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종합대학원 -「이코노미스트」공동 기획··· "과격하게, 빠르게, 확 뜯어고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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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도 1년 안에 망할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매일 아침 눈뜨는 순간 혁신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기업이든 현재의 영광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우리도 1년 안에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삽화가 겔렛 버기스는 더 강도 높은 말을 했다. “지난 4년 동안 당신의 주요한 견해를 버리지 않았거나 새로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혈압을 한 번 재 보라. 거죽은 멀쩡해도 모두 죽었는지 모른다.” 이제 혁신은 필수다. 혁신을 원하는 CEO들은 혁신의 씨앗이 조직 내에 골고루 뿌려져 싹이 트길 원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혁신하고 성공시킬 것인가다. 이런 차원에서 ‘CEO학 집중탐구’ 세 번째 주제를 ‘경영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로 정했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혁신 전문가를 초빙, 찹쌀 특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며 시작한 ‘허심탄회 대화’는 세 시간 넘게 진행됐다. 좌담회는 5월 23일 서울 장충동에 있는 한정식집 대장금에서 이뤄졌다. 강석진 술도 한잔 하면서 편안하게 우정을 나누는 자리로 갑시다. 기업은 생존과 직접 연결된 문제라 혁신을 안 할 수 없는데 정부는 그리 조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겠죠. KOTRA는 어떤가요? 홍기화 많이 변했습니다. 얼마 전 전국 188개 전국기관을 대상으로 혁신 성공사례 발표를 했는데 KOTRA는 비수익 기관으로는 최고 수준인 6단계 혁신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분기마다 예산이 잡혀 있어 한국은행이 알아서 자금을 넣어줬지요. 그래서 돈 버는 개념, 고객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자신이 조직 내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했고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조직 개선에 6년이나 걸렸습니다. 지금은 성과에 따라 1000만원 정도 연봉 차이가 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객이 생겼다는 겁니다. 김재우 (혁신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말하기는 쉬워도 참 어려운 작업입니다. 서정욱 모 심는 장면만 있지 추수하는 장면은 없는 것과 같은 겁니다. 농사를 짓는데 이앙기만 있지 탈곡기는 없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배급’과 ‘서비스’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배급은 있는 것을 단순히 유통시키는 것이지만, 서비스는 단순한 유통 이상의 개념이지 않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혁신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왜 혁신을 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하는지 참 갑갑해요. 프로 골프선수는 누가 보지 않아도 점수를 스코어카드에 정확하게 적습니다. 연습만 하고 시합에 나가지 않으면 프로가 아니죠. 시합만 하고 스코어카드를 적지 않는다면 그 또한 프로가 아닙니다. 윤은기 혁신은 본능이라고 하셨는데 인간에게는 이중심리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주위에 변화가 없으면 뭔가 바꿔야 한다며 변화를 찾지만 막상 변화가 닥치면 불안해 합니다. 방어적 심리가 발동해 혁신을 거부하는 거죠. 그렇게 보면 저항도 본능인데 (혁신을 하기 위한) 명분 같은 가치체계나 인센티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석진 변화와 혁신의 차이를 혼동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틀이 바뀌는 혁신에는 반드시 저항이 일어납니다. 혁신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해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리더가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여유를 가지면 실패해요. 과격하다 싶을 만큼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저항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말고 빠르게 가야 합니다. 변화도 본능이지만 저항도 본능이거든요. 모든 구성원이 변하느냐 마느냐 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윤은기 맞습니다. 속도와 타이밍이 정말 중요합니다. CEO가 혁신의 타이밍과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추진하기 어려워집니다. 김재우 우리가 어떻게 (혁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것이 경쟁력을 넓힐 수 있는 것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서정욱 사족일 것 같습니다만 식물도 장소와 종류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릅니다. 