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겐 시샘도 따르게 마련
부자에겐 시샘도 따르게 마련
런던에서 소매업으로 큰 돈을 벌면 으레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부터 받아야 한다.
보슬비 내리는 영국 런던의 어느 화요일, 시계 바늘이 정오를 가리키고 있을 때 필립 그린(Philip Green ·52)은 한창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깃 없는 상의와 말끔히 개어 놓은 파스텔 색조의 스웨터를 노려보는 그에게 매장 매니저가 혼쭐나고 있었다. “이게 뭔가, 엉망이군. 형편없어.”
화사한 색상의 여성 의류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열을 내는 것은 세일 품목이 신상품과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에 거슬리는 핑크색 스커트와 하얀 재킷을 가리키며 또 한 마디 내질렀다. “도대체 정리가 안 돼 있어. 나아지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지고 있잖아.”
그린은 경호원을 대동한 채 옥스퍼드가(街) 매장에서 나오다 매니저에게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시 오겠네.” 일종의 경고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매니저가 답했다.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바로 시정하는 게 좋을 듯싶다. 그린은 모든 일을 자기 방식대로 처리하는 사람이다. 지난 4년 동안 그린은 두 소매체인을 되살려 놓았다.
현재 BHS로 널리 알려진 76년 역사의 백화점 체인 브리티시 홈 스토어스(British Home Stores)와 인기 의류 매장 톱숍(Topshop) ·톱맨(Topman)을 보유한 아카디아 그룹(Arcadia Group)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그린의 소매업 제국은 2,500개 매장과 직원 4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매출 51억 달러에 감가상각 ·이자 ·세금 공제 전 이익이 8억4,700만 달러다. 그린의 재산은 5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0만 달러짜리 요트 한 척, 4,500만 달러짜리 걸프스트림 자가용 제트기 한 대, 모나코 북부 몬테카를로에 있는 1,200만 달러 상당의 펜트하우스 등 씀씀이도 인색한 편은 아니다. 50번째 생일에는 왕년의 인기 가수 톰 존스와 로드 스튜어트를 불러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에서 성대한 파티도 열었다.
미국이라면 리얼리티 쇼에도 출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린의 고향 영국에서는 그에 대해 시큰둥하다. 졸부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다. 소매업계 전문가 스튜어트 로즈(Stuart Rose)는 “영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한 가지 있다”며 “그것은 바로 질투”라고 지적했다. 로즈는 그린의 아카디아 매입을 주선했다.
그린이 BHS ·아카디아를 급속히 정상화시키고, 매입 때문에 개인적으로 차입한 19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을 빠르게 갚아나가자 런던 금융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별 노력없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가 BHS ·아카디아를 터무니없는 헐값에 ‘훔쳐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린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헐값 매입이 아니라 의류업계에서 평생 쌓은 경험 덕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옷감만 만져봐도 가격을 알 수 있다. 코트들을 살펴본 뒤 다음 시즌 실패작이 무엇일지 정확히 집어내기도 한다. 그는 매장 배치에서 조명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관여한다. 요컨대 매니저들로서는 악몽 같은 존재다. 그는 “땅만 임대하고 나 몰라라 하는 지주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린이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은 36년 전이다. 고교 중퇴 후 집안 친척이 운영하는 런던의 한 신발 수입업체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27세에 그는 처음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됐다. 그 뒤 17년 동안 대단치는 않지만 성공과 좌절도 맛봤다.
그린은 1995년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영국 최대 스포츠용품 소매업체 올림푸스 스포츠(Olympus Sports)를 소매 ·금융서비스 업체인 시어스 그룹(Sears Group ·미국의 시어스와 무관)으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인수가격은 1파운드. 부채 3,000만 달러를 떠안는 조건이었다. 그린은 심장마비로 경영에 적극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3년 후 파트너들과 함께 올림푸스 스포츠를 5억5,000만 달러에 JJB 스포츠로 넘겼다. 그린이 챙긴 돈은 7,300만 달러였다.
몇 달 뒤 그린은 시어스 그룹의 나머지 부문에도 손을 뻗쳤다. 최근 미디어 업계 거물 콘래드 블랙(Conrad Black)의 텔레그래프 그룹(Telegraph Group) 신문사들을 인수한 억만장자 바클레이(Barclay) 형제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린은 적대적 인수로 시어스 그룹을 10억 달러에 거머쥐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분할 매각했다. 바클레이 형제와 함께 그가 거머쥔 돈은 3억4,000만 달러였다.
