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수 넘는 정당 나오기 힘들 것”
“과반수 넘는 정당 나오기 힘들 것”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부터 각 당은 ‘총선 앞으로’ 전략으로 내홍을 앓기 시작했다. 그 사이 여당은 분당되었고 원내 과반수 의석을 넘는 거대 야당은 대선자금 후유증으로 상처투성이가 됐다. 혼돈 속에서 펼쳐지는 4·15 총선은 국내 정치는 물론 향후 대북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혼미한 총선 정국을 읽어내기 위해 정치 현장에서 오랫동안 취재 활동을 벌여온 2명의 정치전문기자를 초청했다. 중앙일보 김진 정치전문기자와 문화방송 박광온 정치전문기자가 그들이다. 임도경 뉴스위크 한국판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좌담은 총선연대의 낙천 대상자 명단이 발표되던 2월 4일 오후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열띠게 진행됐다.
사회: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17대 총선은 워낙 돌발 변수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가 될 것 같습니다.
김진: 17대 총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통령을 탄생시킨 정당이 야당인 민주당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됐는데, 이 분열에 대한 평가의 자리이기도 하지요. 동시에 역사상 야당으로서 가장 거대한 파워를 가진 한나라당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기도 할 겁니다. 시대적으로는 보자면, 17대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3김시대가 종식된 이후 치러지는 첫번째 선거입니다. 이번 총선은 호남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하고, 부산·경남에서 열린우리당이 부상하는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치의 오랜 숙제였던 지역구도가 부분적으로나마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천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정당의 후보 공천에 여론조사, 외부인의 공천심사 참여, 면접, 후보 경선 같은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지요. 민노당의 원내 진입이 확실시되는데, 이는 1950년대 말 조봉암의 진보당이 사라진 후 반세기만에 진보주의를 표방한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겁니다. 국제적 시각에서도 의미있는 선거라고 봅니다. 한반도 주변의 역학 관계가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는데, 미·일·중·러가 주목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이 과연 총선을 통해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할 것인가가 관심사지요. 총선 결과는 한·미 동맹이나 북핵 문제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박광온: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은 아무래도 과연 한국 정치가 지역구도에서 탈피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관건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얼마나 의석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국에서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영남 지역 진출에 실패해 ‘전국정당’이 되지 못했죠. 이번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호남이나 충청·수도권에서 의석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부산·경남의 의석수가 미미하다면 지역구도를 깼다고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영남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높은 것 같지만 그 속내에는 이 당을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애정의 역설적 표현이 들어 있다고 봅니다.
반면 호남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화하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으로 전북 출신 정동영 의원이 출현한 것도 그런 열린우리당의 호남 공략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 있죠. 분당 이후 호남 민심은 ‘노무현 배신론’에 마음이 실려 있다가 정동영 의장 등장 이후 ‘대망론’과 ‘배신론’ 사이에서 고심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정의장은 이철승 전 의원 이후 전북 출신으로는 처음 등장한 중앙정치의 거물이죠. 호남에서는 정동영 대망론과 노무현 배신론이 치열하게 맞붙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지역구도를 깨겠다고 하지만 실제 총선 전략은 이처럼 기존의 지역구도를 전제로 짜여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과연 본질적으로 지역구도가 깨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사회: 지역구도가 흔들릴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 1985년 실시된 12대 총선은 한국 정치사를 크게 바꾼 계기였죠.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당시 양김이 주도하던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켰지요. 그러다 13대 총선에서 완벽하게 지역구도가 정착됐습니다. 호남은 평민당, 부산·경남은 민주당, 대구·경북은 민정당, 충청은 공화당으로 나뉘었죠. 그 뒤 16대까지의 선거는 그때 형성된 지역구도가 좌우했습니다. 이번 총선은 이전의 선거에 비하자면 지역색을 탈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총선의 최대 변수는 ‘인물’입니다. 그 점이 대선과 다르죠.
사회: 이번 총선이 어느 때보다 인물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신인들이 현실 정치권에 진입하기에는 장벽이 여전히 높지 않습니까.
