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민노총 “우리도 바뀌어야 산다”

민노총 “우리도 바뀌어야 산다”

“노조가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며, 이를 환영한다.” 전경련의 이승철 상무는 2월 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새 지도부의 출범에 즈음해 이런 말을 했다. 재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경련 간부가 전투적 노동운동을 대변해온 민노총에 대해 호감을 표한 것이다. 강경 일변도의 노선에서 탈피해 대화와 투쟁을 적절히 배합하겠다는 온건파가 민노총 지도부를 차지한 이후 안정적인 노사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민노총은 분명 종래의 강경투쟁 노선에서 벗어나 전술상의 유연성 강화와 사업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3년간 민노총을 이끌어갈 이수호 신임 민노총 위원장의 행보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위원장은 지난 1월 지도부 경선 당시 ‘우리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는 선거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위원장은 기존 민노총 지도부의 총파업 남발을 비판했다. 그는 “민노총을 바꾸지 못하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민노총을 바꾸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내부 혁신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반면 경쟁 상대 후보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투쟁의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며 비타협적 투쟁 노선 강화를 내세웠지만 지지를 얻지 못했다. 경선 결과 실용주의적 노선에 입각한 온건파가 힘에 의한 투쟁 노선을 주장한 강경파를 누른 것이다. 노동계 내부의 이런 기류 변화에 대해 전경련 이상무는 “노조의 혁신이 선행되면 사용자의 자기 혁신도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민노총 내 온건파의 득세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참여정부의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은 지난해 정권 출범 당시만 해도 ‘친노(親勞)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파업과 힘을 앞세운 민노총의 강경 노선 앞에 무력화됐고, 민노총 강경파로부터 ‘반노(反勞)적’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올들어 온건파가 민노총 지도부를 차지함으로써 참여정부는 대화 채널과 파트너십 복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청와대는 “민노총이 2월 내부 체제를 정비하는 대로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게 될 것”이라며 협력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노민기 노동부 노사정책국장도 “민노총의 새 지도부가 노·사·정 관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노총 4기 지도부의 출범은 올해 노·사·정 관계 개선의 주요 단초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민노총 새 지도부가 실제 발전적인 노사 관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임금 불평등 완화, 일자리 창출, 손해배상소송 가압류 청구 철회, 부당 노동행위 단속 등 노·사·정 관련 쟁점을 처리함에서 사용자와 정부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노총은 기존 투쟁 노선에 대한 내부 비판과 신임 지도부의 노선 선회가 ‘파업없는 노사관계의 서막’으로 이해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석행 민노총 신임 사무총장은 “민노총은 기본적으로 투쟁으로 단련된 조직”이라며 “우리가 싸움을 남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싸움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며 투쟁을 하게 될 때는 완벽하게 준비해서 철저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단위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노사분규에 상급 노동자 단체나 사용자 단체가 개입하고 통제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데다, 쌍방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가 많아 갈등과 논란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고 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고용 안정을 명목으로 임금 동결을 제안한 것을 놓고서도 논쟁이 드세다.
노동계에서는 “IMF 이전 13~14%에 이르던 매출액 대비 임금 비율이 최근 들어 9~10%선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노동자의 임금 삭감 내지 동결이라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이에 대해 “매출액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한 것은 기업들이 인건비 상승을 상쇄하기 위해 고용을 줄이고 사무자동화쪽에 집중 투자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경총의 이동응 상무 역시 “국내 노동자 임금이 생산성을 앞질러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점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노·사간 시각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오는 7월 주5일 근무제 실시를 계기로 노·사 갈등이 분출할 소지가 충분하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조정 협상을 수반하게 되기 때문에 임금에 대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지 못한다면 관련 단체협약 체결 과정이 순조롭지 못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소송 가압류 철회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계는 사용자가 전체 소송 금액만 1천4백여억원에 이르는 손배소와 가압류를 남발하는 바람에 노조의 존립 근거와 노동운동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울상이다. 재계에서는 “불법 파업에 대해 사용자가 손해배상이라는 합법적인 대응을 못하면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원천적으로 봉쇄된다”고 맞서는 등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김인재 상지대 교수(법학)는 “불법 파업의 빌미가 되는 노동관계법상의 여러 조항들을 개정해 자유로운 단체행동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노·정은 서로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 역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 등을 추진하면서 노·사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주요 정책 입안과 수립에서 노·사를 사실상 배제하고 의사결정권을 정부가 독점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게 민노총의 불만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일자리 창출 등 선심성 노동정책이 쏟아질 경우 선거 후유증이 고스란히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에 대해 노·사가 함께 우려하고 있다.

민노총 지도부의 개편으로 조성된 모처럼의 노·사·정 협력 기류는 이처럼 많은 난관이 무난히 제거될 때만이 노사관계 안정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노사관계 안정과 발전은 주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 태미 오버비 주한 미상공회의소 수석 부회장은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원사들은 민노총 지도부의 변화된 리더십을 매우 관심 있게 보고 있으며, 민노총 새 지도부가 타협의 문화와 건설적인 대화를 촉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버비 부회장은 이와 함께 한국적 노사관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노·사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비상계단 몰래 깎아"...대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

2"올림픽 휴전? 러시아만 좋은 일"...젤렌스키, 제안 거부

3일론 머스크, 인도네시아서 '스타링크' 서비스 출범

4취업 준비하다 봉변...日 대학생 인턴, 10명 중 3명 성희롱 피해

5주유소 기름값 또 하락...내림세 당분간 이어질 듯

6아이폰 더 얇아질까..."프로맥스보다 비쌀 수도"

7 걸그룹 '뉴진스', 모든 멤버 법원에 탄원서 제출

8 尹 "대한민국은 광주의 피·눈물 위 서 있어"

9성심당 월세 '4억' 논란...코레일 "월세 무리하게 안 올려"

실시간 뉴스

1"비상계단 몰래 깎아"...대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

2"올림픽 휴전? 러시아만 좋은 일"...젤렌스키, 제안 거부

3일론 머스크, 인도네시아서 '스타링크' 서비스 출범

4취업 준비하다 봉변...日 대학생 인턴, 10명 중 3명 성희롱 피해

5주유소 기름값 또 하락...내림세 당분간 이어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