천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민련도 변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인물을 잘 선정해 후보가 경쟁력을 갖도록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당에 사리가 분명하고 당당한 40, 50대의 새로운 인물들이 입당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말하는데 인위적인 세대교체는 오히려 실패를 불러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자질과 능력을 도외시하고 젊다는 기준 하나로 하는 세대교체는 위험합니다. 지금 청와대의 소위 386들의 무경험·무경륜이 초래하는 국정운영 미숙의 결과들이 어떤 것인지 보고 있지 않습니까.
38세에 공화당 당의장을 지냈는데 지금으로 보면 현 정권에서 국정운영의 중요 축으로 등장해 있는 386 인사들의 선배격이 아닙니까.
우리는 공산군과 싸워서 전쟁을 한 사람입니다. 외국에 손 벌리고 얻어먹는 나라가 아닌, 제대로 된 나라를 건설해보자는 뜻에서 출발한 거예요. 그때 우리도 세대교체를 시도했으나 1년이 못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정치규제를 풀고 그들과 함께 정치를 했지요. 지금 386들도 경험하면 알 것입니다.
그들과는 국가관이 다르다는 말인가요.
우리는 전쟁을 하면서 깨달았죠. 다시 이런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라가 북한보다 강해야겠다고요. 당시 미국 등 선진국은 우리더러 필리핀·파키스탄·태국·인도 등에서 시행하는 민주주의를 배우라고 했어요. 반면 우리는 경제가 좋아지면 민주주의는 하기 싫어도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보십시오. 앞에서 언급한 국가들 중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가 없잖아요.
총재께서는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에 입후보해 10선 고지에 오르겠다는 입장을 피력하셨는데 10선을 해야만 하는 당위론이 따로 있습니까.
두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세가 많이 약화된 자민련을 다시 한번 원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정당으로 재건해 후진들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내년에 총선이 끝나면 젊은 사람들 중에서 새로이 총재를 선출하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저는 뒤로 물러앉아 내각책임제를 위해 갖은 노력과 자극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이에요. 여기 보시오[김총재는 총재실 벽면에 걸려 있는 액자의 ‘일상사무사(日常思無邪)-위좌우명(爲座右銘)’을 가리키며]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 않고, 욕심도 부리지 않아요. 내 나이 77세이지만 아직 젊은 사람에게 지지 않습니다(이인제 의원이 김총재의 2선 후퇴를 요구한 사실을 언급하자 김총재는 “그 사람 얘기는 왜 물어요. 그 사람 얘기를 하면 좋지 않은 말이 나오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 안 물어 주는 게 좋겠어”라고 언짢은 기색으로 말을 끊었다).
내년 총선에서 여타 정당과의 연합공천 또는 총선 공조를 추진할 가능성은.
자민련이 걸어왔던 독자적인 노선으로 총선을 치를 작정입니다. 다만 내각책임제 개헌에 대한 생각에 의기투합하고, 정치개혁 목표를 향해 순수하게 협력해 나갈 수 있다면 함께 갈 것입니다. 내각책임제 구현에 관한 한 공산주의자만 아니라면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에서 총선 전 개헌론이 제기되는 등 권력분산을 겨냥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총재님의 지론인 내각제 개헌도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요.
대통령 중심제는 이제 안됩니다. 불법 대선자금 문제도 바로 대통령 중심제의 산물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 세사람이 저에게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속임수였습니다. 이제는 권력을 분산하는 분권제로 가야 합니다. 분권형의 가장 대표적 체제인 내각책임제가 돼야 하는 거예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보다는 독일식 순수내각제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봅니다. 또 내각책임제 하에서의 대통령은 간선으로 선출하는 게 좋아요. 대통령의 권위는 선출 방식이 아니라 헌법이 부여하는 것이니까요. 정치권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니, 책임총리제니 하는 방안들이 나오는 모양인데 내각책임제로 하면 분권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어요. 근본적으로 대통령 중심제가 대단한 결함을 안고 있음을 확인한 이상 의회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내각책임제를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언급한 총선 전 개헌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나라당은 그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남의 당 얘기를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하는 유사(類似) 스테이츠맨십(statesmanship)을 가진 사람이 한나라당에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지금 저렇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워졌는데 과감하게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려 자기 이익을 취할 생각만 해요. 그러니까 내홍이 그치지 않잖아요. 국가의 내일을 생각해볼 때 다수당이 저런 모습과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총선 전 개헌이 거론되고 있다는 말).
