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술 집어 삼키는 중국
한국의 기술 집어 삼키는 중국
지금도 소송은 계속된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이하 위메이드)는 2001년 ‘미르의 전설2’(이하 ‘미르2’)를 들고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에 진출해 동시 접속자 수 70만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대박’을 터뜨렸던 위메이드는 2003년부터 힘겨운 법정 싸움을 벌여왔다. “소송 비용도 비용이지만 제품 개발까지 지연되는 등 3중고에 손해가 막심하다 “고 위메이드의 홍보 담당자는 말했다. 중국 현지 협력사의 변심에서 위메이드의 악몽은 시작됐다. ‘미르2’의 중국 서비스를 맡은 샨다엔터테인먼트가 2002년 중반부터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았다. 2003년에는 아예 ‘미르2’를 그대로 베낀 ‘전기세계’를 출시하고 버젓이 영업을 시작했다. 배경이나 스토리 구조, 상황 전개가 아주 유사했다. 2003년 10월 위메이드는 베이징 인민법원에 소장을 접수하고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벌이기 시작했다. 70만 명에 달하던 동시 접속자 수는 ‘전기세계’ 출시 이후 40만 명대로 뚝 떨어졌다. 위메이드는 한국의 중국 진출 1세대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였다. 선례도 없고 어디다 호소할 데도 없어서 막막할 따름이었다. 이 사건은 베이징 인민법원에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명백한 지적재산권 침해사례임에도 법원의 판결은 쉬 나오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 시장을 육성하려는 중국 당국이 ‘미르2’ 덕분에 나스닥 상장까지 하게 된 ‘샨다’를 감싸고 돌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한동안 소송에 골몰했던 위메이드도 이제는 게임 개발에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송으로 잃어버린 2년을 만회하겠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이 회사의 박관호(34) 사장은 말했다. 올해만 신제품 3개를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업체들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의 60%를 차지한다. 그만큼 국내의 기술과 인력을 빼가려는 외국 기업의 시도는 많다. 기술력은 높지만 영세하고 재정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온라인 게임 제작 기술 해외 유출 대책’ 자료를 작성해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이 거대 자본을 이용해 우수한 한국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시도가 증가하고, 핵심 인력이 중국 등 해외로 스카우트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게임업체 간 합리적 M&A와 전문화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MP3 플레이어를 만드는 레인콤은 자사 모델 iFP300을 그대로 도용한 중국 복제품이 나돌지만 화풀이할 데도 없다. 무조건 갖다 베끼는 중국 업체들은 소규모 영세업체들이다. 소송을 준비하면 문을 닫아 버리고 도망가기 일쑤다. 레인콤의 경우는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 구체적 대응은 자제하지만 유사 사례가 자꾸 발생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 중국은 기술 유출 요주의 대상 1호다. 산업자원부 자료를 인용해 삼성경제연구소가 2004년 10월 작성한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실태와 대책’ 보고서는 1998년부터 2004년 8월까지 해외 기술 유출 시도는 51건이라고 밝혔다. 유출됐을 경우 피해 예상액이 44조원에 이른다. 적발 대상국에선 중국이 39%(20건)로 가장 많으며, 같은 중화권인 대만도 18%였다. 물론 미국(21%)과 일본(10%) 등 선진국의 경쟁 업체들까지 국내 첨단 기술을 노리기는 마찬가지다. 국정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황은 최근 더 심각해졌다. 2003년 이후 3년간 불법 기술 유출이 기도단계에서 적발된 사례는 총 61건에 피해 예방액이 82조원을 넘는다. 특히 2004년 기술 유출 시도는 양과 질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이전까진 기술 유출 시도라고 해봤자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총 40건으로 한 해 평균 7건에 못 미쳤다. 피해 예방액도 모두 26조원 남짓했다. 하지만 2004년엔 26건, 지난해엔 29건으로 껑충 뛰면서 각각 33조원, 35조원의 가치가 해외로 빠져나갈 뻔했다. 2004년 9월 이후부터 국가별 적발 통계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보인다. 특히 중국은 2001년 이후 한국의 최대 해외 투자국이다. 2001년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한국의 대중국 투자 누계액은 204억 달러로 전체 해외 투자의 23.9%를 차지한다. 경제 교류가 늘어나는 만큼 기술 유출 사례도 늘어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도 한국에 돈을 쏟아붓는다. 2003년까지 1억 달러대를 기록하던 중국의 대한국 투자는 2004년 6억9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3.8배 증가했다. 