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대화시대로 접어든 양안 관계

대화시대로 접어든 양안 관계


Reaching Out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서 동남쪽으로 3백50km 떨어진 타이둥(臺東)현의 쉬칭위안(徐慶元·51) 현장은 지난 11월 야당인 국민당을 탈당하고 이번주 실시되는 총선에서 여당인 민진당 후보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정치적 득실 계산에 따른 것으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트 계선장 두개와 국도 한개의 건설 때문이라고 본인은 말했다.

그의 지원에 힘입어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민진당은 이번 총선에서 한석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쉬칭위안은 그 공로로 토목공사 건설계획이 확실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1949년 퇴각하는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국민당 군대를 따라 대만에 건너온 집안의 후손인 쉬의 국민당 탈당은 대만 정계의 일대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돌발사태가 없는 한 민진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대만 정치의 중심세력이 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그같은 논리에 내포된 함의(含意)는 곧 타이둥현의 해안을 넘어 멀리까지 울려퍼질 수 있다. 독립을 부르짖는 천총통의 연합세력이 최초로 의회 과반수(총 2백25석)를 차지한다면 전보다 더욱 자유롭게 중국으로부터의 거리를 벌릴 것이다. 그들이 인구 2천3백만명의 이 섬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천과 그의 지지자들이 양안 전쟁을 불사할 각오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며 외부 요인들에 의해 좌우된다. 거기에는 이 동맹국을 자제시킬 미국의 능력과 중국의 정세 변화가 포함된다.

중국 정부는 5년 가까이 천총통을 악당으로 그려왔을 뿐 대화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중국은 천총통이 현 대만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의 비공식 대만 대사관이라 할 ‘아메리칸 인스티튜트 인 타이완’(AIT)의 전 대표 나탈 벨로키는 말했다. “중국은 대만에서 자기네 마음에 드는 지도자가 집권하기를 기다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정치국이 상대해야 할 이 인물은 살아 숨쉬는 모순덩어리다. 민진당의 권력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는 천의 2대 목표는 상호 모순적이다. 예컨대 대만 헌법을 개정하려는 그의 계획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가 고치고자 하는 현 헌법은 1947년 중국에서 선포된 것이다.

그러나 대만의 비대한 관료주의를 정비하는 동시에 일부 선거구의 게리맨더링이라는 케케묵은 수법을 추진하는 것은 실제로 이득이 되는 조치다(중국 정부는 그런 구상은, 천의 되풀이되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만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사실상의 독립을 공식화하려는 미끼라고 생각한다). 천이 선거유세에서 반중(反中) 목소리를 높일수록 민진당의 좌파적 입지는 강화되지만 지난 1년 동안 누누이 되뇌었던 중국에 대한 유화 제스처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지난 쌍십절(중화민국 건국일인 10월 10일) 연설에서 천은 “2천3백만 대만 주민의 지지”를 얻는다는 전제 아래 본토와의 통일에 대한 문을 열어두면서 “반드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 원칙을 토대로 대만과의 대화를 재개하라고 중국 정부에 촉구했다.

천의 측근들은 퇴임 전 본토와 대화를 개시하고 싶어하는 그의 바람은 진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용주의자인 천은 대만 주민 대다수가 본토와의 관계가 영원히 현 상태로 유지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상의 독립만 보장된다면 과반수 주민이 느슨한 형태의 연합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정치대학의 선거연구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50년 동안 대만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응답자의 60%가 ‘일국 양제’ 시스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 천의 측근들은 천이 본토와의 화해를 역사적 사명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대만에서 2008년 새 총통을 뽑기 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나서서 그 목표 달성에 기여하라고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뤄즈정(羅致政) 국책연구원(타이베이) 원장은 천이 업적을 의식해 중국 정부를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이려고 입장을 누그러뜨렸다고 말했다. “만일 천이 현 상황을 동결시켜 앞으로 20년 동안 평화가 보장된다면 그는 노벨 평화상감”이라고 뤄는 말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오래 전부터 유지해온 핵심 원칙에서는 양보가 없다.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천 진영이 대화에 나서지 못하게 만든다. 민진당은 현재 홍콩에 적용되고 있는 중국 정부의 일국 양제 모델은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비웃는다. 마찬가지로 대만 정부가 이상적 결과로 여기는 합법적 독립은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대만해협 문제의 해법으로 양측이 선호하는 방식은 성공 가망이 제로”라고 브뤼셀의 두뇌집단인 인터내셔널 크라이시스 그룹의 최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최종 정치적 해결의 모습’이라는 제목의 그 보고서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유연한 ‘대중국연합’의 가능성을 제시했으나 그런 연합은 수십년 뒤에나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천은 그 중간의 가능성을 타진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줬다. 예컨대 항공기나 교역 루트 같은 실용적인 문제의 진전을 위해 정치적 견해차는 접어두기로 합의한 1992년의 협정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또 민간 차원에서 협상된 2002년의 홍콩∼대만 항공노선 협정을 또다른 전례로 지적했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강경노선을 이탈할 형편이 못된다. 우선 대만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것은 통일을 역사적·애국적 과업으로 간주하는 중국 보수 엘리트들의 지대 관심사다. 뿐만 아니라 후진타오가 진정한 1인자가 된 것은 지난 9월 장쩌민(江澤民)으로부터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물려받은 뒤부터다. 후는 아직 좀더 유연한 대만 정책을 채택할 수 있을 만큼 기반이 강하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본토에서도 일부 독립적 분석가들은 대만이 대화의 장을 만들려고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경제 전문가이자 변호사인 로렌스 브람은 최근의 한 논평에서 이런 움직임을 가리켜 “양측이 평화적 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전례없는 기회”라고 표현했다. 타이베이의 천총통 지지자들은 지금이야말로 후가 손을 내밀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대만 정부기관인 행정원대륙위원회의 우자오셰(吳釗燮) 위원장은 양안 관계에 돌파구가 열리면 “후의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몇달이 “중국이 대만을 향해 과감한 정책을 펼치기에 좋은 절호의 시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새 지도자로서는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커다란 정치적 위험이 따를 것이다. 천총통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신을 고려할 때 천의 어떤 언행이 순수한 올리브 가지로 받아들여질지는 불확실하다. “중국 지도부는 이미 천은 한마디로 상대할 사람이 못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데이비드슨 칼리지(노스캐롤라이나주)의 대만 전문가 셸리 리거는 말했다. “양측의 중대 요구가 양립 못하는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대만의 지도자와는 대화를 할 수도 없고 그를 제거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 과정이 시작조차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설령 민진당이 주도하는 연합이 과반수에서 몇석 모자라는 성적에 그치더라도 천은 중대 사안 표결시 무소속 의원들을 설득해 과반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천이 미제 무기를 사들이려는 대규모 구매계획(현재 의회에서 계류 중)을 성사시키려 할 경우 그의 실권이 어느 정도나 강한지 검증받게 될 것이다.