배추·무는 심어놓고 1주일 안에 싹이 나지 않으면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최소 몇 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기업도 직종과 상태에 따라 혁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즘 강의할 때 “CEO가 되려면 5술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5술은 학술·기술·예술·상술·인술이거든요. 혁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은기 6술은 어떨까요. CEO는 어떤 경우 마술도 부려야 하거든요.(웃음) 손 욱 그런 점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제2창업을 발표하면서 그룹의 이념을 ‘인간 존중’으로 했습니다. 이병철 선대 회장 당시에는 ‘인재 제일’이었거든요.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이 두 단어는 완전히 다릅니다. 단어 배열이 바뀐 게 아닙니다. 철학이 바뀐 겁니다. 이병철 회장 당시에는 앞에서 주도적으로 이끌고 갈 사람이 필요했지만 상황이 바뀌었지요. 인간 존중은 긍지를 가지고 일하게끔 하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일하는 거죠. 서정욱 건강이 정상인 사람은 의사에게 “왜 괜찮다고 하느냐”면서 (자기 건강에) 흠을 잡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환자는 반대예요. 거꾸로 거짓말을 해주기 바랍니다. 아파도 아픈 데가 없다고 말해 주길 바라는 거죠.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컨설팅부터 받는 이들이 있는데 이러면 회사 망합니다. 건강할 때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듯, 컨설팅은 잘나갈 때 받아야 하는 겁니다. 진정으로 혁신을 원하는 사람은 어려운 때일수록 내부적인 변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홍기화 지난 6년간 혁신을 해본 경험인데 문제는 평가의 투명성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동의하는 기준이 필요한데 이걸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습니다. 더구나 조직원은 평가 대상이 아닌 일은 안 합니다. 김재우 제가 기억하고 있는 말 중에 ‘도요타의 적은 도요타다’라는 게 있습니다. 일류 기업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말인데 저는 여기서 프로와 아마의 차이를 느낍니다. 프로가 뭡니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간발의 차이로 사격 은메달을 획득한 강초현이라는 선수가 있었죠. 그 열여섯 살짜리 선수가 인터뷰에서 ‘나의 적은 나’라고 하는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 프로입니다. 요즘 말로 ‘쿨’한 거죠. 자기 자신과 싸울 줄 안다는 것, 스스로를 더 나은 위치로 밀어 올리려는 노력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프로입니다. ‘enemy inside’라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에는 혁신적인 문화와 그렇지 못한 문화가 혼재돼 있는 상황입니다. 프로와 아마가 함께 뛰고 있는 거죠. 이런 것을 정의하는 게 필요하고 내 안의 적과 싸울 줄 아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윤은기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안 바뀌면 절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서정욱 (CEO는) 자기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엄격한 사람은 (능력이) 다소 부족할지라도 (직원들이) 따라줍니다. 러·일전쟁 때 일왕이 은퇴해 예비역으로 있던 도고 헤이하치로 장군을 불러왔습니다. 모두 도고에게 운이 있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오랜 기간 도고가 보여준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이 왕의 마음에 남아 있었던 덕분이었습니다. 미국 핵잠수함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만 릭오버도 항상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매일 혁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도 매순간 운이 찾아왔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운도 편을 들어줍니다. 홍기화 평가와 그에 따른 보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중요해요. KOTRA는 75개국에 102개 무역관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 고객관계관리(CRM)를 도입, 고객이 무역관을 다녀가면 e-메일을 통해 48시간 내에 평가를 입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평가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죠. 이렇게 고객 만족을 따라가다 보니 프로세스가 변하면서 모든 것이 저절로 따라가게 되고, 조직이 변하더군요. 손 욱 그래요. 진정한 평가는 성과가 나타나야 하죠. 강석진 그런 측면에서 평가 항목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조직이 가려고 하는 비전과 리더가 되는 데 필요한 가치관 등이 들어가 있어야 해요. (평가) 수치는 좋지만 (회사의)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다면 부적합한 사람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혁신을 한다고 하는 기업을 보면 모두 평가를 인사에 반영한다고 하는데 이런 건 로비 같은 부작용을 촉발시켜요. 평가 결과는 자신의 모자라는 부분을 충족시키게끔 본인이 가장 먼저 결과를 보고 가슴 아프게 고민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상사나 동료를 호프집에 데리고 가서 ‘내가 이렇게 변하겠으니 봐달라’라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나타나는 행동들을 인사에 반영해야 합니다. 