박:
언제나 총선에서는 현역 의원의 30∼40% 정도가 물갈이됐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지역구인 경우도 많았지요. 정치 신인들은 명함에 자신의 약력도 기재하지 못할 만큼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입법권을 가진 현역 의원들이 길을 터줘야 합니다. 정치개혁 방안 중 하나로 상향식 공천을 말하는데, 보완장치없이 이 제도가 도입되면 돈과 조직이 우세한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깨기가 더 어렵게 되고 결과적으로 신인의 진출도 어렵게 됩니다.
김: 요즘에는 다선 의원이라고 해서 결코 유리하진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정치권 물갈이 열기가 달아 올라 있고 3, 4선 의원의 경우 ‘바꿔보자’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인들이 뉴페이스라는 이유로 점수를 더 얻을 수 있죠.
사회: 정당별로 될성부른 나무를 끌어들이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에 상대적으로 비중있는 인물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박: 여권이 가진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총선에서 당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음 기회에 제공될 수 있는 ‘자리’가 있기도 하니까 열린우리당이 인물 영입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최근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도 무관하지 않겠죠.
김: 인물 물갈이가 중요하게 부각됐지만 그와 함께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는 선거이기도 합니다.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정치스타들이 대거 전사 내지 몰락했다는 겁니다. 15대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 전 총리·박찬종 전 의원을 영입해 이 두 인물을 쌍끌이로 해서 상당한 ‘어획고’를 올릴 만큼 재미를 봤죠.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15대 선거의 김근태씨를 비롯해 재야의 여러 스타를 영입해 성공을 거뒀죠. 이렇게 들어온 정치 신인 중 많은 이가 실제 정치권에서 역량이 소진되고 몰락했죠. 한나라당이 뚝심 검사로 유명한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과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영입하려고 애를 썼는데 결국 거절당했어요. 현재 남아 있는 인재풀은 협소합니다. 인물난에 시달리기는 모든 정당이 마찬가진데 그나마 열린우리당의 수확이 좋은 것 같습니다.
박: 이번 총선은 정당의 큰 주인이었던 3김이 퇴장한 경기장에 몸집 작은 사람들이 모두 올라와 난타전을 벌이는 양상입니다. 그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권의 판갈이가 이뤄진 것은 5·16이나 5·17처럼 외부의 물리적 강압에 의해 이뤄진 적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외부의 힘’이 작용했고, 그밖에 여론이라는 정치권 밖의 힘에 의해 판갈이 시점을 맞고 있죠.
경제개발세력과 민주화세력이 공존했던 YS·DJ 정권과 달리 노무현 정권은 후보 단일화가 대선 직전 깨지면서 민주화세력이 단독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의회까지 아우르지는 못했고 분열의 길을 갔죠. 민주화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의회까지 장악해 안정적인 권력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발적 정치지망생은 폭발하는데 자리는 제한돼 있습니다. 이런 사정이 판갈이에 대한 강렬한 목소리로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사회: 이번 총선에서는 기존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낮은 만큼 과거 총선보다 무소속 당선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박: 영·호남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공천·경선 탈락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이들 정당의 지역 수성은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유권자의 기대와 어긋난다면 무소속 후보들이 대거 약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 이번 총선에서는 후보 경선제 같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출마자들이 정당의 공천을 받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많은 지역구에서 당선이 유력한 후보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기성 정치권의 물갈이 바람도 강하고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무소속 출마를 부추길 수 있는 상황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가능성은 후보 등록이 마감된 후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사회: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입당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인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런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박: 이번 총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일 수도, 부패한 정치권 모두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권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정치외적인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해 이번 선거를 ‘부패한 정치권 일반에 대한 평가’로 세팅하는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선거구도를 개혁 대 반개혁으로 만들어놓은 거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런 구도를 바꿀 만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요.
노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낮은데도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높아요. 결국 여권이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가져가면서 노대통령의 낮은 국정운영 지지도가 희석되고 있는 거죠. 야당은 어차피 이 구도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유권자들로부터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똑같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총공세 폭로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김: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이번 한국의 총선은 대단히 비정상적으로 보일 겁니다.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한·미 관계나 이념·계층적으로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면서 엄청난 변혁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변혁의 파도가 이번 총선에서 폭발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 폭발의 중심에 노대통령이 서 있어요. 그 파도에 누가 휩쓸릴 지는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노대통령은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그 파도를 타겠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17대 총선은 ‘노무현의 파도타기’인 셈이죠. 참모들을 대거 총선에 투입시키고,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특별사면을 통해 DJ와 화해를 시도하면서 호남에 접근하려 하고 있죠.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영입하면서 부산·경남에 손을 뻗치고 있죠. 그런데 이런 흐름이 한화갑 의원 경선자금 수사라는 돌발 변수가 터지면서 역전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다시 단결하고 있고, 안상영 부산시장 자살사건도 부산·경남에서 노대통령이 올인전략을 펴는데 브레이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회: 너무 오래 묵히는 느낌마저 드는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입당시기도 관심거리입니다.
