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과 철학
대통령의 말과 철학
대통령의 말은 항상 무게있게 다루어진다. 국가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아무리 사양하더라도 최고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는 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주목 대상이 된다.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하고 문제가 되기도 한다.
연일 터져 나오는 굵직굵직한 정치권의 비리 사건에 묻혀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못하고 슬쩍 지나친 노무현 대통령의 말중에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최근의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바로 1월 29일 대전에서 열린 ‘지방화와 균형발전 시대 선포식’에 참석한 뒤 오찬 자리에서 한 ‘지배세력 변화’에 관한 발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다. “역사책·소설책을 보면 수도 이전을, 그때는 행정 기능이 전부이니, 이전하느냐 마느냐가 그 사회의 지배권력의 향배에 관한 문제였다. 왜 이전하느냐,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터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라는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만큼 큰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 큰 변화를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다.”
이 말을 바꿔 요약하면 ‘지난 대선에서 신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한 노무현 대통령을 국민이 선택한 것은 바로 이 나라 지배세력의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우선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이 나라 지배세력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이다. 지난 대선 때 노후보가 내세운 공약 중에는 눈을 씻고 봐도 ‘지배세력 변화’라는 말을 찾을 수 없다. 개혁을 지배세력 변화로 말바꿈한다면 매우 위험한 논리적 비약이고 발상이다.
그리고 왕조시대도 아닌 민주시대에 “구세력 뿌리를 떠나서 천도” 운운한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이같은 표현의 배경에는 현재의 수도 서울은 구세력의 뿌리이고 (어디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새 수도가 건설되는 지역은 새 세력이 뿌리를 내리는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새 수도 건설은 단순한 행정수도 이전이 아니라 새 세력이 뿌리를 내려 권력을 계속 잡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구상인가.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국민으로부터 5년간 권력을 위임받아 국가를 운영하라는 것이지 왕조를 세우라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말바꿈을 한 것도 지적돼야 한다. 대통령 선거공약에는 분명 행정수도 이전이었다. 2004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천도가 아니고 신행정수도 건설이다. 수도권 기능의 작은 부분이 이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도하겠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천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보름만에 천도와 지배세력 변화를 함께 얼버무려 속내를 드러냈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지방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의 예를 상징적으로 거론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어진 노대통령의 다음 발언은 그같은 해명을 무색케 한다. “민주화ㆍ남북 평화 등은 전직 대통령이 다 해버려 그 정도론 역사책에 빛이 안 날 것 같다. 지방화만큼은 내가 간판을 붙이겠다”고 한 발언 내용으로 보아 수도 이전(천도)은 노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노대통령 발언 중 지나치기 어려운 말은 1월 14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나왔다. 지지세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혁을 지지해서 저를 지지한 사람이 있고, 개혁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불안해서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지지를 개혁과 연결시켰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은 개혁파고 지지하지 않은 사람은 반개혁파라는 이분법적 편가르기를 은근히 내비친 것이다. 이같은 사고틀은 신행정수도와 관련해 지배세력 변화 발언에서 ‘구세력·새 세력’을 언급한 것과 같은 이분법적 발상이다. 이같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냉전시대에 모든 사물을 내편, 네편으로 갈랐던 낡은 방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부터 청와대에서 여권 인사들이나 지지자들을 불러 식사회동을 하면서 국정을 논의하는, 이른바 ‘식사정치’ 자리를 자주 마련하고 있다. 이 자리는 그야말로 비공식적인 자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모든 것을 확 바꾸어 버리겠다”, 심지어 “몽땅 쓸어내겠다”는 과격한 발언을 심심치 않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쓸어내겠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정말 전부 아니면 전무인 ‘올인 정치’를 계속 할 작정인지 묻고 싶다. 노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을 통합시키고 참여시키는 포용정치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일 터져 나오는 굵직굵직한 정치권의 비리 사건에 묻혀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못하고 슬쩍 지나친 노무현 대통령의 말중에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최근의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바로 1월 29일 대전에서 열린 ‘지방화와 균형발전 시대 선포식’에 참석한 뒤 오찬 자리에서 한 ‘지배세력 변화’에 관한 발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다. “역사책·소설책을 보면 수도 이전을, 그때는 행정 기능이 전부이니, 이전하느냐 마느냐가 그 사회의 지배권력의 향배에 관한 문제였다. 왜 이전하느냐,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터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라는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만큼 큰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 큰 변화를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다.”
