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되려면 ‘마케팅 전문가’ 돼라
CEO 되려면 ‘마케팅 전문가’ 돼라
삼성그룹 계열사 입사 때부터 임원을 꿈꾸던 40대 후반의 한 부장. 그는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임원 승진이 좌절되자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위로는 나이 어린 상사들, 아래로는 새로운 사고로 무장한 젊은 직원들을 모시느라 하루하루가 피곤하다.” 경제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의 40대들은 늘 눈앞의 업무 처리에 급급했고, 요즘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배우느라 허덕이다가 결국 구조조정으로 밀려나고 있다.
30대 역시 40대보다 조금 여유가 있어 보일 뿐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2000년 한국 기업내 중간 간부(대리·과장·차장)에 해당하는 35∼45세의 비율은 26%였다. 2010년엔 35%가 될 전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임원으로 승진할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디지털시대의 간부진화론’을 쓴 가재산 조인스에이치알 대표는 “금융계와 대기업의 경우 30∼40대가 전체 직원의 70∼77%를 차지한다”며 “각 기업에서 이 연령대로 진입하는 직원들이 해마다 평균 0.75%포인트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임원으로 진급하는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예상했다.
어느 시대보다 치열한 임원 경쟁에 시달릴 30대와, 이사 진급과 퇴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40대 초반의 중간 간부들 중 누가 샐러리맨의 꿈인 ‘별’(이사 진급)을 달 수 있을까.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최근 국내 증시에 상장된 6백68개 업체의 임원 1만5백42명(등기임원 4천7백74명, 집행임원 5천7백68명)을 분석한 결과 2004년 한국 기업의 임원 표준은 김씨 성을 가진 52세,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이공계열을 졸업하고 강남구에 거주하며 취미로 골프를 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표준은 표준일 뿐이다. 시대에 따라 임원의 기준은 변화해왔고, 변화하고 있어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발간한 ‘경영인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재미있는 ‘흐름’이 눈에 띈다. 우선 임원들의 연령대가 견고하게 50대 초반과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기업의 임원 연령이 젊어지고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다소 상반된다. 올해 임원의 평균 연령은 52세, 그러나 95년과 96년에도 임원의 평균 연령은 52세였다.
94년 평균 53세였던 임원 연령이 젊어지자 당시 한국 사회는 임원들이 젊어지고 있다고 떠들었지만, 97년부터 이들의 평균 연령은 조금씩 늘어나 2002년 54세까지 증가했다. 결국 10년의 변화를 살펴보면 50대 초·중반을 오르내리고 있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대와 사회가 변해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리더십을 발휘해 회사의 목표를 성취시켜나가는 ‘적정 연령’에 이르려면 일반적으로 50대 초·중반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원들의 출신 대학을 살펴보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전체 임원의 구성비 순서) 등 이른바 3개 명문대 출신이 전체 임원 중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10년 추이를 보면, 95년 44%에 달한 비율이 99년 51%까지 증가하다가 이후 하락해 올해 42%까지 줄었다. 언뜻 보면 3개 명문대 출신이 줄면서 타 대학 출신이 그 자리를 메웠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국내 대학 출신이 정체상태를 보인 반면 외국 대학과 대학원 출신 임원들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었고, 외국인 임원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 95년 8%였던 외국 대학 출신 임원들은 올해 14%에 달했고, 등기임원만 따진다면 외국 대학 출신 임원은 10명 중 2명(20.2%)꼴로 급증했다. 99년까지 1%대를 맴돌던 외국인 임원 비율도 2000년부터 증가해 올해 3.7%에 달했다(등기임원만 비교). 한국이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일섭 이화여대 경영부총장은 “과거 순혈주의를 지향했던 시절 외국 유학 등으로 자리를 뜨면 회사로 돌아오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기업이 개방화된 환경에 노출되면서 외국 대학 출신이나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임원으로 등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신 대학의 변화뿐 아니라 전공계열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95년부터 2002년까지 지난 8년 동안 회사의 중역과 대표이사는 상경계열 출신이 장악했다. 그 뒤를 이어 이공계열과 법정계열이 임원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이공계열 출신이 대거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임원 비율 1위를 차지했다. 