그린은 더 큰 먹이를 찾아나섰다. 2000년 초반 현재 가치로 133억 달러에 상당하는 자금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영국의 유서 깊은 백화점 체인 마크스 앤 스펜서(M&S)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린이 인수 의향을 공식 발표하기 며칠 전 부인 크리스티나가 4,000만 달러 상당의 M&S 주식 매집에 나서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그린은 감독 당국이 아내의 M&S 주식 매입을 이미 승인한 판에 M&S가 언론 플레이를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이 난리 치자 그린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M&S의 처사는 비열한 행동”이라며 “M&S가 장사꾼에게 회사를 넘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고 분개했다.
그린은 좌절하지 않고 영국 5위의 소매체인 BHS에 시선을 던졌다. BHS는 매장 156개에 총 매장 면적 12만4,000평을 보유하고 있었다. 취급 품목도 가정용품에서 신부 들러리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매출 17억 달러에 순익은 1억1,400만 달러에 그치고 있었다. 그린은 BHS가 질 좋은 기본 소비재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싶어하는 중산층 이하 계층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도 간파했다. 그는 바클레이스 은행(Barclays Bank)과 웨스트LB 은행의 지원 아래 2000년 5월 현금 3억8,000만 달러로 BHS 지분 94%를 인수했다. 이후 18개월 동안 하루 15시간씩 강행군하며 매장 재설계와 상품 재구성에 나섰다. 그 덕에 지금까지 배당금으로 인수 가격의 두 배를 뽑아낸데다 주식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
2002년 8월 그린은 아카디아를 노렸다. 아카디아는 매장 2,400개에서 매출 34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이익률이 문제였다. 그린은 스코틀랜드 은행(Bank of Scotland)의 도움으로 16억 달러에 아카디아 지분 대부분을 인수했다. 그린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털어낸 돈은 1억3,1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인수가는 당시 시장가치에 36%의 프리미엄을 얹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그린은 아카디아의 영업이익을 두 배로 끌어올리고 은행 빚도 속히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아카디아 임원으로 인수를 승인한 로즈는 인수조건의 공정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개선된 경영성과 모두 효율성 증대에 기인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로즈는 그린이 납품업체들을 쥐어짠다는 세평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감독하는 주주가 없을 경우 좀더 공격적인 전술을 취할 수 있다. 흔히들 비상장 업체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린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바람을 향해 좀더 가까이 항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린도 납품업체를 쥐어짜는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적정가 이상은 지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 말이 ‘납품업체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뜻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손님이 적은 월요일 같은 때는 매장 직원 수를 줄이고 토요일처럼 붐비는 날은 늘렸다. 쇼핑백은 유럽산에서 반값인 중국산으로 바꿨다. BHS 회사 차량 700대 구매조건도 그린이 협상했다. 12억 달러에 이르는 연금운용이 불만족스러운 나머지 변화를 주기도 했다. 주가가 내리는 주식은 매각하거나 배당금 지급 주식과 부동산으로 대체했다.
그린이 절차를 간소화한 사례는 숱하다. 과거 한 달 걸리던 결재가 지금은 30분 만에 끝난다. 끝없이 이어지던 회의와 프레젠테이션은 이제 옛 얘기가 됐다. BHS 최고업무책임자(COO) 폴 코클리(Paul Coakley)는 “과거엔 업무시간 가운데 40%를 경영진 간 힘겨루기에 허비했다”고 전했다.
그린의 성공을 모두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BHS 지분 5% 소유자인 톰 헌터는 그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시샘이라고 표현했다. 헌터는 “그린에게 거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돈을 번 그에 대한 시기가 강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린의 초기 사업을 둘러싸고 좋지 않은 소문이 더러 나도는 것도 시기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그린은 자신에 대한 악평을 일축하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초기에 후회할 만한 일을 한두 가지 저지르게 마련”이라면서도 “하지만 일단 경력이 쌓이면 ‘옳은’ 방식으로든 ‘그릇된’ 방식으로든 일 처리가 습관화된다”고 들려줬다. 그린의 다음 표적은 무엇일까.
지난 몇 년 사이 영국의 양대 식료품 유통업체 아스다(Asda)와 테스코(Tesco)가 의류 부문으로 영역을 크게 넓혔다. 업계 4위 J 세인스버리(J Sainsbury) 인수로 아스다와 테스코를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린은 식료품 유통업에 대해 생각해본 바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BHS ·아카디아에 전력투구하겠다는 게 그린의 계획이다. 언젠가 아들(11)과 딸(13)에게 건실한 가족기업을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그는 “또 다른 협상을 위한 협상은 원치 않는다”며 “지금까지 일궈낸 것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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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내리는 영국 런던의 어느 화요일, 시계 바늘이 정오를 가리키고 있을 때 필립 그린(Philip Green ·52)은 한창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깃 없는 상의와 말끔히 개어 놓은 파스텔 색조의 스웨터를 노려보는 그에게 매장 매니저가 혼쭐나고 있었다. “이게 뭔가, 엉망이군. 형편없어.”
