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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느낌주는 문화공간으로”

“재미와 느낌주는 문화공간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을 접할 때마다 많은 국민이 분노한다. 그렇지만 그런 분노는 순간적인 감정의 대응에 그칠 뿐 우리 역사나 유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과연 우리 역사나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어느 정도인지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 문화재의 발굴과 연구에 한평생을 보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 용산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이건무 관장을 찾았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최근 신문을 통해 보도된 한국 ·중국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 유럽 합동 순회전시 계획부터 물어보았다. 전례가 없던 시도인지라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일본 문화청장과 만난 자리에서 제의를 했고, 뜻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에는 아직 제의하지 않은 단계입니다. 기본적으로 좋은 전시이지만 시간적 여유를 갖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사된다면 일본 ·중국과는 다른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대상도 국보나 보물로만 한정하지 말고 북한 문화재도 포함시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추진과정에서 유물선정위원회 같은 것도 만들 필요가 있을 겁니다.”

신중하면서도 사려깊은 답변이 돋보이는 이건무 관장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63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73년 박물관과 인연을 맺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국립광주박물관장을 거쳐 98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다. 차관급으로 격상된 국립중앙박물관장에는 2003년 3월에 부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동기 문화> 등 3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고, 전곡리 ·암사동 ·초포리 유적 등의 발굴 조사 연구를 수행해 왔다. 역사학자인 이병도 박사의 손자이기도 하다.

30년 동안의 전문직을 거친 관장으로 박물관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점에서 70여 년의 경복궁 시대를 마감하고 올해 10월 용산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현재 상황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건물은 거의 완성됐고, 10만 점의 유물 이전도 완료됐습니다. 야외 조경공사만 남았는데 헬리콥터 이착륙장 문제만 해결되면 1월 말쯤부터 공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정문이 만들어지고 언덕도 조성될 것입니다.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길이 지루하고 단조롭지 않게 구릉을 만들어 변화를 줄 생각입니다.”

건물이나 조경 못지않게 국민을 끌어들일 개관 이벤트도 중요할 것이다. 박물관 측은 개관 전시로 북한문화재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는 말이 있어 넌지시 물어보았다.
“우리 박물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포기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무산될 경우에 대비해 대안으로 생각한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 발자취전’입니다. 우리 박물관이 사회 변화와 같이 변천해 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시입니다. 유물뿐만 아니라 자료와 발굴 장비 등도 망라할 것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박물관이 됐는가를 국민에게 이해시키려 합니다.”

이병도 선생의 손자, “잊었던 역사 찾는 선사고고학에 매력”

그는 박물관의 핵심 기능이 전시인 만큼 전에는 없었던 역사관 ·동양관 ·어린이관 같은 전시실을 별도 마련해 다양한 측면에서 관객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해보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전에는 조그만 역사실을 운영했는데 자료가 무척 부족했어요. 앞으로 자료를 충실히 수집해서 종교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역사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으로 만들려 합니다. 또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국 ·일본 ·인도 ·중앙아시아 등의 유물과 비교연구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동양관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국민에게 다양한 문화를 이해시켜 보자는 시도지요. 우리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도 하려 합니다.

