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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로 추락하는 평범한 아이들

범죄자로 추락하는 평범한 아이들

얼마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은 고교 2학년 때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비행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고 결국 연쇄 살인으로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지난 8월 경찰관을 살해한 이학만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성적이 상위권을 유지하는 모범생이었으나 불량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문제아가 됐고, 결국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렇듯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자들도 실상은 청소년 시절, 별 것 아닌 범죄로 시작한다. 깜찍한 하트 모양의 분홍색 목걸이를 한 김지연(17·가명)양을 수원보호관찰소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을 꾸미는 데 관심이 많고 생기발랄한 평범한 여고생으로 알았을 것이다. 툭 치면 쓰러질 것처럼 가냘픈 김양이 얼마전 놀이공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중학생들의 돈을 빼앗다가 경찰관에게 붙들렸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왜 그랬을까. “엄마는 내가 입고 싶은 옷뿐 아니라 머리 스타일·화장하는 것도 싫어해요. 그래서 가출했어요. 돈이 필요하니까 찜질방에서 자는 어른들의 주머니에 손을 대기도 했고 길거리에서 돈을 뺏기도 했죠.”

처음 보는 낯선 기자 앞에서도 김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이 저지른 ‘죄’를 낱낱이 실토했다. “남의 돈을 훔치거나 뺏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알아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게 많은 걸 어떻게 해요”라고 주저없이 대꾸했다. 옆에서 잠자코 딸의 얘기를 듣고 있던 김양의 어머니는 “부모는 1백만원밖에 벌지 못하는데 지연이는 3백만원 버는 부모를 원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지연이가 저지른 죄를 사춘기에서 오는 심리적 방황 탓으로 돌린다. 한림대에서 범죄심리학을 가르치는 조은경 교수는 “아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왜 나쁜지 모른다. 오토바이를 훔쳐도 다시 가져다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른들도 어렸을 때 동네 문방구나 수퍼마켓에서 지우개나 사탕 한번 ‘슬쩍’했거나 친구들의 그런 행동을 지켜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과 부모에게 들키면 눈물이 쏙 나오도록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때의 치기는 잊어버리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자녀들 교육시키면서 평범한 시민으로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과거 아이들과는 다르다. 갖고 싶은 물건이 운동화 따위가 아니라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아니면 디지털 카메라나 고가의 휴대폰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갖겠다’는 집착이 과거의 아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수원보호관찰소에서 만난 지연이는 왜 명품이 갖고 싶은지 이렇게 말했다. “버버리만 입고 다니는 친구가 있어요.

돈이 많아서 택시를 타면 그 친구가 다 계산해요. 나도 버버리 입고, 택시비도 내고 싶어요. 그렇지 못하면 꿀리거든요.” 조은경 교수는 “상대적 결핍감은 가난하게 사는 아이들에게 더욱 심각하다”며 “명품만 입고 나오는 탤런트들,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에 노출된 아이들은 원조교제를 해서라도, 남의 돈을 뺏어서라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요즘 청소년 범죄자들은 돈을 위해 친구를 팔기도 한다. 최근 전북 익산경찰서는 친구들을 협박해 원조교제를 알선한 혐의로 김모(15)양 등 여중생 4명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양 등 4명은 지난 7월 초부터 50일 동안 최모(15)양 등 같은 학교 2학년 친구들 6명을 협박해 인터넷 채팅을 통해 남성 50명과 1백차례의 원조교제를 알선했고, 대가로 받은 1천만원을 가로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아직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이렇듯 욕망과 행동은 앞서지만 생각은 못미치다 보니 청소년들은 범죄에 늘 노출돼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6만∼7만명의 청소년들이 새롭게 전과자가 되고 있다. 연세대 법학과 전지연 교수는 “최근 소년 범죄의 두드러진 특징은 폭력범과 강력범의 비율이 낮아졌고, 대신 재산범이나 교통사범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건을 훔치거나 돈을 빼앗고, 빼돌린 물건을 팔거나 사기를 치는 경제적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얘기다.