1백80억달러라는 기록적인 그 구매 패키지(90년대 후반 당시 여당이던 국민당이 주도했지만 그들은 이제 정부는 그런 돈을 낼 형편이 못된다고 주장한다)는 2001년 부시 정부의 승인을 얻어둔 상태다. 디젤 잠수함 8대, P3 대잠수함 초계기 12대, 최신 패트리어트 미사일 요격 미사일 포대 등이 포함된다.

대만 정부 관리들은 그같은 무기 구매는 군사적 불균형에 대한 대응조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해안선을 따라 매년 최다 1백개의 신형 탄도 미사일을 배치하며, 2010년이 오기 전 40대의 새 잠수함을 취역시킬 예정이라는 것이다.

국방 강화 노력과는 별도로 대만 정부는 내년 구정(舊正)을 앞두고 일련의 조치를 통해 양안 협력을 강화할 생각이다. 현재 베이징에서 거주하지만 2월 구정 때 고향을 찾아올 대만인 10만명을 태울 전세기를 운항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 계획에 따르면 중국과 대만의 항로는 국내선이나 국제선이라는 딱지를 피하기 위해 ‘특별 양안선’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비슷한 조건으로 화물 전세기를 운항하는 방안도 현재 고려 대상이다.

게다가 진먼(金門)섬과 마쭈(馬祖)섬은 머지않아 사상 최초로 중국인 관광단을 받아들일 꿈에 젖어 있다.
그런 관계 개선은 오랜만에 진정한 양안 협력을 향한 첫 움직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중국 정부의 동의다.

어쩌면 중국 지도부는 이번주 총선 결과를 보고 천총통이 대만의 정치적 중심세력을 대변한다는 사실, 따라서 무시할 것이나 아니라 대화 상대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With TIM CULPAN in Taipei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계엄에 산불까지...‘백척간두’ 韓 경제, 성적표 살펴보니

2보스턴 펜웨이파크에 LG전자가 설치한 ‘초대형 LED’ 정체는?

3곤봉으로 유리창 ‘쾅’...尹 파면에 경찰버스 부순 남성 ‘구속’

4대구 산불 진화 중 헬기 추락…조종사 1명 사망

5기아, 다문화 청소년 위한 ‘하모니움’ 교육 프로그램 본격 가동

6티웨이항공, 유럽 항공권 프로모션 실시

7 대구 북구 산불 진화 헬기 추락

8 尹 "자유와 주권 수호를 싸운 여정, 역사로 기록될 것"

9“트럼프, 손 떼라”...美 전역서 ‘反트럼프 시위’ 열려

실시간 뉴스

1계엄에 산불까지...‘백척간두’ 韓 경제, 성적표 살펴보니

2보스턴 펜웨이파크에 LG전자가 설치한 ‘초대형 LED’ 정체는?

3곤봉으로 유리창 ‘쾅’...尹 파면에 경찰버스 부순 남성 ‘구속’

4대구 산불 진화 중 헬기 추락…조종사 1명 사망

5기아, 다문화 청소년 위한 ‘하모니움’ 교육 프로그램 본격 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