문화재 하면 어렵고 딱딱하다고 생각하는데 초등학생 대상의 전시장을 상설전시장과는 다르게 운영해볼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같은 물음에 답을 주기 위해 온돌에서 초가를 거쳐 기와집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스스로 체험해보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박물관을 만들어 보겠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맞춰 박물관의 유물에 대한 설명과 전시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국민 가까이에서 사랑받는 박물관을 만들려면 우선 전시 설명에 등장하는 용어부터 쉽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미도 있어야 하고, 컴퓨터 시대에 걸맞은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옛 그림에 나와 있는 장면들을 관람자들이 스스로 바꿔보게 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여름풍경을 겨울풍경으로 바꿔본다든지, 난초 문양을 대나무 문양으로 바꿔보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김홍도의 <씨름도> 에서 누가 이길지 관객 스스로 상상해서 다음 장면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만들어 보도록 하는 ‘과제 탐구형’ 같은 방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문화재가 단지 구경거리가 아니라 조상의 혼이 배어 있는 ‘우리의 뿌리’라는 의식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습니다. 국립박물관의 첫 번째 사명은 유물의 보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대한민국의 중요성과 우리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에는 없었던 발해실도 운영하려 합니다. 워낙 유물이 적어서 일부는 복제품을 사용해야 하겠지만 우리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연구풍토의 진작이라는 차원에서 운영을 하려 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국민에게 스며들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역사의식 재무장’이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이야기에만 몰두하는 듯 싶어 이건무 관장 개인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먼저 왜 박물관을 평생 직장으로 선택했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전공이 고고인류학이었는데 고고학이라는 분야는 과거의 연구를 통해 오늘날과 비교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고고학의 학문적 성과는 토기 등과 같은 물질적 자료들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합니다. 학창시절 그런 점에 흥미를 느껴 자연스럽게 박물관을 선택하게 되었지요.”
이 관장은 고고학 분야에서도 선사시대, 특히 청동기시대에 조예가 깊다. 이 분야에 집중하게 된 동기는 또 무엇일까. 자료가 부족해 연구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언젠가 청동기전을 한 번 연 적이 있었는데 청동기를 초기 철기로 분류하기도 하고 ‘금석병용기(金石倂用期)’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는 왜 청동기시대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청동기시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지요. 또 역사고고학에서는 역사에 기록된 사실들의 증거자료 발굴에 의존하지만, 선사고고학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생각됐습니다.”
청동기 같은 선사 유물의 발굴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를 통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발견과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데 학문적 보람과 매력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발굴현장은 어디였을까.

“경남 창원에 있는 다호리 유적에서 붓과 칼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1세기 원삼국 초기에 해당합니다. 붓은 철을 팔고 영수증을 쓸 때 사용했던 것이고, 칼은 지우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유물로 그 당시에 어떤 형태로든 문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발견이 바로 선사시대를 전공하는 보람입니다.”

외모에서 옛날 선비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이기에 만만치 않은 박물관 살림살이를 원만히 꾸려가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박물관도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령 박물관 내 행정직과 전문직 간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인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오는 10월 여는 용산의 새 박물관을 국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1개 지역박물관 차별화에도 주력

“박물관 행정은 무엇보다 공공성과 효율성이 중시돼야 합니다. 행정직 중심의 사무국은 박물관 운영 지원이 본업입니다. 전문직 위주의 학예실은 유물 보관과 관리 및 전시업무를 담당합니다. 두 부류 사이에 왜 갈등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무직은 계속 순환이 되는 반면 전문직은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대부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문직들은 박물관의 주인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고, 사무직들은 전문직들이 행정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나는 이 같은 인식 차를 좁히기 위해 전문직 ·사무직이 팀을 이뤄 일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구성 등 다양한 목적의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함께 일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보았지요. 하위직과 상위직 간 이해를 높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호프데이를 만들어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서로 털어놓는 기회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이해가 바탕이 돼야 일의 능률도 오르고 새로운 기획이나 발전된 문화재 정책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전국에 있는 11개 지역박물관을 통솔 ·조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지방 박물관의 차별화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에 대한 복안을 물었다.
“박물관들의 차별화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경주 ·김해 ·공주 ·부여 같은 고도(古都)의 박물관들은 신라와 가야, 백제의 역사도시로서 차별성을 분명히 갖추도록 할 생각입니다. 진주성 안에 있는 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사를 정리해 보여 줄 수 있는 곳입니다. 대구는 섬유도시나 약령시라는 차별성을 살려 섬유박물관 또는 의약박물관으로 특성화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료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결국 장기적인 과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박물관을 만들 때 먼저 성격규정을 분명히 한 다음 그에 따른 유물 수집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먼저 유물이 발굴되고 그 유물 관리를 위해 박물관을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뒤늦게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관장을 만나 박물관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필자 자신이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박물관 이야기는 그러나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용산 박물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고학으로, 경주로 잠시 가는가 싶다가도 이내 ‘용산’으로 돌아가곤 했다.

“올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성공적인 개관은 내 인생 최대의 계획이자 목표입니다. 오직 새 박물관을 잘 운영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어렵고 딱딱하지 않으면서 복합문화공간 기능도 갖춰 사시사철 국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의 이런 간절한 바람을 나눠 갖고 싶다. 그리하여 무심코 지나쳐온 우리 역사에 대한 의식을 싹트게 하고, 그런 자각들이 모여 거대한 문화적 국가의식으로 번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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