경찰에 붙잡힐 당시만 해도 자신의 죄를 후회한 소년범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오면 ‘죄를 지어도 별거 아니구나’라고 생각한다. 경찰서와 검찰청을 들락거리면서 숨죽이며 받았던 조사에 대한 기억은 점차 잊혀지고 문제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학교와 친구들로부터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끼리 만나 본격적으로 성인 범죄자의 길로 접어든다. 실제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1년 동안 소년범 재범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10년 전 20%대에 머물렀던 재범률은 98년 이후 33%로 껑충뛰었고 최근 35%대를 유지하고 있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죄를 저지른 초범 청소년들이 재범·3범의 길로 빠져드는 것을 막는 것은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 수십명을 살인한 지존파·막가파로 불리는 범죄 조직원들은 중·고교를 중퇴한 뒤 비행 청소년으로 사회 주변을 맴돌았지만 어디 하나 그들의 잘못을 잡아준 곳이 없었다.
숱한 소년 범죄자들을 관찰한 수원보호관찰소의 김철호 과장은 평범한 아이들이 어떻게 절도죄를 저지르는지 잘 알고 있다. “청소년들은 혼자서는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문제는 친구와 어울리면서 발생한다. 이미 물건을 훔쳐본 친구들이 ‘너는 망만 봐라. 훔치는 건 내가 한다’며 마치 쉬운 일이라는 듯 꼬득인다. 절도죄 초범들은 대부분 망보다가 경찰서로 잡혀온다.”

망보다가 잡혀온 청소년들은 그때부터 일생일대의 잊혀지지 않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경찰서에 붙들려온 청소년들은 2명 이상이 절도에 가담했기 때문에 ‘특수절도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을 듣는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경찰관에게 조사받은 아이들은 검찰에 가서 다시 조사받고, 죄질에 따라 형사법원→소년교도소 혹은 가정법원→소년원이나 보호관찰소로 들어간다.

경찰에 잡힌 순간부터 처벌이 확정될 때까지 대략 3개월 정도 걸린다. 그동안 청소년 범죄자들은 학교와 지역사회로부터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학교 수업 중에도 검찰청과 법원에 들락거리다 보면 친구들과 교사들로부터 따돌림받게 된다. 운이 좋아 보호관찰소라는 다소 자유스러운 곳으로 가도 아이들과 부모는 이미 사회로부터 격리 수용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원보호관찰소의 김과장은 “부모의 직장생활은 파탄나기 일쑤고, 청소년 범죄자들은 갖은 조사를 받으면서 거짓말하는 기술만 는다”고 말했다.

물론 죄를 지었으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허술한 사법체계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거나 때론 더욱 교활한 범죄 수법을 배워 다시 사회로 유입된다는 데 있다. 경찰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검찰에 넘겨진 청소년 범죄자들 중 53%가 불기소 처분을 받고 다시 사회로 유입되며 가정법원으로 넘겨진 청소년 범죄자들 중 77%가 부모의 품이나 보호관찰소로 들어간다. 보호관찰소는 한달에 한번, 20∼30분 가량 면담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실제 문제가 있었던 환경으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중죄를 저질러 검찰에 간 청소년들 중 절반이, 경미한 범죄를 저질러 가정법원 소년부로 간 청소년들 중 70∼80%가 제대로 재교육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사회로 방출되고 있는 것이다.
대책 없이 방출되는 소년범들의 재범을 막아 ‘제2의 유영철’을 탄생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전지연 연세대 교수는 최근 한국형사정책학회와 청소년단체협의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재범 방치책이나 소년 범죄에 대한 처우가 적절치 못했기 때문에 재범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한 뒤 “경찰 조사 단계에서 청소년들의 재범을 막는 다이버전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환’이란 뜻의 다이버전은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 범죄자들을 검찰·법원에 넘기기 전 교사·변호사 등 지역사회 인사들과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이 이들의 범죄성향·원인 등을 분석해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교육하는 제도다. 미국은 죄를 뉘우치고 깨닫게 하는 프로그램을 듣는 조건으로 경찰관이 소년범들을 훈계해 놓아주거나, 전문가의 심리치료도 받게 해준다.

