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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대책에 안정 지속 여부 달려

추가대책에 안정 지속 여부 달려

10 ·29 주택시장안정종합대책이 발표된 이후 집 값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세제 중심의 주택안정대책 내용이 복잡해 시장에 나타나는 파급효과는 다소 늦을 것인 만큼 하락세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폭락세를 보이는 데다 요지부동이던 강남권 일반 아파트도 약세를 띠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대책의 구체화 작업에 나섰고 단계적으로 추가 대책을 검토 중이어서 하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집 값 끌어내리겠다”=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부동산은 세 차례에 걸쳐 급등을 겪었다. 70년대 말에는 주택공급 부족과 중동 특수로 집 값이 연평균 30%씩 뛰었다. 80년대 말에도 주택공급량의 부족에다 국제수지 흑자로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연평균 16%씩 집 값이 올랐다.
이 두 번의 시기는 모두 주택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80년대 말 집 값 급등을 겪으면서 분당 등 5개 신도시가 개발됐다. 2001년 이후 현재의 상승세는 국지적인 공급 부족이 배경이다. 지난해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지만 서울과 수도권 등 일부 지역은 공급이 부족한 편이다. 이런 가운데 저금리로 넘쳐나는 자금이 2001년 수도권 고교평준화 조치 등으로 더욱 인기를 끌게 된 강남권에 쏠렸다.

올 들어 9월까지 서울 아파트 값은 평균 9.2% 올랐고, 그 중 강남은 13.3%나 급등했다. 대책이 발표되기 전인 9월 한 달 만에 서울 전체 2.5%, 강남 3.6% 올랐다.
서울의 평당 평균가격이 1,000만원이 넘었고 강남권에선 평당 4,000만원(재건축 단지)이 넘는 아파트가 나왔다. 이처럼 고삐 풀린 집 값이 서민 경제와 국가 경제의 부담이 된다는 판단에서 정부 대책이 나왔다. 특히 올 들어 주로 강남권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다른 지역과 가격 차이가 심화한 탓에 지역간 ·계층간 위화감의 골이 깊어졌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정부는 대책의 배경을 “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 집 값 급등으로 주거비 부담이 늘고 주택에 대한 불안감과 위화감이 깊어지는 것은 국민통합에 장애요인이 되고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고 설명했다.
주택시장에 흘러들어 자금흐름과 경제구조를 왜곡시키는 400조원 가량의 부동자금도 문제가 된다. 또 일부에서 지적하는 주택가격의 거품이 꺼지면서 야기되는 금융기관 부실과 가계파산 ·소비침체 등 경제혼란의 우려가 크다. 부동산가격 거품이 빠지면서 90년대 이후 장기불황의 수렁에 빠졌던 일본이 반면교사(反面敎師)다.

국토연구원은 지난달 ‘주택시장 진단과 전망’이란 자료에서 강남권 주택가격의 40% 이상이 거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집 값 거품 붕괴 우려마저 높아져 급등세를 잡는 데 그치지 않고 집 값을 끌어내리겠다는 정책 목표를 밝혔다. 다만 일시적인 급락은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에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여나가려는 것이다.

10 ·29 대책은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는 다주택 소유자를 정조준하고 있다. 보유세를 강화해 집을 소유하는 데 따른 부담을 늘리고 팔 경우 양도차익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려 한다. 정부는 실수요자가 아니면 집을 소유하기가 부담스럽게 실거래가로 취득 ·등록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거래신고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3주택 이상에서 2주택 이상으로 다주택자의 범위도 확대했다. 2주택 보유자에게도 양도세 탄력세율을 적용한다는 게 그 내용이다.

그러나 양도세 증가는 주인들의 매도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해 시장 공급을 막을 수 있고 이에 따라 가격 하락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보유세도 늘려 매물을 내놓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세금이 무거워지기 전에 빨리 팔라는 경고인 셈이다.
또 실거래가 취 ·등록세 부과나 주택거래신고제, 주택담보대출 비율 축소 등은 투자수요를 차단하려는 것이다.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주택 투자 수익률이 은행 정기예금 금리 이상 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약발은 먹혀=대책의 효과가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격 상승 기대감으로 투자자가 몰렸던 재건축 단지들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았다. 이미 지난 9월 초 재건축 중 ·소평형 의무비율 확대 등으로 재건축 추진단지들이 일격을 받아 재건축 투자성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즉효를 본 것이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매물이 쏟아지며 폭락장세다. 대책 발표 전 7억원 이상 호가하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이 6억원 이하로 떨어졌다. 5억원이 넘던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13평형이 4억5,000만원으로 내렸고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2단지 13평형도 지난달 최고 5억원 이상에서 4억원까지 밀렸다.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영 1차 13평형은 3억원이 무너졌다.

강남구 대치동 K공인 관계자는 “세금 증가에 부담을 가진 주인들이 매물로 내놓고 있지만 매수세가 전혀 없어 호가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며 “바닥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 아파트 값도 급락세는 아니지만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투자용으로 구입했던 집이 매물로 나오는 데 반해 매수세는 없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들도 집 값이 더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대전 지역도 행정수도 이전 기대감으로 올 들어 오르기만 했던 아파트 값이 내림세로 돌아섰다.

정부 대책 발표 직후 관망세를 보이던 강남권 일반 아파트도 몇천 만원씩 떨어진 매물이 나오고 있다. 이런 매물은 강남 지역 다주택자의 소유인 것이 많고 다른 지역에서 투자한 경우도 적지 않다. 전세를 끼고 사두었으나 매매가의 절반 정도인 전세금을 줄 여력은 못 돼 시세보다 몇천 만원 낮더라도 그 동안 오른 몇억 원의 차익이라도 챙기려는 것이다. 여러 명이 펀드를 조성해 공동구입한 집들도 매물로 나오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고철 원장은 “집 값이 크게 오른 지난해와 올해 강남권에서 거래된 아파트 가운데 전세를 끼고 구입한 가구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상당히 높은 40% 이상으로 추산된다”며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투자용이어서 매물이 더 늘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대책이 관건=집 값 하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정부 대책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에 긴가민가하던 다주택자들도 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고 하락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단계 대책으로 검토 중인 주택거래신고제와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제 등은 수요를 더욱 줄이고 재건축 단지들의 하락세를 확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하락세에도 강남권 일반 아파트는 급락세까지는 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강남구 대치동 성현공인 박경원 부장은 “강남의 교육여건 등을 선호하는 대기 매수자가 매물당 2, 3명 된다”며 “더 떨어지면 사려고 해도 값이 한꺼번에 뚝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대기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10 ·29 대책에서 빠졌던 교육대책이 어떻게 되느냐가 앞으로 강남 집 값의 향배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남 수요의 상당 부분이 뛰어난 사교육 여건 때문이다.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이 집 값을 잡기 위해 바뀌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도 적지 않은 만큼 정부도 교육대책을 세우고 있다. 정부 대책이 구체화하려면 관련 법개정 등 앞으로 절차가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 약화되거나 후퇴한다면 집 값이 다시 반등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폭락한 재건축 단지 일부에서 매수세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 박재룡 연구원은 “이번 정부 대책이 상당히 고강도이기 때문에 제대로 시행된다면 집 값 안정에 장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며 “결국 정부의 의지와 실행 여부가 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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