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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동시 취재 : 백화점의 大반격

韓-日 동시 취재 : 백화점의 大반격

최근 백화점의 매장 변화 바람을 주도하고 있는 편집매장.
할인점에 일방적으로 밀려 왔던 백화점이 변신을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 주변에 쌓여 있던 박스들을 없애는 사소한 변화부터, 명품 위주로 공간을 재배열하고, 성과 없는 패션쇼를 없애는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실행하고 있다.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는 국내 백화점들의 생존 전략과 요즘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일본 백화점들의 생존 비결을 비교·분석했다. <편집자> - 언젠가 서구 여러 나라를 둘러보던 달라이 라마는 “백화점은 20세기의 전시관”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로라하는 상품은 모두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사회가 시작된 이후 간헐적으로 열리던 박람회가 상설화되면서 시작된 백화점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전시장이었다. 1937년 11월 지하 1층 지상 6층의 화신백화점으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백화점 역사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백화점은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까지 했다. ‘백화점을 드나든다’는 말은 ‘괜찮게 산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백화점은 또 한국 경제의 발전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경제 발전에 따라 백화점은 불야성을 이뤘고 넘쳐나는 고객으로 날마다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고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요즘 백화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옛날 같지 않다”는 한숨 섞인 토로가 자주 나오고 있다. 불경기에 소비는 끝간 데 없이 떨어지는 데다 생각지도 않았던 경쟁자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휘황찬란한 불빛은 여전하지만 예전에 누렸던 위상은 물론 실속까지 점점 ‘어제’의 일이 되고 있다.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그렇다고 똑 소리 나는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고민은 하나다. ‘그 많던 고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고객들은 할인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의 판세는 이미 지난해 11월 역전됐다. 2000년 백화점 매출액은 15조31억원으로 대형 할인점의 10조5,050억원보다 42.8% 많았으나, 2003년엔 대형 할인점이 19조2,150억원으로 백화점의 17조1,980억원보다 11.7% 많았다. 점포 수도 4월 말 현재 할인점은 239개에서 256개로 17곳이 늘었지만, 백화점 점포수는 86개로 지난해 4월보다 1개가 줄었다. 지난해 각 백화점마다 거의 연중 매일이라고 할 수 있는 153∼258일까지 바겐세일을 한 실적이 이 정도다. 이 같은 수치는 백화점에서 할인점으로 ‘쇼핑 이동’이 뚜렷하게 일어나면서 구조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통계청은 “몇년 전만 해도 백화점 매출 동향은 소비동향을 가늠하는 지표였지만 소비자들의 소비행태가 다양해지면서 그 의미가 반감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올해 매출액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잡았는데도 (목표액) 근처에도 못 갈 것 같다”고 토로했다. 매출 신장은커녕 마이너스 실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윤종언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백화점은 의류·잡화 등 가격탄력성이 큰 상품이 전체 매출의 70%나 돼 경기에 민감하다”며 “이런 이유로 매출변동폭이 경기변동폭보다 항상 크다”고 지적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할인점은 전체 매출의 80%가 생필품이다. 또 백화점은 인구 50만명이 넘어야 출점을 하는 데 반해, 할인점은 25만명 이상이면 출점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백화점이 설 땅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목표 고객 설정에 대한 지적도 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몇년 전 미국의 백화점 쇠퇴에 대해 “비(非)고객을 경시한 대가”라며 “백화점들은 모든 소비자의 30%가량에 해당하는 고객층 이외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화를 자초했다는 얘기다. 드러커가 말하는 비고객이란 자신들이 상대하지 않았던 잠재고객을 말하는데 실제로 그들은 모두 할인점의 고객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백화점의 전성시대는 가버린 것일까? 백화점들은 고개를 흔든다. 