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화석연료만한 에너지 아직 없다

화석연료만한 에너지 아직 없다

The Price Is Wrong

내연기관의 시대는 끝났는가. 미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시대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식자들 사이에서 대체 에너지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재생 가능 에너지(예를 들면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가 상업성을 가지려면 유가가 훨씬 더 높아져야 할 것이다. 그 에너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의 취향이나 시장 여건이 아니라 정부 정책이라는 뜻이다.

석유회사들은 경제성만 맞는다면 어떤 에너지원이라도 사용할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석유를 퍼올리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로부터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산에 따르면 1kw의 태양광 발전 비용은 석유 발전 비용의 최소 다섯배에 달한다. 태양광 발전은 또 석탄·천연가스 같은 더 값싼 화석연료에 비해 훨씬 더 경쟁력이 떨어지며 한계에 다다른 기술에 의존한다. 태양광 발전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면 혁신적인 신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날이 오려면 적어도 20년은 기다려야 한다. 경제성 측면에서는 풍력과 생물자원(biomass)이 훨씬 더 유리하지만 이들은 대량의 에너지 공급에 한계가 있다.

많은 에너지 산업가들은 원자력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원자력의 가격 경쟁력에 대한 그릇된 분석에 의존한다. 핵폐기물을 둘러싼 정치적 우려를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생산자들이 실제 핵발전 비용을 정확하게 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핵발전소의 폐쇄 비용은 새로 건설하는 비용과 거의 맞먹는다. 핵발전 회사들이 현재의 발전소 폐쇄 계획을 지연시키기 위해 전세계에서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이브리드 주택과 자동차 같은 것들에 관한 막연한 기대도 많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휘발유를 적게 먹는다고 하지만 연료절감분에 비해서는 여전히 가격이 비싸다. 그래도 그 갭이 좁혀지고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같은 논리의 맹점은 다른 경쟁기술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내연기관도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디젤 엔진 메이커들이 앞다퉈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디젤 엔진의 연비는 하이브리드와 거의 맞먹지만 소비자들에게는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 디젤은 또한 휘발유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30~40% 적다.

결론은 실제 유가가 아무리 비싸졌다 하더라도 화석연료의 시장 지배력에 정면으로 도전할 만한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시장의 힘으로는 사회의 석유·가스·석탄 소비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런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정부뿐이다. 그리고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이후 구미에서는 에너지 부문의 연구·개발(R&D)을 위한 공적 자금지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일본·독일·덴마크를 비롯한 극소수 국가를 제외하고는 선진 공업국 전반에 걸쳐 대체 에너지원 생산을 위한 인센티브와 보조금이 감소했다.

스포츠다목적차량(SUV)은 미국의 석유수요가 계속 급증하는 주된 요인이다. 그러나 미국의 공공정책은 미국인들의 SUV 선호 추세를 계속 장려하는 듯하다. 얼토당토 않은 법규정 때문에 SUV가 경트럭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승용차 배기가스 배출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휘발유에 대한 미국의 평균적인 세금 총액은 25%인 반면 일본은 50%, 서유럽은 70% 이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에 대한 비난은 미국인의 생활양식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지며 그것은 정치인들에게는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유럽도 새로운 에너지원의 도입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예를 들어 고율의 휘발유세는 에너지 절약의 촉매제 역할을 하지만 대다수 유럽 정부에는 세번째 또는 네번째의 커다란 수입원으로 꼽힌다. 따라서 정책입안자들에게는 이것이 현재의 화석연료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양날의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더 깨끗한 대안으로 전환할 경우 조세수입이 줄어드는 한편 그 전환을 보조하기 위한 지출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사회로 향한 길은 분명하다. 정치인들이 이같은 목표를 진지하게 여긴다면 본격적 해결책은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석유제품에 대한 증세(增稅) , 자동차 메이커들에 대한 더 엄격한 연비와 배출기준의 적용, 중고차 폐차와 더 깨끗한 신차 구입을 위한 인센티브를 함께 실시하는 것이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교통 부문이다.

앞으로 25년간 세계 석유소비 증가의 약 80%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치들은 자동차 메이커에는 신차에 대한 연구·개발·생산에 박차를 가하도록, 그리고 소비자들에게는 그 신차를 구입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최선의 길을 안다고 해서 사회가 반드시 그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탈리아의 석유·가스 회사 에니의 기업전략 담당 그룹 선임 부사장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서울경제진흥원, 2024년 중기벤처부·산업부 장관 표창

2삼성바이오에피스, 차기 수장에 김경아 내정...고한승 삼성전자로

3"콧물 찍, 재채기도? 반려견 면역력 이렇게 하세요"

4트럼프, '관세전쟁' 주도 무역대표부 대표에 '그리어' 내정

5진에어, ‘블랙프라이데이’ 진행...국제선 최대 15% 할인

6테일즈런너RPG, 사전 공개 서비스 시작

7현대차, 인도네시아 EV 충전 구독 서비스 시작

8베이글코드, 2024년 ‘벤처천억기업’ 선정

9블랙스톤, 산업용 절삭공구 업체 제이제이툴스 인수

실시간 뉴스

1서울경제진흥원, 2024년 중기벤처부·산업부 장관 표창

2삼성바이오에피스, 차기 수장에 김경아 내정...고한승 삼성전자로

3"콧물 찍, 재채기도? 반려견 면역력 이렇게 하세요"

4트럼프, '관세전쟁' 주도 무역대표부 대표에 '그리어' 내정

5진에어, ‘블랙프라이데이’ 진행...국제선 최대 15%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