화사한 색상의 여성 의류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열을 내는 것은 세일 품목이 신상품과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에 거슬리는 핑크색 스커트와 하얀 재킷을 가리키며 또 한 마디 내질렀다. “도대체 정리가 안 돼 있어. 나아지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지고 있잖아.”
그린은 경호원을 대동한 채 옥스퍼드가(街) 매장에서 나오다 매니저에게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시 오겠네.” 일종의 경고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매니저가 답했다.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바로 시정하는 게 좋을 듯싶다. 그린은 모든 일을 자기 방식대로 처리하는 사람이다. 지난 4년 동안 그린은 두 소매체인을 되살려 놓았다.
현재 BHS로 널리 알려진 76년 역사의 백화점 체인 브리티시 홈 스토어스(British Home Stores)와 인기 의류 매장 톱숍(Topshop) ·톱맨(Topman)을 보유한 아카디아 그룹(Arcadia Group)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그린의 소매업 제국은 2,500개 매장과 직원 4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매출 51억 달러에 감가상각 ·이자 ·세금 공제 전 이익이 8억4,700만 달러다. 그린의 재산은 5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0만 달러짜리 요트 한 척, 4,500만 달러짜리 걸프스트림 자가용 제트기 한 대, 모나코 북부 몬테카를로에 있는 1,200만 달러 상당의 펜트하우스 등 씀씀이도 인색한 편은 아니다. 50번째 생일에는 왕년의 인기 가수 톰 존스와 로드 스튜어트를 불러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에서 성대한 파티도 열었다.
미국이라면 리얼리티 쇼에도 출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린의 고향 영국에서는 그에 대해 시큰둥하다. 졸부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다. 소매업계 전문가 스튜어트 로즈(Stuart Rose)는 “영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한 가지 있다”며 “그것은 바로 질투”라고 지적했다. 로즈는 그린의 아카디아 매입을 주선했다.
그린이 BHS ·아카디아를 급속히 정상화시키고, 매입 때문에 개인적으로 차입한 19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을 빠르게 갚아나가자 런던 금융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별 노력없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가 BHS ·아카디아를 터무니없는 헐값에 ‘훔쳐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린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헐값 매입이 아니라 의류업계에서 평생 쌓은 경험 덕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옷감만 만져봐도 가격을 알 수 있다. 코트들을 살펴본 뒤 다음 시즌 실패작이 무엇일지 정확히 집어내기도 한다. 그는 매장 배치에서 조명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관여한다. 요컨대 매니저들로서는 악몽 같은 존재다. 그는 “땅만 임대하고 나 몰라라 하는 지주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린이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은 36년 전이다. 고교 중퇴 후 집안 친척이 운영하는 런던의 한 신발 수입업체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27세에 그는 처음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됐다. 그 뒤 17년 동안 대단치는 않지만 성공과 좌절도 맛봤다.
그린은 1995년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영국 최대 스포츠용품 소매업체 올림푸스 스포츠(Olympus Sports)를 소매 ·금융서비스 업체인 시어스 그룹(Sears Group ·미국의 시어스와 무관)으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인수가격은 1파운드. 부채 3,000만 달러를 떠안는 조건이었다. 그린은 심장마비로 경영에 적극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3년 후 파트너들과 함께 올림푸스 스포츠를 5억5,000만 달러에 JJB 스포츠로 넘겼다. 그린이 챙긴 돈은 7,300만 달러였다.
몇 달 뒤 그린은 시어스 그룹의 나머지 부문에도 손을 뻗쳤다. 최근 미디어 업계 거물 콘래드 블랙(Conrad Black)의 텔레그래프 그룹(Telegraph Group) 신문사들을 인수한 억만장자 바클레이(Barclay) 형제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린은 적대적 인수로 시어스 그룹을 10억 달러에 거머쥐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분할 매각했다. 바클레이 형제와 함께 그가 거머쥔 돈은 3억4,000만 달러였다.
