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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하반기엔 ‘한숨 경제’ 탈출

내년 하반기엔 ‘한숨 경제’ 탈출

마치 모여서 서로 의견을 맞춘 듯 전문가들이 내놓은 내년 경제 전망은 천편일률적이다. 산업 분야별로, 기업별로 희비가 교차하겠지만 한국 경제 전체를 놓고 보면 “올해보다 나아지겠으나 상승의 정도는 미미하다”는 의견이 주류다.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란 의견을 낸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마 올해보다 나쁠 수는 없겠지”란 ‘막연한 추측성’ 기대감만을 들고 있다.

기분을 전환하는 의미에서 색다른 의견을 내놓은 이코노미스트를 만나보자. 증권업계에서 신중하고 분석이 예리한 것으로 소문난 김한진 피데스증권 전무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경제에 가장 좋은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예상한다. 80년대 후반 미국·일본, 그리고 한국의 경제가 동반 상승한 전례를 내년에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전무는 “미국·일본·한국이 각기 다른 성장곡선을 그리다가 내년 후반기 3국 모두 상승하는 국면이 시작될 것”이라며 “한국 경제에 더 좋은 것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 소비국인 중국이 곁에 있다는 것이고, 1인당 국민소득 7천달러 이상인 인구가 3억5천만명이나 있는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가 한국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경기 부양책이 오히려 내년엔 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내년이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예측하는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 ‘하반기’를 주목하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에 골칫덩이였던 고유가와 환율 하락이 내년 상반기까지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하반기부터 소비가 회복되면서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이덕청 부장은 “해외 위험보다는 국내 위험이 더 신경쓰인다”며 “국내 소비 회복이 언제쯤 이뤄질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가장 전망이 밝은 분야는 조선·중공업 부문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 경쟁력을 갖춘 조선 분야는 일찌감치 2007년까지의 일감을 맡아놓았다. 고유가로 떼돈을 벌어들인 산유국들이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은 건설장비와 발전설비를 제공하는 중공업계에 희소식이다. 이런 이유로 세계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발전설비를 공급하는 두산중공업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우증권의 조용준 애널리스트는 “조선업계의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인상된 선가가 반영되기 때문에 이익이 많이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건설업계에 내년은 ‘기회의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지난해 10·29 대책을 내놓은 참여정부가 이젠 경기 부양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건설 경기를 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불리는 경기 부양책의 핵심은 연기금을 동원해서라도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투자하겠다는 것. 이렇듯 토목·건설 분야에서 경기의 숨통을 틔워주고, 부동산 거래시장을 위축시키는 강력한 조치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국내총생산(GDP)에서 17.5%를 차지하는 건설·토목 분야의 시장은 내년에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증권의 이창근 애널리스트는 “집값을 잡겠다는 10·29 대책은 집값은 잡지 못하고 거래만 잡았다”며 “집값과 소비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소비를 진작시키려면 부동산 규제정책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에 내년은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 같다. 현대자동차가 내년 하반기에 첫 미국산 자동차를 내놓기 때문이다. 내년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2006년 상반기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엄정한 평가를 받는다.

올해 미국의 권위있는 자동차 평가회사 J.D. 파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산공장에서 생산한 차종들이다. 동부증권의 용대인 애널리스트는 “미국시장에서 생존하면 세계시장에서 생존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퇴출되는 것”이라며 “미국인들의 손끝에서 나오는 현대차가 내년에 품질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실제 15년 전 현대차는 캐나다에 진출해 쏘나타 30만대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했지만 10년 동안 2조원의 손실을 입고 철수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 앨라배마의 현대차 공장이 실패할 경우 현대차는 막대한 손실과 함께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하위권으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소비가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유통·홈쇼핑·미디어 분야의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올해처럼 바닥을 헤매는 상황은 아니겠지만 성장한다 해도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실 올해 2분기 하락하던 소비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줄 때만 해도 전망은 어둡지 않았다. 그러나 3분기 이후 소비 회복세가 꺾였고 다시 내년 이후로 회복세에 대한 전망이 미뤄졌다.

그렇다면 언제쯤 다시 소비가 회복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 LG투자증권의 박진 연구위원은 재미있는 가설을 제시했다. 연간 가계빚(가구당 평균 3천만원)과 이자(분기별 평균 58만원)를 분기별 가계소득(평균 8백90만원)으로 나누었을 경우 3배 이하가 돼야 소비가 늘기 시작한다는 것. 현재는 3.5배다. 이 공식이 의미하는 것은 소득이 늘어야 빚을 갚는 여력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국민들이 소비를 늘릴 것이란 얘기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3배 이하면 소비가 늘고, 그 이상이면 소비가 위축됐다. 실제 소비가 급감하던 2002년 말과 2003년, 올 상반기 빚과 소득의 상관관계는 3배 이상이었다. 박위원은 3배 이하로 낮아지는 시점을 빨라야 내년 하반기로 예상하고 있다.

소비 회복과 함께 움직이는 업종이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분야다. 경기 회복이 관건인 이 분야는 소비가 내년 하반기 상승하기 시작하면 같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증권의 박재석 팀장은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의 내년 전망을 날씨로 비유하면 흐린 뒤 맑음”이라며 “내수경기가 침체되고 인터넷 업체들의 해외 투자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내내 흐림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기와 전자업종 역시 ‘흐린 뒤 맑음’으로 예상된다. 주요 변수는 환율. 메리츠증권의 전성훈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LG전자의 경우 달러당 원화 환율이 1천50원에서 10원씩 낮아질 경우 2백억원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내년 하반기 북미시장과 유럽시장이 회복세에 들어설 경우 대형 전기·전자업체들은 다시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신용카드 등 금융 분야는 올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가계대출이 일시에 부실화되는 위기의 상황은 지났지만 내수가 좋지 않아 고전하는 중소기업 때문에 대출 실적이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외국계 은행이 속속 한국에 진출하면서 이자가 높은 대출상품을 내놓고 있어 은행간 경쟁이 격화돼 이익률이 낮아질 위험도 있다. 동원증권의 이준재 팀장은 “올해 카드 부실을 대부분 털어냈고, 앞으로 주택담보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먹는 장사는 어떨까. 포스코경영연구소의 곽창호 박사는 “말리고 싶다”고 대답한다. 도매와 소매업종 전문 분석가인 박진 LG투자증권 위원도 “말리겠다”고 말한다. 곽박사는 그 이유에 대해 “경기를 활성화한다면서 집값을 잡겠다 하고, 하필 소비가 살아나는 때 성매매 단속을 벌여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것을 보면 내년에 밝은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의를 한곳으로 모아 가기에도 바쁜데 정치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양산해 경제적 피해를 입힌다는 설명이다.

미래에셋증권의 이덕청 부장은 기자에게 그림을 한장 보여주었다. 1930년 미국 대공황 때 루스벨트 대통령과 미국 국민을 풍자한 것이었다. 거대한 용(공황)을 잡기 위해 대통령이 앞장서고 국민들이 따라가는 그림이다. 지금의 위기가 근거없는 위기가 아니라면 합심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부장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연 내년에 우리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위기극복팀으로 단합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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