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짱 열풍'의 독약, 근육강화제 스테로이드
'몸짱 열풍'의 독약, 근육강화제 스테로이드
Toxic Strength
대다수 약물의 경우 몸과 정신을 망가뜨리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알콜은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크리스 워시의 경우는 최우수 대학팀의 농구선수가 되려는 꿈에서 시작해 스테로이드라는 약물 때문에 고가 난간에서 뛰어내리겠다고 결심하기까지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m87cm에 81kg의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미국 텍사스주 플라노 웨스트 고교 농구팀의 가드였던 그가 자살을 생각했을 때는 몸이 1백4kg로 불어나 어깨가 두꺼워져 등교시 가방을 메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게다가 우울하고 공격적이며 위험한 성격으로까지 변해 있었다. 몇차례의 싸움으로 그는 팀에서 쫓겨났다. 이미 그때는 근육을 만드는 것이 그의 지상 최대 임무였다.
그는 더 이상 알약을 복용하지 않고 직접 둔부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하기 시작했다. 촉망받는 고교 야구 선수 테일러 후턴도 종종 그와 함께 스테로이드를 투여했다. 몇달 후 후턴은 자기 방에서 혁대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충격받은 워시는 약병과 주사기를 하수구에 버렸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의 단점은 갑자기 투여를 중단하면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몇주 후 워시는 차를 몰고 댈러스 도로를 가로지르는 고가로 가서 차를 세우고 난간으로 걸어가 쌩쌩 달리는 아래쪽 차들을 내려다 봤다.
최근 미국 프로야구계가 스테로이드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다. 야구인들은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적어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도 명성과 건강에 약간의 차질은 생기겠지만 엄청난 연봉 덕택에 그쯤은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선례는 10대 선수들로 하여금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도록 만들고 있다. 부작용을 이기고 살아남는 경우에도 유명 선수가 될 기회조차 얻기 전에 선수 생활을 마감할 수 있다. 미시간대 사회조사연구소의 연례 조사에 따르면 고교생들의 스테로이드 사용은 1990년대에 꾸준히 증가했다가 2003년에 약간 감소했다. 뉴스위크는 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03년 중2에서 고3 학생 중 30만명 이상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운동선수들만이 아니었다. 3분의 1 가량은 여학생이었다. 전문가들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남학생들이 야구 선수가 아니라 의류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조각 같은 몸매의 모델들을 동경한다는 사실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근육집착증(늘 자신이 왜소하다고 느껴 근육 강화에만 전념하는 증상으로 ‘역거식증’이라고도 부른다)이라는 새로운 병명까지 생겨났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는 심한 여드름에서부터 탈모, 불임, 남성의 유방 발달, 조울증, 편집증 등이 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스테로이드는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
스테로이드는 다른 마약처럼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스테로이드에 의존성이 강한 사람들조차 결코 자신이 중독자라고 깨닫지 못한다. 자살한 테일러 후턴의 아버지 도널드는 “아들이 ‘아빠, 전 절대 약물 복용을 안해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다른 면으로 청소년들을 유혹한다. 미시간대의 약물중독 치료 전문가 커크 브라우어 박사는 “스테로이드는 청소년들의 원기를 북돋워 주고, 성격을 공격적으로 만들며 성욕이 넘치게 한다”고 말했다. 워시도 자신이 복도를 걸어갈 때 아이들이 “쟤는 건드리지마”라고 말하며 슬슬 피했던 일과 여자친구가 바위처럼 단단한 자신의 이두박근을 좋아했던 일을 자랑 반, 후회 반으로 돌이킨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며 훈련하는 선수들은 1주일에 0.9kg 정도 근육을 늘릴 수 있다. 힘과 스피드를 늘리기 위해 근력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고달픈 일이다. 그러나 알약 하나만 먹으면 쉽게 근육을 불릴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 남부 한 고교 미식축구팀의 빼어난 러닝백이자 레슬링 선수인 조슈아 듀폰은 코치가 강하고 빠른 동료 선수를 칭찬하는 것을 보고 샘이 나서 고2가 되기 직전부터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복용한지 3일째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체육관에서 똑같은 근육만 단련했는데도 전혀 피곤한 줄 몰랐다. 스테로이드 복용 1주일 후 37m 달리기 기록이 4.7초에서 4.6초로 단축됐다. 엄청난 발전이었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감수할 수 있거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스테로이드 복용을 그만둬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버드대와 제휴한 매사추세츠주 벨몬트 소재 매클린 병원의 정신과 의사이자 약물중독 전문가인 해리슨 포프 2세는 “스테로이드로 근육맨이 돼 주변의 부러움을 사게 됐다면 그것을 끊는 치료를 받아 체격이 왜소해지기를 바라겠는가. 스테로이드와 관련해 내게 치료받은 학생은 겨우 열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라고 말했다.