박: 입당은 기정 사실로 돼 있고 시기만 남았죠. 하지만 노대통령이 입당 시기를 두고 저울질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열린우리당과 노대통령은 이미 사실혼 관계입니다. 입당 시기를 미루는 것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노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데, 그 정치적 약점을 열린우리당에 전가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재 여론은 60% 가량이 입당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들은 어차피 노대통령 지지자들이 아닙니다. 여론의 비난이 있더라도 지지자들의 결속을 위해 입당할 것으로 봅니다. 정당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정당이 없다는 것은 난센스예요.
김: 총선과 관련 없이 대통령은 조속히 입당해 책임정치를 해야죠.
사회: 이번 총선에 영향을 미칠 주요 이슈들은 무엇이 될 거라고 보십니까.
김: 우선은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 발표, 특검의 노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 결과 발표, 기타 검찰의 정치권 사정이 영향을 미치겠죠. 민경찬 펀드가 논란이 됐는데 제2, 제3의 민경찬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것도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될 겁니다. 한나라당은 비리가 많이 나왔는데, 대선자금의 개인 유용이 걸리면 정치적 약점이 되겠죠. 2월 25일 열리는 6자회담 결과 한반도 위기가 지속되느냐, 평화 국면으로 가느냐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열린우리당에 타격이 클 겁니다.
사회: 시민단체들의 유권자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낙천·낙선운동, 당선운동, 정보공개운동 등 운동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보수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로 보면 지난 총선에 비해 파괴력이 낮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김: 정치권 물갈이에 대한 욕구가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표출된 적은 없어요. 2월 4일 발표된 66명의 낙천 대상자 명단에 대해 정치권은 반발하고 있지만 실제 공천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각 정당의 공천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에서 또 걸리게 됩니다. 파괴력이 더 클 수 있는 겁니다.
박: 공감합니다. 낙선운동 대상자들은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2000년 총선에서는 시민단체들이 단일한 조직으로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지만 이번에는 다양하게 갈리기 때문에 그때에 비하면 부담이 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물갈이 바람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죠. 엄청나게 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마당인데, 한방울의 물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 지난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이 호남에서는 큰 성과를 거둔 반면 영남에서는 오히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결집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운동에 역풍이 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 언론이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가 중요하죠. 낙천·낙선운동이 유권자들의 권한을 빼앗은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으니까요.
김: 최근 우리 사회에는 노사모나 붉은 악마, 영화 ‘실미도’ 열풍 등 집단적 행동심리가 나타나고 있어요. 시민운동이 총선에서 집단 행동을 유발하게 되면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세력, 호남에서는 민주당 지지세력의 결집으로 역풍이 불 수도 있습니다.
사회: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국회 정당대표 연설에서 모두 총선 후 개헌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이 문제도 앞으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으로 보이는데, 과연 총선 후에 개헌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박: 총선 전인 지금도 정국이 요동치고 있습니다만, 총선 후를 더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면 정치권은 굉장한 소용돌이에 빠질 겁니다.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소수 여당으로는 원만하게 국정운영을 하기 어렵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못된다면 ‘파트너’를 구해야 합니다.
파트너에게 책임총리를 주고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실질적인 각료 제청권까지 부여한다면 그야말로 ‘연립정권’이 될 텐데, 그런 식의 권력분점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개헌론이 구체성을 띠고 나올 가능성이 있죠.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등 여러 개헌안이 나올 수 있겠죠. 오는 2008년이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가 동시에 끝나는 시점인데, 그 시점에서 발효될 수 있는 개헌안이 논의될 것으로 봅니다.