과거 기술력이 약해 해외에서 자본을 들여오고 기술을 사왔던 때는 재무이론과 기획력을 갖춘 상경계열 출신이 사내에서 득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술 개발이 회사의 존폐를 좌우하는 요즘은 기술 개발의 경험과 현장을 알고 있는 이공계 출신이 임원으로 발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전자회사들이 세계 초우량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회사가 커졌고 이에 따라 이공계 출신이 대거 임원으로 발탁되고 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인문계열 출신의 중간 간부들이 임원으로 발탁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임원 중 8%를 밑돌던 인문계열 출신 임원들은 지난해 12%, 올해 12.6%로 증가한 반면 10% 이상 유지하던 법정계열 출신 임원들은 지난해 8.3%에 이어 올해 7.1%로 하락 중이다. 대표이사로 승진하는 임원의 경우도 인문계열 출신들이 법정계열을 누르고 대거 발탁됐다. KT 사외이사이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윤정로 교수는 “과거 기업은 정부를 상대로 하는 일이 많아 규정과 법을 잘 아는 법정계열 출신이 임원이 됐지만 지금은 기업의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여서 인문계열 출신이 약진하고 있다”며 “고객을 즐겁게 해주고 감동시키는 것은 인문학 출신이 제격”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4년 동안 창업자의 일가족이 임원이나 대표이사가 되는 비율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01년부터 출신별 임원 현황을 파악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창업자의 일가족은 전체 임원 중 13.7%였지만, 올해는 16.3%다. 대표이사도 마찬가지다. 2001년 전체 대표이사 중 37.1%가 창업자 직계 자손이던 것이 2004년엔 38.3%로 늘어났다. 재계가 늘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는 ‘가족기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임원의 경우 재무파트 출신이 중용되었고, 대표이사의 경우 영업·마케팅 부서 출신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재무쪽 출신은 임원 10명 중 2명이었고, 영업·마케팅 출신 임원은 1명꼴이었으나 대표이사의 경우는 그 반대다.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은 “대표이사의 역할이 시장 개척이고, 임원의 경우 그에 따른 예산을 기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분석했다.
임원들의 취미로는 골프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으며 등산과 바둑, 그리고 독서 등의 순으로 여가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공인회계사·세무사·경영지도사·기술사 등 자격증을 소지한 중역이나 대표이사가 많아지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95년엔 1백명의 임원 중 5명만이 자격증을 갖고 있었지만, 이 비율은 꾸준히 늘어 올해는 1백명 중 13명으로 늘었다. 이공계 출신이 임원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기술사 자격을 갖춘 임원이 늘어났고, 금융계 임원들의 경우 공인회계사·재무분석사·증권분석사 등 금융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어난 이러한 중요 변화를 감안해 미래를 예상한다면 누가 한국 기업을 이끌어갈 중역과 대표이사가 될까. 이미 임원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지망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가구 전문회사 퍼시스에서 해외 사업을 담당하는 김원형 상무는 “요즘 젊은 간부들은 언어구사 능력이 뛰어나고 생각도 자유로운 장점이 있는 반면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는 근성은 약하다”고 지적한다. 김상무는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임원의 자질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근성과 열정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의 조성식 전무는 자신의 역량을 확대시켜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후배들에게 부탁한다. 예컨대 엔지니어의 경우 회계·재무이론 등 경영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사무직 직원들은 기술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 임원이 되면 일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한국GE 회장을 역임한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은 미래의 임원은 ‘4E’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4E’란 열정(Energy)·인재육성(Empowerment)·결단성(Edge), 그리고 실천력(Execution)을 말한다. 열정이란 무슨 일에든지 자신감을 갖고 뛰어드는 자세다. 강회장은 “회사는 유능한 사원에게 늘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고 검증한다. 몇번 어려운 일을 해내면 그는 CEO가 된다”고 말했다. 반면 늘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는 직원들은 맡은 일에 안주하게 되고 일의 범위가 줄어들어 결국 조기에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강회장은 ‘4E’를 고루 갖춘 한국의 CEO로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나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을 꼽으며, “임원이 되려면 관리형보다는 리더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당신이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표를 참조할 것).