스테로이드는 호르몬의 일종으로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근육 강화제는 고환에서 분비하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효과를 모방한 여러 종류의 합성물질인 ‘단백질 동화 스테로이드’다. 단백질 동화 스테로이드는 근육 세포로 들어가 근육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발현시킨다. 거기다가 역기까지 들면 근육에 스트레스가 가해져 효과가 더욱 커진다. 버지니아대 소아내분비학자 앨런 로골은 “스테로이드만 복용해도 근육이 늘지만 운동을 병행하면 효과가 크다”면서 “깡마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팀의 선수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으로 옮겨가 73개의 홈런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테스토스테론과 그 아류(亞流)의 호르몬은 희귀병 치료를 위해서만 사용이 허가돼 있지만 의사들은 다른 목적으로도 얼마든지 처방할 수 있다. 일부 보디빌더들은 그런 경로를 통해 스테로이드를 손에 넣지만 대부분은 멕시코 같은 나라의 약국이나 인터넷·헬스클럽을 통해 알약·젤·주사약물 등으로 불법 구입한다. 그런 암시장은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약물의 성분과 농도는 전문 분석기관에 의뢰해보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다.
10대 보디빌더들은 구입이 어려운 스테로이드 대신 체내에서 테스토스테론으로 전환되는 화학 ‘전구물질’인 안드로스테네디온(이하 ‘안드로’)을 복용해 왔다. 세계 반(反)도핑기구(WADA) 회원인 뉴욕대 의과대학원의 게리 웨들러 박사는 안드로의 경우 훨씬 더 많은 양을 복용해도 스테로이드와 똑같은 효과와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마크 맥과이어가 70개의 홈런을 때리던 해 복용했던 약물도 안드로였다. 안드로는 수년간 영양제를 파는 상점과 인터넷에서 합법적으로 판매돼 왔다. 미 연방 의회는 지난 10월에 와서야 안드로를 남용 소지가 ‘어느 정도’ 있는 약물들을 묶어 규제하는 ‘스케줄3’ 목록에 추가했다(내년 1월 발효). 그러나 웨들러는 노화방지제로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팔리는 DHEA는 그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DHEA는 체내에서 안드로로 전환된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체력 강화 약물은 그 외에도 많다. 인체성장 호르몬, 갑상선 호르몬,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높이는 화합물 등도 불법이지만 프로 선수나 올림픽 선수들은 그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유전자 요법도 곧 스포츠 기록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 물론 이런 약물을 고교 선수들이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고교생들도 크레아틴 인산으로 알려진 제품을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고 종종 다량으로 복용한다. 크레아틴 인산은 근육을 강화하지는 않지만 세포 에너지 생산력을 강화함으로써 경기 실적을 올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 연구자들은 크레아틴 인산이 성인에게는 무해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그것을 복용했다는 조사 결과가 적어도 한 건은 나와 있다. 더구나 크레아틴 인산은 ‘식품 보조제’로 분류돼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인디애나대 스포츠의학센터의 더글러스 매키그 소장은 말했다. 매키그는 헬스센터에서 학생이 구입한 ‘단백질 보조제’를 분석한 결과, 라벨에 표시돼 있지 않은 스테로이드제와 독성물질 스트리키니네가 함유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백질 동화 스테로이드는 위험한 물질이다. 평균적인 성인 남성은 고환에서 1주에 35∼50mg의 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한다. 운동선수들은 3백∼1천mg 또는 그 이상을 주사로 투여하는 경우가 있다. 웨들러는 그 정도로 투여하면 ‘끔찍한’ 여드름과 조기 탈모증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 체모 증가, 클리토리스 확대, 변성 등 남성화를 겪을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스테로이드는 남성의 여성화를 유발하기도 한다. 체내 호르몬 생산을 조절하는 뇌하수체는 테스토스테론이 과잉 공급되면 고환에 기능 정지 신호를 보낸다. 그 결과 고환이 위축된다.
테스토스테론이 과잉 공급되면 우리 몸은 그중 일부를 에스트로겐으로 전환한다. 그러면 남성에게서 유방이 발달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는 드물다. 포프는 미국의 헬스센터에서는 수년 동안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했지만 별 이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에 대한 인체의 반응은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며 일부 부작용은 영구적이다.
