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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좀 내 보자”

“신바람 좀 내 보자”

대구 팔공산엔 ‘갓바위’라 부르는 불상이 있다.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 지성을 다해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한다. 입시철과 매달 초순이면 전국 각지에서 소원을 빌기 위해 모인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는데 우리 최고경영자(CEO)들도 한번쯤 팔공산의 갓바위를 찾아가 각자의 소망을 한 가지씩 빌어보면 어떨까. 나의 소망은 올해 내수 경기가 살아나 그 덕에 우리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듬뿍 챙겨주는 것이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올 들어 경기도 좀 풀리는 것 같다. 각종 경제 지표들도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잘하면 올 하반기부터 우리 살림이 좀 윤택해지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해 본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들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낼 것이다. 나는 20여년을 CEO로 지냈다. 매년 다음해 사업을 준비하다 보면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기대로 늘 신이 나곤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에 2005년을 준비할 때는 흥이 나지 않았다. 공들여 준비했는데도 지난 몇 해 동안은 이어지는 불경기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부에서 각종 부양책을 발표해도 반신반의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설 이후에는 지난해 이맘때보다 비교적 순조롭고 산뜻하게 출발하고 있어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월드컵의 열기가 식어가던 2002년 하반기에 국내 경기는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웠다. 이는 우리 회사뿐 아니라 내수 중심 업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나도 지난해엔 속수무책이었다. 백약이 무효였다고나 할까. 소비 심리가 얼어붙어 소비재·유통업체들은 1년 내내 경쟁하듯이 값 깎기, 덤 주기 행사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판매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가 될 때도 많았다. 다들‘이 모진 시간이 빨리 흘러 갔으면’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2003년부터 많은 기업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책 당국에 건의했었다. ‘내수 경기를 이대로 두면 제조업이 어려워지고 수출과 내수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때는 소식이 감감하던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가 돼서야 경제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다. 왜 좀 더 빨리 관심을 두고 노력하지 않았나 하는 원망도 없진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17대 국회 역시 민생을 최우선시하겠다고 큰소리치며 출발했다. 그러나 민생을 살리고 국내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초부터 탄핵 정국,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입법, 시대착오적인 색깔 논쟁 등 마치 그것만이 우리의 살길인 양 일 년 내내 국가의 에너지를 소모시켰다. 개점 휴업하는 날도 많았다. 다행히 지난해 말부터 첨예한 정치 현안들은 잠시 내려놓고 민생법안과 경제 법안들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하니 그 또한 다행스럽다. 정책 당국과 국회가 이제 경제와 민생 살리기에 온 힘을 보태겠다고 한다. 지난날의 아쉬움이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경제계의 주문에 더 귀 기울이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함께 만들었으면 한다. 지난 몇년간의 어려움을 생각해 보면 모처럼 살아나는 경기의 불씨가 너무 반갑고 소중하다. 활짝 꽃피울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신명을 바쳐 함께 노력하자.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과 가계의 살림이 좋아질 거라 믿고 다시 한번 뛰어보자.

이재희·유니레버코리아 회장
1947년 부산生
부산대 경영학과 卒, 고려대 대학원 회계학 과정 수료
78년 하얏트 리젠시 서울 상무이사
84년 TNT익스프레스 월드와이드 북아시아지역 사장
99년~現 유니레버코리아 회장
2004년~現 제13대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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