뛰어난 인재를 발탁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재육성은 앞으로 임원들이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들면서 늘 변화의 위험이 상존하며 이런 변화를 앞장서 끌고 가는 사람이 기업의 최대 자산이다. KAIST의 윤정로 교수는 “임원은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코디네이터(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교수는 과거 한국 기업은 축구에서 드리블을 잘 하는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켰지만, 이젠 드리블뿐 아니라 패스까지 잘 하는 직원을 임원으로 발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일섭 이화여대 경영부총장은 시장의 변화를 읽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장 전문가’가 회사 중역으로, CEO로 발탁될 것으로 예상한다. 김부총장은 “고 정주영 회장처럼 재벌 1세대는 앞장서 일을 밀어붙이는 ‘깃발형’이었고,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재벌 2세대는 한발 뒤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코치형’이었다”며 “3세대는 시장에 대한 통찰력, 풍부한 상식, 그리고 사물을 넓게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본 마쓰시타 전기산업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불황기야말로 호황기에 하기 어려운 인재 발굴과 육성의 호기”라고 말한 바 있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요즘 한국 기업의 30대와 40대 중간 간부들에겐 회사에 기여해 오너의 눈에 띌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기업의 임원진은 차기 중역으로 낙점할 젊은 인재 리스트를 수첩에 적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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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역시 40대보다 조금 여유가 있어 보일 뿐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2000년 한국 기업내 중간 간부(대리·과장·차장)에 해당하는 35∼45세의 비율은 26%였다. 2010년엔 35%가 될 전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임원으로 승진할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디지털시대의 간부진화론’을 쓴 가재산 조인스에이치알 대표는 “금융계와 대기업의 경우 30∼40대가 전체 직원의 70∼77%를 차지한다”며 “각 기업에서 이 연령대로 진입하는 직원들이 해마다 평균 0.75%포인트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임원으로 진급하는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예상했다.
어느 시대보다 치열한 임원 경쟁에 시달릴 30대와, 이사 진급과 퇴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40대 초반의 중간 간부들 중 누가 샐러리맨의 꿈인 ‘별’(이사 진급)을 달 수 있을까.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최근 국내 증시에 상장된 6백68개 업체의 임원 1만5백42명(등기임원 4천7백74명, 집행임원 5천7백68명)을 분석한 결과 2004년 한국 기업의 임원 표준은 김씨 성을 가진 52세,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이공계열을 졸업하고 강남구에 거주하며 취미로 골프를 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표준은 표준일 뿐이다. 시대에 따라 임원의 기준은 변화해왔고, 변화하고 있어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발간한 ‘경영인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재미있는 ‘흐름’이 눈에 띈다. 우선 임원들의 연령대가 견고하게 50대 초반과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기업의 임원 연령이 젊어지고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다소 상반된다. 올해 임원의 평균 연령은 52세, 그러나 95년과 96년에도 임원의 평균 연령은 52세였다.
94년 평균 53세였던 임원 연령이 젊어지자 당시 한국 사회는 임원들이 젊어지고 있다고 떠들었지만, 97년부터 이들의 평균 연령은 조금씩 늘어나 2002년 54세까지 증가했다. 결국 10년의 변화를 살펴보면 50대 초·중반을 오르내리고 있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대와 사회가 변해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리더십을 발휘해 회사의 목표를 성취시켜나가는 ‘적정 연령’에 이르려면 일반적으로 50대 초·중반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원들의 출신 대학을 살펴보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전체 임원의 구성비 순서) 등 이른바 3개 명문대 출신이 전체 임원 중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10년 추이를 보면, 95년 44%에 달한 비율이 99년 51%까지 증가하다가 이후 하락해 올해 42%까지 줄었다. 언뜻 보면 3개 명문대 출신이 줄면서 타 대학 출신이 그 자리를 메웠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국내 대학 출신이 정체상태를 보인 반면 외국 대학과 대학원 출신 임원들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었고, 외국인 임원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 95년 8%였던 외국 대학 출신 임원들은 올해 14%에 달했고, 등기임원만 따진다면 외국 대학 출신 임원은 10명 중 2명(20.2%)꼴로 급증했다. 99년까지 1%대를 맴돌던 외국인 임원 비율도 2000년부터 증가해 올해 3.7%에 달했다(등기임원만 비교). 한국이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일섭 이화여대 경영부총장은 “과거 순혈주의를 지향했던 시절 외국 유학 등으로 자리를 뜨면 회사로 돌아오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기업이 개방화된 환경에 노출되면서 외국 대학 출신이나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임원으로 등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신 대학의 변화뿐 아니라 전공계열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95년부터 2002년까지 지난 8년 동안 회사의 중역과 대표이사는 상경계열 출신이 장악했다. 