선거구제 변경 논의도 활발합니다. 논쟁의 핵심에 있는 중·대선거구제를 어떻게 보시나요.
중·대선거구제를 반드시 시행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고집하는 소선거구제는 당리당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정치개혁이 화두가 된 지금 중·대선거구제 도입이야말로 첫째 가는 개혁이 될 겁니다.
총재께서는 최다선 국회의원이자 현 정치권의 대표적 정치원로이기도 합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금까지 여러 대통령을 봐왔습니다. 꾀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고, 상식적으로 타협·협력해야 할 때 유아독존하는 대통령도 있었지요. 노대통령은 그 전에도 같이 국회의원을 한 적은 있지만 전혀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잘 몰랐습니다. 지난 9개월을 지켜보면서 이 사람의 정체성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은 몇번 가진 적이 있었어요. 근데 이번에 대통령이 된 뒤 몇번 접촉을 해보고, 그동안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뒤에서 엉뚱한 잔재주를 부리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점은 내가 확실히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씨 같은 그런 성격은 없지요. 노대통령은 비교적 솔직하고 순진한 데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노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겸비했다고 보나요.
그건 아직 얼마 안됐으니까….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 자질을 갖고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 더 지내봐야 우열이 갈라질 겁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보면 비교적 옆에 있는 사람들 얘기를 잘 듣는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가 문제이지요.
그게 문제가 돼서 인사정책이 실패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좀 더 경험있고 묵직하고 허튼 생각 하지 않는 사람들, 경험과 경륜을 갖춰 국민이 “저 사람이 하는 일 같으면”이라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주변에 갖다 놓고서 국정운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노대통령과 만났을 때 그런 제안을 했습니까.
했지요. 그런 얘기를 하니까 “아주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라고 하데요.
노대통령에게 전한 고언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국정운영의 3대 기조로 삼아달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먼저, 어떤 경우에도 미국과 사이가 벌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공산군의 침략을 받을 때 4만명이 전사하고 15만명이 부상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미국은 와서 도와줘야 하는 나라이고, 미국이 어려워서 힘을 보태달라는데 우리가 가면 안 되는 나라입니까. 그래서 이라크 파병도 실기하면 안되며, 올해 안으로 만반의 준비를 다해 내년 초께 파병하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두번째로는 기업인들을 정치적 이유에서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외국의 잉여농산물로 겨우 보릿고개를 넘기던 우리가 연 2천억달러를 수출하는 국가로 성장한 데는 국민 모두가 노력했지만 주도적 역할은 기업인이 했습니다. 기업인들은 자유롭게 활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인들이 허튼짓을 할 때는 법에 따라 제재하면 됩니다. 다만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습니다. 세번째는 남북관계에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평화 통일을 이룰 때까지는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기조로 삼으라고 했죠. 서두르고 환상적으로 덤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국내 여론은 전투병 파병과 비전투병 파병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총재께서도 전투병 파병을 원했는데 그 배경은.
거기는 전쟁터예요.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전투병력입니다. 빈발하는 테러를 제압하고 이라크에 질서를 바로잡으려면 전투병이 가야합니다. 전후 복구사업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비전투병이 왜 갑니까. 제 생각으로는 자위력을 고려해 여단급 규모 이상의 전투병 파병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정리=박성현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기준금리 인하에도 한동안 ‘겨울바람’ 전망
2연간 1000억? 영풍 환경개선 투자비 논란 커져
3 야당, '예산 감액안' 예결위 예산소위서 강행 처리
4‘시총 2800억’ 현대차증권, 2000억원 유증…주가 폭락에 뿔난 주주들
5삼성카드, 대표이사에 김이태 삼성벤처투자 사장 추천
6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 서포터즈 '업투' 3기 수료식 개최
7빗썸, 원화계좌 개설 및 연동 서비스 전면 개선 기념 이벤트…최대 4만원 혜택
8페이히어, 브롱스와 ‘프랜차이즈 지점 관리’ 업무협약
9'97조원 잭팟' 터진 국민연금, 국내 아닌 '이곳'에서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