경찰 단계에서 검찰·법원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영국 경찰관은 비행소년의 가정과 학교를 방문해 사건이 경미하고 재발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설 경우 경찰관·보호관찰관·청소년상담원 등 청소년 전문가로 구성된 팀에 위임, 소년범에 적합한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캐나다·뉴질랜드·호주·싱가포르 등에서도 경찰이 수사 단계에서 경미한 소년범들을 다이버전을 통해 훈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엔 이런 제도가 없다. 법적으로 모든 경찰관은 소년범들을 검거했을 경우 검찰이나 소년법원으로 넘기도록 돼 있다. 때론 사건이 경미할 경우 경찰관이 알아서 판단해 훈계하고 풀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훈방 조치해 내보내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고, 감사에서 문책당할 우려 때문에 법대로 검찰·법원에 넘기는 것을 더 안전하게 생각한다. 일선 경찰관들은 “바쁜데 누가 귀찮게 아이들을 훈계하겠는가.

그냥 법대로 하면 제일 편하다”고 말한다. 실제 올 10월 전과 경력이 없는 한 고교생이 서울 공릉동의 한 수퍼마켓에서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카운터에 있던 담배 3갑을 훔쳐 달아나다가 경찰에 붙들렸다. 초범인데다 호기심으로 저지른 범행임이 밝혀지자 수퍼마켓 주인은 따끔하게 혼내주고 풀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담당 경찰관은 입건한 뒤 법대로 검찰에 넘겼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가정법원 소년부가 사실상 소년범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다이버전’을 제공토록 돼 있지만 실상은 기대 이하다. 대부분 아무런 대책이 없는 부모에게 아이들을 넘겨주기 때문이다. 청소년 범죄 전문가들은 가정 문제로 가출하거나 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에 대책 없이 부모에게 다시 넘겨주는 것은 범죄를 또 저지르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한다. 안산소년원에서 연극으로 소년범들의 심리를 치료하는 이지은씨는 “이혼율 급증과 경제난으로 빚에 허덕이는 부모가 많아 가정이 급속히 해체되자 학교와 가정을 겉도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며 “가정으로 돌아가 봐야 똑같기 때문에 소년범들에게 절실한 것은 밖에서도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시설로 보내진 아이들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청소년 범죄자 10명 중 1명만이 아동복지시설이나 소년보호시설 또는 장기간 구금되는 소년원으로 가지만 인력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부실해 오히려 문제를 키운다. 예컨대 전국의 보호관찰관이 대부분 소년범들을 재교육시키고 있지만 보호관찰관 1명이 연간 6백명에 달하는 소년범들을 담당해 사실상 소년범 각자의 처지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보호관찰소 성인범들의 재범률은 5%대에 그치지만 소년범들의 재범률은 10%를 넘어서고 있다.

보호관찰소의 예산 부족도 소년범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데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년범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반성하도록 만드는데 캠핑이 효과가 있다고 권고하고 있지만 보호관찰소로선 엄두도 못낼 일이다. 법무부가 지원하는 보호관찰소 예산으론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원보호관찰소처럼 일부의 경우 기업·사회단체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캠핑을 열어주고 있는 형편이지만 부족한 예산은 어쩔 수 없다.
이렇듯 현재의 지원체계로는 소년범들에게 적절한 프로그램을 지원하지 못하자 경찰청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까지 1년 동안 서울 송파경찰서와 수원 남부경찰서가 입건한 청소년 1백74명(남자 1백54명, 여자 20명)을 대상으로 전문가를 참여시켜 범죄 소년의 특성과 환경·재범 위험성을 분석했다. 이와 함께 변호사·청소년전문가·피해자 가족으로 선도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소년범들의 선도 여부와 방안을 결정했다. 이는 소년범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심리상태까지 파악한 최초의 시도이며, 객관적·과학적인 자료를 검사에게 건네 소년범들의 처벌 수준을 결정하는데 참고토록 한 것이다. 범죄 소년의 인격이나 환경보다는 범죄 사실을 밝혀내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검사에게 죄질을 다각도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최초로 첨부한 것이다.