그 뒤를 이어 이공계열과 법정계열이 임원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이공계열 출신이 대거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임원 비율 1위를 차지했다. 과거 기술력이 약해 해외에서 자본을 들여오고 기술을 사왔던 때는 재무이론과 기획력을 갖춘 상경계열 출신이 사내에서 득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술 개발이 회사의 존폐를 좌우하는 요즘은 기술 개발의 경험과 현장을 알고 있는 이공계 출신이 임원으로 발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전자회사들이 세계 초우량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회사가 커졌고 이에 따라 이공계 출신이 대거 임원으로 발탁되고 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인문계열 출신의 중간 간부들이 임원으로 발탁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임원 중 8%를 밑돌던 인문계열 출신 임원들은 지난해 12%, 올해 12.6%로 증가한 반면 10% 이상 유지하던 법정계열 출신 임원들은 지난해 8.3%에 이어 올해 7.1%로 하락 중이다. 대표이사로 승진하는 임원의 경우도 인문계열 출신들이 법정계열을 누르고 대거 발탁됐다. KT 사외이사이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윤정로 교수는 “과거 기업은 정부를 상대로 하는 일이 많아 규정과 법을 잘 아는 법정계열 출신이 임원이 됐지만 지금은 기업의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여서 인문계열 출신이 약진하고 있다”며 “고객을 즐겁게 해주고 감동시키는 것은 인문학 출신이 제격”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4년 동안 창업자의 일가족이 임원이나 대표이사가 되는 비율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01년부터 출신별 임원 현황을 파악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창업자의 일가족은 전체 임원 중 13.7%였지만, 올해는 16.3%다. 대표이사도 마찬가지다. 2001년 전체 대표이사 중 37.1%가 창업자 직계 자손이던 것이 2004년엔 38.3%로 늘어났다. 재계가 늘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는 ‘가족기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임원의 경우 재무파트 출신이 중용되었고, 대표이사의 경우 영업·마케팅 부서 출신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재무쪽 출신은 임원 10명 중 2명이었고, 영업·마케팅 출신 임원은 1명꼴이었으나 대표이사의 경우는 그 반대다.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은 “대표이사의 역할이 시장 개척이고, 임원의 경우 그에 따른 예산을 기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분석했다.
임원들의 취미로는 골프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으며 등산과 바둑, 그리고 독서 등의 순으로 여가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공인회계사·세무사·경영지도사·기술사 등 자격증을 소지한 중역이나 대표이사가 많아지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95년엔 1백명의 임원 중 5명만이 자격증을 갖고 있었지만, 이 비율은 꾸준히 늘어 올해는 1백명 중 13명으로 늘었다. 이공계 출신이 임원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기술사 자격을 갖춘 임원이 늘어났고, 금융계 임원들의 경우 공인회계사·재무분석사·증권분석사 등 금융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어난 이러한 중요 변화를 감안해 미래를 예상한다면 누가 한국 기업을 이끌어갈 중역과 대표이사가 될까. 이미 임원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지망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가구 전문회사 퍼시스에서 해외 사업을 담당하는 김원형 상무는 “요즘 젊은 간부들은 언어구사 능력이 뛰어나고 생각도 자유로운 장점이 있는 반면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는 근성은 약하다”고 지적한다. 김상무는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임원의 자질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근성과 열정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의 조성식 전무는 자신의 역량을 확대시켜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후배들에게 부탁한다. 예컨대 엔지니어의 경우 회계·재무이론 등 경영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사무직 직원들은 기술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 임원이 되면 일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한국GE 회장을 역임한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은 미래의 임원은 ‘4E’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4E’란 열정(Energy)·인재육성(Empowerment)·결단성(Edge), 그리고 실천력(Execution)을 말한다. 열정이란 무슨 일에든지 자신감을 갖고 뛰어드는 자세다. 강회장은 “회사는 유능한 사원에게 늘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고 검증한다. 몇번 어려운 일을 해내면 그는 CEO가 된다”고 말했다. 반면 늘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는 직원들은 맡은 일에 안주하게 되고 일의 범위가 줄어들어 결국 조기에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강회장은 ‘4E’를 고루 갖춘 한국의 CEO로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나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을 꼽으며, “임원이 되려면 관리형보다는 리더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당신이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표를 참조할 것).