그린은 더 큰 먹이를 찾아나섰다. 2000년 초반 현재 가치로 133억 달러에 상당하는 자금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영국의 유서 깊은 백화점 체인 마크스 앤 스펜서(M&S)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린이 인수 의향을 공식 발표하기 며칠 전 부인 크리스티나가 4,000만 달러 상당의 M&S 주식 매집에 나서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그린은 감독 당국이 아내의 M&S 주식 매입을 이미 승인한 판에 M&S가 언론 플레이를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이 난리 치자 그린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M&S의 처사는 비열한 행동”이라며 “M&S가 장사꾼에게 회사를 넘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고 분개했다.
그린은 좌절하지 않고 영국 5위의 소매체인 BHS에 시선을 던졌다. BHS는 매장 156개에 총 매장 면적 12만4,000평을 보유하고 있었다. 취급 품목도 가정용품에서 신부 들러리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매출 17억 달러에 순익은 1억1,400만 달러에 그치고 있었다. 그린은 BHS가 질 좋은 기본 소비재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싶어하는 중산층 이하 계층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도 간파했다. 그는 바클레이스 은행(Barclays Bank)과 웨스트LB 은행의 지원 아래 2000년 5월 현금 3억8,000만 달러로 BHS 지분 94%를 인수했다. 이후 18개월 동안 하루 15시간씩 강행군하며 매장 재설계와 상품 재구성에 나섰다. 그 덕에 지금까지 배당금으로 인수 가격의 두 배를 뽑아낸데다 주식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
2002년 8월 그린은 아카디아를 노렸다. 아카디아는 매장 2,400개에서 매출 34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이익률이 문제였다. 그린은 스코틀랜드 은행(Bank of Scotland)의 도움으로 16억 달러에 아카디아 지분 대부분을 인수했다. 그린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털어낸 돈은 1억3,1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인수가는 당시 시장가치에 36%의 프리미엄을 얹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그린은 아카디아의 영업이익을 두 배로 끌어올리고 은행 빚도 속히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아카디아 임원으로 인수를 승인한 로즈는 인수조건의 공정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개선된 경영성과 모두 효율성 증대에 기인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로즈는 그린이 납품업체들을 쥐어짠다는 세평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감독하는 주주가 없을 경우 좀더 공격적인 전술을 취할 수 있다. 흔히들 비상장 업체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린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바람을 향해 좀더 가까이 항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린도 납품업체를 쥐어짜는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적정가 이상은 지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 말이 ‘납품업체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뜻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손님이 적은 월요일 같은 때는 매장 직원 수를 줄이고 토요일처럼 붐비는 날은 늘렸다. 쇼핑백은 유럽산에서 반값인 중국산으로 바꿨다. BHS 회사 차량 700대 구매조건도 그린이 협상했다. 12억 달러에 이르는 연금운용이 불만족스러운 나머지 변화를 주기도 했다. 주가가 내리는 주식은 매각하거나 배당금 지급 주식과 부동산으로 대체했다.
그린이 절차를 간소화한 사례는 숱하다. 과거 한 달 걸리던 결재가 지금은 30분 만에 끝난다. 끝없이 이어지던 회의와 프레젠테이션은 이제 옛 얘기가 됐다. BHS 최고업무책임자(COO) 폴 코클리(Paul Coakley)는 “과거엔 업무시간 가운데 40%를 경영진 간 힘겨루기에 허비했다”고 전했다.
그린의 성공을 모두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BHS 지분 5% 소유자인 톰 헌터는 그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시샘이라고 표현했다. 헌터는 “그린에게 거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돈을 번 그에 대한 시기가 강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린의 초기 사업을 둘러싸고 좋지 않은 소문이 더러 나도는 것도 시기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그린은 자신에 대한 악평을 일축하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초기에 후회할 만한 일을 한두 가지 저지르게 마련”이라면서도 “하지만 일단 경력이 쌓이면 ‘옳은’ 방식으로든 ‘그릇된’ 방식으로든 일 처리가 습관화된다”고 들려줬다. 그린의 다음 표적은 무엇일까.
지난 몇 년 사이 영국의 양대 식료품 유통업체 아스다(Asda)와 테스코(Tesco)가 의류 부문으로 영역을 크게 넓혔다. 업계 4위 J 세인스버리(J Sainsbury) 인수로 아스다와 테스코를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린은 식료품 유통업에 대해 생각해본 바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BHS ·아카디아에 전력투구하겠다는 게 그린의 계획이다. 언젠가 아들(11)과 딸(13)에게 건실한 가족기업을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그는 “또 다른 협상을 위한 협상은 원치 않는다”며 “지금까지 일궈낸 것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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