김: 그 시기가 개헌 시점으로는 적합하죠.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개헌 저지선인 3분의 1 의석을 얻느냐 여부입니다. 열린우리당이 3분의 1 의석 확보에 실패한다면 민주당과 합당해 과반수 내지는 어느 정도의 안정세력을 구축하려 할 겁니다. 그것마저 안된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합해 보수연합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고 개헌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개헌 논의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내각제 개헌 두갈래로 나오고 있어요. 우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합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죠. 하지만 그게 국민적 지지나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프랑스식으로 외교·국방 등 외치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는 총리가 맡는 식인데, 한국의 경우 내치와 외치는 긴밀히 연관돼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두고 국내 정치권이 떠들썩한 게 우리 풍토입니다. 내각제 개헌도 새로운 권력구조가 대통령 임기 후에나 적용될 수 있으므로 개헌 논의는 17대 후반기에나 동력을 얻을 겁니다.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3분의 1 이상의 의석을 얻지 못해도 개헌 논의보다는 여야 대타협이나 정책연합이 모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총선에서 사실상 패했을 때 하야할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김: 무엇이 실패인가에 따라 다르겠죠. 과반수를 못얻었다는 것이 실패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간 노대통령의 스타일로 봤을 때 ‘참담한 실패’의 경우 하야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웃음).
사회: 과연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넘는 정당이 나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 과반수 정당은 양당 체제라면 몰라도 현재와 같은 4당 체제에서는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김: 나올 수도 있죠. 한나라당이 1당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영남에서 지역구도를 고수하는데 성공하고, 수도권의 호남표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쪼개져 열린우리당이 선전하지만 아까운 2등으로 그칠 경우 한나라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얻으려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12대 때 신민당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휩쓸었던 것처럼 수도권에서 ‘구정치’에 대한 반감이 바람정치로 확 일어나야 합니다.
박: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2000년 총선에서 선거 나흘 전에 남북 정상회담 발표가 났을 때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봤지만 실제 선거 결과는 달랐습니다. 호재가 악재로 변했던 거죠. 민심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회: 두 분 모두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 1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시는군요.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김재환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위크 한국판은 혼미한 총선 정국을 읽어내기 위해 정치 현장에서 오랫동안 취재 활동을 벌여온 2명의 정치전문기자를 초청했다. 중앙일보 김진 정치전문기자와 문화방송 박광온 정치전문기자가 그들이다. 임도경 뉴스위크 한국판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좌담은 총선연대의 낙천 대상자 명단이 발표되던 2월 4일 오후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열띠게 진행됐다.
사회: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17대 총선은 워낙 돌발 변수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가 될 것 같습니다.
김진: 17대 총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통령을 탄생시킨 정당이 야당인 민주당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됐는데, 이 분열에 대한 평가의 자리이기도 하지요. 동시에 역사상 야당으로서 가장 거대한 파워를 가진 한나라당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기도 할 겁니다. 시대적으로는 보자면, 17대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3김시대가 종식된 이후 치러지는 첫번째 선거입니다. 이번 총선은 호남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하고, 부산·경남에서 열린우리당이 부상하는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치의 오랜 숙제였던 지역구도가 부분적으로나마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천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정당의 후보 공천에 여론조사, 외부인의 공천심사 참여, 면접, 후보 경선 같은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지요. 민노당의 원내 진입이 확실시되는데, 이는 1950년대 말 조봉암의 진보당이 사라진 후 반세기만에 진보주의를 표방한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겁니다. 국제적 시각에서도 의미있는 선거라고 봅니다. 한반도 주변의 역학 관계가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는데, 미·일·중·러가 주목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이 과연 총선을 통해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할 것인가가 관심사지요. 총선 결과는 한·미 동맹이나 북핵 문제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박광온: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은 아무래도 과연 한국 정치가 지역구도에서 탈피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관건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얼마나 의석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국에서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영남 지역 진출에 실패해 ‘전국정당’이 되지 못했죠. 이번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호남이나 충청·수도권에서 의석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부산·경남의 의석수가 미미하다면 지역구도를 깼다고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영남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높은 것 같지만 그 속내에는 이 당을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애정의 역설적 표현이 들어 있다고 봅니다.