뛰어난 인재를 발탁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재육성은 앞으로 임원들이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들면서 늘 변화의 위험이 상존하며 이런 변화를 앞장서 끌고 가는 사람이 기업의 최대 자산이다. KAIST의 윤정로 교수는 “임원은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코디네이터(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교수는 과거 한국 기업은 축구에서 드리블을 잘 하는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켰지만, 이젠 드리블뿐 아니라 패스까지 잘 하는 직원을 임원으로 발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일섭 이화여대 경영부총장은 시장의 변화를 읽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장 전문가’가 회사 중역으로, CEO로 발탁될 것으로 예상한다. 김부총장은 “고 정주영 회장처럼 재벌 1세대는 앞장서 일을 밀어붙이는 ‘깃발형’이었고,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재벌 2세대는 한발 뒤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코치형’이었다”며 “3세대는 시장에 대한 통찰력, 풍부한 상식, 그리고 사물을 넓게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본 마쓰시타 전기산업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불황기야말로 호황기에 하기 어려운 인재 발굴과 육성의 호기”라고 말한 바 있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요즘 한국 기업의 30대와 40대 중간 간부들에겐 회사에 기여해 오너의 눈에 띌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기업의 임원진은 차기 중역으로 낙점할 젊은 인재 리스트를 수첩에 적어놓을 것이다.
‘재벌 3세대’ 변해야 산다 |
지배구조 개선 ·기술 혁신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시장 압력 거세질 듯 김 광 수 모든 기업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의 이상적인 자격 요건은 사실 없다. 나라와 시대, 그리고 경제 환경의 변화와 업종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첨단기술 산업 분야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며 기술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해 전문성과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신속한 의사결정 능력을 지닌 CEO의 1인 중심 의사결정 체제다. 일본은 CEO의 기술적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내부 의견조정 능력과 사업의 위험을 가장 잘 줄일 수 있는 역량이 더 높이 평가된다.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CEO 개인보다는 집단 의사결정 체제로 되어 있어서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CEO들의 공통점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기업 이익 향상이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하며,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 기업은 어떤가. 과거 고도성장 시기, 한국 기업은 재벌 오너 중심의 창업 1세대 경영 체제였다. 당시 기술력이 부족해 자체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위험을 질 수 없었던 국내 기업들은 금융 차입을 통한 자본 도입에 목숨을 걸었다. 이런 이유로 기술적 전문성보다는 사업을 만들어 밀어붙일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각화된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종합성이 CEO의 중요한 자질이었다. 상경계열이나 법정계열 출신 CEO가 많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재벌 대기업의 창업 1세대가 창업 2세대로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창업 1세대를 ‘백화점식 사업 다각화를 주도한 세대’라고 한다면 창업 2세대는 ‘기술 개발을 담당한 세대’다. 예컨대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과 가신 CEO들이 삼성 그룹의 기반을 이룩했다면, 이건희 회장과 가신 CEO들은 반도체와 휴대폰·평판디스플레이로 대표되는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현대의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가신 CEO들이 현대를 일으켜 세웠다면,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과 가신 CEO들은 한국의 자동차 기술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재벌 2세는 ‘창업 2세’다. 이제 한국의 재벌 그룹은 창업 2세대에서 3세대로 승계되는 시기를 맞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앞으로 한국 경제에서 재벌 그룹의 위상과 일반 국민들의 이미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점이다. 한국 경제 전체로서도 중요한 관심 사항이다. 3세대 승계와 관련해 지배구조 등 많은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예상되지만 재벌 그룹이 한국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세적으로는 기술 혁신의 주역으로 이공계 CEO들의 비중과 역할이 더욱 늘어날 것은 틀림없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시장의 압력이 높아질 것도 확실하다. 따라서 3세대 CEO들은 사회의 의식 변화에 맞추어 경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같은 경쟁 환경과 사회적 요구의 변화에 대해 재벌 그룹 3세대와 그 가신 CEO들이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수행해야 할 역할과 자격 요건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온 것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for NW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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