경찰청 다이버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한림대 범죄심리학과 조은경 교수, 그리고 한국청소년상담원 주영아 부장은 1백74명 중 재범 위험이 낮은 아이들과 높은 아이들을 구별하고 실제 재범 발생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재범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분류된 ‘고위험군’ 아이들 중 18%가 다시 범행을 저질렀으며, ‘저위험군’ 아이들은 2.5%만 다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과학적 분석이 현실에서도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밖에도 전문가들은 소년범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비행 촉발 요인 조사’와 ‘성격 평가 질문’, 그리고 상담을 통해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분석했다. 이들이 맡은 소년범 중 한 사례를 보자. 중학교에 다니는 4명의 남학생들은 공원에 버려진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재미를 들였고, 아예 사람 수에 맞게 타기 위해 자전거 4대를 훔치다가 경찰에 붙들렸다. 특수절도죄를 범한 최철희(15·가명)군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으며, 목사인 아버지처럼 장래 꿈도 목사가 되는 것이라고 밝히는 등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만약 최군이 과도한 법적 처벌을 받을 경우 주위로부터 낙인찍혀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훈방한 뒤 보호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같은 전문가들의 조사는 경찰서에선 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가족 여부·학교 생활·전과 기록 등은 지금도 경찰관들이 조사하고 있지만 범행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충동적 행위에 대한 탐닉, 피해자 입장을 이해하는 정도 등을 평가하는 조사는 한 적이 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가난한 사람에겐 기회가 없다’·‘세상은 불공평하다’·‘화가 나면 분통이 터진다’는 개인적 성격 평가 질문은 한 소년범의 재범 여부와 그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드러내준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반사회성·공격성·피해망상의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난 소년범들은 특별히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아이들”이라며 “다양한 이유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재발을 막으려는 노력도 그에 맞게 개인적이고 다양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수정 교수는 최근 윤간죄로 보호관찰소 신세를 지고 있는 중학생 10명을 대상으로 개별적인 면접과 상담, 그리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윤간죄를 바라보는 훈련을 시킨 결과 소년범들이 ‘남의 슬픔에 민감한 아이들’로 변했다. 노력과 시간이 들더라도 필요한 교육을 시키면 재범의 유혹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년범들을 경찰의 수사 단계에서 철저하게 조사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하자는 경찰청의 노력에 청소년단체와 판사들은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비행 청소년들의 정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문화인성교육원의 정영애 부원장은 “청소년들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파악해 치료하지 않으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문제점을 들어주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환수 대법원 송무국 판사는 “보호자가 동의하고 범행을 자백하며 초범인 경우엔 경찰이 다이버전을 실시해 풀어줘도 괜찮다”고 동의했다. 어린이·청소년 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강지원 변호사는 “태어날 때부터 나쁜 아이는 없다. 다만 실수하는 아이들은 있기 때문에 처벌보다 따뜻한 선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다이버전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금형 경찰청 여성·청소년 과장은 “올 11월부터 전국 5개 경찰서에서 다이버전을 확대 실시할 것이며,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이 도입하려는 다이버전 프로그램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현행법 하에선 경찰 단계에서 소년범을 훈계하고 내보낼 수 없도록 돼 있다. 경찰은 무조건 검찰이나 가정법원 소년부에 소년범을 넘겨야 한다. 법이 개정돼 경찰이 훈방할 수 있게 돼도 경찰이 어떤 기준을 갖고 소년범을 훈방해서 내보낼 수 있는지, 검찰에 넘기는 기준은 무엇인지 구체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문화관광부·검찰청·법원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소년범 재활 프로그램과 경찰청이 추진하는 프로그램이 상충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경찰청이 시범적으로 1년 동안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조사 결과대로 저위험군 아이들의 재범률이 낮은지, 장차 누가 소년범들의 교화를 돕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할지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한 의견도 정리돼야 한다. 범죄심리사들의 조사가 과학적이고 외국에서 효과가 입증된 것이라지만 실제 재범 위험성이 낮은 아이에게 ‘고위험군’이란 굴레를 씌워 재활의 기회를 박탈할 가능성은 없는지 여부도 더 면밀히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청소년들이 희망적인 것은 성인과 달리 조금만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어도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수원시 청소년상담실의 권현용 실장은 “문제는 어려워 보여도 아이들은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금세 바뀐다.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쏟아내도록 도와주면 자기 안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도 스스로 깨닫는다”며 “이게 청소년들의 힘이고 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연간 수만명의 평범한 아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세상에서 “내 아이만은 괜찮겠지”라는 가정은 점차 “내 아이마저”라는 우려로 바뀌고 있다. 혼탁한 세상에서 아이들을 바로 키우기가 어렵지만 권실장의 말대로 청소년들 스스로 잘못을 찾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기에 사회와 어른들이 도와준다면 이들은 성인보다 훨씬 더 변화할 소지가 크다. 이런 노력이 범죄율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바로 내 아이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해가는 실질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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