반면 호남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화하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으로 전북 출신 정동영 의원이 출현한 것도 그런 열린우리당의 호남 공략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 있죠. 분당 이후 호남 민심은 ‘노무현 배신론’에 마음이 실려 있다가 정동영 의장 등장 이후 ‘대망론’과 ‘배신론’ 사이에서 고심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정의장은 이철승 전 의원 이후 전북 출신으로는 처음 등장한 중앙정치의 거물이죠. 호남에서는 정동영 대망론과 노무현 배신론이 치열하게 맞붙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지역구도를 깨겠다고 하지만 실제 총선 전략은 이처럼 기존의 지역구도를 전제로 짜여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과연 본질적으로 지역구도가 깨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사회: 지역구도가 흔들릴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 1985년 실시된 12대 총선은 한국 정치사를 크게 바꾼 계기였죠.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당시 양김이 주도하던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켰지요. 그러다 13대 총선에서 완벽하게 지역구도가 정착됐습니다. 호남은 평민당, 부산·경남은 민주당, 대구·경북은 민정당, 충청은 공화당으로 나뉘었죠. 그 뒤 16대까지의 선거는 그때 형성된 지역구도가 좌우했습니다. 이번 총선은 이전의 선거에 비하자면 지역색을 탈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총선의 최대 변수는 ‘인물’입니다. 그 점이 대선과 다르죠.
사회: 이번 총선이 어느 때보다 인물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신인들이 현실 정치권에 진입하기에는 장벽이 여전히 높지 않습니까.
박:
언제나 총선에서는 현역 의원의 30∼40% 정도가 물갈이됐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지역구인 경우도 많았지요. 정치 신인들은 명함에 자신의 약력도 기재하지 못할 만큼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입법권을 가진 현역 의원들이 길을 터줘야 합니다. 정치개혁 방안 중 하나로 상향식 공천을 말하는데, 보완장치없이 이 제도가 도입되면 돈과 조직이 우세한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깨기가 더 어렵게 되고 결과적으로 신인의 진출도 어렵게 됩니다.
김: 요즘에는 다선 의원이라고 해서 결코 유리하진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정치권 물갈이 열기가 달아 올라 있고 3, 4선 의원의 경우 ‘바꿔보자’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인들이 뉴페이스라는 이유로 점수를 더 얻을 수 있죠.
사회: 정당별로 될성부른 나무를 끌어들이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에 상대적으로 비중있는 인물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박: 여권이 가진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총선에서 당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음 기회에 제공될 수 있는 ‘자리’가 있기도 하니까 열린우리당이 인물 영입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최근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도 무관하지 않겠죠.
김: 인물 물갈이가 중요하게 부각됐지만 그와 함께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는 선거이기도 합니다.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정치스타들이 대거 전사 내지 몰락했다는 겁니다. 15대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 전 총리·박찬종 전 의원을 영입해 이 두 인물을 쌍끌이로 해서 상당한 ‘어획고’를 올릴 만큼 재미를 봤죠.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15대 선거의 김근태씨를 비롯해 재야의 여러 스타를 영입해 성공을 거뒀죠. 이렇게 들어온 정치 신인 중 많은 이가 실제 정치권에서 역량이 소진되고 몰락했죠. 한나라당이 뚝심 검사로 유명한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과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영입하려고 애를 썼는데 결국 거절당했어요. 현재 남아 있는 인재풀은 협소합니다. 인물난에 시달리기는 모든 정당이 마찬가진데 그나마 열린우리당의 수확이 좋은 것 같습니다.
박: 이번 총선은 정당의 큰 주인이었던 3김이 퇴장한 경기장에 몸집 작은 사람들이 모두 올라와 난타전을 벌이는 양상입니다. 그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권의 판갈이가 이뤄진 것은 5·16이나 5·17처럼 외부의 물리적 강압에 의해 이뤄진 적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외부의 힘’이 작용했고, 그밖에 여론이라는 정치권 밖의 힘에 의해 판갈이 시점을 맞고 있죠.