연간 9%에 달하는 경제성장과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해외 기업 인수에 적극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홍콩과 조세 회피지를 제외하면 중국의 대외 투자에서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결국 실질적인 해외 투자의 대부분이 기술 확보를 노렸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도 기술 보안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과학기술부·산자부 같은 경제 관련 부서와 국정원 등은 기술 유출 방지 대책을 수립하거나 업체들을 대상으로 산업 보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은 반도체·정보 통신 등 첨단기술을 보유한 업체에 산업 보안 담당관을 파견, 보안 상태를 점검한다. 첨단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장도 국정원이 직접 챙긴다.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경제 교류가 급증해온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술 유출 시도가 급증한 2004년은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술 기업들이 사상 초유의 흑자를 기록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장해 나간 시기다. 대기업들도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직원 교육과 시설을 대폭 보강했다. 지난해 9월 완공된 삼성전자 디지털 연구소를 한번 보자. 4900억원을 들여 지상 36층, 지하 5층 규모로 지은 이 건물은 철벽 보완을 자랑한다. 일단 사무실에서는 유선 전화를 모두 없앴고 휴대전화를 구내 전화처럼 사용하도록 시스템을 꾸몄다. 통화 내용은 모두 데이터로 남는다. 건물 내에서는 카메라폰의 카메라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카메라 기능 자동 제어 시스템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기술 유출의 표적이 되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는 2004년부터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디지털 지적재산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DRM은 소프트웨어나 e-메일, 문서뿐 아니라 음악·영상·출판물 등 각종 온라인 콘텐츠의 저작권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관리하는 기술이다. 이를 적용하면 회사 내부에서 작성되는 문서나 회로 설계도 등이 암호화돼 외부에서는 읽지 못한다. 그러나 몇몇 대기업을 제외한 국내 기업의 보안 실태는 거의 무방비에 가깝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2003년 국내 39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보 보안 예산이 매출액의 1%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80% 이상이다. 국내 기업 중 보안 담당 부서를 두고 있는 곳도 13%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소기업은 더 형편없다. 조사 대상의 71%가 보안관리 규정과 같은 기본적인 장치조차 갖추지 못했다. 기술력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임을 감안하면 기술 보안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문다. 기술 유출을 우려하기보다 경제 교류에서 오는 이득이 더 아쉽기 때문이다. 또 기술 유출은 산업 스파이나 절취와 같은 불법적인 방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품 장비의 공급, 기술 이전 계약, 기업의 M&A 등 합법적인 경로를 통한 기술 유출이 규모면에서나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서 더 크다.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중국이 하이디스(TFT-LCD)·현대시스콤(휴대전화)·쌍용자동차 등 핵심 기술 보유 기업을 합법적으로 매수한 경우가 좋은 예다.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한 이래 경영진과 노조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노조는 상하이자동차그룹이 쌍용차 핵심 부품 승인도를 중국으로 송출했다며 핵심 기술 빼돌리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회사 노조의 이규백 교육선전실장은 “상하이자동차가 중국 공장으로 핵심 기술을 이전한 뒤 쌍용자동차를 재매각이라도 하면 실업자가 무더기로 양산된다”고 우려했다. 사측은 기술 유출은 말도 안 되며, 매각과 같은 각종 소문도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경영진은 “중국 내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면 일정 부분 이상의 부품을 현지화해야 하는 중국 법규 때문에 발생한 오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상호 불신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대한국 투자가 증가할수록 이런 갈등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2004년 이후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하는 등 한국과 경제적으로 아주 밀착해 있다. 중국은 전 세계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매력적인 시장이기도 하다. 세계 500대 기업 중 450개사가 중국 내 생산체제를 구축했으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다국적 기업의 61.8%가 중국이 연구개발 활동에 적합한 국가라고 응답했다. 