이 말을 바꿔 요약하면 ‘지난 대선에서 신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한 노무현 대통령을 국민이 선택한 것은 바로 이 나라 지배세력의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우선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이 나라 지배세력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이다. 지난 대선 때 노후보가 내세운 공약 중에는 눈을 씻고 봐도 ‘지배세력 변화’라는 말을 찾을 수 없다. 개혁을 지배세력 변화로 말바꿈한다면 매우 위험한 논리적 비약이고 발상이다.
그리고 왕조시대도 아닌 민주시대에 “구세력 뿌리를 떠나서 천도” 운운한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이같은 표현의 배경에는 현재의 수도 서울은 구세력의 뿌리이고 (어디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새 수도가 건설되는 지역은 새 세력이 뿌리를 내리는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새 수도 건설은 단순한 행정수도 이전이 아니라 새 세력이 뿌리를 내려 권력을 계속 잡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구상인가.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국민으로부터 5년간 권력을 위임받아 국가를 운영하라는 것이지 왕조를 세우라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말바꿈을 한 것도 지적돼야 한다. 대통령 선거공약에는 분명 행정수도 이전이었다. 2004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천도가 아니고 신행정수도 건설이다. 수도권 기능의 작은 부분이 이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도하겠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천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보름만에 천도와 지배세력 변화를 함께 얼버무려 속내를 드러냈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지방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의 예를 상징적으로 거론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어진 노대통령의 다음 발언은 그같은 해명을 무색케 한다. “민주화ㆍ남북 평화 등은 전직 대통령이 다 해버려 그 정도론 역사책에 빛이 안 날 것 같다. 지방화만큼은 내가 간판을 붙이겠다”고 한 발언 내용으로 보아 수도 이전(천도)은 노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노대통령 발언 중 지나치기 어려운 말은 1월 14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나왔다. 지지세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혁을 지지해서 저를 지지한 사람이 있고, 개혁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불안해서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지지를 개혁과 연결시켰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은 개혁파고 지지하지 않은 사람은 반개혁파라는 이분법적 편가르기를 은근히 내비친 것이다. 이같은 사고틀은 신행정수도와 관련해 지배세력 변화 발언에서 ‘구세력·새 세력’을 언급한 것과 같은 이분법적 발상이다. 이같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냉전시대에 모든 사물을 내편, 네편으로 갈랐던 낡은 방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부터 청와대에서 여권 인사들이나 지지자들을 불러 식사회동을 하면서 국정을 논의하는, 이른바 ‘식사정치’ 자리를 자주 마련하고 있다. 이 자리는 그야말로 비공식적인 자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모든 것을 확 바꾸어 버리겠다”, 심지어 “몽땅 쓸어내겠다”는 과격한 발언을 심심치 않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쓸어내겠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정말 전부 아니면 전무인 ‘올인 정치’를 계속 할 작정인지 묻고 싶다. 노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을 통합시키고 참여시키는 포용정치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오세훈 서울시장, 대선 불출마…“비정상의 정상화 위해 백의종군”
2위믹스 생태계 구축으로 국내 블록체인 시장 선도한 위메이드
3 오세훈 서울시장, 대선 불출마 선언
4‘산불사태’ 국민성금 1328억원 모여
5커피값 올려야 생존하는 저가커피의 딜레마
6농심-삼양의 '60년 라면전쟁'...K-푸드, '세계의 별'로 만들다
7주유소 기름값 9주 연속 하락…미국 상호관세 발표 영향
8비트코인 10만 달러 '재탈환' 시동?...연준 '유동성 언급'에 8만 3천 달러 반등
9 트럼프 “일부 예외 있을 수 있지만, 상호관세 10%가 하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