경제개발세력과 민주화세력이 공존했던 YS·DJ 정권과 달리 노무현 정권은 후보 단일화가 대선 직전 깨지면서 민주화세력이 단독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의회까지 아우르지는 못했고 분열의 길을 갔죠. 민주화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의회까지 장악해 안정적인 권력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발적 정치지망생은 폭발하는데 자리는 제한돼 있습니다. 이런 사정이 판갈이에 대한 강렬한 목소리로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사회: 이번 총선에서는 기존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낮은 만큼 과거 총선보다 무소속 당선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박: 영·호남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공천·경선 탈락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이들 정당의 지역 수성은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유권자의 기대와 어긋난다면 무소속 후보들이 대거 약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 이번 총선에서는 후보 경선제 같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출마자들이 정당의 공천을 받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많은 지역구에서 당선이 유력한 후보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기성 정치권의 물갈이 바람도 강하고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무소속 출마를 부추길 수 있는 상황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가능성은 후보 등록이 마감된 후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사회: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입당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인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런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박: 이번 총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일 수도, 부패한 정치권 모두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권이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정치외적인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해 이번 선거를 ‘부패한 정치권 일반에 대한 평가’로 세팅하는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선거구도를 개혁 대 반개혁으로 만들어놓은 거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런 구도를 바꿀 만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요.
노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낮은데도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높아요. 결국 여권이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가져가면서 노대통령의 낮은 국정운영 지지도가 희석되고 있는 거죠. 야당은 어차피 이 구도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유권자들로부터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똑같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총공세 폭로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김: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이번 한국의 총선은 대단히 비정상적으로 보일 겁니다.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한·미 관계나 이념·계층적으로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면서 엄청난 변혁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변혁의 파도가 이번 총선에서 폭발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 폭발의 중심에 노대통령이 서 있어요. 그 파도에 누가 휩쓸릴 지는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노대통령은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그 파도를 타겠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17대 총선은 ‘노무현의 파도타기’인 셈이죠. 참모들을 대거 총선에 투입시키고,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특별사면을 통해 DJ와 화해를 시도하면서 호남에 접근하려 하고 있죠.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영입하면서 부산·경남에 손을 뻗치고 있죠. 그런데 이런 흐름이 한화갑 의원 경선자금 수사라는 돌발 변수가 터지면서 역전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다시 단결하고 있고, 안상영 부산시장 자살사건도 부산·경남에서 노대통령이 올인전략을 펴는데 브레이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회: 너무 오래 묵히는 느낌마저 드는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입당시기도 관심거리입니다.
박: 입당은 기정 사실로 돼 있고 시기만 남았죠. 하지만 노대통령이 입당 시기를 두고 저울질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열린우리당과 노대통령은 이미 사실혼 관계입니다. 입당 시기를 미루는 것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노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데, 그 정치적 약점을 열린우리당에 전가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재 여론은 60% 가량이 입당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들은 어차피 노대통령 지지자들이 아닙니다. 여론의 비난이 있더라도 지지자들의 결속을 위해 입당할 것으로 봅니다. 정당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정당이 없다는 것은 난센스예요.
김: 총선과 관련 없이 대통령은 조속히 입당해 책임정치를 해야죠.
사회: 이번 총선에 영향을 미칠 주요 이슈들은 무엇이 될 거라고 보십니까.
김: 우선은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 발표, 특검의 노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 결과 발표, 기타 검찰의 정치권 사정이 영향을 미치겠죠. 민경찬 펀드가 논란이 됐는데 제2, 제3의 민경찬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것도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될 겁니다. 한나라당은 비리가 많이 나왔는데, 대선자금의 개인 유용이 걸리면 정치적 약점이 되겠죠. 2월 25일 열리는 6자회담 결과 한반도 위기가 지속되느냐, 평화 국면으로 가느냐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열린우리당에 타격이 클 겁니다.
사회: 시민단체들의 유권자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올해는 낙천·낙선운동, 당선운동, 정보공개운동 등 운동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보수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로 보면 지난 총선에 비해 파괴력이 낮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김: 정치권 물갈이에 대한 욕구가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표출된 적은 없어요. 2월 4일 발표된 66명의 낙천 대상자 명단에 대해 정치권은 반발하고 있지만 실제 공천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각 정당의 공천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에서 또 걸리게 됩니다. 파괴력이 더 클 수 있는 겁니다.