서정욱 저는 조직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정례회의를 다 없애 버렸어요. 솔직히 회의는 일하는 사람에게는 죽을 맛인 시간이지만 노는 사람에게는 황금 같은 시간 아닙니까. 날마다 노는 사람들에게 “뭘 하느냐”고 물으면 다들 “회의 준비한다”고 해요. 하지만 정말 일하는 사람은 회의 마치고 밤새워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의가 지옥이죠. 회의를 없앤다고 하니 다들 우려했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회의가 없어지면 평소 일 안 하고 놀던 사람들은 불안해집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직접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CEO가 회의를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혁신은 쉽게 말해 노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겁니다. 손 욱 뭐든 강제적으로는 힘들어요. 자생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설득이 필요해요. 불씨가 퍼져 여기저기서 살아나야 합니다. 어쨌든 톱이 끊임없이 설득해야 합니다. 블루 오션으로 유명한 김위찬 교수가 강조한 건데 ‘페어 프로세스(Fair process)’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말을 잘 듣는 A공장과 항상 문제가 발생하는 B공장이 있었습니다. B공장은 문제투성이여서 경영진이 끈질기게 설득하고 교육시키며 신경을 많이 썼어요. 모범인 A공장은 괜찮으려니 하고 안심했죠. 결과가 어떤 줄 아십니까. B공장은 최강의 경쟁력을 가진 모범 공장이 됐는데 A공장은 시위와 문제가 얼룩진 공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표도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요. 김재우 저는 1997년 1월 (벽산의) 주위가 모두 패닉 상태일 때 사장에 취임했는데요. 그때 느낀 점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낄 때 변화를 이끌기가 더 쉽다는 겁니다. 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손 욱 미국 기업들은 종업원의 능력 중 20%를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GNP가 4만 달러고 우리가 1만3000달러이니 우리는 종업원의 능력 중 6% 정도밖에 못 쓰는 셈입니다. 공감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저는 직원과의 공식·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혁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직원들과 원활히 의사를 교류한다면 혁신 저항 세력도 쉽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김재우 제 경우는 직원 전체 조회는 7년 동안 딱 두 번 했는데 그 대신 디지털 인프라를 통한 조회로 커뮤니케이션을 했지요. 디지털을 경영에 접목한 것인데요. 특히 제게 정보를 주는 체인지 에이전트(Change Agent·조직 활성화 담당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거의 매일 했습니다. 이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윤은기 그렇다면 혁신에 대한 저항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군요. 하나는 체인지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자를 컨트롤하는 것 말입니다. 손 욱 쉽게 말해 30%의 역량을 이끌어내면 사는 것이고, 6%밖에 끄집어내지 못하면 죽는 거죠. 어쨌든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반대자들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체인지 에이전트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저는 머리가 일찍 벗겨지는 통에 젊어서부터 주례를 많이 섰어요. 삼성전기에서 한 70쌍 이상 섰는데 1987년 노사 분규 때 보니 문제를 갖고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주례를 섰던 사람이더군요. 제 ‘라인(직할 조직)’에서 문제를 얘기해 주는 게 아니었어요. 배드 뉴스(Bad News) 들고 오는 이들은 라인이 아니라 인간적인 유대가 있는 직원이었습니다. 이렇게 배드 뉴스를 갖고 올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중소기업 사장들이 대부분 실패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종일 정신없이 공무원 만나 골프 치고 접대하느라 (조직) 내부나 자기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하거든요. 갈수록 힘들어질 수밖에요. 서정욱 맞습니다. 사실 비즈니스는 전쟁터입니다. 여기서 정보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적군의 움직임, 날씨, 소리, 바람 방향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지요. 이 정보를 가져다주는 사람들은 정말 중요합니다. 강석진 저는 아까부터 거부반응이 느껴지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어쨌든 여기서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종업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종업원은 무조건 따라오라는 의미 아닙니까. 이제는 구성원이라는 단어를 썼으면 좋겠어요. (모두 웃으며 박수로 화답) 서정욱 굳이 덧붙이자면 성공했다고 머무르려고 하면 안 돼요. 미련없이 물러날 줄 알아야 합니다. 구들이 식기 전에 자리를 뜰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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