한국 역시 중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중국과의 접촉 면이 넓어질수록 기술 유출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특히 중국은 세계의 기업이 눈독을 들인다는 이점을 활용해 첨단기술 흡수에 유리한 외국 투자 수용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전략적·선별적 유치로 전환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11월 ‘최근의 대중국 투자환경 변화’ 보고서에서 “중국 내에서 과잉생산되거나 기술력이 떨어지는 분야의 투자를 제한하는 한편, 첨단기술 분야의 투자는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령 자동차의 경우 부품 수입에 고관세를 부과해 첨단 부품 생산의 현지화를 유도한다. 철강 또한 경기 과열이나 설비 과다를 이유로 저급 기술보다는 고급 기술의 투자 확대를 요구 중이다. 포스코는 글로벌 경영 전략 차원에서 반드시 중국에 진출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해 3월 중국 광둥(廣東)성 정부에 일관 제철소 건설 의향서 제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신철강정책에 따르면 신규 제철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외국 기업과 중국 철강사가 합작할 경우에도 외국 기업이 지분의 50% 이상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신규 제철소를 예외적으로 허가하더라도 경영권은 중국 측이 쥐겠다는 말이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포스코의 진출을 승인해주는 대가로 최신 파이넥스 공법 투자를 요구했다. 포스코에는 다분히 위험한 조건이다. 경영권을 행사하는 합작사의 손을 거쳐 자체 개발한 파이넥스 신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포스코 홍보실의 철강 담당 김세근 과장은 “2006년부터 시작되는 11차 5개년 계획의 후속 조치에 외국 철강자본의 중국 진출에 우호적인 조치들이 담기길 기대한다”고 했다. 중국 진출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팀장 김주한 박사는 “중국은 철강 공급이 이미 과잉이어서 자기가 필요한 경우에만 투자를 허용할 것이다. 포스코가 신기술을 시험할 만한 무대는 중국 등 몇 곳으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경영권이 없으면 기술을 독점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이게 포스코의 딜레마다”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시장을 제공받는 반대급부로 일정한 기술의 유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술 유출 문제를 법률적으로 풀어보려는 움직임은 굼뜨기 그지없다. 2004년 11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등 여야 의원 34명은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보, 경제 또는 관련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해 보호하자는 취지다. 국가 핵심 기술을 이전하려는 자는 산자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거나 사전에 통지해야 한다. 정부는 필요한 경우 해당 사업의 중지, 금지, 또는 원상 복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산업 기술을 부정한 방법으로 유출한 자에 대해서도 징역형과 벌금을 병과하고 미수범, 예비 또는 음모의 경우도 처벌하도록 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담고 있다.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찬반 논란 속에 1년 넘게 표류 중이다. IT 기업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기술 유출도 제한받게 되고, 재산권 행사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불만도 있다. 과학기술계는 예비, 음모 등을 처벌하도록 한 규정은 남용될 경우 심각하게 인권을 침해하고 과학기술인들을 위축시킬 만한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국회는 최근 산업자원위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과학기술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여론 수렴에 나섰지만 법안 처리 시점은 예상조차 어렵다. 국회 산업자원위 도재문 수석 전문위원은 “쟁점이 많아 법안 처리에 시간이 더 소요되리라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장외 투쟁 등 제반 정황을 고려해볼 때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도 이 법안이 제대로 심의될지 의문이다. 특히 개방경제 체제 하에서 M&A나 인력 이동에 의한 기술 유출을 법으로만 막기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산업연구원 조윤애 연구위원은 “법적·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적 차원에서 기업 스스로 영업비밀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별 기업이 사내 보안체계 확립 등 자구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중국처럼 외국의 기술을 이전받고 과학기술자들을 영입하려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배워야 할 선진 기술은 많다. 업계에서는 적법한 M&A까지 일일이 문제 삼다가는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가 위축되거나 국내 기업의 해외 영업활동에 제동이 걸린다고 우려한다. 결국 기술 유출을 막는 근본적 해결책은 지속적인 기술 혁신에 있다고 삼성경제연구소 임영모 수석 연구원은 말했다. “해외 진출의 경우에는 기술 유출을 감안한 전략이 필요하다. 보다 바람직한 대안은 현재 보유한 기술을 지속적으로 ‘진부화’시켜 경쟁사가 모방하더라도 실익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p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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