박: 공감합니다. 낙선운동 대상자들은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2000년 총선에서는 시민단체들이 단일한 조직으로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지만 이번에는 다양하게 갈리기 때문에 그때에 비하면 부담이 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물갈이 바람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죠. 엄청나게 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마당인데, 한방울의 물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 지난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이 호남에서는 큰 성과를 거둔 반면 영남에서는 오히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결집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운동에 역풍이 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 언론이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가 중요하죠. 낙천·낙선운동이 유권자들의 권한을 빼앗은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으니까요.
김: 최근 우리 사회에는 노사모나 붉은 악마, 영화 ‘실미도’ 열풍 등 집단적 행동심리가 나타나고 있어요. 시민운동이 총선에서 집단 행동을 유발하게 되면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세력, 호남에서는 민주당 지지세력의 결집으로 역풍이 불 수도 있습니다.
사회: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국회 정당대표 연설에서 모두 총선 후 개헌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이 문제도 앞으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으로 보이는데, 과연 총선 후에 개헌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박: 총선 전인 지금도 정국이 요동치고 있습니다만, 총선 후를 더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면 정치권은 굉장한 소용돌이에 빠질 겁니다.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소수 여당으로는 원만하게 국정운영을 하기 어렵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못된다면 ‘파트너’를 구해야 합니다.
파트너에게 책임총리를 주고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실질적인 각료 제청권까지 부여한다면 그야말로 ‘연립정권’이 될 텐데, 그런 식의 권력분점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개헌론이 구체성을 띠고 나올 가능성이 있죠.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등 여러 개헌안이 나올 수 있겠죠. 오는 2008년이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가 동시에 끝나는 시점인데, 그 시점에서 발효될 수 있는 개헌안이 논의될 것으로 봅니다.
김: 그 시기가 개헌 시점으로는 적합하죠.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개헌 저지선인 3분의 1 의석을 얻느냐 여부입니다. 열린우리당이 3분의 1 의석 확보에 실패한다면 민주당과 합당해 과반수 내지는 어느 정도의 안정세력을 구축하려 할 겁니다. 그것마저 안된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합해 보수연합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고 개헌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개헌 논의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내각제 개헌 두갈래로 나오고 있어요. 우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합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죠. 하지만 그게 국민적 지지나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프랑스식으로 외교·국방 등 외치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는 총리가 맡는 식인데, 한국의 경우 내치와 외치는 긴밀히 연관돼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두고 국내 정치권이 떠들썩한 게 우리 풍토입니다. 내각제 개헌도 새로운 권력구조가 대통령 임기 후에나 적용될 수 있으므로 개헌 논의는 17대 후반기에나 동력을 얻을 겁니다.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3분의 1 이상의 의석을 얻지 못해도 개헌 논의보다는 여야 대타협이나 정책연합이 모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총선에서 사실상 패했을 때 하야할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김: 무엇이 실패인가에 따라 다르겠죠. 과반수를 못얻었다는 것이 실패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간 노대통령의 스타일로 봤을 때 ‘참담한 실패’의 경우 하야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웃음).
사회: 과연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넘는 정당이 나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 과반수 정당은 양당 체제라면 몰라도 현재와 같은 4당 체제에서는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김: 나올 수도 있죠. 한나라당이 1당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영남에서 지역구도를 고수하는데 성공하고, 수도권의 호남표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쪼개져 열린우리당이 선전하지만 아까운 2등으로 그칠 경우 한나라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얻으려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12대 때 신민당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휩쓸었던 것처럼 수도권에서 ‘구정치’에 대한 반감이 바람정치로 확 일어나야 합니다.
박: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2000년 총선에서 선거 나흘 전에 남북 정상회담 발표가 났을 때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봤지만 실제 선거 결과는 달랐습니다. 호재가 악재로 변했던 거죠. 민심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회: 두 분 모두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 1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시는군요.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김재환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애플의 中 사랑?…팀 쿡, 올해만 세 번 방중
2 “네타냐후, 헤즈볼라와 휴전 ‘원칙적’ 승인”
3“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4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
5충격의 중국 증시…‘5대 빅테크’ 시총 한 주 만에 57조원 증발
6이재용 ‘부당합병’ 2심도 징역 5년 구형…삼성 공식입장 ‘無’
7격화하는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갈등…예화랑 계약 두고 형제·모녀 충돌
8“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9로앤굿, 국내 최초 소송금융 세미나 ‘엘피나’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