그 외에 다른 위험도 많다. 사춘기가 되면 골격 성장이 멈추기 시작하지만 스테로이드는 그 과정을 앞당길 수 있다. 또 스테로이드는 인대는 그대로 두고 근육만 불어나게 만들어 심한 인대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이로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해로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며, 때로는 간의 손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게다가 사소한 일에 공격적이 되는 심리적 부작용도 있다. 워시가 팀에서 쫓겨난 것도 바로 그런 ‘스테로이드 분노’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감옥에 가거나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도 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때때로 안드로와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온 고교 레슬링 선수 출신인 마이크 보치(18)는 “누군가를 한번 때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량 복용자가 스테로이드를 끊으면 고환이 생산을 재개할 때까지 수주 동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거의 제로로 떨어져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학교 야구팀에서 탈락해 어차피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열다섯살 난 학생에게는 아무리 콜레스테롤 비율을 설명해봤자 별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매키그는 “고교생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무튼 스테로이드가 건강을 해친다는 메시지는 생각한 만큼 잘 먹혀들지 않는 것 같다. 미시간대의 조사에 따르면 고교 졸업생 가운데 스테로이드가 건강에 ‘큰 위험’이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지난 5년 동안 68%에서 55%로 떨어졌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청소년 선수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이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몸이 불어도 부모나 코치들이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보치는 자기 동생 말고는 “아무도 내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올 여름 자기 몸무게가 13kg이나 늘었을 때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미성년자에게 위해한 식품 보조제 판매를 금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캘리포니아주 의회 상원의원 재키 스파이어는 “코치는 그런데 신경쓰지 않는다. 일부는 몰라서 그렇고 일부는 알기를 원치 않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스파이어가 발의한 법안에 대해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식품 보조제 문제는 식품의약국(FDA)에 맡겨두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슈워제네거는 보디빌더 시절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고 시인한 바 있다.
물론 약물 테스트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학군의 13% 정도만이 선수들에 대한 마약복용 테스트를 하며 스테로이드 검사는 사실상 하지 않는다. 마리화나 같은 마약 검출을 위한 표준 소변 검사는 10∼30달러 정도가 들지만 스테로이드 테스트는 건당 50∼1백달러가 든다. 최근의 가장 큰 고교 스테로이드 스캔들은 2003년 9월 애리조나주 벅아이에서 일어났다. 당시 10명의 고교 미식축구 선수가 출장정지를 당했다. 코치인 바비 반스는 부임 9주째 되는 어느날 경찰이 연습장에 들이닥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코치 생활을 오래 했지만 그런 문제가 드러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것은 코치들이 신경쓰던 일이 아니었다.”
코치가 신경쓴다고 해도 선수가 아닌 학생들의 스테로이드 복용이 늘어나는 것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은 자신이 미국 청소년의 평균 몸매에 다다르지 못한다고 믿는다. 여자 아이들이 바비 인형에서 여성 몸매가 어때야 한다는 감을 잡는 시절에 남자 아이들은 근육맨 GI 조 인형을 갖고 놀면서 남성상에 대한 그런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것 같다. 하버드대의 임상심리학자이며 포프와 함께 ‘아도니스 콤플렉스’(The Adonis Complex)를 쓴 로베르토 올리바르디아는 “신경성 무식욕증 환자가 아무리 야위어도 날씬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처럼 근육집착증이 있는 남자들은 아무리 근육을 만들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10대 소녀들의 자긍심 향상을 목표로 한 수십년간의 교육으로 이제는 외모 문제가 남자 아이들에게로 옮겨간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에 허영심이 너무도 뿌리 깊이 박혀 근절되지 않고 시대에 따라 형태와 장소만 바뀌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클리블랜드 교외에서 사는 찰리 하이바리넨(15)의 경우를 보자. 미식축구 선수로 성공하려는 그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지 않겠다며 “그런 것은 가짜 근육이고 눈속임이며 건강에 해롭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사람은 패배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솔직히 말해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들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고 부러운듯 덧붙였다.
저런! 사실 그게 우리가 찾는 대답은 아니다. 그 대신 크리스 워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자살을 생각하다가 결국 고가 난간에서 물러서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는 집중 치료를 받고난 뒤 스테로이드를 끊었다. 그러나 몇달간 수업에 빠져 급우들 수준에 맞출 수 없었던 그는 플라노 웨스트에서 한 대안학교(거기에는 농구팀이 없다)로 전학해 지금 졸업을 앞두고 있다. “한때는 대학에 가서 농구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었다. 농구는 내 인생이었다.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With ANNE UNDERWOOD, JULIE SCELFO and VANESSA JUAREZ in New York,
DIRK JOHNSON and HILARY SHENFELD in Illinois, JAMIE RENO, ANDREW MURR and KAREN BRESLAU in California and JOAN RAYMOND in Oh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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