김봉호 신세계백화점 마케팅 실장은 “대세가 할인점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백화점은 백화점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가까워질수록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직 희망은 있다” 실제로 백화점들의 변신은 할인점과의 차별화에서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의 향토백화점을 마지막으로 전국의 백화점 시장을 평정, ‘전국 백화점 빅3’시대를 연 한 백화점들(롯데·신세계·현대)은 올해부터 할인점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공세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할인점 따돌리기와 할인점 따라잡기다. 불경기는 어쩔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적’은 잡겠다는 의도다. 백화점들의 할인점 따돌리기 전략의 키워드는 고급화다. 지금까지 고급품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물건을 취급해 왔던 것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명품 전문 공간으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다. 고객과 관련한 분야에서는 타깃층도 한층 명확히 해 “종전의 중상·상류층에서 상류층 대상의 명품 특화로 주 타깃을 정하는 흐름이 뚜렷하다”(현대백화점 산하의 현대유통연구소 김인호 소장). 최근 백화점간 해외 명품 유치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 타깃층을 명확하게 하는 대신 상류층 여성에게 집중됐던 마케팅을 가족으로 넓히는 작업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자녀를 위한 입시설명회나 쇼핑에 동행한 남편이 짜증을 내지 않도록 휴게실을 대폭 늘리는 것이 좋은 예다. 이른바 ‘패밀리형 고객’ 유인책이다. 실제로 얼마 전 현대백화점이 문화센터 회원과 일반고객의 자사 카드 사용액을 분석한 결과 문화센터 회원의 매출 기여도가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을 중심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호텔급 서비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김봉호 실장은 “고비용 구조를 갖고 있는 백화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고부가가치밖에 없다”며 “많이 사줄 만한 고객에게 백화점만 가지고 있는 대면(對面)판매를 활용하는 방법이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앉아서 장사하던 체질 개선이 관건 변화는 매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특히 한동안 골칫거리였던 식품매장의 변화가 눈여겨볼 만하다. 사회적으로 ‘먹는 것’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면서 수익성과 집객(集客)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하나의 공간에 2개 이상의 브랜드를 모아 판매하는 ‘편집매장’(멀티숍)이 등장해 고객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게 하고 있다. 가장 움직임이 활발한 신세계는 본점을 비롯, 앞으로 개점하는 모든 점포를 1만평 이상으로 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주변 할인점을 압도하기 위해서다. 점포별·지역별 차별화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다. 고급화를 지향할 수 없는 곳은 아예 대형 아울렛 등으로 포지셔닝, 할인점을 따라잡겠다는 것. 할인점 따라잡기 전략 대상은 VIP 고객들이 적은 영등포나 서울 근교, 지방도시 등이다. 현대백화점 성남점 같은 곳은 아예 아울렛으로 상호를 바꿨고, 롯데는 지난해 개관한 영플라자를 ‘동대문의 활기가 느껴지는 백화점’으로 운영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부활을 노리는 백화점의 고민이 쉽게 풀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앉아서 장사하는 습관에 길들여진 체질 때문이다. 특히 고급화 전략의 핵심은 자신만 취급하는 브랜드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국내 백화점들은 그동안 PB(백화점 자체 상표) 상품 개발을 거의 하지 않아 경쟁력이 없는 실정이다. 박진 LG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 백화점의 경우 PB 상품이 전체 매출의 40∼50%를 차지하고 우수 상품을 발굴해 직매입하는 능력을 키워온 데 반해 국내 백화점들은 그렇지 못했다”며 “시장 규모에 비해 백화점이 많은데다 해외 명품의 경우 마진이 적어 수익성에는 도움이 안 돼 상당 기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제 롯데경제연구실 수석연구원도 “현재 백화점의 하락세가 단순히 경기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는 데 근본적인 고민이 있다”며 “남성 고객 같은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면서 고급 상품과 이미지 판매라는 백화점 본업에 치중하는 전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만약 백화점의 변화가 겉모양 바꾸기에 그친다면 달라이 라마는 한국의 백화점을 ‘20세기 박물관’으로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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